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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는 개인 회사를 운영하는것과 같습니다


성공한 사업가는 회사를 운영함에 있어 여러가지 사업에 투자를 하게됩니다. 투자한 사업은 수익을 크게 주기도 하고 지지부진하기도 하고 때로는 손실을 줄 때도 있습니다.

 

지지부진하거나 손실을 주는 사업은 빠르게 청산하여 피해를 최소화하고 그 돈으로 수익성이 좋은 사업에 집중하여 이익을 극대화 하거나 다른 수익성이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에 재투자를 합니다.


주식투자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개인회사를 운영하는 방식 그대로 종목(=사업)에 투자를 하되 지지부진하거나 손실을 주는 종목은 최소한의 피해로 익절 혹은 손절해 버리고 수익을 주는 종목으로 집중하거나 다른 좋은 종목으로 재투자를 하는 리스크 관리가 필요합니다.


좋은 종목을 고르고 매수매도타점을 잡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리스크관리에 대란 마인드가 잡혀있지 않으면 한번의 실패로 큰 손실을 볼 수 있습니다.


주식투자는 즐겁게 해야 합니다. 

 

즐거운 투자가 되기위해서는 내가 주체가 되고 선택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종목을 손절하지 못해 크게 물리고 결국 끌려다니는 상황으로 매매가 이어진다면 우울한 투자가 될 수 밖에 없고 나아가 사업은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주식투자는 사업과 같습니다. 내 회사를 운영함에 있어 내가 주체가 되는것이 중요합니다. 


by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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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늑대(天狼)

MIXI (Martial arts, Investment in stocks X Information tech) World...since 2008

서장. 전설의 대결


쇼와 26(1951년)년 10월... 리오 데 자네이루의 마라카난·스타디움...

세기의 유술 시합 단판 승부가 벌어졌습니다.

 한때 세계 최강의 격투가라는 칭호까지 얻었던 전설의 유도가 '마에다 미츠요'의 후계자 리오·그레이시(170cm/63kg) 그리고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후에 기무라 없는 당대 최강의 유도가기무라 마사히코(175cm/85kg)의 3 R 각 라운드당 10분의 결투.(기무라의 키에 대해서는 170이라는 자료도 있고 178이라는 자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보편적인 것은 175였다는 자료입니다.

기무라 마사히코

이에 175로 일단 쓰기로 합니다.
 모 스포츠 신문에 나온 UFC의 역사라는 글을 보면 무슨 기무라와 가토가 전부 100킬로가 넘는다고 해뒀던데, 그건 제대로 자료를 뒤져보지 않고 글을 쓰셨기 때문입니다. 기무라는 85킬로, 가토는 80킬로였습니다. 게다가 기무라와 엘리오가 10살이나 차이가 나서 나이에서도 기무라가 유리했다고 해 둔 것 같았는데 기무라 34, 엘리오42 즉 8살차이였습니다.
 그 칼럼 중 마에다 미츠요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잘못된 점이 많이 보였는데 엘리오 편에서도...많이 안타깝더군요. 너무 유술가들의 편을 들어주고자하는 어투가 역력해서...)

 이 시합 전에 가토 5단이 엘리오에게 패배하는 바람에 기무라는 비장한 각오로 시합장에 나타납니다. 물론 웃음을 머금고 있기는 했었지만 그 속은 편치 않았겠죠. 한번도 맞서본 일이 없는 유술이라는것과 맞서야한다는 것 또한 무척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미 기무라 마사히코의 나이 34세. 전성기를 한참 지나버린 그가 브라질까지 오게 된 것은 자신이 총 책임자로 있는 '프로유도'의 홍보를 위해서였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레이시 유술과 싸운건 강도관 유도가 아니라 프로유도였던 것이죠. 물론 이때 이미 프로유도 단체는 소멸했었지만, 스스로의 유파는 프로유도였고, 이를 이용한 프로레슬링을 계획하고 있었죠.

  시합장에 들어서자 기무라는 흠칫 놀라게 됩니다. 바로 거기에는 관이 놓여 있었던 것이죠. 엘리오는 기무라에게 그것은 기무라가 죽으면 들어가게 될 관이라고 하며 자신감을 피력했습니다. 엘리오는 그것을 보고 웃었다고 하죠. 속마음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자기 관이라고 들고 나온 걸 보고 보고 웃는 사람은...^^

  당시 엘리오는 수많은 발레투도 시합에서 패배 없이 승리를 거두던 입장이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고 비교적 자신이 없는 분야였던 타격을 배제한 상태에서 유술만으로 기무라를 상대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기세가 등등했습니다.(카지와라 잇키 씨의 공수 바보일대에서는 엘리오 그레이시를 200킬로가 넘는 괴물 유도가라고 묘사해 두었고, 방학기씨의 바람의 파이터에서는 인디오 레슬러라고 묘사해 뒀지만...익히 아시다 시피 엘리오의 체격은 무도가로써 보통도 안되는 체격이었죠.) 엘리오가 타격이 약하다는 것은 이후 산타나에게 패배하면서 증명이 되기는 하지만 어쨌건 당시 브라질에서 엘리오라고 하면 최강의 격투가이자 유술가였습니다. 엘리오는 격투 전적에 패배라고는 2패 뿐인데 산타나와 기무라에게 당한 것이었습니다.

  엘리오는 서쪽 문을 통해, 그리고 기무라는 동쪽 문을 통해 등장합니다. 브라질에는 일본교민도 많았고 엘리오가 그렇게 일방적인 야유속에 경기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브라질인들의 엘리오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그 경기에 브라질 대통령까지 동참햇다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무라는 시합장에 오르면서 다시 한번 놀라게 되는데 바닥이 보통의 것보다 많이 물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기무라의 필살기인 밧다리 후리기와 한팔 업어치기를 봉쇄하기 위한 엘리오의 전략이기도 했고, 당시 유술 시합에 쓰이던 바닥은 유도에 비해 많이 무른 소재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본측에서는 엘리오의 계략이었다고 하기는 합니다만..저는 두사람 다 좋아하니까 어느 편을 들지는 않겠습니다^^

  1라운드가 시작되자 기무라는 엘리오를 메치려 하지만 엘리오의 번개같은 스피드에 쉽게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시 팔힘은 일본 제일이라는 정평이 나 있었던 기무라 답게 엘리오를 붙잡아 넘어뜨리고 누르는데 성공합니다. 이 때 엘리오는 이미 귀가 찢어져 피가나기 시작했습니다. 기무라는 엘리오를 죽이거나 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괜찮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엘리오는 정신력이 엄청난다고 정평이 나 있었던 만큼 당연히 그 정도로는 굴하지 않았죠. 그러다가 엘리오가 순간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그렇지만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기무라의 조르기와 꺾기를 방어합니다.(솔직히 제 생각에는 실신한 건 아닌 듯 한데, 일본측 자료에는 그렇게 되어 있더군요.) 기무라는 엘리오와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닌 만큼 "무리하지 마라!"라고 두번 정도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엘리오는 일어를 어느정도 알아들었다고 하죠.)

기무라 마사히코

   2라운드가 되자 엘리오의 끈질김에 혀를 내두른 기무라는 하는 수 없이 팔 얽어 비틀기를 써버립니다. 훗날 기무라 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이 기술은 사쿠라바가 그레이시 헌팅을 할 때 응용되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엘리오는 버티지만 이미 팔관절이 완전히 나가버린 상황이었죠. 우두둑 하는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관중들이 들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엘리오는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싸운다고 하였지만 보다못한 카를로스 그레이시가 타월을 던져 버립니다.

  기무라는 이 경기가 끝나고 나서 "과연 마에다 미츠요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이다. 엘리오의 투지야말로 일본 무사의 거울이다. 경기는 내가 이겼으나 승부에 대한 집념에서는 패배했다."라고 한 바 있습니다.

 (이 시합이 와전되어 기무라와 엘리오가 3시간이나 싸웠다느니, 기무라가 엘리오를 백번을 메쳤는데 엘리오가 버텼다느니 하는 헛소문이 돌게 되었습니다. 실제 시합시간은 13분이었고 시합 내용 자체로는 엘리오가 기무라에겐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1. 유도의 귀신-기무라 마사히코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후에 기무라 없다!"


1917년 9월 10일에 태어난 기무라 마사히코는  강을 끼고 있는 구마모토 현의 광산 마을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물속에 발을 담그고 돌멩이와 모래들을 퍼서 나르는 일을 하였다고 하죠. 물속에 하체를 담그고 하루 종일 있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단련이 됩니다. 물의 흐름을 계속 버티면서 허리와 다리가 자연스럽게 강해지죠. 또한 계속에서 돌멩이와 모래가 든 자루와 채를 손에 쥐고 날랐기 때문에 기무라의 악력이라는 것은 유도를 배우기 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 구마모토 출신들이 술을 잘하고 힘이 장사라고 하죠.

기무라 마사히코

 10세때 강도관에 입문한 기무라는 엄청난 트레이닝으로 원래 강했던 팔힘과 악력을 거의 사기 수준으로 끌어올리게 되는데요. 자전거 타이어를 이용한 트레이닝이 보급되지 않던 시절 나무에 흰띠를 묶어놓고 메치기 연습을 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트레이닝법이었는데요, 기무라가 끊어먹은 도복띠는 강도관 시절에만 무려 1000개에 달한다고 합니다.(유도를 해 보신 분들이면 다 아시겠지만 유도의 도복띠는 어지간해가지고는 튿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배밀기(유도식의 팔굽혀펴기)를 한 번에 1000회씩 할 정도의 팔힘과 지구력을 키웠습니다.

 (방학기씨의 만화 바람의 파이터를 보면 기무라가 달려오는 말을 메치는 일화가 나옵니다만, 이것은 아무래도 과장인 듯 합니다. 일본 측의 어떤 자료에도 그런 언급은 전혀 없거든요. 그리고 전성기의 기무라라면 그게 가능할런지도 모르지만 소년시절에 달려오는 말의 앞발을 잡고 메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죠, 중심이동이나 움직임 등이 사람과는 판이하게 다른 네발달린 짐승을 던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비현실적입니다^^)

  중학 4학년(지금의 고1)때 강도관 4단을 취득,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승단 기록을 세우게 되는 기무라는 이후 시합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 17세의 나이로 전일본 대회 최연소 우승 1935에서 1937년까지 전 일본 유도대회 3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이후 13년동안 1950년까지 무패, 10연속 우승이라는 깨지지 않을 대기록을 세우게 되죠(물론 무승부 기록은 있습니다.) 결국 기무라는 당시 히트하던 소설 스가타 산시로의 붐과 함께 재조명되기 시작한 산시로의 실제 모델인 강도관 사상 최강의 사나이 사이고 시로의 뒤를 잇는 '쇼와의 산시로'라는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후에 기무라 없다!'는 말은 이 기무라를 당시 사람들이 사이고 시로와 동급으로 인정해 줬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사이고 전에 야마아라시 없고, 사이고 후에 야마아라시 없다!'라는 말에 빗대어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이고 편을 읽으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사이고 시로는 강도관 122년 역사상 최강이라고 불리는 남자입니다. 그와 견줄만 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기무라야말로 천재중의 천재였다는 것이죠.

 (흔히들 김두한 씨의 일대기에 꼭 등장하는 마루오카와 기무라를 비교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만...마루오카는 체중 자체도 경량급이었고, 지명도에서도 기무라 마사히코하고는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원래의 유도 시합이라는 것은 당시에는 체급이라는 것이 없고 무차별급으로 진행되었지만 어전시합에 한해서 경량급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루오카는 그 부문에서 우승했던 것이죠.(사실 이 어전시합조차도 불분명합니다.) 방학기씨의 만화에는 이 마루오카가 유도8단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나이에 8단이라면 그건 대기록입니다. 당시 강도관에서 40대가 되기전에 8단 취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기무라나 사이고 시로도 하지 못한 일이죠. 한마디로 무척이나 과장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방학기씨가 만화를 그릴때 김두한씨가 생전에 라디오 프로에서 했던 증언을 자료로 참고해서 그렸기 때문에 틀린 부분이 너무 많이 나온 것이죠.-그 라디오 방송의 증언들이 허풍과 과장이 너무 심했다는 것은 김두한씨와 같이 건달 생활을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인정한 내용입니다.-장군의 아들 같은 영화를 보면 마루오카는 장신에다가 거구인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현역시절 170에 70킬로도 되지 않는 경량급이었습니다. 8단이라는 것도 당연히 거짓말이죠. 물론 마루오카가 그리 이름난 선수가 아니다 보니 정확한 단수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기무라나 아베 켄시로 같은 무적의 강자들이 버티고 있는데 혼자 8단까지 올라갈 수는 없었죠. 당시 일본 경시청 유도 지도 총감의 단수가 8단이었습니다.  

 일개 경찰서의 무술 지도 경부가 8단이라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이죠. 물론 이 마루오카 경부의 유도 실력은 비록 경량급이라도 어전 시합에서 우승을 할 정도이니 굉장하기는 했었던 듯 합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나가 떨어진 당시의 건달이나 야쿠자는 꽤 많았다고 하지요. 그러다보니 스스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종로의 건달들이 강하다는 것이 일본까지 정평이 나서 마루오카를 특별히 불러왔다느니, 마루오카가 어전시합 무제한급을 7연패를 했다느니 하는 과장과 헛소문을 퍼뜨린 듯 합니다.-무엇보다 공식적인 어전시합인 무차별급에서 마루오카라는 우승자는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 당시 우승자라고 올라있는 이름은 아베 켄시로와 기무라뿐이죠. 야인시대나 김두한씨의 팬 분들은 이 부분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품으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사실대로 쓴 것 뿐입니다. 저도 어린시절엔 김두한씨의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다 믿었었거든요. 그게 엄청난 과장과 허풍이 섞였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는 거의 10년이 걸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이야기지요.)

 기무라의 최종 단수는 강도관 7단이었는데 이는 기무라가 1950년에 강도관을 탈퇴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규정도 그렇지만 당시 강도관 규정에도 특별 승급이라는 것이 있어서 7단 정도까지는 별도의 승단 심사 없이 어전 시합 우승만으로 승급이 가능하였고, 기무라는 바로 그런 케이스로 올라간 것이었죠. 정상적인 승단 심사를 통한 것이었다면 33세때 7단이라는 건 말이 안될 정도의 단수 입니다.^^;; 물론 당시 7단이건 8단이건 기무라를 이길 사람은 없었겠지만 말이죠. 우리나라 유도도 올림픽 우승하면 자동으로 단수를 올려주는 특별승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올림픽 우승할 정도의 실력자라면 정식 승단을 하더라도 4단이나 5단 정도는 어렵지 않게 딸 듯 합니다만...

 

2. 기무라를 패퇴시킨 사나이!-아베 켄시로


기무라는 16세의 나이에 어전 시합에 최초로 참가하여 승승장구, 4강까지 진출합니다. 당시 기무라의 위력앞에 이름난 유도가들이 하나하나 다 나가떨어졌었는데 그를 지켜보던 가노 지고로 조차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고 하니 당시 기무라의 위력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아베 켄시로. 그는 당대 최강이라고 평가받던 유도가로써 168의 키에 71킬로. 경량급에 나가야 할 체중이었지만 워낙에 강자였기 때문에 무차별급에 출전하게 된 것이었죠.(체격은 마루오카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실력은 천지차이였던 듯 합니다.)

 기무라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밧다리 후리기를 하면서 한팔 업어치기를 할 요량으로 아베 켄시로에게 달려들지만 되려 아시바리(와사바리라고도 부르죠 우리나라에서는^^)를 당해 쓰러지면서 절반을 빼앗깁니다.(당시에는 절반 그리고 한판 두가지 뿐이었습니다. 그냥 밀려 넘어지는 그런건 점수로 인정도 안해 주던 시절이었죠.) 생전 처음으로 아시바리에 넘어져 본 기무라는 자존심이 상해 다시 달려드는 순간 자신의 복숭아 뼈 밑으로 아베의 발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다음 순간 기무라는 세상이 뒤집히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초고수의 아시바리를 당하게 되면 원래 머리부터 떨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안당해 봐서 모르겠습니다만(저는 도장에서 초고수한테 당한게 아니라서 그런가 봅니다^^)

 결국 아시바리 두방에 한판으로 무릎을 꿇게 된 것이죠. 이 대회 우승을 마지막으로 아베는 어전대회에 참가하지 않게 됩니다. 기무라에겐 가장 깨끗히 패해버린 시합이 되고 말았죠. 리벤지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아베 켄시로에게 패퇴했던 경험은 기무라에겐 엄청난 추진력이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한팔 업어치기의 연습에 주력하던 기무라는 이 일을 계기로 한가지 수련을 더 하게 되는데 바로 100개의 촛불을 켜고 발뒤축 후리기를 연습하여 풍압만으로 불을 꺼버리는 연습을 하게 된 것이죠.

 

3. 기무라와 프로유도

 

정식적 명칭은 국제 유도 협회이고 쇼와 25년(1950년)에 우시지마 8단이 만든 것입니다. 이 또한 수많은 문헌에서 기무라가 창시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프로유도라는 것은 고류 유술에 존재하는 수많은 살수와 역관절 메치기 같은 위험천만한 기술들을 다 복원시켜 스포츠 유도가 아닌 격투전용 유도를 지향하는 상당히 실전적인 무도였다고 합니다.

 사실 역관절 메치기같은 경우는 조금만 잘못해도 팔의 관절이 부러져버리는 것이 다반사이며, 낙법도 무척 까다로와서 메쳐지면 실신하거나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의 유도에서는 사라져 버렸지만 삼보에 아직 그 원형이 남아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삼보자료를 뒤져보시면 될 듯 합니다. 브라질리언 유술에도 역관절이 조금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역관절에 관한한 삼보쪽이 보다 더 체계가 있죠.(아무래도 엘리오나 카를로스 본인들이 메치기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물론 역관절 기술들에 관해서는 대동류와 아이키도가 가장 우수하기는 합니다만...

 손가락 관절기는 제대로 된 합기도를 조금만 익혀 보신 분들은 그 원리를 금방 아실 겁니다. 사실 손가락은 굉장히 민감하며 힘도 별로 없어 주먹으로 꽉 움켜 쥐기만 해도 기술의 반은 걸렸다고 할만큼 쉽게 적을 제압할 수 있는 기술이지만 역시 손가락이 부러지거나 불구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유도에서 금한 기술입니다.

 기무라는 강도관의 분위기가 너무 무도보다는 스포츠 쪽으로 기우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스스로는 연습때마다 살벌할 정도의 기술을 남발해, 그의 기술을 받아주는 사람들이 꼭 한 두명은 실신을 했다고 합니다. 하루에 100명과 대련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기무라는 이처럼 기술을 너무 세게 걸었기 때문에 강도관에서도 평가가 썩 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그에게 요시지마8단의 프로 유도는 그의 무도 정신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이었고, 기무라는 요시지마의 수제자로 들어가게 됩니다. 손가락 관절기까지 다 부활시켜버린 프로유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레이시 유술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이 프로 유도는 최영의 선생님의 실전공수처럼 엄청난 비난을 받으면서 전통 유도계의 압박에 의해 겨우 10회의 시합을 갖고 4개월만에 하와이에서 소멸하고 맙니다. 그리고 하와이에서 기무라는 프로레슬링을 하기로 결심, 브라질 순방에 나서고 거기서 엘리오와 맞서게 됩니다.

기무라 마사히코


4. 최영의와 기무라, 두 초인의 만남.

 

기무라 마사히코님의 일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당대 최강의 무도가 최영의님이시죠. 최영의님이 미국 순방에서 돌아와서 전통 무도계의 온갖 시기와 중상 모략때문에 고뇌하던 시절, 기무라 마사히코와 만나게 됩니다. 기무라 또한 프로 유도를 하는 바람에 강도관 유도계 인사들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공격을 당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하죠. 만나자 마자 둘은 십년지기처럼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그러나 한가지 실망스러운 점은 이 둘의 대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인데요, 솔직히 상당히 궁금하기는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최강자라고 인정해주는 사이였으니 말이죠. 기무라선생의 성격또한 최영의님 만큼이나 괴짜스러운 부분이 있어 아무하고나 친해지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두분은 마음이 잘 맞았다고 합니다. 최영의님은 자신이 직접 쓴 글에서 이렇게 언급하신 일이 있습니다. 뭐 바람의 파이터나 공수 바보일대에서는 둘이 대결한 적이있는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으나...뭐 아무도 안보는 곳에서 두분이 겨룬 일이 있는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최영의님도 기무라님도 아무도 그런 언급을 하신 일이 없으니 알 수 없는 일이죠.

"기무라야말로 최강의 유도가이고 진정한 무도인이었다. 그는 나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나보다 더 많이 단련하고 정진하는 내가 아는한도내에서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요즘의(당시, 1960년대) 일본 유도계는 네덜란드의 헤싱크(헤이싱이라고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5단에게 무릎을 꿇고 있다. 그러나...기무라 마사히코가 돌아온다면 헤싱크 따위는 그의 도복도 잡아보지 못할 것이며 3분을 버티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이것은 공수도인 최영의의 이름을 걸고 단언할 수 있다."

 최영의님과 함께 미국 순방을 떠나 사선을 함께 넘으며 우정을 다졌던 엔도 고키치 6단은 최영의님께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나도 유도가이다보니, 기무라 마사히코라는 인간을 한 번 이겨보고 싶어서 5년이나 죽어라 연마했습니다. 기무라의 필살기라는 한팔 업어치기와 밧다리 후리기는 나의 필살기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5년동안 이를 갈면서 연마했지만 막상 기무라씨와 맞잡는 순간에 땅에 쳐박히고 말았지요...몇초도 버티지 못했었죠...."

 이후 최영의님과 기무라는 같이 유도도 수련을 했는데, 최영의님 또한 4년만에 강도관 4단을 취득한 유도의 달인이었기 때문에, 직접 유도 대련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아무리 천하의 최영의님이라고 해도 유도로는 기무라의 적수가 되지 않았죠. 맞잡는 순간에 한팔 업어치기로 깨끗히 날아가 버리셨다고 합니다.

그 때 하신 말씀이 유명합니다. "나를 이렇게 메쳐버린 인간은 기무라 마사히코 뿐이다."

 

5. 기무라와 역도산 그리고 최영의...당대 최강의 남자들이 만나다!...그러나...

엘리오 그레이시를 격침시키고 일본 유도의 강함을 증명한 기무라, 그러나 일본에서 그를 맞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관심조차 기울여 주지 않았죠. 훗날 그레이시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그레이시를 격파한 사나이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이 때만해도 그건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외국가서 허접한 유술가 하나 잠재우고 온 것이라고 여겼고, 더군다나 귀신 기무라가 패한다는건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쇼와29년(1954년)에 역도산님과 함께 드디어 테그팀을 결성하여 본격적인 프로레슬링 시합을 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싸운 상대는 바로 유명한 샤프 형제였죠. 샤프형제와의 시합을 구경하던 최영의님은 역도산과 기무라에 대해 엄청나게 실망을 하시게 됩니다. 최영의님이 미국에서 목숨을 걸어가며 싸웠던 톰 라이스가 하던 것과같은 실전형 레슬링이 아니라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마찬가지인 경기였기 때문이죠. 게다가 기무라는 아예 무시당하는 역이고 오로지 역도산님만을 띄워주는 각본 또한 최영의님을 화나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런 쇼의 들러리나 서 주고 있는 기무라님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역도산 선생은 익히 알려진대로 미국에서 톰 라이스와 진검승부를 하다가-사실은 각본이 있었으나 톰 라이스가 무시하고 시작하자마자 달려들었죠. 역도산님이 이기는 각본이었기 때문에 훗날 역도산vs기무라 전에서의 기무라처럼 일부러 맞아주거나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처음에는 역도산님도 그와 제법 접전을 벌이셨지만 잠시후에 거의 일방적인 폭행을 당하고 중상을 입으신 바가 있습니다. 톰 라이스는 원래 세계 챔피언까지 노리던 복싱계의 강자였죠, 모션이 크고 궤도가 단조로운 가라데 촙은 그의 가드와 풋웤에 완전히 무력했습니다.

최영의 선생이 이후에 톰 라이스와 격돌, 늑골과 턱뼈를 날려 버리면서 톰 라이스의 격투인생은 그걸로 끝나게 됩니다만,  이 또한 역도산님에게는 치욕스러웠던 듯 합니다. 그러나 최영의님은 역도산님이 보기엔 너무나 강했고, 또한 너무 완고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기무라 선생처럼 뒷 공작을 할 약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죠. 때문에 실제로 진검 대결을 벌이지 못할 바엔 또 다른 최강자인 기무라 선생을 눌러 버리는 것이 났다는 판단을 하셨던 듯 합니다. 최선생님이 프로레슬링을 할 리가 없으니 가난한 기무라선생을 끌어들이고, 자신의 각본 속에서 '기무라는 역도산보다 못하다'라는 인식을 일본인들에게 심어주게 된 것이죠.)

 그리고 최영의님은 기무라를 설득, 결국 기무라 마사히코와 역도산의 진검 승부가 결정이 나게 됩니다. 당시 일본 언론에서는 이 시합을 '간류지마의 결투'라 하여 엄청난 관심을 보였는데요, 간류지마의 결투라는 건 바로 사상 최강의 사무라이라는 미야모토 무사시와 또 다른 검의 귀신 사사키 고지로의 싸움을 의미합니다. 즉 최강은 둘이 될 수 없고, 이 둘은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에 비견할만하다는 의미였던 것이죠.

 최영의님이 이후에 기술한 자서전을 보면 당시의 역도산님이나 기무라님 모두 엄청나게 강했지만, 기무라님은 이미 나이가 마흔에 가까워 절정에 달한 젊은 역도산에 비해 불리한 감이 없지 않았다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실력만을 놓고 볼때 기무라님이 약간우위에 있었다고 판단하신 듯 합니다. 시합직전까지도 기무라님의 승리를 확신하셨다 합니다.

 

6. 제 2차 간류지마의 결투...그러나 고지로는 무사시를 이기지 못하는 것인가?


 간류지마의 싸움에서 무사시가 온갖 심리전을 다 이용해서 승리를 따낸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검의 실력만이라면 고지로가 무사시보다 못할 것은 전혀 없었다고 하죠. 이 싸움은 무사시의 '검술'의 승리가 아니라 '병법'의 승리였다고 알려지게 됩니다. 기무라와 역도산의 시합 또한 역도산이 쳐 놓은 그물에 기무라가 걸려든 꼴이었습니다. 당시의 동영상을 보면 가무라가 역도산에게 맞는 순간에 무방비로 있다가 어이없이 쓰러지는 것을 확인 할 수있습니다. 그리고 뭔가 억울해하는 기무라의 모습도 확인이 가능하죠. 

 훗날 말년의 기무라가 토크쇼에 출연해 당시의 사정에 대해 언급한 바 있었고, 그 내용은 최영의님의 자서전과 바람의 파이터, 공수 바보일대 등에 나왔던 내용과 거의 일치하므로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일본 만화중 베스트 셀러로 꼽히는 공수 바보일대에서 기무라가 병든 아내의 약값을 구하기 위해 역도산에게 져 줘야만 했던 서글픈 사연이 나오고, 그 이후 역도산님의 비정상적인 행동들이 그대로 기술되었을 때 역도산님의 수제자였던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 김일-오오키 긴타로, 이 세명의 프로레슬링의 거목들이 아무런 반론도 내 놓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부분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보입니다. 공수 바보일대의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바람의 파이터와 똑 같습니다. 최영의님의 자서전과도 일치하죠^^

 실제로 최영의님이 당시 실신한 기무라님을 보면서 격분한 나머지 역도산님에게 죽여버리겠다고 호통을 치신 일은 꽤 유명합니다. 이후 역도산님이 최영의님을 겁내서 피해다닌 것도 다 사실인 듯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역도산님이 이 무렵에 야쿠자들을 두들겨 패고 다니며 술에 빠져 사실 때, 역도산님의 뒤를 봐주던 양원석-야나가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합니다.-이라는 조선계 야쿠자의 존재입니다. 보통 알려진 내용은 역도산님이 워낙에 싸움에도 강했기 때문에 아무리 행패를 부려도 야쿠자들이 그냥 맞아주고 자리를 피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죠.-야쿠자들이라면 정 안되면 떼거지로 달려들어 칼로 난도질을 해 버릴 수 도 있고, 총을 쏠 수도 있습니다. 단지 싸움에 질 것 같다는 이유로 역도산님을 피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가 않습니다.- 이 야나가와라는 인물은 일본에서는 이제 전설이 되어버린 초과격 무투파 야쿠자의 두목으로써 10명도 안되는 조직원을 이끌고 120명이 넘는 야쿠자 조직을 피를 피로 씻는 싸움으로 단 하루만에 쓸어버리면서 전 일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갔던 무시무시한 남자였습니다. 맨손 뿐 아니라 무기의 사용에 능하고 기습에 능해 한번 붙었다 하면 반드시 바닥을 피로 칠해야 싸움을 끝냈다고 할 정도였으며 당시 야쿠자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라고 불릴 정도의 야쿠자였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역도산의 뒤를 봐 주고 있었던 것이죠. 때문에 야쿠자들이 감히 역도산님을 죽일 생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렁이도 밟히기만 하면 꿈틀하는 법이죠...

  훗날 최영의님의 이 역도산님에 대한 행동에 반감을 품은 김일 선수가 최영의님에게 도전을 하였지만, 김일님은 최영의님에게 도전할만한 자격이 안되었죠. 프로레슬링에서도 최고가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이노키와 바바를 제압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최영의님에 대한 도전은 아무도 수긍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결국은 김일님도 도전한다고 엄포만 놓았을 뿐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고 맙니다. 사실, 김일 선생이 도전하실 때의 정황을 고려해 보면 정말 도전하실 생각이었다면 조일삼형제분이나 로야마님, 사토 카츠아키님같은 당시 극진의 간판을 짊어진 사범님들들을 먼저 쓰러뜨려서 최영의님이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드셨어야했겠죠. 그 정도 단계는 거쳐야 둘의 인지도 차이를 메꿀 수 있었을테니까요. 일본에서는 세계 최강의 초인이자 무신으로까지 칭송받는 분에게 도전하는 일인데 아무리 프로레슬링 테그 챔피언이라고 하더라도 그 격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지요.

 사실 역도산님 측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는 없지만(죽은 자는 말이 없죠) 여러가지 정황을 감안하면 최영의님의 말씀이 옳은 듯 합니다.

 

기무라 마사히코


7.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스스로 꺾어버린 무도가의 자존심...그리고 은퇴...

기무라 마사히코는 결국 이 석연치 않은 사건으로 프로레슬링을 그만두고 개인도장을 운영하며 실전에서는 손을 떼게 됩니다. 기무라가 그렇게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던 자신의 무도가로써의 명예를 팽개쳐 가며 지키려고 했던 아내는 기무라의 정성 덕택인지 병세가 호전되어 기무라의 곁을 지켜주게 되었습니다.(솔직히 저라고 해도 기무라 선생의 입장이었다면 두말않고 역도산님의 각본대로 놀아나 주었을 것 같습니다. 명예도 중요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니까요.)

  사실 기무라 선생은 어린시절부터 가족의 사랑이라는 것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얻게된 아내는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가족이었고 쉼터였습니다. 아내또한 기무라를 지극 정성으로 내조해 줬었고 깊이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아내가 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기무라 선생이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죠. 자신의 명예, 귀신이라는 칭호...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던 것입니다. 역도산님이 3번의 매치를 제의하면서 2번은 짜고하고 마지막은 진검승부라고 했을 때 기무라님은 이미 시합이 한 번으로 끝날 것이라는 각오를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무도 인생의 끝이 될 것이라는 것도 어느정도 예상했다고 하죠. 다만, 역도산님의 무도인으로써의 자존심에 실날같은 희망을 걸고 그에 응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그러나 결과는 기무라 선생의 추측대로 진행이 되고 말았죠. 훗날 기무라 선생은 인터뷰에서 그 때의 일은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유일한 가족인 사랑하는 아내를 잃지 않았기 때문에...

 은퇴후의 기무라 선생의 얼굴에는 뭐지 모를 평안함과 부드러움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프로레슬링시절의 그 찌들고 무기력한 모습은 사라져 버렸죠. 무도는 기무라 선생에게 아무런 영광도 주지 않았습니다. 귀신을 굴복시킬 정도라던 유도솜씨도 남의 책략에 들러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에게 프로레슬링은 각본이 있는 것이라는 것이 알려진 1960년대 중반부터는 이에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인들도 '그러면 그렇지, 진검승부라면 프로레슬링 최강자가 아니라  상대가 전세계의 누구라고 할지라도 천하무적 기무라가 그렇게 질 리가 없다.'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뭐 정작 기무라 선생 본인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는 태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역도산님이 톰 라이스를 일본으로 데려와 일방적인 구타끝에 승리를 하게 되지만 이는 오히려 그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만들었습니다. 톰 라이스는 최영의님에게 패배하면서 최선생의 해머같은 정권에 이미 격투가로써의 인생은  끝나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싸울 수 없는 톰 라이스는 돈 때문에 일본까지 오게 된 것이었고 역도산님은 이를 이용, 일본인들 앞에서 그를 이겨버립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당시의 관중들에게 각본이나 쇼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음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고 맙니다. 톰 라이스는 처음부터 누가보기에도 전의조차 없었던 것이죠. 정말 명예 회복을 하고 싶었다면 자신을 참패시킨 톰 라이스를 그 지경으로 만든 최영의님에게 도전을 했었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8. 그레이시와 함께 되살아난 유도의 귀신 기무라 마사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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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시 패밀리의 발레투도가 세계를 휩쓸게 되자, 이 그레이시를 일찌감치 격파해 버렸던 기무라 마사히코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무라 님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고, 다만 그 당시에 엘리오를 이기는 필름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죠. 그러면서 사람들은 기무라를 역도산에게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패배한 힘없는 유도가가 아닌 진정한 최강의 유도고수로 다시한번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쿠라바 카즈시라는 뛰어난 그래플러가 그레이시 패밀리를 기무라 록으로 격침 시키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기무라에 대한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사쿠라바가 호이스를 쓰러뜨린 다음날 신문에는 '사쿠라바, 일본 격투계 50여년만의 비원성취'라는 기사가 1면 톱으로 실리게 됩니다. 바로 엘리오가 기무라에게 무릎을 꿇은지 50여년이 지났기 때문이죠. 그리고 공개된 필름 속의 기무라는 역도산님과의 시합에서 무기력하게 실신해버린 삶에 찌들어버린 모습이 아니라 그 막강한 그레이시 유술을 일방적으로 부수는 가공할 실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강자의 모습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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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늑대(天狼)

MIXI (Martial arts, Investment in stocks X Information tech) World...since 2008

1. 사이고 시로 탄생


사이고 시로는 원래 아이즈번 출생(1863)으로 말투에 아이즈 사투리가 심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키는 일본인 중에서도 작은 편이라 153센티 정도였다는게 정설입니다.

 근데 사이고는 남들과는 다른 신체적 특성이 있었는데...바로 사이고의 발가락은 무척 길어 물갈퀴 같았다고 합니다.(곰발톱 같았다는 말도 있고, 문어발과 같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하여간 발가락이 굉장히 길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합니다.)

사이고 시로

사이고 시로

 사이고는 당시 아이즈 출신이라면 보통 익혔다는 아이즈의 오토메(오토베가 아니라 오토메라고 합니다, 이에 정정합니다. 이것은 고유 명사가 아니라, 각 다이묘-영주 쯤 되겠군요-가 다스리는 지역마다 지역마다 할당된 각 지역의 고유 유술을 통칭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타 지방으로는 갖고가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하는구요. 그래플링공장님께서 교정해 주셨습니다.)유술을 어린 시절부터 익혔습니다. 아이즈의 오토메유술은 여러가지 공격 테크닉을 가진 아이즈 비전의 무술로써 그 이름이 높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비전이라고 할 만한것이 바로 오시키우치라는 기술들인데 이것은 앉은 상태에서 상대를 역관절꺾기로 쓰러뜨리는 기술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막부시대에는 대다수의 영주들이 성을 짓고 살았고, 그 성의 영주가 있는 본당 안에서는 무릎을 꿇고 움직이는 슬행(膝行)의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영주가 위급할 때 앉은 상태에서도 적을 막을 수 있는 테크닉을 연마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 아이즈 오토메유술의 오시키우치는 바로 대동류 합기유술의 원조로써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합기도 계의 전설이신 최용술 도주가 익힌 합기유술도 바로 이것이 뿌리이죠.(참고로 말씀드리자면 현재의 해외의 대동류에서는 이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동류를 제외한 모든 무술 연구가들은 다 인정하고 있구요, 의견은 분분하지만, 저는 일단 다수 의견쪽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시로는 어린시절 아이즈의 비전 오시키우치의 이름난 고수였던 사이고 타노모의 집에서 자랐습니다. 사이고 타노모는 사정상 호시나 치카노리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고 닛코의 토쇼라는 궁전에서 신관 노릇을 하고 있는 아주 고위층의 인물이었죠. 시로의 아버지는 하급군인으로써 타노모의 집의 가신(가신 중에서도 가장 하급의 가신이었다고 함.)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호시나 치카노리는 그렇게 지체가 낮은 시로를 어린시절부터 잘 돌봐 주었고 거기다가 아이즈 비전의 오토메유술을 직접 하나에서 열까지 가르쳤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유일전승이라는 비전중의 비전인 오시키우치까지 가르쳤죠.시로가 강도관 입문후 2년째인 17세 되던해에는 그를 양자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본디 가장 하층민 계급이던 시로가 그런 지체높은 집의 양자로 들어간 것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역시 가장 유력한 것은 타노모의 숨겨둔 아들이었기 때문이라는 설입니다.  이후 호시나 치카노리(타노모)는 시로에게 사이고 시로라는 이름을 쓰도록 하고 사이고 가문을 다시 부흥시키려고 합니다. 메이지 21년에 정식으로 정부의 허락을 얻게 되었죠.

(조금 씁쓸한 것은 미국, 캐나다등지의 대동류 합기유술 사이트 등에서는 이 사이고 시로를 대동류의 마스터라고 선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틀린 말입니다. 사이고는 대동류를 익힌 적이 없습니다. 아이즈의 오토메유술을 익힌 것이죠. 그런데도 "대동류를 워낙 오래 연마했으므로 유도 선수들 따위는 상대도 안되었다!"라는 억지 논리를 내 세운 영문 사이트를 보니 할 말이 없더군요. 한 이탈리아 사이트-스페인어랑 비슷해서 그럭저럭 읽을만 하더군요, 땀좀 흘렸습니다만 ^^-에서는 "대동류의 도움을 부인할 수는 없다. 16세에 지도원의 자격을 딴 것은 놀라운 것이 아닌가?" 이렇게 설명해 뒀는데 아무래도 서양쪽에서는 당시의 복잡한유술계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2. 사이고 시로, 운명의 스승 가노와의 만남!

사이고 시로

원래부터 일찌감치 무도를 접했던 사이고 시로는 1882년에 상경해서 이노우에 쿄타로의 천신진양류 유술도장에 들어가게 됩니다. 가노 지고로 편에서 설명했듯이 가노 지고로가 18세때부터 익혔던 무술이 바로 천신진양류였고, 이노우에 쿄타로는 바로 가노의 동문 선배였죠. 인사차 들렀던 가노의 눈에 바로 이 천재 사이고 시로가 눈에 띄고 만 것이죠.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바로 교수로 임명된 수재이자 천신진양류 최강의 유술가였던 가노 지고로는 사이고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보고 이노우에에게 부탁해 그를 강도관으로 데려가게 됩니다. 다다미 12개와 9명의 제자만으로 시작된 강도관...하나의 인재가 아쉬운 가노였습니다. 게다가 유도라는 신무술을 23세의 어린 나이로 창안해서 전 유술계를 적으로 돌려버린 것도 너무나 부담스러웠겠지요.

 그런 상황에서 사이고 같은 어마어마한 인재를 찾은 가노의 기분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겠죠^^(가노에게 사이고를 보내준 이노우에 쿄타로는 그 이후에도 요코야마 사쿠지로라는 걸출한 강자를 가노에게 보냅니다. 이 이노우에라는 인물은 천신진양류의 강자들을 강도관에 많이 입관시켰는데, 이것은 극도로 폐쇄적인 양심류가 판을 치는 유술계에 변화를 원하는 진보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상황을 조합해 볼 때, 강도관이 이름을 날리게 된 배경에는 이 이노우에라는 남자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다음해인 사이고가 16세 되던 때에 초단을 취득 최단시간에 초단을 따내는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가노는 자서전에서 사이고에 대해 "메치기의 극한에 달한 남자였다, 나는 그보다 강한 인간을 지금껏 본 일이 없다."라고 술회한 바 있습니다.(가노 지고로가 익힌 무술은 밧다리 후리기와 깃 조르기를 주무기로하는 천신진양류와 메치기를 주무기로 하는 기도류 유술 이 두가지가 근간이었다 합니다. 거기다가 유술의 체계화를 위해 타 유술의 기술들 중에서도 쓸모 있는 것은 다 받아 들였습니다.)


3. 강도관 4천왕! 도츠카 양심류와의 숙명의 사투

가노 지고로

가노 지고로


가노의 자서전을 보면, 당시 최대의 세력을 자랑하던 유술유파는 도츠가 양심류였고, 누구든 유술로 이름을 날리려면 그걸해야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고 합니다.
가노는 고류 유술을 배격하면서 유도를 만들려는 생각은 한 일이 없지만 양심류 쪽에서 보면 가노는 정말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습니다. 강도관을 만들기 전에 이미 가노선생이 천신진양류와 기도류 유술의 마스터로써 양심류의 고수를 몇번 격파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죠. 20세에 불과한 가노 지고로에게 양심류의 고수들이 나가떨어져 버리는 광경은 당시로써는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더욱 충격적인 것은 당시 가노선생은 18세때부터 무도를 익힌 '초짜'였던 것이죠.(모든 방면에 능한 천재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같은 천신 진양류와 기도류에 양심류를 이기는 다른 사람은 없었던 관계로 양심류는 계속 최강의 이름을 유지합니다.(또한 가노 선생의 상대로 최고수를 내 보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보통 도장끼리 시합은 10명 정도를 내 보내는데, 가노선생은 무패였지만 양심류는 압도적으로 이기는 시합에 굳이 가노선생의 상대로 에이스를 쓰지는 않았던 것이죠.) 그러나 강도관이 생기고 가노가 본격적으로 제자를 양성하기 시작하자 전세는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거기에는 강도관 사천왕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사이고 시로가 입문하기 전에 먼저 입문해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 눈에 띄는 강자들이 있었는데 바로 야마시타 요시카즈(요시츠쿠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가노 지고로

강도관시절의 가노 지고로

이후 미국에 건너가 루즈벨트에게 유도를 가르치고, 미군장교들에게도 전수한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강도관 4천왕중 유일하게 10단을 추증받은 인물로 가노 지고로의 유도를 가장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해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와 야마다(이후 토미다 가의 양자가 되면서 토미다 츠네지로로 개명) 츠네지로 이 두명이었습니다. 야마시타는 이미 사범대리라는 직함을 갖고 있었고, 야마다 또한 강도관의 분관을 맡고 있던 사범이었습니다.(이 둘은 가장 스탠다드하고 교과서적인 유도를 구사하는 사람들이어서 이후에 실전 전적보다는 지도자로써 이름을 남기게 된 사람들입니다.) 이 둘은 강도관 초기에 계속해서 도장깨기를 하러 찾아오는 고류 유술가들과 하루가 멀다하고 결투를해야했습니다. 가노가 직접 나설 수는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타류 유술의 고수들에 비해 월등하다고는 볼 수 없는 실력이었기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이고 시로의 등장으로 형세는 완전히 뒤집히게 되죠. 어느 누구도 사이고의 소매조차 잡아보지 못하고 메치기를 당해 날아가는 바람에 스승 가노가 타류 유술을 격파하며 얻었던 최강의 이름을 사이고가 그대로 이어가게 됩니다. 여기다가 이노우에 쿄타로의 천신진양류 도장에서 필살의 던지기인 덴구(天牛->여기에 대해서는 천우가 아니라 天狗라고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만...어느쪽이든 무관할 듯 합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후자인 듯 싶군요^^;; 실제로 요코야마가 기술명을 어디다 적은 일이 없으니 발음 때문에 후대에서 헷갈리게 된 듯 합니다.)던지기로 최강자의 명성을 날리던 요코야마 사쿠지로가 가세하면서 강도관 4천왕이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단 한차례의 패배도 없이 승승장구, 유도의 이름을 조금씩 높이기 시작하게 되죠.

 그리고 사이고 시로는 메이지 19년 강도관 5단을 취득, 명실상부한 최고수로 인정받게 됩니다. 사실 입관 4년만에 5단을 땄다는 것은 사이고가 그 전에 배웠던 아이즈 오토메유술의 오시키우치와 무관하지는 않을 듯 합니다. 당시의 강도관은 승단을 하려면 같은 급수의 상대를 7명을 연속으로 상대해 이겨야하는 가혹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1단이 되려면 갈색띠 7명을 연속으로 제압해야하는 것이죠. 물론 무조건 이겨야하며 무승부는 안되었다고 합니다.(후지와라씨의 만화 '콘데 코마' 에서는 한명만 이기면 승단되는 것처럼 해 놓았는데 이것은 고증을 제대로 못한 탓입니다. 작가 두분이 모두 그레이시 유술의 연구에만 치중한 나머지 유도에 대해선 너무 몰랐다고 볼 수 있구요.)

 거기다 한 참 서양인들이 일본에 들어오기 시작해 나라의 분위기가 흉흉한 때였는데 마침 사이고 시로가 행패를 부리던 이스트레이크라는 영국인을 한팔 업어치기로 바닥에 처박아 졸도시키는 일이 터지는 바람에 강도관의 명성은 엄청나게 높아지게 됩니다.(가노 지고로의 자서전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메이지 19년이었다고 하죠.)

 계속되는 강도관의 승리에 결국, 위기를 느낀 도츠카 양심류의 총사인 도츠카 히데키는 고류 유술의 필두가 되어 일본 무도의 패권을 놓고 강도관과 최후의 승부를 내려고 하게 되는데...


4. 필살! 야마아라시


결국 도츠카 히데키는 최종 승부를 내기로 결전장을 보내고 가노는 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비밀병기로 요코야마 사쿠지로를 데려 온 것이었죠. 1886년(1890년이후라는 설도 있음) 무코우가오카의 야요이 신사에서 경시청 주최로 양대세력의 대결이 대회형식으로 치뤄지게 됩니다. (캐나다와 미국 쪽의 사이트에서 이 결투에 대해 정말 리얼한 해설을 해 뒀던데, 읽다보니 무슨 실황 중계를 보는 느낌이^^) 원래는 두게임만 약속되어 있었는데 야마다와 야마시타가 간단히 승리를 해 버리고 맙니다. 야마다와 야마시타는 사천왕중에서는 약하다는 평을 받던 사람들인데 이렇게 간단히 이겨버리자 경시청 유술대회를 구경온 사람들에게 강도관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마음속에 세겨지게 됩니다.( 여담이지만 당시 일본의 결투 관습이 보통 2명으로 싸우자고 하면 그것은 4~5명의 대결을 의미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그냥 형식적으로는 간단한 친선대회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죠. 그러나 한 두명이 패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4~5명까지 붙이는 걸로 늘어나고 마지막에 에이스들끼리 끝장을 봐야하는 스타일이 유행이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도츠카 히데키는 자신의 비장의 카드를 내세우는데 그것이 바로 경시청의 유술총감을 맡고 있었던 유술 최강자중 하나인 나카무라 한스케(양심류의 분파인 양이심두류의 마스터였다고 합니다.)였습니다. 키가 180, 몸무게가 90킬로가 되는 당시 일본으로써는 거한중의 거한이라 할만한 사람이었죠. 그러나 가노는 히데키가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는 걸 미리 간파하고 있었기에 아껴두었던 비밀병기 요코야마를 내 보냅니다. 요코야마 또한 나카무라와 마찬가지로 거한이었기에 둘의 대결은 그야말로 볼만한 것이었다 하죠. 요코야마는 가장 파워풀한 유도를 구사하는 스타일이었는데, 특히 그의 필살기였던 덴구던지기(어깨로 들어메치기와 유사한 기술)는 한번 걸리면 무조건 상대가 실신하게 될 정도의 파괴력이 있는 것이었죠. 그러나 상대는 당대 최고수중의 한명이었고, 덴구던지기의 특성상 준비동작이 크기 때문에 쉽게 간파되어, 그 기술은 먹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반면에 나카무라 또한 계속 기술을 걸려고 했지만 요코야마는 그야말로 바윗덩어리 같은 중심을 가지 사나이라 꿈쩍도 안했다고 합니다.  서로 당신기(급소 가격기)까지 날려가면서 기술을 넣어보려 하지만 둘의 실력이 거의 대등한 관계로 지루한 공방전이 계속될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무도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경시청 무술총감이라는 엄청난 지명도를 가진 나카무라를 상대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공격을 퍼붓는 요코야마의 모습에 당시의 일본 무술계 인사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됩니다. 게다가 요코야마는 이제 20대 초반의 무도가였습니다. 요코야마의 나이만큼의 세월을 유술 수련에 정진했던 30세의 백전노장 나카무라가 그정도까지 고전을 한 것은 정말 큰 충격이었겠죠. 둘의 싸움은 무려 1시간이나 끌었다고 하는데요, 이를 심판이 중지시켜 무승부가 되고 맙니다. 나카무라와 요코야마는 둘다 내려오자마자 탈진해 쓰러져 버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결국 마지막 한 사람을 남긴 양심류는 최강중의 최강이라는 '테루지마 신타로'(쿄타로라는 자료도 있고 그냥 타로라는 자료도 있음,테루지마라는 성도 불확실하지만 몇가지 문헌에서 언급을 하고 있음)를 내 세우게 되는데 이를 맞상대한 것이 바로 강도관 최강의 남자 사이고 시로였습니다. 거구에 장신이었던 테루지마는 사이고를 메치려고 여러번 시도했지만 계속되는 사이고의 중심잡기 때문에 메쳐지지가 않았다 하죠.(사이고는 평소 낙법을 연마하기 위해 지붕에서 뛰어내렸다고 합니다. 보통의 낙법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죠, 그래서 사이고의 별명이 고양이었다고 합니다. 던지려는 순간에 몸을 회전시켜 두발로 서 버렸다고 합니다.) 계속 메치기가 실패해서 당황한 테루지마가 주춤한 순간에, 사이고는 갑자기 좌자연체로 기본서기를 바꿉니다.(유도를 하시는 분들은 좌 자연체, 우 자연체 같은 용어는 익히 아시겠습니다만, 자연체라는 건 별것 아닙니다. 그냥 서 있는 것을 말하는데, 다음 기술을 걸때의 방향과 디딤발을 자연체를 통해 결정하게 되는것이 보통입니다.) 본래 우 자연체로 계속 시합을 했던 탓에 그쪽 방어만을 생각하던 테루지마는 순간적으로 움직임이 굳어버리게 되는데, 그 순간 갑자기 공중에 떠서 날아가 버립니다. 당시에 구경온 모든 무술가 및 구경꾼들은 이 듣도 보도 못한  기상천외한 메치기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것이 사이고 시로의 필살기 중의 필살기 야마아라시였던 것이죠. 이 야마아라시에 테루지마는 그대로 실신해 버리게 되고...더군다나 사이고의 야마아라시는 상대방을 마지막 순간까지 확실히 감아서 측방낙법을 쓰지 못하도록 고안된 철저한 공격용 메치기 였기 때문에, 그는 몇일동안 의식을 찾지 못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참고: 야마아라시?

그 의미는 산폭풍이라는 뜻인데, 사진의 저 자세에서 상대의 다리를 발바닥으로 차면서 발가락으로 그 찬다리가 빠지지 않도록 꽉 쥔뒤 계속해서 뒤로 차올리면서 앞으로 메쳐 버리는 기술입니다. 메치기 방어의 기본인 좌우 이동을 봉쇄해 버리기 때문에 걸렸다 하면 나가 떨어졌다 합니다. 이후 아무도 쓴 일이 없고 그냥 저런 식으로 본만 남아있는 환상의 메치기라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발가락이 평범한 사람이 쓸 기술이 아닌거죠^^ 타이밍 잡기도 무척 어렵고...그 천재 사이고 시로조차도 몇년이나 피를 토해가며 연마한 기술이라고 합니다. 끊어먹은 도복띠만해도 엄청났다고 합니다.(후지와라 씨의 만화, '콘데 코마'에 보면 발가락으로 상대의 다리 정면을 붙잡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잘못된 그림입니다. 야마 아라시는 비스듬하게 옆으로 차서 발가락으로 장단지 아랫쪽을 옆으로 잡아 올린 뒤 메치는 기술입니다. 후지와라씨의 베스트 셀러 '권아'에서의 팔극권 고증까지 의심하게되는 부분입니다. 또 마에다 미츠요가 야마아라시를 쓰는게 나오는데, 마에다는 야마아라시를 구사하지 못했습니다. 사이고의 뒤를 이을 천재라고 불리던 마에다 미츠요지만 야마아라시는 타고난 신체조건도 상당히 작용하는 기술이기 때문이죠.)


5. 사이고 시로 전에 야마아라시 없고 사이고 시로 후에 야마아라시 없다!


1886년의 결투로 완전히 밀려버린 도츠카 양심류는 1887년에 절치부심! 자신들의 대회를 통해 뽑은 최강의 강자 우케치 엔타로를 필두로 강도관과 열명씩의 선발을 내세워 다시한번 겨루게 되는데 이 승부에서 강도관 4천왕은 모두 승리를 거두고, 양심류는 3명의 무승부 외엔 전패를 하는 참담한 패배를 겪게 되면서 완전히 몰락합니다. 특히 양심류의 마지막 희망이던 우케치 엔타로는 사이고 시로에게 1분여만에 야마아라시의 제물이 되어 실신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강도관은 이로써 명실 상부한 최강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일본 최대의 무도조직으로 급부상합니다. 사이고 시로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사이고 전에 야마아라시 없고 사이고 후에 야마아라시 없다."라는 말이 나돌았다고 합니다.(기무라 마사히코의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뒤에 기무라 없다."는 여기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리고 그 무렵 동경대 교수로 재직중이던 가노 지고로는 학장과의 마찰로 유학을 강제로 가게 되는데 관장대리로 사이고를 임명합니다. 명실상부한 가노의 후계자로 인정받은 셈이죠. 그러나...


6. 강제추방...방랑...그리고 죽음


사이고는 1890년에 강도관에서 강제 추방을 당하게 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선 불명확하고 가노도 자신의 자서전에서 그 부분만은 언급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아마 강도관 규정을 어기고 타류시합을 했기 때문인 듯 한데,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이고 또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고, 추방 후에는 정치가로 이름을 날리던 스즈키 텐진에게 의탁하고 그곳에서 유술을 가르치게 됩니다.(이것이 후대에 사이고파 대동류 유술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게 됩니다. 대동류와는 별개의 것이죠. 얼마전 법정분쟁에 휘말렸다하는데 정확한 것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쪽 사이트에서 그렇게 설명을 해 뒀더군요.) 차마 유도의 간판을 걸 수가 없었던 것이죠. 나가사키에 머물던 사이고는 중국으로 도항하게 되는데(도항안했다는 설도 유력합니다.-사실은 이게 더 다수설임) 이 때 가노 지고로에게 반성 및 용서를 구하는 의미로 '지나 도항 의견서'라는 것을 보냈고 이것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저는 도항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이유는 그의 말년의 사진을 보면 중국인들의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또한 스즈키 텐진에 의탁한 것도 1890년이 아니라 몇년후의 일이죠. 중간에 전혀 없는 기록들은 그가 중국에 있었다고 보는게 앞 뒤가 맞는 듯 합니다. 더군다나 보통은 일본의 전통신발인 게타를 싣던 당시의 관습을 감안하면 갔다왔다는 쪽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하여간 강도관에 돌아오지 못하고 계속 떠돌던 사이고는 1922년 56세의 나이로 오노이치라는 곳에서 병으로 숨을 거둡니다. 이 소식을 접한 가노는 자신이 추방한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피를 토하듯 애통해했다고 하며 그 이듬해 사이고에게 6단을 추증했다고 합니다. 스승 가노 지고로는 1938년에 여행도중 히카와마루라는 배위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폐렴이었다고 하죠. 가노 지고로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이고의 일을 애통해했다고 합니다.(바로 그 3년 뒤에 그의 또 다른 수제자였던 마에다 미츠요가 브라질에서 죽게 되죠. 가노의 수제자들은 하나같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7. 사이고 시로, 소설/영화로 부활-스가타 산시로!


강도관 사천왕중 한명이었고 마에다 미츠요와 미국으로 떠난 일이 있었던 토미다 츠네지로는 그의 아들에게 사이고 시로의 강함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해 줬다고 합니다. 강도관 최강의 남자였고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을 유도의 천재의 이야기를 말이죠. 그 토미다 츠네지로의 아들 토미다 츠네오는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합니다. 무적의 야마아라시를 날리는 그야말로 폭풍같았던 최강의 유도가의 전설을 다시 부활시킨 것이죠 그것이 바로 소설-스가타 산시로였습니다. 이 소설은 그야말로 공전의 힛트를 기록했고 전후에는 신화적인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영화화 하게 됩니다.(세계 최고의 거장에 속하는 구로자와 감독의 데뷔작이 바로 이 스가타 산시로였다는 것이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내용을 잠시 들여다보면 수도관이라는 유도장의 야노 타다시 고로(가노 지고로가 모델인듯^^)라는 관장이 그들의 제자들과 함께 싸워나가는 것이 주된 골격이며, 스가타 산시로는 바로 그 수도관의 에이스로 등장합니다. 이 소설속의 스가타 산시로는 사이고와 완전히 같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요, 역시 압권이라 할만한 것은 스가타 산시로가 야마아라시를 구사하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여담이지만 이 소설과 영화에서 가라데를 구사하는 악당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의 가라데에 대한 일본인들의 나쁜 인식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죠. 상대를 보호해주는 방법도 갖춘 유도와는 달리 상대를 때려서 직접 부숴버리는 가라데는 그들의 입장에선 야만적인 무도라고 평가한 것입니다. 최영의님의 공수도 교본에 보면 "스가타 산시로로 인해 가라데의 인식이 결정적으로 나빠졌다, 그렇지만 공수가가 유도가에게 그렇게 진 적은 없다!"라고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오키나와 가라데를 처음 일본으로 초청한 것이 가노 지고로였고, 일본에 가라데라는 무술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오키나와 강유류 사범들의 강도관 연무이후라고 합니다.(가노선생 본인은 가라데를 좋아했던 것이죠^^)

공전의 힛트를 기록한 스가타 산시로는 그 속편까지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1981년 후지 티비에서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하게 됩니다.

이 소설과 영화가 등장한 이후, 일본에서는 최강의 유도고수에게 '스가타 산시로'라는 별명을 붙이는 것이 거의 관례가 되어 버렸습니다. 만화 '군계' 19권을 보면 유도 천재에게 '헤이세이의 산시로'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것이 나옵니다. 이 말은 헤이세이(지금의 일본의 연호) 시대의 스가타 산시로라는 뜻으로, 그가 최강의 유도고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브라질에서 온 유술 소년의 이름도 산시로라고 되어 있죠 그 때문에 그 만화 중간에 "누가 산시로인지 가려보자!"라는 장면이 나오는 겁니다. 누가 스가타 산시로의 칭호를 가질 자격이 있는지 알아보자는 의미라고 풀이할 수 있죠.바꿔말하면 헤이세이의 사이고 시로를 가리자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사이고 시로가 유도사에서는 거대한 존재로 남아있는 것이죠. 아무리 기무라 마사히코같은 사람들이 대단했다고 해도, "누가 이시대의 기무라인지 가려보자!"...이런 말은 안하니까요. 아마 이런 배경 스토리를 모르셨다면 그 부분에 대해 굉장히 의아하셨을거라고 생각합니다.(군계의 번역을 담당하신 분이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서 전혀 모르셨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생소한 내용을 그대로 번역하기 보다는 간단한 주석등으로 설명을 해 주셨더라면 훨씬 좋았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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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늑대(天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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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절매의 종류

 

- 이익 여부에 따라
보통 손절매하면 많은 투자자들이 손실을 볼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그분은 지금 계좌에서 돈을 90%이상 빼서 은행에 넣고 처음부터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면서 연습게임하듯이 소액으로 투자하는 것이 좋습니다. 손절매는 이익이 난 상태에서도 합니다.

1) 손익분기스탑 (Breakeven stop)

매수후 이익이 난 상태에서 반대의 움직임이 보일 때, 손익분기점을 시장을 빠져 나오는 포인트로 책정하고 그가격까지 내려오면 미련없이 던지는 것입니다.

 시장에는 "이익이 난 거래를 손실로 바꾸지 마라"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괜히 이전의 이익을 생각하고 들고 있다가 손실나면, 그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이고 탐욕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실 전에서는 내가 생각한 것과 움직임이 틀리면 본전매도를 하고 다시 냉정히 분석하고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하며, 괜시리 가지고 있다가 상당한 이익이 났다가 그것이 줄어드는데 이익 실현하지 못하고 버팅기다 손실로 변해 심리적인 갈등과 낭패감을 갖으면 다음 매매도 꼬이게 됩니다.

명심합시다. 이익이 쪼금이라도 나면, 흐름이 이상하고 내 평균단가를 위협하면, 최대한 참아 줄 수 있는 한도가 본전매도, 소위 Breakeven point (손익 분기점)을 설정하고 기계적으로 일단 던지고, 다시 기회를 노리는 것이 시장에서 살아 남는 법이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법이라는 것을!

2) 추적 스탑 (trailing stop)

주식을 매입후 이익이 나면, 발생하는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쓰이는 것으로 프로텍티브 스탑입니다만, 우리나라는 사전 주문이 안되므로, 늘 이익이 나면 자신의 매매기법에 따라 지지선을 지속 올려 그 지지선을 하회하면 팔아 그간의 이익을 보전하는 것입니다.

 만일 고점과 저점을 이용한 매매를 한다면, 계속 고점과 저점을 높여 상승한다면, 바로 이전의 저점을 스탑로스의 가격대로 하여, 계속 손절 가격을 올려 나가면 되고, 만일 이동평균선이나 밴드지표를 사용해도 마찬가지로 하면 됩니다. 단지 주의해야 할 것은 휩소를 피하기 위해 저는 종가를 많이 사용합니다.

3) 시간 스탑 (Time stop)

매 입했는데 손실은 나지 않더라도 오르지 않을 경우, 다른 주식은 팍팍 날라가는데 내종목은 그냥 횡보만 할 경우하는 것으로 그냥 가지고 있으면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심리적으로 빈곤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가치는 가격가치와 시간가치 두개가 있으므로 기회 비용 상실의 의미가 있으므로 전 매입후 하루 이틀안에 움직이지 않으면 비록 손실이 나지 않은 상태라로 손절을 합니다만 이는 스윙의 개념에서 이고, 포지션트레이딩의 경우 보통 3 ~ 6일의 기간이 추천되고 있지만, 단기냐 중기냐 장기투자냐에 따라서는 약간 기간 조정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움직이는 주식만 상대해야지, 장기간 횡보했다고 세력 매집주니 뭐니 하며 샀다가 장기간 그냥 세월을 보내는 것이 참 많은 투자자들의 행보이고 그 후 안올라 초조함과 박탈감으로 애를 태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 기간 횡보후 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주식이 못오르고 횡보할 때는 그많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더 크게 하락하기 위한 전조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 장기 횡보후 상승은 엄청난 폭등이 있지만 10중 한두개일뿐 나머지는 폭팍입니다.

 
근데 문제는 폭락을 이야기 하지 않고 한두개의 폭등을 사람들이 주목하다 보니, 장기 횡보 = 폭등주라는 등식이 시장의 Stereo type으로 정착했지만, 시장의 금언은 오를때 못오르면 폭락이라는 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4) 생각 스탑 (Thinking Stop?)

이건 이론에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간 시장에 참여하면서 깨지고 망가지고 그리고 그 이유를 매매일지를 통해 분석하다가 생각해내고 실천하는 것중 하나입니다. 간단합니다.

 매 매는 이유가 있어야 하고, 늘 매수할 때는 어떤 흐름으로 갈 것이다라고 예측하고 매수를 합니다. 문제는 손해를 보면 당연히 기준에 따라 손절에 들어갈 것이고, 이익이 났을때가 문제인데 예상한 흐름이 아닌 예측하지 못한 흐름으로 진행되어 나올때 입니다. 이때는 과감히 매도해버립니다. 이익이 나는데 왜 매도하냐고 물으면 초자입니다.

주식은 예측의 영역이 아니고 대응의 영역인데, 예측하지 못한 흐름이 나오면 이후 원할히 대응할 수 없고 여차의 경우 물릴 수 있습니다. 트레이더라면 자신이 예측한 흐름으로 가면 이익이 나더라도 그냥 보너스라 생각하고 미련없이 던질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생각의 스톱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만, 다르게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시장에서 오래 살아 남은 분들과 이야기해보면 그들도 표현이 다른분 결국 같은 의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살아남은데에는 다 이유가 있고 자신의 투자 기법을 정립하라는데는 다 이유가 있듯이 이 방법을 쓰지 않는다면 자신의 투자 기법을 정립 못한 것이라 봅니다.

5) 가격의 스탑 (price stop)

가 장 일반적인 것으로 매수후 몇 % 손실이면 자동 손절한다고 하는 것입니다만, 이를 지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문제는 이를 지킬 줄 알면 그나마 주식에 입문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손절매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아무리 짤게 짤라도 3%씩 열번이면 30% 손실입니다. 여기에 세금과 수수료까지 치면, 그야 말로 깡통차기 쉽상인 것이 주식 시장.

가끔 모 사이버 애널이 자신은 3%손실이면 기계적으로 짜른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길레 웃어 버린적이 있습니다. 하긴 그나마 안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보 통 하수와 고수의 차이는 손절의 %가 크냐 작냐라고 하는데 이는 단순 정해둔 수치가 아닙니다. 고수는 최대한 지지 근처에서 분할매수하기때문이고 하수는 아무데서나 매수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주식을 살때, 지지권부근에서 분할매수로 지지가격대가 무너지면 던지는 것을 습관으로 해야 하며, 추격매수는 왠간해서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회는 늘 있습니다. 지지 근처에서 산다는 내가 들어갈 자리와 나올 자리가 명확히 정해 진다는 논리적 근거에 의거하며, 분할매수 한다는 것은 물량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날아가면, 그냥 보내고 다음 정거장에서 (소위 저항 돌파후 형성한 지지권 혹은 눌림목의 지지권) 그 물량을 다시 같은 방법으로 확보한다는 것으로 탐욕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늘 시장은 열리므로 오늘 못사면 다음 기회가 있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투자자는 지지는 멀고 저항은 가까운 곳에서 추격매수하고, 기계적으로 손절했다고 좋아합니다. 깡통은 시간의 문제인 유형입니다. 게다가 몰빵매수를 합니다.

 손절을 위해서는 분할매수를 해야 하고, 손절못해 물린 경우 절대 물타기해서는 안되며, 물타기를 하려면 상승하여 다음 정거장에서 물량을 늘리는 불타기를 해야 합니다.

분할 매수는 그냥 호가마다 매수 주문 넣었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 이론적으로는 세번으로 나누어 지지권대 가까이에서 1-3-6 으로 매수하는 방법과 3-6-9로 물량을 나누어 매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전 3-6-9로 주로 하는데, 보통 지지권대가 9% 가격범위가 있다면 3% 떨어질 때마다 두배로 늘려서 지지권 마지노선까지 가면 손실은 3%내로 한정되며, 갑자기 급락이 나오면 뒤의 물량은 안사기 때문에 손실액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역으로 지지의 마지노선에서 사 올라가는 방법으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매도도 같은 방법을 써도 되지만 전 개인적으로 매도는 몰빵매도와 일정 수익 발생시 50%매도해 놓고 지켜 봅니다. 각자 맞는 스타일을 찾아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6) 이익목표 스탑

매 입시 목표가격을 설정하고, 이 가격에 도착하면 매도하고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대부분 투자자들이 꼭지에서 팔려고 바둥거리다 확보한 이익 다 놓치고 손실로 귀결합니다. 처음 매수시 설정한 목표에 다달으면 아무리 더 올라간다하더라도 이익을 실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요, 먹을때 확실히 먹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작은 이익을 목표로 하면 승율이야 좋겠지만, 큰추세의 이익은 향유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어 저는 절반매도를 권장합니다.

 50%매도하여 일단 이익을 취하고 나 머지는 갈때까지 한번 가보는 방법으로 예상외로 크게 가면 크게 먹고, 여차하면 트레일링스탑을 적용하여 빠져 나와 그나마의 수익을 챙기거나 최소한 본전 매도의 방법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방법을 쓰면 만일 5% 수익시 절반 매도하고, 좀 오르다 하한가로 치달으면 매도하여 최소한 똔똔을 할 수 있지만, 가만히 있으면 그냥 앉아서 손실을 키우게 되므로 일정 목표 도달시 정정물량 정리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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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백중 필살기 매매!!

 

제가 가지고 있는 필살기 중 지금까지 시장에서 검증된
가장 확실한 불패의 기법입니다.

 


이 바닥에서 딩굴며 수많은 좌절과 희열을 맛보면서

배운 기법들 가운데서 가장 으뜸이며 가장 신뢰성이 높은
비책이지요.

 
꼼꼼하게 그리고 차분한 마음으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옛날 어느 왕국에 사냥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임금이 살고
있었습니다. 

신하들과 사냥을 나갈 때마다 이 임금은 언제나 불만이
있었지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임금이 꼭 잡고 싶어 하는 욕심나는
사냥감을 멍청한 신하들이 자주 놓친다는 것입니다.

그 신하들도 꽤나 능숙한 솜씨를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이 임금은 솜씨가 제일 좋은 사냥꾼을 찾기로 하고
방을 붙이자 전국에서 실력 있는 포수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몇 번의 실력을 테스트한 후에 최종적으로 선정된 사냥꾼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백전불패의‘백발백중’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느 시골의 포수였었지요.

임금은‘백발백중’을 불러서 어느 정도의 실력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사냥을 떠났습니다.

사냥에 실력이 있는 신하와 ‘백발백중’에게 똑같이 화살
10개씩 주면서 사냥감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큰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신하들은 하나같이 사슴을 잡으려는 욕심에 화살을 쏘면서
사슴을 뒤쫓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백발백중’은 화살도 뽑지 않고 어디론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잠시 후 사슴을 뒤쫓던 신하들이 하나 둘씩 나타났지만 화살
통은 비어 있는데 모두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실망한 임금은 ‘백발백중’이 궁금해졌지요.

얼마 후 저쪽에서 큰 사슴을 어깨에 메고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불패의 신화‘백발백중’이었습니다.

임금은 얼른 ‘백발백중’의 화살 통을 살펴보았더니 9개의
화살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신기하게 생각한 임금이 ‘백발백중’에게 사슴을 잡은 비결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백전불패의‘백발백중’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백발백중을 시키는 데는 두 가지 비결이 있습니다.”

첫 째는,,,
“백보 안에 있는 사냥감은 틀림없이 명중시킵니다.”

그러자 임금은 “그 정도는 여기모인 신하뿐만 아니라 나도
쏘아 맞출 수가 있다. (별것 아니군...)

나머지 한 가지는 무엇이더냐?

두 번째는,,,
“백보 안에 들어오기 전에는 절대 화살은 쏘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백발백중을 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술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기법과 기술들이 난무합니다.

아무런 원칙이나 기술도 없이 그냥 무조건 미친 듯이 사고파는
기법도 있고...

어설프게 배운 잔재주로 이것저것 집적대다가 계좌만 야금야금
축내는 기법도 있고...

검증되지 않은 무림의 고수가 종목에 대해 한 마디 던지면
차분하고 냉정하게 분석하거나 연구도 하지 않은 채 일단
무조건 매수부터 먼저 하고  상투에 물려 손절만 밥 먹듯
하는 기법도 있습니다.

결국,,,
주식은 사람들의 심리를 사고파는 기술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심리란 모든 투자자들이 얼마나 싸게 매수해서 얼마나
비싸게 팔아먹느냐 이지요.

싸게 사는 자리와 비싸게 파는 자리를 알아내는 비책이
이러한 모든 투자자들의 심리를 정확히 읽어 내는 것에
지나지 않고...

그러한 심리가 바로 급소자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급소자리를 찾기 위한 모든 기법들은 사람들의 심리가
멈추고 움직이는 자리를 찾는 공부이고...

그러한 백전불패의 원초적 급소자리는 바로...

“백보 안에 들어오기 전에는 절대 화살을 쏘지 않는
  기법이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며
확고부동한 성공의 비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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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늑대(天狼)

MIXI (Martial arts, Investment in stocks X Information tech) World...since 2008



초보 투자자가 알아야할 주식시장의 진실

주식시장은 다시 코스피 2000 포인트를 돌파한 후 개인투자자(소위 '개미')의 주식매매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증시는 오르지만 개인투자자들에게서 큰 돈을 벌었다는 경우는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식 투자를 하면서 뇌동매매로 큰 손실을 보신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주식시장이란 곳은 정말 확실한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초보 개인투자자(개미)분들은 세력들에게 당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니까요.

이기기 위해선 내가 변화해야하며 적을 알아야 나를 바꿀 수 있겠지요.
그러기 위해선
먼저 주식시장이란 전쟁터 혹은 무림의 구조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개인투자자가 알아야할 주식시장의 진실,"개미들의 투자"

개미들의 투자

주식시장에 얽힌 우화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자신의 투자습관과 한번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주식시장이라는 하우스가 있습니다.(하우스 안에서 대략 1700개정도의 포커판이 벌어지네요.)
각 포커판마다 참가하는 선수들을 보면 세종류입니다. 기관,외인,개미
그런데 각  포커판마다 돌아가는 행태가 비슷비슷한 것이 참 특이합니다.

먼저 기관선수에대해서 분석을 해보죠.
기관선수는 아이러니하게도 하우스주인입니다. 포커판의 승패에 관계없이 수수료를 챙겨갑니다.
하우스주인이기때문에 하우스 관리를 위해 CCTV를 설치해놨습니다. 이럴수가?? 상대편 패가 다 보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네요. 하우스주인이라고 패는 만날 자기가 돌립니다. 패 섞으면서 대략적으로 어떤패가 나올지 기억해 놓습니 다. 웃기죠??

자. 그렇다면 외인선수는 어떨까요?
외인선수는 돈이 아주 많습니다. 하우스안의 기관,개미 돈 다 합쳐도 외인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포커판의 카드패가 돌아갈 때마다 레이즈를 외칩니다. 
기관, 개미 환장합니다. 들어간 돈이 있으니 죽지도 못하고 레이즈 받자니 간떨리고....
외인의 능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네요. 돈이 많기때문에 하우스주인. 즉 기관선수에게 뒷돈 좀 대주면서 CCTV좀 같이 보자고  합니다. 기관선수는 별 수 없습니다. CCTV 안 보여주면 하우스 뒤집어 엎겠다는데.... 힘이 없죠. 그랬더니만 이제는 다음  패 뭐 나오는지 기억해 놓은 것도 좀 같이 알자고 하네요. 허허허... 기관선수 역시 별 수 없습니다. 같이 정보 공유하는수 밖에....


다음은 개미선수에 대해서 분석을 해보죠.
아!!!! 정규선수는 아닌지만 종종 끼어드는 선수가 한 명 더 있었습니다.
작전세력,세력,주포 등등 이름도 많지만 본명이 뭔지는 잘 모릅니다. 그냥 편의상 세력선수라 칭하지요.
세력선수. 이 선수는 정말 특이합니다. 주무대는 코스닥이란 지역의 포커판들 입니다. 기관선수 였던 사람이 전업한 경우도  있고, 개미선수였던 사람이 전업 한경우도 있고, 아무튼 이 선수와 관련된 가장 큰 특징은 포커판에서 사용되는 카드를 이  분들이 만들었습니다. 즉 다음 카드가 무엇이니 100% 압니다. 왜냐고요?? 지들이 만든 카드를 사용하니까 카드마다 해놓은  표시들을 다 압니다. 거기다가 바람도 잘 잡습니다. 다음패가 무엇이 나오는지 정보를 살살 흘려가면서 사람들 군침을 돌게  합니다.
세력선수는 개미선수와 아주 밀접한 관계이니 자세한 설명은 일단 개미선수소개를 한 뒤에 해야겠네요.


주식시장의 오합지졸. 쪽수로만 보면 최고인 개미선수에대해서 소개하죠.
일단 개미선수내에서도 등급이 나뉩니다. 등급의 형태는 피라미드 형태이며 가장 꼭데기에 있는 개미를 전투개미라 칭합니다 . 전투개미의 모습을 보면 가관입니다. 팔다리 한 두개 없는건 예사고 눈이 먼 전투개미, 더듬이가 없는 전투개미 등등. 아 무튼 산전수전육탄전 주식시장포커판의 온갖 고생은 다 한 모습니다. 전투개미분들의 몇마디를 전하자면 포커판에서 자신과  동지였었는데 팔잘리고 목잘리고 하다가 저세상 간 개미들이 아주 많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전투개미는 그 많은 개미 들중에 몇 명 안 보입니다. 

그렇다면 피라미드의 하단부를 대다수 차지하는 일반개미들의 모습은 어떨까요???


이제 하우스에 갓 들어온 초보개미를 한번 보도록 하죠.
쭈뼛쭈뼛하며 하우스에 들어와서 여기저기서 돈 벌었다는 얘기에 솔깃해합니다.
하지만 어느 포커판에 껴야할지 몰라서 여기저기 기웃기웃 거리며 귀동냥을 합니다. 그러다가 남들이 좀 안전한 포커판이라 고 얘기하는 곳에 낍니다. 그리고 무작정 기다립니다. 좋은패가 나올때까지 그냥 무조건 기다립니다. 포커는 확률게임인지라 ...무조건 기다리다보니 돈 땁니다. 기분 좋죠!!!! 30% 땄습니다. 속으로 생각합니다.
'아...100만원 걸지말고 1000만원 걸면 30만원이 아니라 300만원 따는건데....' 그리고는 또 다른 포커판에 기웃거리며 좀  안전해보이는 판에 낍니다. 그리고 역시 또 무조건 좋은패 나올때까지 기다립니다. 이번에는 500만원 정도 넣었는데 10% 땁 니다. 기분 좋아하며 포커판을 뜹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보니 +10%가 아니라 +100%로 올라가 있습니다. 초보개미 눈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아!!!내가 포커판 고르는 눈이 있구나!!! 미수좀 받고해서 1억정도 걸었으면 +100%니까....헉!! 2억인데!! 아 깝다' 그때쯤 되니 +5%,+10%정도되는 포커판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다시금 주변을 좀 두리번두리번 거려보니 세력이라는 선수가 떠들고 다니는 소리가 들립니다. '여기 포커판 한번 끼세요. 최소  +100%입니다. 점상 5번 이상 예약입니다!!!' 개미선수 설마설마하면서도 그 포커판앞에서 기웃기웃거려봅니다. `
어라?? 하루만에 +15%갑니다. 속으로 생각합니다.'에이...설마...'
좀 기다렸더니 이번에는 다시 +10%갑니다. '어라?? 이거 이상하다...' 좀 더 지켜보니 또 +5%넘어갑니다. 개미선수 아주 애 가 탑니다.
이때 세력선수가 지나가면서 한마디 합니다. '점상 최하 다섯방인데 흠...'
우리의 불쌍한 개미선수!! 차는 벤츠로 바꾸로 회사에 당당하게 사표던질 수 있다는 생각에 아파트 중도금을 판돈으로 낍니다.
설마설마 했는데 역시나!!!! +10% 갑니다. 기분 좋죠!!!! 속으로 생각합니다. '역시 난 주식포커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던 거야' 
좀더 기다리니 +20%될락말락 하다가 떨어집니다. +5%까지 떨어지네요. 개미선수 고민고민하는데 세력선수 옆에서 한마디 슬 쩍합니다. "아...인내심 없는 개미들 좀만 더 기다리면 +100%인데..쯧쯧쯧" 
개미선수 속으로 생각하죠.
'ㅎㅎㅎ 멍청한 개미들 난 일반 개미와는 달라. 주식포커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단 말이지' 

세력선수와 맞장구 쳐주면서 좋다고 같이 선전합니다. "ㅎㅎㅎ 멍청한 왕초보개미들 +100%가 눈앞인데 -5%를 무서워하냐!!!"
그러면서 상따잡기, 미수, 물타기등등 말로만 듣던 일들을 합니다.
정신없이 베팅하다 돈 계산을 해보니 -5%입니다. 뒤돌아 보니 세력선수가 보이지 않습니다. 
불안해집니다.
'본전이라도 건져야하는데....' 
머뭇거리며 카드가 돌아가고 돈 계산을 해보니 -30%가 넘어갑니다. 아찔합니다.
'아파트 중도금인데..어떡하지??'
'아냐..내가 보는 눈이 틀릴리가 없어.'
그리고 다시 카드가 돌아가고 다시 돈계산을 해보니 -50%입니다. 자살충동 느낍니다. 
'아...우리가족들 어떡하지....'
'내가 미쳤지. 왜 도박판에 뛰어들어서....'
'다시는 하지 말자'
손해보고 포커판에서 자리를 뜹니다. 그리고도 미련이 남아서 뒤를 보니 세력선수가 또 보입니다. 잠시 화장실 갔다왔다고  하며 카드가 돌아가고 판을 보니까 -50% 였던게 -20%가 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불쌍한 개미 선수..... 울분이 터집니다. 눈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내가 왜 조금더 못 참았을까...내 선택이 옳았었는데!!!' 
그리고는 다시 판에 낍니다.
옆자리에 개미선수가 앉는것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빠져나가는 세력선수를 미쳐 보지 못한채....

개인투자자가 알아야할 주식시장의 진실,"개미들의 투자"


짧은 제 주식경험으로 한번 꾸며본 얘기입니다.
개미는 절대로 기관이나 외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자금력이 안되고 기업분석에대한 기본적인 정보력조차 그네들을 따라갈  수 없기때문입니다.
세력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회사 관계자들과 한탕 해먹기로하고 작전을 펼치는 세력들... 회사의 공시가 언제 나오는지에 대 해서 뻔히 알고 있는 세력들을 이긴다는것은 기관을 이기는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너무나도 뻔한 얘기이지만 대다수의 개미분들이 '나는 남들과 다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안일하게 주식시 장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자신을 객관적인 잣대로 다시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다른 개미들과 다른점이 무엇이 있는지??
"투자종목의 회사사장과 친분관계가 있어서 세력들보다도 먼저 회사 정보를 알 수 있고, 증권사 이사와 친해서 해당종목의  미수금이 얼마나 들어와 있고 공매도 물량이 얼마나 나갔는지를 안다." 하는 정도는 되어야 다른 개미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고 하시는 개미분들은 그냥 일반 개미일뿐 전투개미가 될 수 없습니다.

주식시장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주식투자를 통해 수익을 얻으려고 하는것이 아니라 손해를 안 보려는 생각을 가져야만 가능 합니다. 
자신이 투자한 기업이 기본적인 재무구조와 만에 하나 상폐위기에 몰렸을때 내가 받을수 있는 금전전인 보상이 얼마나 되는 가? 정도는 따져보고 종목을 선정해야합니다. 주식시장에 처음 발을 들여놨을때의 초심. 즉 망하지 않을 회사의 주식을 사서  이익이 날때까지 쭈~욱 들고 가는 방법만이 개미가 손해를 안 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 과정에서 소위 얘기하는 최저점을  잡은 개미는 이익율이 커지고 단기적인 상투를 잡은 개미는 이익율이 작아집니다.
이런 망하지 않을 회사의 최저점을 잡아내는 투자방법이 흔히 워렌버핏의 투자방법으로 분류되는 가치투자입니다. 하지만 일반개미들은 최저점을 찾아내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정보력도, 차트분석능력도 포커판의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많이 떨어지 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개미들은 항상 세력과, 기관과, 외인들의 돈줄 역할밖에 못했지만 이제는 인터넷 시대입니다. 인터넷의 수 많은 정보들을 수집하여 잘 정제해서 사용을 해도 전투개미까지는 아니라도 초보개미는 벗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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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늑대(天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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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을때는 누구나 희망과 대박의 꿈을 안고 입문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지나고 보면 증권사에서 계좌를 만들고 전문가가 추천해 준 종목들을 따라다니며

감에 의존한 매매(뇌동매매)를 하다보면 결국 현저히 줄어든 계좌와 걱정섞인 한숨 뿐만 남게 되는것이 개인투자자의 일반적인 패턴이라 할 수 있다.

결국은 많은 돈을 잃고나서야 이제야 주식시장의 냉혹한 현실에 두려움을 느끼고 두가지 선택중 한가지를 하게 된다.

눈물을 머금고 주식시장을 완전히 떠나거나 언젠가 복수를 다짐하며 재기를 노리고 다시 돌아오거나...하지만 어느쪽을 택하더라도 이미 많은 손실을 본 상태에서는 후회만이 남을 뿐인 것이다.

주식투자, 잃지않기 위한 초보투자 입문법

그러므로 초보투자자로서 첫 입문시기의 투자방법은 매우 중요하다.

돈을 많이 버는것이 목적이 아니라 잃지 않는 투자방법과 매매법을 익히는 것이 목표가 되야만이 냉혹한 시장에서 오래살아남고 이것이 바로 고수가 되는 길과 상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에서 잃지 않기위해 초보투자자로서 반드시 기억해야할 입문방법은 무엇일까?


잃지 않기위해 초보투자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일곱가지

첫번째. 투자 가능한 여유 자금을 책정하라

"주식투자는 여유자금으로 하라" 이말은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대박을 꿈꾸며 있는돈 없는돈 신용까지 쓰면서 뛰어드는 분들이 있다.
 마치 종잣돈이 크면 빨리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
단언컨데 초기 종잣돈의 크기와 수익은 절대 비례하지 않는다.
정말 열번은 잃는다 생각하고 잃어도 지장없을 돈으로만 시작하라.
그렇다면 열번을 다 잃기전에 잃지 않는 법과 버는 법의 두마리 토끼를 잡을 것이다.

두번째. 자신의 투자성향을 먼저 파악하라

단기,중기,단기 투자인지 자신의 투자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분이 있다. 장기투자를 한다는 분이 매일매일 차트를 보면 일희일비 하는...장투에 하루하루의 차트는 중요하지 않다. 이런사람이 되어선 안되는 것이다.
투자성향에 따른 매매법은 모두 다르다. 그에따라 공부해야 할것 역시 틀리다.
말로만 장투를 하는 잡성향의 투자자가 되지 말자.

세번째. HTS(홈 트레이딩 시스템)의 전문가가 되어라

요즘 주식투자는 집에서 증권사에서 제공하는 HTS를 사용해서 하는 개인투자자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HTS에는 강력하고도 다양한 기능들이 숨어있다. 또한, 증권사마다 다르지만 수수료의 저렴함이란 이득도 있다.
전쟁을 할때는 전략(시장을 보는 눈)과 전술(매매기술)도 중요하지만 무기(HTS) 자체를 잘 다뤄야 승리하는 것이다.
시장에 뛰어들기전에 HTS를 먼저 능숙히 다루어라.

네번째. 애널리스트를 포함한 주식 전문가의 추천을 그대로 믿지마라

개인적으로 주식시장만큼 합법적인? 사기꾼이 많은 곳도 없다고 생각한다.
금융회사 혹은 증권사에 소속되어 있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은 투자에 있어 참고사항일 뿐이다.
말은 상황에 따라 바구면 그만이고 그들은 절대 투자자의 수익여부를 책임져주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그리고 소속사가 바로 기관이고 그들은 개인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또한, 인터넷상의 수많은 자칭 전문가를 만난다면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
어떤 달콤한 말로 유혹을 하든지간에 꾸준한 수익을 내어주지 못하는 전문가라면 절대로 믿지마라. 
주식시장에서 믿을 사람은 오직 한사람 바로 자신 뿐이다.

다섯번째. 시장의 큰 흐름을 먼저 파악하고 흐름에 맡겨라

시장은 종목에 우선한다.
시장이 나쁜데 종목이 좋기 힘들고 시장이 좋다면 정상적인 종목이라면 움직이기 마련이다.
특히 대형주를 거래할때는 시장(KOSPI)의 상황을 먼저 보고 매수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투자자들 중에 입문하자마자 세력주, 작전주 등 하루에 15% 상한가를 가는 주식만 따라다니며 매매하는 분들이 있다. 이런분들 100% 망한다.
짧은 글에 다 설명할 순 없지만 급등주에서 내는 수익보다 대형주에서 꾸준한 몇 %의 수익을 유지한느 것이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주식의 성공한 고수들을 보면 꾸준한 수익을 복리로 늘려간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잊지마라.
대박은 그 과정에서 한번씩 찾아오는 선물일 뿐이다.
시장의 흐름을 먼저 읽는 안목을 길러라.

여섯번째. 종목을 사야 되는 이유와 팔아야 하는 경우를 먼저 확정하고 매수하라

주식 개별 종목을 매수할때 "오를것 같아서" 라던지 "싸 보여서"라는 극히 주관적인 이유로 매수하는 분들이 있다. 이것도 100% 망하는 지름길이다.
주식을 매수할때는 남에게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타당한 매수이유가 있어야 한다.
또한 매수할대의 이유와 연계해서 매도할 경우를 먼저 정해놓고 매수를 들어가야 한다.그렇지 않다면 끝없이 주가가 떨어져도 팔지않고 물려있게 되는 경험과 수익이 나도 팔지못해 도로 떨어져서 물리게 되는 경험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배팅을 할때는 수익시 이익을 보고 팔 매도시점과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을때 타협할 손절 가격을 이미 정하고 사라.

일곱번째, 배팅은 신중하게 하되 배팅후에는 게임을 하듯 편안함 마음으로 즐겨라 

이 말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실패한 투자자일수록 배팅을 게임처럼 가볍게 대충라고 주식을 매수한 후에는 이미 바꿀 수도 없는 상황에서 조마조마해하며 오르길 기도한다. 그러나 결과는 원하는대로 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이런 투자자는 100% 살아남을 수 없다.
배팅 즉, 주식매수의 시점에서 수십번을 검토해보고 기다려서 안전한 지점에서 신중히 매수하고, 배팅후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매도시점을 기다려야 한다.
만약 배팅후 초조하고 두렵다면 배팅금액을 줄여야 한다. 


이번 포스팅은 조금 넓게 접근한 개념적인 방법론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차후 시간이 되면 각각의 방법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의 글을 작성해볼 예정입니다.

이상으로 주식시장에서 잃지 않기위해 초보투자자가 명심해야 할 입문법 일곱가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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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수익내는 고수들의 7가지 습관

주식판
이란 곳은 개인투자자와 세력(기관, 외인,큰손)들이 모여 벌리는 심리전의 한판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살아남기위해 공부하고 때로는 실패하고 부딪히면서 깨닫고 그것을 계기로 여러 고수들과도 만나보았습니다.

그러나 자칭타칭 고수라고 불리는 사람중에서는 실력없는 허울뿐인 말뿐인 가짜도 있었고 "주식은 투자자의 책임이다"라는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인 사기라고 해도 좋을 전문가라는 사기꾼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성과라면 몇몇은 진짜 고수들을 만았었고 그중 소수는 진심으로 개인투자자를 위해 노하우를 알려주고 싶어하는 분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수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매매 노하우와 꾸준히 반복된 습관과도 같은 철칙을 가지고 있었기에 주식으로 꾸준한 수익을 낼 수 있는 실력을 기르느냐 마느냐는 운이 아니라 그들이 행한 노력과 습관에서 나온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니다.

여기에 적은 7가지 방법혹은 습관이 당장의 주식매매에있어 직접적인 도움은 될 수 없을지라도 향후 주식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부해야하는 목표와 방향을 정하는데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하며 글을 시작합니다.

주식, 수익내는 고수들의 7가지 방법

1. 선에서 사고 선에서 판다

주식 매매는 선에서 시작해서 선으로 끝난다고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매매의 시작과 끝이란 지지받는 선을 찾고 저항받는 선을 찾아 긋고
그 안에서 매수절정에 이뤘을때 매수, 저항을 받고 매도절정에 다다르기전에 매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강한 세력주 일수록 이 선의 개념을 철저하게 지킵니다.
그렇기에 항상 차트에 선을 그어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나름대로의 원칙과 이유를 알게되었을때 이 저항과 지지선의 정확도는 높아질 것입니다. 
선을 그을때는 항상 이미 지나간 왼쪽에서보투 오른쪽으로 그어야 실력이 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사진을 찍듯 눈으로 차트 찍어라

주식이란 변화무쌍하지만 그 수많은 패턴역시 어떤 공통점은 있게 마련입니다.
만나본 고수중 특이한 분이 있었는데 바로 살대와 팔대에대한 정확한 이유는 제시하지 못하지만 그분이 사면 올라가고 그분이 팔면 내려가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하는 말은 그저 사야할 자리인것 같아서와 팔아야할 자리란 것입니다.
그분의 노하우는 한가지 였습니다. 바로 오르는 차트의 시작점에서의 수많은 차트의 변화를 사진을 찍듯 수많은 반복으로 외워버린 것이지요.
불가능하다구요? 아니요. 수많은 차트를 보고 외우면 분명 가능합니다. 그 증거가 그분이었으니까요.
차트를 외운다는 것은 종목의 힘의 세기와 거래량을 동반한 파동의 흐름을 보는 것입니다.
수많은 차트를 찍어 차트를 정복해 보시기 바랍니다. 

3. 추세의 변곡을 찾아라

추세의 변곡, 즉 현재 상승추세에서 하락추세로 꺽인점 또는 하락추세에서 상승추세로 전환된 점을 말합니다.
또 다른의미로는 하락의 시작점과 반등의 시작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변곡점이 왜 중요하냐면 의미있는 추세의 변곡에서는 바로 저항과 지지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는 내가 샀을때 어디에서 팔아야 하는지 매도시점을 알아낼 수 있기에 중요합니다.
추세의 변곡은 이평선의 정배열 및 역배열 그리고 기울기로 찾아낼 수 있으며 평선이 눕는곳은 의미있게 보아야 합니다.

4. 상승과 하락 추세의 매매법을 구별하라

일반적으로 만난 고수들의 공통점은 상승추세에서의 매매법과 하락추세에서의 매매법의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각자 자신있는 매매법은 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매매법을 상승과 하락시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매매장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는 근원이 되기에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건입니다.
보통 상승시에는 추세를 먹고 느긋한 스윙위주의 전략을 하락시에는 반등을 짧게 끈어먹는 단타식의 매매법을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5. 세력의 입장에서 생각하라

투매가 나옵니다. 혹은 현재가 창에서 위태위태하던 주가가 지지받을 것 같은 큰 물량의 지지선이 무너집니다.
또는 갑자기 불기둥을 일으키며 급등한다던지 상한가를 간다던지 개인투자자의 입장에서 여러가지 돌발 변수가 많습니다.
이때 감정에 휘둘려 쫓아가다 물리는 분들..혹은 불기중 중독증 이라고하는 빨간불로 치솟는 주가만 보면 묻지마 매수를 하는 분들 반대로 급락을 하는대도 손절을 하지못해 물리는 분들 여러가지 경우의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세력의 입장에서 이해할려고 생각한다면 어떤상황에서도 이성적인 사고를 할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미리 시나리오를 예측해보고 내가 세력이라면 개미 투자자를 어떻게 휘두를 것인지 시나리오를 짜보고 그것을 실전에서 검증해 본다면 분명 시간이 지날수록 뇌동매매가 줄고 안정적인 매매가 가능하게되어 주식매매를 하는것에 있어 큰 힘이 될것입니다. 

6. 거래량은 곧 돈이다

거래량을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요?
거래량은 곧 돈 입니다.
모든 보조지표중 가장 우위에 있고 가장 선행적인 지표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요?
바로 거래량 입니다.
거래량은 세력의 돈이 들어간 곳이기 때문에 거래량이 많이 실린곳을 차트 해석의 기준점, 세력개입의 기준점, 나아가 세력단가 계산의 기준점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훼이크가 아닌 정말로 의미있는 거래량이 모인 부분을 찾았을때의 얘기지만 몇번만 위에 나열된 방법들과 함께 연구해 보고 실전과 비교해본다면 찾아내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위치와 차트의 흐름에 따라 똑같이 거래량이 많이 터졌어도 어떤곳은 급등을 하고 어떤곳은 급락을 합니다.
요지는 그 거래량이 누가 산 거래량인가 입니다.
개인투자자가 받은 거래량이라면 분명 하락할 확률이 높을 것이고 세력이나 메이져인 기관.외인이 받은 물량이라면 상승할 확률이 높기기 때문입니다.
거래량을 바로 읽을 수 있을때 한단계의 큰 관문을 넘어 실력이 한층 레벨업 될 것입니다.

7. 지를때와 기다릴때를 정하라

항상 묻지마 풀배팅을 하십니까? 아니면 항상 크게잃을 것이 두려워 소량만 분할로 사시는지요?
양쪽다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나본 고수들의 또다른 공통점중 하나가 바로 배팅의 조절에 확실한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매수의 진입시점에도 세력의 단가 및 추세의 파동을 염두해 두고 진입을 하지만 분할매수를 함으로써 리스크를 최소화 시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반 개인투자자들과의 더 큰 차이점은 바로 확실한 때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불확실성이 보일때는 분할매수를 통한 리스크를 줄이며, 모든것이 상승으로 이어지는 확실한 자리 혹은 대세상승기의 상상추세에서는 풀배팅을 통한 수익의 극대화를 노린다는 것입니다.
이는 많은 경험을 통해 묻어나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항상이 아닌 때를 기다린다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리스크관리를 통한 꾸준한 수익 그러다 기회가 되면 과감한 배팅을 통한 수익의 극대화가 그들이 고수로서 큰수익을 내는 비결이 아닐까 합니다.


갑자기 쓰고 싶어 두서없이 적어나간 바람에 깔끔하지 못한 글처리가 아쉽습니다만...
글의 구성보다는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더 생각해보고 읽어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주식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그리고 믿을수 있는 승률높은 매매기법을 한가지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개인투자자로서 자신만의 확실한 투자기법을 만드는 과정의 방향을 제시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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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늑대(天狼)

MIXI (Martial arts, Investment in stocks X Information tech) World...since 2008

신창 이서문 (神槍 李書文) 傳

이서문
중국무술 팬으로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근세에 실재했던 중국무술 역사를 통틀어 "최강으로 평가되는 실전무술가"
이서문의 이름은 창주의 창주일보 기자 안세화씨의 손으로부터 「체육보」라는 신문지상에 게재되었다. (주: 창현지)

그 전역을 소개한다. "신창 이서문전" 이다.


(1) 이서문 황서해에 입문하다.


창주현 동80?리, 맹촌은 중국팔극권의 발양이다. 전설에 의하면, 건륭초년, 스스로 「癩(라)」라 칭하는 익명의 도사가 맹촌에 홀연 듯 찾아와서, 어릴때부터 무예를 익히고 있었던 吳鍾(오종)에게 권술의 형(形)을 가르쳤다.
吳씨는 연습에 힘쓰고, 새로운 技를 도입하고 발전시켜, 차츰 독특한 품격을 가진 팔극권을 창시해낸다.
이 권은 몸을 바싹 적에게 붙여, 近身短打(접근전), 「十字勁」,「沈墜勁」,「纏絲勁」을 발경의 기본으로 하는 것으로, 중국의 무술계 안에서도, 극히 공격성이 풍부한 권이다.

청의 同治3년(西磨1864년), 이서문은 맹촌에서 남쪽 12?리(약 6km)떨어진 남량촌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권과 곤술을 좋아했지만 몸이 작고 허약하여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서문은 자신의 강한 氣性으로, 무예를 어떻게 해서라도 제것으로 하려고, 홀린 듯이 열중하여 연습하자「기가 미쳤다」고 불릴 정도까지 되었다.

라동에 황서해라는 팔극권 5세가 있었다. 대창으로 이름을 떨친 장극명의 제자이고, 일찍이 그 무공으로 6품의 지위를 받고, 嫡傳(정전)을 이었다고 들은 이서문은 달려가 땅에 넙죽 엎드려 스승으로 모셨다.
황서해도 가난한 집을 나와 어떤 큰 부자의 묘지기로 촌에서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이서문의 진지함과 품행바르고 똑똑하여, 임기응변이 아주 좋은 것을 보고,
이놈은 큰 인물이 될 것이다. 하고 열심히 팔극권과 육합대창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라동은 남량촌으로부터 4km정도 떨어져 있고, 이서문은 매일 노사를 찾아가 권을 연습하고, 끝나자「선생님, 앞으로는 저의 포단을 갖다놓을테니까, 옆에 놓아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황서해는 일부러 노한 목소리로「안돼!!여기를 어디라고 알고있는 것이냐..
엄숙한 장소다. 너는 지금까지처럼 밤에 찾아와라」하고 말했다.
이서문은 어쩔수 없이 석식후, 라동촌까지 걸쳐 가고, 2∼3시간 수련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황서해는 이서문이 라동의 묘지에 도착하는 시간과 귀가시간도 지정하였지만, 시간에 맞추려면, 달리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달리는 법도 스승에게 배운 몇종류의 走法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것은 스승이 의식적으로 이서문의 각력을 단련시키기위해 부과한 트레이닝이란 것을 알았다.

팔극권접근전을 가장 자신있어하고, 발경의 강맹함을 특징으로하는 권법이고, 정식으로는 "오씨개문팔극권"혹은 "개문팔극권"이라한다. "개문(開門)"이란 「적의문(방비하는곳)을 쳐서 연다(부순다)」라는 의미이다.

팔극권의 투로에는 팔극소가(소팔극권이라한다. 기초공력을 연습하는 것), 팔극(화경을 배우는 것), 팔극대타(대팔극권을 둘이 상대하여 연습하는 것) 등이 일반적이고, 거기에 육대개(六大開)(6종의 핵심이 되는 권기의 단계적 연습), 팔대초식(산타의 기법), 이 있고, 전승자에 의해 금강8식, 영수권, 팔극연환권, 팔극쌍괘권, 육주두, 4랑매 등을 연습한다.
또, 팔극권에는 6합대창법이 전해지고 있고, 근세부터는 벽괘장을 합쳐서 배우도록 되어있다.

이서문은 「창현지」및 「오씨개문팔극권보」에 의하면, 남량촌의 출신이지만, 이서문의 개문제자인
류운교 사범에 의하면 張? 출신.... 맹촌에서는 이서문의 스승은 황서해라 전해지고 있지만
류운교사범에 의하면 맹촌의 金家에서 이서문은 팔극문의 무예를 배웠다고 한다.
※류운교는 류운초의 옛이름..


(2) 이서문, 대창을 배우다.

묘지에는 한쪽에 오래된 대추나무가 자라있고, 가을이 깊어지면 잎이 떨어지고, 거칠거칠한 나무껍질이 한층 더 두꺼워진다. 황서해는 이서문에게 3m 남짓 되는 백랍수로 만든 봉 한자루를 주고, 노송을 겨냥하여, 좌우로 세게 때리는 연습을 시켰다. 매일 밤 고된 연습으로, 이서문은 허리와 팔이 아팠지만, 이를 악물고, 계속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힘들고, 정말로 긴 봉을 지탱할 수 없게 되어 황선생에게 말했다.
"선생님 이런 연습을 해서 실전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까? " 황서해는 "이것은 팔의 힘을 단련하기 위한 연습이다.
어떤 기술의 연습이라도 정말로 습득하면 도움되지 않는 것은 없다... " 라 대답했다.

대간(大杆)(긴 곤을 사용하는 곤술)」은 창주의 무예 가운데에서도 훌륭한 기술의 하나로
벽, 점, 추, 교, 제, ... 등의 위력이 상당히 크고, 곤 위에 수선을 붙이면, 대창이 되어 살상력은 보다 강화된다.
황서해는 오종정傳의 육합대창 창법을 남김없이 이서문에게 전했다.
이서문은 스승의 가르침을 잘 지키고, 고된 단련을 참아내고, 팔의 힘은 점점 강하게 되어
좌우, 상하 어느 쪽에서라도 오랜 대추나무의 두꺼운 껍질을 벗겨내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 1장 남짓 되는 봉끝으로 파종 후 흙을 누르는 돌 롤러를 들어올릴 수 있었고,
대창의 경력도 그 가감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날, 이서문이 대창을 메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오자, 이웃사람이 그의 창법을 엿보고, 同臣(이서문의 호), 대창도 훌륭하게 되었군, 하나 보여주지 않을 텐가? 」하고 말했다.
이서문은 "좋다" 하고, 대답하긴 했지만, 또 처음부터 투로를 반복하는 것도 귀찮아서 무언가 실제로 찔러주자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정원 안에 여기저기 찌를 목표를 찾아 돌아보았지만 적당한 것이 없었다.
방에 돌아와 문득 벽을 보니 파리가 무리를 지어있어, 창을 쥐고서 차례로 찌르자, 파리가 한 마리 씩 지면에 떨어졌다. 이웃사람은 죽은 파리를 주워, 벽으로 다가가 구멍이 뚫린 여부를 찾았지만, 창에 찔린 흔적은 없었다. 이웃은 이서문의 창을 「진실로 신기다」라고 치켜세웠다.
이서문은 보통 사람과 창으로 우열을 가릴 때 창끝은 바깥으로 하고, 봉 끝에 면을 두르고 적을 찔러 상대를 땅에 쓰러뜨렸다.
자신의 창자루와 상대의 자루가 교차하면 급히 쥐로 자루를 당겨 적을 앞으로 꼬꾸라뜨렸다. ....


(3) 천하제일 창

1920년, 이서문은 38세로 연경(현재의 북경)으로 무술인 수업을 나갔다. 천단(天壇)광장에서 십 수인의 무술가와 기술을 겨루고, 차례차례 이기고 있었다. 마지막에 "황"이라 하는 자와 대창을 겨뤘다.
황은 큰 몸집으로 힘이 세고, 창법에 숙달 돼있었으며,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둘은 하루 종일 시합을 계속하였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두 자루의 창이 부딪혀 교차할 적마다, 어느 쪽도 물러설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서문은 마침내 상대를 힘으로 누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깨닫고, 큰소리로 외쳤다. "죄송합니다. 손을 떼어주십시오..."
황쪽도 이미 폭포처럼 땀을 흘리고, 기력이 다하고 있었기에, 손을 멈추고 창을 당겼다.
이처럼 긴박했던 대전에는 결정적인 수법이 없으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이서문은 알고 있었다.

그는 맹촌의 팔극권 4세의 문인인 오린서(통칭 吳春아저씨)의 것을 생각해 냈다. 오 아저씨는 풍부한 경험의 소유자였지만, 괴짜라 남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서문은 거기에서 가르침을 청할 방법을 생각해내고 한쪽 권을 다른 손에 포개어 공수의 예를 취하며 황에게 말했다. 「선배, 연경을 떠나지 말아 주십시오, 다음달 오늘 다시 뵙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창을 메고 떠났다.

이서문은 창주에 돌아와 東南에 있는 史家에서 말에게 끌게하는 교차(轎車;옛날 사람을 태워 달리는 상자형의 가마)를 세를 내어 가마의 천장에 그의 대창을 꽃고 빨간 천에 「천하제일창」이라 쓴 기를 달고, 풍당당하게 맹촌을 목표로하여 차를 몰았다.
차부에게는 맹촌에 도착하면 3냥의 은화를 준다고 약속해 놓았다. 차가 맹촌의 북쪽 길에 이르자 이서문은 차부에게 「어떤가.. 내가 말한대로 큰소리로 외치는거다... 남쪽길까지 가면 은화를 두냥 더 낼테니까」라고 말했다. 차부는 소리를 높여 「촌에 계신 여러분!!! 길을 열어 주십시오!! 천하제일의 창이 납시었습니다. 」라고 외쳤다.

맹촌은 팔극권 명수의 산지이고, 큰 길가에서 이처럼 무예를 자랑하고 큰소리로 천하제일을 외치는 인물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팔극권 5세인 오회청(맹촌오가의 정계 ; 四世인 吳愷의 아들)에게 알리러 달려가는 자가 없을 리가 없었다. 당시 오회청은 21세로 혈기왕성한 연령, 보고를 받자마자 바로 이서문을 살폈다. 아무도 이서문과 다투려 하지않는 것을 보고, 부아가 치민 오회청은 "건방진놈, 이분의 대창에 걸리면, 네놈 따위는 벌레나 다를 바 없다"하고, 화를 내면서 집을 나갔다.

이서문은 일부러 차부에게 차를 천천히 달리게 하면서, 더 크게 소리를 높이도록 했다.
오회청은 멀리서 가마위에 있는 창과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보자마자 서서히 자신의 창을 큰길의 가운데에 놓고 옆에 섰다. 차부는 큰소리로 외치다가 문득, 길 한가운데 대창 한자루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뒤돌아 가마안에 있는 이서문에게 고했다. 「내려주십시요」이서문은 차에서 뛰어내려 창을 보고 금방 깨달았다.

오회청은 이서문을 노려보며 서있었다. 「어이~! 밖에서 조금 이름을 알렸다고 해서, 그
큰 낯짝을 내밀면 참을 수 없다.. 천하제일의 창이라면 꼭 그 솜씨를 보고 싶은데 보여주지 않을 텐가!!! 」
하고 땅에 놓인 대창에 달려들어 발끝을 비틀어 창의 자루를 위로 한번 회전시켰다.
그리고는 즉각 창끝을 이서문의 목 근처로 향했다. 이서문은 당황해서 공수의 예를 취하며
사숙, 삼가 화를 가라앉혀 주십시오 이것은 오춘아저씨를 꾀어내기 위해한 행동으로 설마
사숙이 집에 계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오린서에게 소식을 알린 사람이 있어 린서가 화가나 「놈을 여기로 데려오라!! 애송이 녀석이... 」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서문은 차부에게 명하여 차를 린서 아저씨의 저택 문에 대게 하고, 대창을 차에서 빼내어 공손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4) 오린서 비전을 전수하다.

갑자기 "휙~"하는 소리와 함께 대창이 목 근처로 찔러 들어왔다. 이서문은 당황해서 창을 받는다.
폭이 약 8장(약25m)정도 되는 안뜰에서 둘은 결투를 시작했다. 오린서는 기력을 넘쳐흐르게 하여, 이서문의 목 근처에서 창끝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이서문은 한가지 계책을 생각해내고, 일부러 창자루를 얽히게하여, 오린서의 대창을 눌렀다.
오린서는「이녀석!!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권으로 나오다니…」하고 심중으로 생각하면서 「얏!! 」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양발을 재빠르게 전진하여 좌우로 훌쩍 몸을 펄럭이며, 갑자기 창을 위로 튕겨올렸다. 이서문의 창은 '붕'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높이 날아올라 갔다.

 다음순간,
이서문은 성큼성큼 오아저씨 앞으로 달려나가 당에 무릎을 꿇고 「춘아저씨, 저의 이 우매한 권은 모두가 이 기술을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고 털어놓았다.
이서문은 연경에서 있었던 타류 시합의 일을 아주 상세하게 오린서에게 고했다.
오린서는 노했는지 노하지 않았는지 모를 큰소리로 말했다.
「이 애송이가... 이 기술은 좌우과마압여세(좌우에서 말에 올라탄 것처럼 몸을 펄럭이고
집오리처럼 발바닥을 붙여걷는다)라 한다. 」이서문은 가마에서 화려한 과자상자를 꺼내
차례차례 오린서에게 보냈다. 마지막에 오아저씨를 가장 기쁘게 한 것은 1척2촌(옛날 구두의 촌법으로 40호)되는
특대화였다. 왜냐하면 오아저씨의 발은 특별히 컷기 때문에...

이서문은 「좌우과마압여세」의 숨겨진 기술을 배우자 집에도 돌아가지 않고, 바로 연경으로 가서, 황이라는 대창의 명수를 찾아내고 천단광장에서 시합을 했다. 2번의 맞붙음도 끝나지 않은 사이에 상대의 대창은 하늘로 날아 올랐다. 그 후, 여러명의 대창 명인과 기술을 겨루어도, 그를 능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순식간에 연경안에서 「신창 이서문」의 이름이 알려졌다. 사람들은 이서문은 몸은 비록 작지만, 신체는 철처럼 단단하고, 신체 어느 부위를 사용해도, 사람을 쳐서 쓰러뜨릴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이서문은 질리도록 무술를 연습하고, 고행을 싫어하지 않았다.


(5) 연경 무술가를 격파하다.

이야기를 바꿔, 이경림이 천진의 제독에 있을 때, 이서문의 위명을 전해듣고, 부대의 무술교련으로 초대했다.
이경림은 극강현 사람으로 권행, 검술도 소양이 있고, 군대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무술가 였다.
그는 이서문의 팔극권과 육합대창의 기술을 아주 존경하고 있었고, 늘 「동향인」이라 부르고, 친하게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이서문도 사퇴하기 어렵고, 하루종일 일정대로 무술지도를 수행했다.
이서문이 시범을 보이는 날은 이경림과 그 자리에 늘어서 있는 각 장군들은 단지 어안이 벙벙하여 언제나 박수를 칠 뿐이었다. 왜냐하면 이서문이 일식 팔극권을 끝내면 조련장의 굳은 지면은 온통 울퉁불퉁하게 되어,  予脚(타여각;발바닥으로 지면을 "꽝"하고 밟는 보법)(주: 진각)에 의해 생긴 구멍이 군데군데 이어져 있기때문이었다.


이서문의 공부와 이름은 차츰 먼곳까지 전해져, 마침내 연경에 까지 이르렀다.
당시, 연경의 무술가들은 이서문의 이름 따위는 마음에 두지도 않았고, 그의 공부가 소문처럼 우수하다고는 믿고있지 않았다. 그러나, 유명하게 된 이상, 만약 이서문을 깨뜨리면, 연경무술가의 이름을 높일 수가 있었다. 그래서 가장 강한 두 명의 무술가를 천진에 보내고, 이서문의 주소를 알아내어, 그와 기술을 겨루고, 소문대로의 실력을 갖춘 주인공인가 어떤가를 시험하게 되었다. 둘은 이서문을 보자마자 싱글벙글 웃었다. 꼬마같은 야윈 남자로, 신장은 170cm에 미치지 못했다.
이래서는 공부가 아무리 우수해도, 전신이 마치 철과 같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서문은 예를 갖추고 접대를 하였지만, 연경에서 온 두 객인의 눈빛에서 그 의중과 오만함을 알아채고, 시합을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고했다. 그래서 武를 통해 친구가 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도 좋다. 라고... 잔치를 베풀고 대접하였다.

석상의 체격이 좋은 쪽이 「이선생의 "우뢰가 귀를 꿰뚫는 것 같다"는 고명은 전부터 삼가 듣고있습니다.
오늘 이 눈으로 선생의 기술을 배견할 수 있다면 영광입니다.」라 말하면, 후배라 칭하는 쪽은 「우리들은 20여년 무예를 익히고 있지만 기량은 아직 많이 얕고, 이선생에게 예를 들어 하나, 둘이라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는지.. 시합을 청하고싶고... 」라 했다. 둘은 마침내 몸을 일으켜 차례로 이서문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그와 시합을 하지 않고는 끝내지 않을 태세를 표했다.

이서문은 어쩔 수 없게 되어, 연회석을 정돈시키고는 무표정하게 「그럼!!」하고 말했다.
당당한 체격쪽(이름은 불분명)은 배부르게 먹고 마신 후로 어떻게든 시합을 하고 싶어서
조급해 있었기 때문에 「그럼!!」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앞으로 나아가 권을 내밀고, 갑자기
이서문의 머리부위를 맹공했다. 이서문은 태연자약하면서, 몸을 돌리지도 굽히지도 않고
탐마장」으로 상대의 정수리를 격침하여 즉사시켰다. 무예가 중에는 자신의 기량이 열등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가 많지만, 자칭「후배」라고 한 작은 쪽의 연경손님도 그 중의 한사람이었다.
권을 포개어 송수의 예를 갖추며 「그럼!」하고 말하자마자 상대는 앞으로 돌진해 왔다.
이서문은 재빠르게 전진하며 그 공격을 받고, 정면에서 장으로 일격을 가했다.
적은 급하게 머리를 기울여 피하려 하였기 때문에 장은 그이 어깨에 떨어지고, 「우적!」하는 소리를 내며 견갑골이 산산히 부서져, 상대는 꽈당하고 식탁위로 쓰러졌다. 이 짧은 살인극에 보고있던 자들은 몸을 떨었다.

※이경림은 군인(장군)이다. 그의 무당검술은 유명해서 「천하제일검」으로 칭해졌다. 일찍이 남경의 중앙국술관에서 부관장을 역임했다.

(6) 침추경의 위력.

어느해, 이서문은 팔극권 5세중의 명수, 오회청과 이야기하고 천진으로 나왔다. 한가할 때,
둘은 장법을 겨뤘다. 오회청은 대청에서 기둥에 기대어 장을 치자, 대청 전체가 진동했다.
이서문은 대청중앙에 서서 장을 치자 대청 전체가 진동하여 벽토가 떨어졌다. 또 어느날은
창에서부터 5척(1.5m)떨어진 실내에서 공기를 배격(밀어젖히듯 침)하자, 창의 장여지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창현지」에는 「옛날 그 연객을 타격한것과 고목을 꺽은 것과 같다」라고 기재되어있다.」

전문에서 기술한 바와같이 팔극권의 발경의 방법에는 「침추경」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이 방법은 실재로 어느정도의 위력이 있는 것일까. 어느해 봄의 일이다.

오회청은 거친 말을 샀지만, 일을 시키려 해도 말하는 것을 제대로 듣지 않고, 차거나 대들거나 했다.
이서문이 말에게 「나에게도 대들려는 건가!!」하고 말했기에 오회청은 웃으면서 손그물을 이서문에게 건네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대들지 않을 거야」하고 말했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은 입을 뻗으며 대들며 달려들기에 이서문은 무릎을 들어 퍽하고 발의 아래턱을 찼다. 말은 큰 아픔을 느껴 히힝하고 콧소리를 내며 머리를 들고, 엉덩이를 내려 이서문을 차려고 했다.
이서문은 재빠르게 알아차리고 말이 머리를 들었을 때에 그 갈기를 붙잡고, 기세좋게 올라타 날쌔게 말의 등에 걸터 앉자, 손그물을 잡고, 가슴으로 氣를 옮기면서 맹렬한 기세로 허리를 떨어뜨렸다.
말은 히힝~~하고 소리높여 울고, 지면에 넙죽 엎드려 버렸지만 이서문이 기를 느슨하게 하는 사이에 양 발굽을 땅에 붙이고 또 일어섰다. 이서문은 다시 한번 힘을 넣어 허리를 떨어뜨리자, 난폭한 말은 「후∼후∼」하며 울면서, 네 번정도 땅에 기었다. 오회청은 그이상, 보다못해, 당황해 손을 흔들며 「빨리 말에서 내려와!! 그 이상하면 말이 죽어버려」하고 외쳤다.


(7) 무서운 맹호경파산

이서문의 손과 팔은 철과 같아서, 힘이 강하고 경을 사용하는 방법이 교묘하기 때문에
동북3성, 연경, 천진, 랑방지구, 산동, 강소, 남경, 안휘, 하남 등 그가 이르는 곳 모두 무림의 명인들과 무술과 대창 시함을 셀 수 없을 정도로 행하였지만, 필적할 만한 자는 없었다.

현. 청주시 무술협회 부주석인 이서정씨는 어렸을 때, 그를 만난적이 있다. 이서정씨의 아버지인 이우삼은
연청권의 명가로, 이서문과 친교가 있고, 어느날 이서문이 방문했다. 우삼은 서정에게 「빨리 "흉권이(凶拳李)" 아저씨를 불러오거라!!」하고 말했다. 서정은 "흉권이"의 이름을 듣자마자 무서워서 온돌 위로 도망쳐 숨어버렸다.
 
사실 이서문의 권각이 흉폭한 것은 유명해서
그가 63세 때 제남의 어느 공원에서 수족을 움직이고 있을 즈음, 체구가 당당한 당랑권의 명수가 이서문은 나이가 환갑을 넘어서있는 듯하지만 움직임이 진실로 없는 것을 보고, 시합을 간청해 왔다.
이서문이 「그럼, 먼저...!!!」라고 말하자 그 남자는 힘을 넣어 당랑조를 정면에서 맹렬하고 기세좋게 쳐들어 왔다. 이서문은 상대의 권에는 신경쓰지 않고, 그대로 앞발을 내밀어 팡! 하고 돌연 적의 가슴을 꿰뚫었다. 상대는 후방으로 쓰러진채 긴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이서문은 왜 이렇게도 차례로 강적을 쓰러뜨리고 불패를 계속했던 것인까. 그것은 결국
그의 팔극권이 명인의 극전에 달하고, 내기를 완전히 몸에 익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팔극권 기격의 장점중 하나가 공격 당하면서 몸을 전진한다.


맹호경파산」이라 칭해지는 형이 있다. 이것은 상대가 권으로 쳐들어 올때도 방어하지 않고, 그대로 접근전을 행하고, 압도적인 역량으로 적을 부수는 것으로 만약 상대가 앞으로 발을 들기라도 한다면 한층 더 불리하게 된다. 이 때문에 약한 상대라고 업신여기기도 하고, 거만한 대전자는 부상당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 「맹호경파산」기술로 그 진짜 기술을 체득하지 않거나 공격의 기초력이 얕거나 하면, 위험에 처한다.

이서문의 연습법은 삼백근 이상(150kg정도)도 넘는 돌 로라를 2m남짓 높이의 화전 위로 들어올릴 정도로
힘이 강했기 때문에 일반 기격가들은 모두 그의 「맹호경파산」을 무서워했다.

※이우삼 : 이우삼, 또다른 이름은 임춘, 비종문(연청권)의 진옥산 제자, 일찍이 장학양 장군에게 무술을 지도했다.


(8) 방랑의 명인과 그 제자들

이서문은 생애 남북을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고, 거둔 제자도 셀 수가 없다.
위로는 저정계의 군인. 허난주, 그밖에 군인 고관인 엄국동, 류호신, 나옥곤들이,
아래로는 끼니도 거르는 서민까지 있었다.
전해지는 말로는 그는 만년, 하룡원사에게도 권술을 가르쳤다고 하지만, 상세한 고증은 어렵다.
 

그러나, 그의 무수한 문하생 가운데 그 기술을 진실로 이어받은 자는, 동향의 곽전각은
정진을 거듭하여 청나라의 광서제의 사범을 했다.

또 맹촌의 류운교(주: 유운초)도 10세부터 이서문의 옆에서
팔극권을 배우고 만년의 이서문이 가난해져서 그의 집에 몸을 의탁했을 때, 다시 십수년간 이서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래서 팔극권의 진수와 내기를 체득했다.


1968년 류운교는 말레이시아에서 행해진 「중국무술표연대회」에 초대 되어 이서문 정전인 팔극권을 피력하고, 타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대만, 향만의 대표들은 그 측량할 수 없는 공부의 깊이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1928년 남경, 중악국술관이 생기고, 교사선발에서 전국으로부터 모집한 무술가들에게 처음으로 전국 국술시험이 행해졌다. 이서문과 같은 문하인 한화신, 조수덕(다르게는 마영도)들이 팔극권과 도수격투를 행해 함께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팔극권은 필수과목이 되었다.

현재, 중국각지 및 해외에서 류포하는 팔극권은 이미 그 본래의 면목을 잃고있는 것도 있지만, 많은 것이 남경중앙국술관에서 그 근원을 내고 있다. 창주의 저명한 대육합권의 명가에서 솔각명수인 충의의 장녀, 가의의 남편인 이원지(창주가 화원 출신)은 남경 중앙 국술관에서 팔극권을 공부한 후 대만으로 건너가 무술 사범이 되었다. 그는 「 拳(거권)」이라고 팔극권의 명칭을 바꿨지만 맹촌 팔극권의 본류와는 현저히 다르다. 그에게 팔극권을 부분적으로 배운 무예가도 몇 명 있다.

팔극권을 배우는 자로서 창주의 맹촌과 이서문의 일을 모르는 자는 없다. 어느해 이서문은
산동의 어느 무술가의 기술교류 초대에 응하고 사랑하는 제자인 류운교를 데리고 나갔다.
그런데 오래 체류하여 야위게 되었기에 돌아갈 때가 되어 류운교에게는 산동에는 보는 바와같이 무술가가 많고 여기에 머물며 연구, 저작을 계속하라고 말했기에 이서문은 어쩔수 없이 혼자서 돌아오게 했다(1934년).

돌아가는 길에, 패한 것을 한으로 가지고 있던 자의 손에 의해 독살당했다. 향년 70세 였다.

세상에 무술가는 많지만, 잘 고찰해 보면 종종 실력이 결여되어 있거나, 결국은 과장과 허위가 섞여있는 경우가 곧잘 있다.
그러나 이서문은 중국무림 속에서 가장 실전력을 갖췄다. 「불패의 왕자」이다.

※이서문을 산동성에 초대한 것은 산동성제독인 장양오장군 및 황현의 무술가 정자성(육합당랑권)이다.



< 이것이 발경의 위력이다!! >


이서문 에피소드 1

천진의 공원에서 이서문의 제자들이 참장(같은자세로 계속 서있는연습)을 하고있자,
옆에서 연습을 하고있던 솔각(던지는 기술의 무술) 단체의 사범이 와서 「너희들, 매일 이러한 연습을 해서, 도대체 정말 도움이 되는가? 」라며 웃었다.

제자들이 다가오는 이서문에게 고하자, 이서문은 바로 그 솔각의 사범이 있는 곳으로 가서,

「너희들, 이렇게 시끌 벅쩍하게 연습을 해서, 도움이 되는건가? 」하고 도발했다.
이서문이 몸집이 작은 것을 보고 화가난 그 사범은, 「뭐라고!!」하며 이서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 순간 이서문은 맹렬한 발경으로 상대의 명치부근에 정심주(팔꿈치로침)를 행했다.
상대는 양눈, 양코, 양귀, 그리고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七孔噴血(칠공분혈)"의 상태로 즉사했다.
이것은 많은 목격자가 전하는 실화이다.


이서문 에피소드 2

팔극권의 명인·이서문에게, 최후의 제자인 류운초씨가 동행하여, 북경에 갔던 때의 일이다.
地元의 유명한 무술가가, 저명한 팔극권가·신창 이의 제자와 이서문이 왔다는 것을 전해듣고, 자택에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그 무술가는 이서문에게 「당신의 팔극권을 한수 가르침 받고 싶습니다.」하고 부탁했다.

이서문은 찌르기에서 주법으로 변화하는 기술을 설명하려 하고, 「먼저 이렇게 친다.」하며, "툭"하고 쳤다.
그러자 그 무술가는 꽈당하고 쓰러져 버렸다.


이서문은 「팔극권의 진수는 여기서부터다, 어째서」라 말하고, 제자인 류운초씨가 당황해서
그 무술가를 살피자 마자, 그는 이미 죽어있었다. 이서문의 공부는 이상하게 높았기에, 컨트롤이 듣지않아 가볍게 치는것만으로 죽어버렸던 것이다. 둘은 당황해서 기차를 타고, 고향인 창주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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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부 유운초 선사님의 말씀 중에서...

1. The training camp is hard, but it is also a good experience. Practicing martial art makes you healthy. Having a good constitution is the basis of your studying and career, and it also makes you and your parents feel good.

트레이닝캠프는 어렵다.  하지만, 좋은 경험일 것이다.  무술수련은 몸을 건강하게 한다.  좋은 법칙을 기본으로 너의 공부와 전공을 쌓아 간다면, 본인 스스로와 부모님께 기분 좋은 일이다.

2. The most important aim of martial art is “rectifying hearts and cultivating persons”, therefore it can increase our determination and perseverance. Of course, we know that the benefit of martial art cannot be seen through short- time practice. We will find the effects after long- time practice.

무술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마음을 다스리고, 좋은 성격을 길러가는 것이다.  결단력과 인내성을 향상시키게 된다.  단시간 동안의 수련으로는 이뤄낼 수 없지만, 오랜 수련 후에 효과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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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When you encounter any question about martial art, you have to think and ask. Discuss and experiment with everybody so we can improve.

무술수련에 대한 의문에 닥치게 되면, 잘 생각해보고 질문하라, 나아가서는 서로 논의 하고, 다른 이들과 실험해 보라, 그렇게 되면 보다 낳아 질것 이다.

4. Practicing martial art can adjust your physical condition, including the condition of your tendons, bones, and muscles. But do not do too much more than what your bodies can handle, otherwise you might hurt you bodies, or even your souls.

무술수련으로 힘줄, 뼈, 근육 등, 신체적인 상태를 다시 교정 할 수 있다.  몸이 견뎌낼 수 있는 만큼 이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안 그러면, 몸뿐만 아니라 영혼도 다칠 수 있다.    

5. Practicing martial art is a good way to “vent”. When you are in a bad mood, you can perform a routine or hit the air to let go of your glum feeling, and you may feel better.

무술수련은 몸을 순환 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기분이 나쁠 때, 형을 연습하면, 나쁜 기분을 몰아내 기분이 전환 될 수  있다.

6. Sometimes we shout when we practice, and there are two starting point of voices: Tan-T’ien (in lower abdomen) and lungs. “Hah” from Tan-T’ien and “Hun” from lungs.

종종 수련할 때 기함을 지르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단전과 폐에서 나오는 소리가 있다.  “하”는 단전에서 “헌”은 폐에서 이다.

7. Here in the mountains you have to give up your connections to the world, suppress your desires, and fully concentrate on practice. Be serious in practice and active in leisure time.  

세상과의 연결고리에서 포기해야할 것이, 욕구를 가라앉히고, 연습에만 충분히 집중해라.  연습 할 때는 진지하게, 쉴 때는 활발하게 해야 한다.

팔극권 유운초 선사님의 휘호


8. Everyday we have to care for three parts of our bodies: head, abdomen, and leg. (1) Cold in head and calm in mind, (2) empty in abdomen and not too full in stomach, (3) warm in legs and activate body.

매일 우리는 우리의 몸 중 3부분을 잘 봐야 한다. : 머리, 배, 다리 (1) 머리는 시원하게 정신은 편안하게 한다. (2) 배는 비우고, 너무 가득 채우지 않게 한다,(3) 다리는 따뜻하게 몸은 활발하게 한다.

9. A human body is a small cosmos. Three meals a day are similar to seasons of the year. Eat will at breakfast, just like buds need plenty of nutrition when sprout in spring. Make yourselves full at lunch, for living things act a lot and need enough food supply in summer. Have less food at dinner, like rice and wheat are ready for harvest and need less in autumn. Or we don’t even eat anything in the evening, like crops being laid up and some animal hibernate.

사람의 몸은 작은 우주이다.  하루 세끼는 일 년 중 계절과 비슷하다.  봄에 새싹이 자라듯 충분한 영양이 있는 아침을 잘 챙겨 먹고, 여름에 충분한 음식을 제공하듯 점심을 잘 챙겨 먹고, 가을에 수확을 많이 해서 조금 남도록, 저녁을 보다 조금 먹도록 해야 한다.  저녁에 밥을 먹지 않으며 마치 죽은 시체가 누워있거나, 동물이 겨울잠을 자는 것과 같다.  

10. Be stable when you perform a style. Be serious in every posture and movement. Comprehend and realize that “eyes move with hands”, “hands revolve with waist”, and “steps change with body”.

무술의 동작을 할 때는 항상 안정된 자세로 임한다.  모든 동작 행동모두 진지하게 한다.  인식하고, 파악해야 한다. 마치 손과 함께 눈이 움직이고, 허리와 함께 손이 회전하며, 몸과 함께 보법이 변화하는 것처럼.

11. Martial art’s practice must fit with physiology and dynamics. Fitting with physiology is to let your organs stable and stay where they are supposed to, and fitting with dynamics is to use your strength according to dynamics.

무술연습은 생리학과 물리학과 맞물려져야 한다.   생리학과 어울려지는 것은 모은 장기능이 안정적으로 있어야 하는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 물리학과 어울려지는 것은 힘을 물리적인요소에 따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 아래는 원문 입니다.
一、 上山集訓雖然辛苦,卻是一項很好的人生體驗。
       練拳能使身體健康,強健的體魄,方是學業、事業的基礎。
       練好身體,不只自己精神愉快,也使父母欣慰。

二、 國術追求目標首在「正心修身」,故能培養定力、耐力;當然,練拳的好處不是一時可看得見,日積月累之後,便知其效果。

三、 練拳產生問題時,必須多想多問,大家彼此砌磋琢磨才有進步。

四、 練拳能調整生理,包括筋骨肉,但絕對不要過度逞強,以免傷身,甚至走火入魔。

五、 練拳乃為「發洩」的好方法。心情不佳時,則可打打拳,發發勁,對空揮拳,散到鬱氣,便能心平氣和。

六、 練拳有時要發發聲,發生部位有二:一是丹田,一是肺部,「哈」聲發自丹田,「哼」聲發自肺部。

七、 到了山上,務必萬念俱消,全神貫注於練拳上,練拳時必須莊重,休閒時必須活潑開朗。

八、 吾人必須每天保養三個地方:頭、腹、腳。(一)頭要冷,及冷靜。(二)腹要空,不要過飽。(三)腳要暖,時時要活動。

九、 人是一個小宇宙。一日三餐有如四季。早餐要吃得好,如春季種籽萌芽,需要充分的養份供給生長。午餐要吃飽,如夏季活動量大,需要充分的食物供給;晚餐要吃得少,如秋季稻麥已熟可收割,需要量減少。或晚上根本不吃食物,如冬季,冬藏,萬物很少有活動。

十、 練拳要穩,一招一式不可馬虎。從練拳中體會出眼隨手走,手隨腰轉,步隨身換。

十一、 五臟為人身最脆弱部份。五臟:心、肝、脾、肺、腎。五臟配合五行,於拳套中就是:心火沖,拳向上;肝木擴,拳向外張;脾土捅,如馬步弓捶;肺金縮,拳內收者;腎水沉,拳下打。應用於拳套時,每一動作皆發一個勁道,才能達到致敵效果。

十二、 練拳必須合乎生理及力學,合乎生理就是內臟平穩定位,合乎力學就是依照發勁力學原理。


원문에는 11(十一)번째 내용이 하나 더 추가되어 있습니다.
해석을 해 보자면...

오장은 사람의 신체에서 가장 약한 부분입니다.
오장 : 심장, 간, 비장, 폐, 신장
무술을 운용할때도 오장은 오행으로 조화를 이룹니다.
심장은 솟구치는 火의 성질로, 권은 위를 향하고
간은 뻗어나는 木의 성질로, 권은 밖으로 향하고
비장은 찌르는 土의 성질로, 마보궁추와 같고
폐는 수축하는 金의 성질로, 권을 거두어들이는 것이고,
신장은 가라앉는 水의 기운으로 권은 아래를 칩니다.
무술에 응용할때, 하나의 경도로 매일 동작을 계발하여
상대방에 효과가 생기는 정도에 이를때까지
실력이 도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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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 팔극권, 대사부 유운초 선사님의 말씀 중에서 Part2

1. Master Liu scolded us for practicing "stupid martial art", which meant that we could not apply theories into routines, not to mention showing the essence.

“바보 같은 무술이군,” 하며 유 사부님이 소리치실 때면, 우리가 동작의 정수를 못 나타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이론을 동작에 적용 못할 때이다.    

2. There are too few southern stylists who really learned the essence of their field. Pak-hok(White Crane), Tai-tzu(Long Fist), and Hu-he Double Style are all good martial arts. But most southern stylists do not apply theories and they live like barnstormers, which leads to their little contribution to our culture.

남권에는 몇 게정도 형이 정수를 담아내고 있다.  백학권과 장권, 호학쌍형권 등이 좋은 무술이다.  그러나 대부분, 남권들은 이론을 잘 표현하지 못했고, 작게나마 겨우 중국문화에 기여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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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sk Master Liu questions you need not be too courteous or shy, otherwise you don’t learn things.

유 사부님께(스승에게) 질문을 할 때에는 너무 예의 바르게도, 부끄럽게 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을 것이다.

4. The difference between Pa-chi and Tai-chi is the horse-step.

팔극권과 태극권의 차이는 마보이다.

5. Perform Pao-chuei at high speed.

포추를 할때는 빨리 해야한다.


6. Chen’s Tai-chi has a saber routine, namely Peach Blossom Saber.

진가 태극권에는 도법이 있는데, 복숭아가 만발한 이름의 도법이다.

7. Rope-whip is called Chang-er Rope (a 12-Chinese-foot rope), with the head of an Iron Chain in the front, a wooden handle, and a piece of rope in between. It is used by stuntmen.

끈으로 만든 채찍은 창얼 끈 이라고 하는데, 머리는 납으로 된 체인으로 되어 있고, 나무로 된 손잡이, 중간에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스턴트맨이나 사용하는 것이다.

8. Tsi-step: In ancient times they hung money on waists, so they walked with heavy steps. The toes digging into ground and raising dust are called "Tsi". The recent name "shing-step" is wrong.

쯔-보법(츰보 혹은 틈보): 과거에는 허리에 돈을 차고 당겨서 무겁게 다녔다. 엄지 발가락을 땅에 집어넣고, 먼지를 일으키는 것을 ‘쯔’ 라고 한다.  현재 불려지는 ‘씽- 보법’ 은 틀린 표현이다.

9. Arrow-step: It shoots out like an arrow.

화살 보법 : 화살을 쏘는 모습과 흡사하다.

10. Love should be broad, not just for children and families of your own.

사랑은 넓은 폭넓어야 한다.  아이들과 가족에만 속해서는 않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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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 팔극권, 대사부 유운초 선사님의 말씀 중에서 Part 1


1. Practicing martial art is like cooking rice: first cook with a very hot oven, then simmer with a mild oven.
무술 연습은 마치 밥을 짓는 것과 같다.  먼저 뜨거운 밥통에 밥을 지은 다음, 약한 불에 끓이는 것이다.

2. Practicing martial art takes all one's concentration. Concentration leads to familiarity, which brings apprehension, whence he would gain endlessly from learning.  
무술 연습은 집중하는 것 달려있다.  집중은 익숙하게 할 뿐 아니라, 이해를 가져오며 쉬지 않고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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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o maintain health we have to lessen our desires; to exercise we need  perseverance; to have food we need regulation.  
건강상태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욕망을 뒤로 하고, 인내를 가지고 연습하고, 규칙적으로 식사 하는 것에 있다.

4. If one is not thoughtful then he's not careful; if not bold then timid. No practice, no confidence, and no confidence, no victory.
만약, 누구든지 생각이 없고, 조심스럽지 않는다면, 대담하지 않고, 소심하다면, 연습도 없고, 자신감이 없으며, 승리도 없을 것이다.

5. Those who like to show off have no real effort. Those who have real efforts have internal disciplines.  
보여주기 위한 사람은 진정한 노력이 없는 사람이고, 진정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내적인 수련이 있다.

6. Any martial art needs its own specialties. It's a big mistake to just mimic without independent spirit.  
어떠한 무술이든지 그것 에 특징이 있다.  독립적인 성향이 없이는 마냥 따라 는 것이 문제다.  

7. There is no other way to learn martial art but concentration.
집중을 제외하면 무술을 배울 은 없다.

8. Teachers are to tell Tao, to instruct knowledge, and to answer questions. He who teaches you one day is like your father for life.
선생은 도를 말하고, 지식을 전하며, 질문에 답한다.  누구든 당신을 이렇게 가르치게 된다면, 당신의 인생에 있어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다.

9. To practice martial art you have to be calm, do not be unsettled or short-tempered.  
무술을 함에 있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동요하지 말며, 화내지 말아야한다.

무단 팔극권의 대사부 유운초 선사님 휘호


10. To practice martial art, be dull and stubborn, do not try to be smart.
무술을 연습함에 있어, 무뎌져야 하며 고집스러워야 하며 머리 쓰지 말 것이다.

11. To practice martial art you have to go step by step without halting until reaching the essence.  
무술을 연습 할 때는 조금씩 진의에 다가갈 수 있을 때 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

12. There is no way we can skip any effort of practice, and we have to always investigate and think. Qi goes where mind goes, and strength goes where Qi goes.  
연습 시 노력을 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린 언제나 탐구하고 생각해야만 한다.  기가 가는 곳의 우리의 생각이 있고, 힘이 가는 곳에 기가 흐르기 때문이다.

13. To practice martial art we need to be settled, then calm, and then nimble. You can cool down not only when you are calm but also when you are in action. That is where we can see your effort.  
무술을 연습할 시, 우리는 자리가 잘 잡혀야 하고, 느긋하게 하고 나서 민첩해야만 한다.  몸과 마음이 고용할 때 만 평온할 것이 아니며, 행동 할 때에도 평온해져야 한다.  너의 노력을 거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곳이다.

14. To settle one's mind is an internal effort; things come then mind react, and things go then mind settle. To settle one's Qi is an external effort; words are cautious then deeds are, too, and words are solemn then Qi is, too. The most important parts of practicing martial art are to adjust Qi, to settle mind, not to be obsessed, and not to talk wrongly.  
마음을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은 내적인 노력이다.  어떠한 일이 와도 마음으로부터 반응한다.  일이 지나가면 정신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기를 자리 잡게 하는 것은 외적인 노력이다.  말이 조심스러우면 행동 또한 그리되고, 말이 엄숙해지면 기 또한 엄수하게 된다.  무술을 배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를 자리 잡게 하는 것인데, 너무 무리해서 자리 잡게 하지 말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15. To practice martial art, calm your mind. If mind is calm then soul is clear, and if soul is clear then Qi is peaceful.  
무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정신을 평온하게 해야 한다.  마음이 평온하면, 영혼도 맑게 되고, 영혼이 정화 되면 기 또한 평온해진다.

출처- 대만 무단, Peter Ying 번역중에서

아래는 원문 입니다.

劉師習武嘉言錄

一、練拳譬如煮飯,先用猛火煮,再用溫火溫。
二、練拳全在專一。專一則精熟,精熟而意味日出,心得無窮矣。
三、養身莫若寡慾,運動貴乎有恒,飲食貴乎有節。
四、心不細則遇事不週,膽不大則臨事必怯,平時不養,到用時沒有把握,沒有把握不能取勝。
五、拳腳愛炫者,便無真功夫,有真功夫者便有涵養。
六、武術須有本門特性,專法他人而自己無獨立之精神者是為大錯。
七、武術學習之道無他,求其專心而已。
八、師者所以傳道、授業、解惑者也,一日為師,終身為父。
九、練拳要沉靜,不可粗心浮氣。
十、練拳性要頑鈍,勿用乖巧。
十一、練拳功夫如抽絲剝筍,層層求進,必至頭方止。
十二、練拳功夫疏不得,應得一刻便做一刻,時時要揣摩省察,此處神到則氣到,氣到則力堅。
十三、練拳須用定,力定則靜,靜則生,不但靜中能靜,且動中能靜方見功夫之力也。
十四、神定內一著也,事來心應,事去心止,氣定外一著也,語謹形正,語端氣峻,
         學拳要緊處,全在正氣安神,忘心守口而已。
十五、練拳必求心靜,心靜則神清,神清則氣合。


원문이 궁금하실 분들이 분명 계실 것 같아서, 넣었습니다.
아무래도, 영어가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이 참 많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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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늑대(天狼)

MIXI (Martial arts, Investment in stocks X Information tech) World...since 2008

서장. 전설의 대결


쇼와 26(1951년)년 10월... 리오 데 자네이루의 마라카난·스타디움...

세기의 유술 시합 단판 승부가 벌어졌습니다.

 한때 세계 최강의 격투가라는 칭호까지 얻었던 전설의 유도가 '마에다 미츠요'의 후계자 리오·그레이시(170cm/63kg) 그리고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후에 기무라 없당대 최강의 유도가 기무라 마사히코(175cm/85kg)의 3 R 각 라운드당 10분의 결투.(기무라의 키에 대해서는 170이라는 자료도 있고 178이라는 자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보편적인 것은 175였다는 자료입니다.

기무라 마사히코

이에 175로 일단 쓰기로 합니다.
 모 스포츠 신문에 나온 UFC의 역사라는 글을 보면 무슨 기무라와 가토가 전부 100킬로가 넘는다고 해뒀던데, 그건 제대로 자료를 뒤져보지 않고 글을 쓰셨기 때문입니다. 기무라는 85킬로, 가토는 80킬로였습니다. 게다가 기무라와 엘리오가 10살이나 차이가 나서 나이에서도 기무라가 유리했다고 해 둔 것 같았는데 기무라 34, 엘리오42 즉 8살차이였습니다.
 그 칼럼 중 마에다 미츠요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잘못된 점이 많이 보였는데 엘리오 편에서도...많이 안타깝더군요. 너무 유술가들의 편을 들어주고자하는 어투가 역력해서...)

 이 시합 전에 가토 5단이 엘리오에게 패배하는 바람에 기무라는 비장한 각오로 시합장에 나타납니다. 물론 웃음을 머금고 있기는 했었지만 그 속은 편치 않았겠죠. 한번도 맞서본 일이 없는 유술이라는것과 맞서야한다는 것 또한 무척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미 기무라 마사히코의 나이 34세. 전성기를 한참 지나버린 그가 브라질까지 오게 된 것은 자신이 총 책임자로 있는 '프로유도'의 홍보를 위해서였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레이시 유술과 싸운건 강도관 유도가 아니라 프로유도였던 것이죠. 물론 이때 이미 프로유도 단체는 소멸했었지만, 스스로의 유파는 프로유도였고, 이를 이용한 프로레슬링을 계획하고 있었죠.

  시합장에 들어서자 기무라는 흠칫 놀라게 됩니다. 바로 거기에는 관이 놓여 있었던 것이죠. 엘리오는 기무라에게 그것은 기무라가 죽으면 들어가게 될 관이라고 하며 자신감을 피력했습니다. 엘리오는 그것을 보고 웃었다고 하죠. 속마음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자기 관이라고 들고 나온 걸 보고 보고 웃는 사람은...^^

  당시 엘리오는 수많은 발레투도 시합에서 패배 없이 승리를 거두던 입장이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고 비교적 자신이 없는 분야였던 타격을 배제한 상태에서 유술만으로 기무라를 상대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기세가 등등했습니다.(카지와라 잇키 씨의 공수 바보일대에서는 엘리오 그레이시를 200킬로가 넘는 괴물 유도가라고 묘사해 두었고, 방학기씨의 바람의 파이터에서는 인디오 레슬러라고 묘사해 뒀지만...익히 아시다 시피 엘리오의 체격은 무도가로써 보통도 안되는 체격이었죠.) 엘리오가 타격이 약하다는 것은 이후 산타나에게 패배하면서 증명이 되기는 하지만 어쨌건 당시 브라질에서 엘리오라고 하면 최강의 격투가이자 유술가였습니다. 엘리오는 격투 전적에 패배라고는 2패 뿐인데 산타나와 기무라에게 당한 것이었습니다.

  엘리오는 서쪽 문을 통해, 그리고 기무라는 동쪽 문을 통해 등장합니다. 브라질에는 일본교민도 많았고 엘리오가 그렇게 일방적인 야유속에 경기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브라질인들의 엘리오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그 경기에 브라질 대통령까지 동참햇다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무라는 시합장에 오르면서 다시 한번 놀라게 되는데 바닥이 보통의 것보다 많이 물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기무라의 필살기인 밧다리 후리기와 한팔 업어치기를 봉쇄하기 위한 엘리오의 전략이기도 했고, 당시 유술 시합에 쓰이던 바닥은 유도에 비해 많이 무른 소재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본측에서는 엘리오의 계략이었다고 하기는 합니다만..저는 두사람 다 좋아하니까 어느 편을 들지는 않겠습니다^^

  1라운드가 시작되자 기무라는 엘리오를 메치려 하지만 엘리오의 번개같은 스피드에 쉽게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시 팔힘은 일본 제일이라는 정평이 나 있었던 기무라 답게 엘리오를 붙잡아 넘어뜨리고 누르는데 성공합니다. 이 때 엘리오는 이미 귀가 찢어져 피가나기 시작했습니다. 기무라는 엘리오를 죽이거나 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괜찮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엘리오는 정신력이 엄청난다고 정평이 나 있었던 만큼 당연히 그 정도로는 굴하지 않았죠. 그러다가 엘리오가 순간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그렇지만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기무라의 조르기와 꺾기를 방어합니다.(솔직히 제 생각에는 실신한 건 아닌 듯 한데, 일본측 자료에는 그렇게 되어 있더군요.) 기무라는 엘리오와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닌 만큼 "무리하지 마라!"라고 두번 정도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엘리오는 일어를 어느정도 알아들었다고 하죠.)

기무라 마사히코

   2라운드가 되자 엘리오의 끈질김에 혀를 내두른 기무라는 하는 수 없이 팔 얽어 비틀기를 써버립니다. 훗날 기무라 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이 기술은 사쿠라바가 그레이시 헌팅을 할 때 응용되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엘리오는 버티지만 이미 팔관절이 완전히 나가버린 상황이었죠. 우두둑 하는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관중들이 들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엘리오는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싸운다고 하였지만 보다못한 카를로스 그레이시가 타월을 던져 버립니다.

  기무라는 이 경기가 끝나고 나서 "과연 마에다 미츠요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이다. 엘리오의 투지야말로 일본 무사의 거울이다. 경기는 내가 이겼으나 승부에 대한 집념에서는 패배했다."라고 한 바 있습니다.

 (이 시합이 와전되어 기무라와 엘리오가 3시간이나 싸웠다느니, 기무라가 엘리오를 백번을 메쳤는데 엘리오가 버텼다느니 하는 헛소문이 돌게 되었습니다. 실제 시합시간은 13분이었고 시합 내용 자체로는 엘리오가 기무라에겐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1. 유도의 귀신-기무라 마사히코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후에 기무라 없다!"

1917년 9월 10일에 태어난 기무라 마사히코는  강을 끼고 있는 구마모토 현의 광산 마을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물속에 발을 담그고 돌멩이와 모래들을 퍼서 나르는 일을 하였다고 하죠. 물속에 하체를 담그고 하루 종일 있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단련이 됩니다. 물의 흐름을 계속 버티면서 허리와 다리가 자연스럽게 강해지죠. 또한 계속에서 돌멩이와 모래가 든 자루와 채를 손에 쥐고 날랐기 때문에 기무라의 악력이라는 것은 유도를 배우기 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 구마모토 출신들이 술을 잘하고 힘이 장사라고 하죠.

기무라 마사히코

 10세때 강도관에 입문한 기무라는 엄청난 트레이닝으로 원래 강했던 팔힘과 악력을 거의 사기 수준으로 끌어올리게 되는데요. 자전거 타이어를 이용한 트레이닝이 보급되지 않던 시절 나무에 흰띠를 묶어놓고 메치기 연습을 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트레이닝법이었는데요, 기무라가 끊어먹은 도복띠는 강도관 시절에만 무려 1000개에 달한다고 합니다.(유도를 해 보신 분들이면 다 아시겠지만 유도의 도복띠는 어지간해가지고는 튿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배밀기(유도식의 팔굽혀펴기)를 한 번에 1000회씩 할 정도의 팔힘과 지구력을 키웠습니다.

 (방학기씨의 만화 바람의 파이터를 보면 기무라가 달려오는 말을 메치는 일화가 나옵니다만, 이것은 아무래도 과장인 듯 합니다. 일본 측의 어떤 자료에도 그런 언급은 전혀 없거든요. 그리고 전성기의 기무라라면 그게 가능할런지도 모르지만 소년시절에 달려오는 말의 앞발을 잡고 메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죠, 중심이동이나 움직임 등이 사람과는 판이하게 다른 네발달린 짐승을 던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비현실적입니다^^)

  중학 4학년(지금의 고1)때 강도관 4단을 취득,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승단 기록을 세우게 되는 기무라는 이후 시합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 17세의 나이로 전일본 대회 최연소 우승 1935에서 1937년까지 전 일본 유도대회 3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이후 13년동안 1950년까지 무패, 10연속 우승이라는 깨지지 않을 대기록을 세우게 되죠(물론 무승부 기록은 있습니다.) 결국 기무라는 당시 히트하던 소설 스가타 산시로의 붐과 함께 재조명되기 시작한 산시로의 실제 모델인 강도관 사상 최강의 사나이 사이고 시로의 뒤를 잇는 '쇼와의 산시로'라는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후에 기무라 없다!'는 말은 이 기무라를 당시 사람들이 사이고 시로와 동급으로 인정해 줬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사이고 전에 야마아라시 없고, 사이고 후에 야마아라시 없다!'라는 말에 빗대어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이고 편을 읽으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사이고 시로는 강도관 122년 역사상 최강이라고 불리는 남자입니다. 그와 견줄만 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기무라야말로 천재중의 천재였다는 것이죠.

 (흔히들 김두한 씨의 일대기에 꼭 등장하는 마루오카와 기무라를 비교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만...마루오카는 체중 자체도 경량급이었고, 지명도에서도 기무라 마사히코하고는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원래의 유도 시합이라는 것은 당시에는 체급이라는 것이 없고 무차별급으로 진행되었지만 어전시합에 한해서 경량급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루오카는 그 부문에서 우승했던 것이죠.(사실 이 어전시합조차도 불분명합니다.) 방학기씨의 만화에는 이 마루오카가 유도8단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나이에 8단이라면 그건 대기록입니다. 당시 강도관에서 40대가 되기전에 8단 취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기무라나 사이고 시로도 하지 못한 일이죠. 한마디로 무척이나 과장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방학기씨가 만화를 그릴때 김두한씨가 생전에 라디오 프로에서 했던 증언을 자료로 참고해서 그렸기 때문에 틀린 부분이 너무 많이 나온 것이죠.-그 라디오 방송의 증언들이 허풍과 과장이 너무 심했다는 것은 김두한씨와 같이 건달 생활을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인정한 내용입니다.-장군의 아들 같은 영화를 보면 마루오카는 장신에다가 거구인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현역시절 170에 70킬로도 되지 않는 경량급이었습니다. 8단이라는 것도 당연히 거짓말이죠. 물론 마루오카가 그리 이름난 선수가 아니다 보니 정확한 단수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기무라나 아베 켄시로 같은 무적의 강자들이 버티고 있는데 혼자 8단까지 올라갈 수는 없었죠. 당시 일본 경시청 유도 지도 총감의 단수가 8단이었습니다.  

 일개 경찰서의 무술 지도 경부가 8단이라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이죠. 물론 이 마루오카 경부의 유도 실력은 비록 경량급이라도 어전 시합에서 우승을 할 정도이니 굉장하기는 했었던 듯 합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나가 떨어진 당시의 건달이나 야쿠자는 꽤 많았다고 하지요. 그러다보니 스스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종로의 건달들이 강하다는 것이 일본까지 정평이 나서 마루오카를 특별히 불러왔다느니, 마루오카가 어전시합 무제한급을 7연패를 했다느니 하는 과장과 헛소문을 퍼뜨린 듯 합니다.-무엇보다 공식적인 어전시합인 무차별급에서 마루오카라는 우승자는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 당시 우승자라고 올라있는 이름은 아베 켄시로와 기무라뿐이죠. 야인시대나 김두한씨의 팬 분들은 이 부분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품으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사실대로 쓴 것 뿐입니다. 저도 어린시절엔 김두한씨의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다 믿었었거든요. 그게 엄청난 과장과 허풍이 섞였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는 거의 10년이 걸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이야기지요.)

 기무라의 최종 단수는 강도관 7단이었는데 이는 기무라가 1950년에 강도관을 탈퇴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규정도 그렇지만 당시 강도관 규정에도 특별 승급이라는 것이 있어서 7단 정도까지는 별도의 승단 심사 없이 어전 시합 우승만으로 승급이 가능하였고, 기무라는 바로 그런 케이스로 올라간 것이었죠. 정상적인 승단 심사를 통한 것이었다면 33세때 7단이라는 건 말이 안될 정도의 단수 입니다.^^;; 물론 당시 7단이건 8단이건 기무라를 이길 사람은 없었겠지만 말이죠. 우리나라 유도도 올림픽 우승하면 자동으로 단수를 올려주는 특별승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올림픽 우승할 정도의 실력자라면 정식 승단을 하더라도 4단이나 5단 정도는 어렵지 않게 딸 듯 합니다만...

 

2. 기무라를 패퇴시킨 사나이!-아베 켄시로


기무라는 16세의 나이에 어전 시합에 최초로 참가하여 승승장구, 4강까지 진출합니다. 당시 기무라의 위력앞에 이름난 유도가들이 하나하나 다 나가떨어졌었는데 그를 지켜보던 가노 지고로 조차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고 하니 당시 기무라의 위력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아베 켄시로. 그는 당대 최강이라고 평가받던 유도가로써 168의 키에 71킬로. 경량급에 나가야 할 체중이었지만 워낙에 강자였기 때문에 무차별급에 출전하게 된 것이었죠.(체격은 마루오카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실력은 천지차이였던 듯 합니다.)

 기무라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밧다리 후리기를 하면서 한팔 업어치기를 할 요량으로 아베 켄시로에게 달려들지만 되려 아시바리(와사바리라고도 부르죠 우리나라에서는^^)를 당해 쓰러지면서 절반을 빼앗깁니다.(당시에는 절반 그리고 한판 두가지 뿐이었습니다. 그냥 밀려 넘어지는 그런건 점수로 인정도 안해 주던 시절이었죠.) 생전 처음으로 아시바리에 넘어져 본 기무라는 자존심이 상해 다시 달려드는 순간 자신의 복숭아 뼈 밑으로 아베의 발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다음 순간 기무라는 세상이 뒤집히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초고수의 아시바리를 당하게 되면 원래 머리부터 떨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안당해 봐서 모르겠습니다만(저는 도장에서 초고수한테 당한게 아니라서 그런가 봅니다^^)

 결국 아시바리 두방에 한판으로 무릎을 꿇게 된 것이죠. 이 대회 우승을 마지막으로 아베는 어전대회에 참가하지 않게 됩니다. 기무라에겐 가장 깨끗히 패해버린 시합이 되고 말았죠. 리벤지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아베 켄시로에게 패퇴했던 경험은 기무라에겐 엄청난 추진력이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한팔 업어치기의 연습에 주력하던 기무라는 이 일을 계기로 한가지 수련을 더 하게 되는데 바로 100개의 촛불을 켜고 발뒤축 후리기를 연습하여 풍압만으로 불을 꺼버리는 연습을 하게 된 것이죠.

 

3. 기무라와 프로유도

 

정식적 명칭은 국제 유도 협회이고 쇼와 25년(1950년)에 우시지마 8단이 만든 것입니다. 이 또한 수많은 문헌에서 기무라가 창시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프로유도라는 것은 고류 유술에 존재하는 수많은 살수와 역관절 메치기 같은 위험천만한 기술들을 다 복원시켜 스포츠 유도가 아닌 격투전용 유도를 지향하는 상당히 실전적인 무도였다고 합니다.

 사실 역관절 메치기같은 경우는 조금만 잘못해도 팔의 관절이 부러져버리는 것이 다반사이며, 낙법도 무척 까다로와서 메쳐지면 실신하거나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의 유도에서는 사라져 버렸지만 삼보에 아직 그 원형이 남아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삼보자료를 뒤져보시면 될 듯 합니다. 브라질리언 유술에도 역관절이 조금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역관절에 관한한 삼보쪽이 보다 더 체계가 있죠.(아무래도 엘리오나 카를로스 본인들이 메치기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물론 역관절 기술들에 관해서는 대동류와 아이키도가 가장 우수하기는 합니다만...

 손가락 관절기는 제대로 된 합기도를 조금만 익혀 보신 분들은 그 원리를 금방 아실 겁니다. 사실 손가락은 굉장히 민감하며 힘도 별로 없어 주먹으로 꽉 움켜 쥐기만 해도 기술의 반은 걸렸다고 할만큼 쉽게 적을 제압할 수 있는 기술이지만 역시 손가락이 부러지거나 불구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유도에서 금한 기술입니다.

 기무라는 강도관의 분위기가 너무 무도보다는 스포츠 쪽으로 기우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스스로는 연습때마다 살벌할 정도의 기술을 남발해, 그의 기술을 받아주는 사람들이 꼭 한 두명은 실신을 했다고 합니다. 하루에 100명과 대련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기무라는 이처럼 기술을 너무 세게 걸었기 때문에 강도관에서도 평가가 썩 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그에게 요시지마8단의 프로 유도는 그의 무도 정신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이었고, 기무라는 요시지마의 수제자로 들어가게 됩니다. 손가락 관절기까지 다 부활시켜버린 프로유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레이시 유술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이 프로 유도는 최영의 선생님의 실전공수처럼 엄청난 비난을 받으면서 전통 유도계의 압박에 의해 겨우 10회의 시합을 갖고 4개월만에 하와이에서 소멸하고 맙니다. 그리고 하와이에서 기무라는 프로레슬링을 하기로 결심, 브라질 순방에 나서고 거기서 엘리오와 맞서게 됩니다.

기무라 마사히코


4. 최영의와 기무라, 두 초인의 만남.

 

기무라 마사히코님의 일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당대 최강의 무도가 최영의님이시죠. 최영의님이 미국 순방에서 돌아와서 전통 무도계의 온갖 시기와 중상 모략때문에 고뇌하던 시절, 기무라 마사히코와 만나게 됩니다. 기무라 또한 프로 유도를 하는 바람에 강도관 유도계 인사들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공격을 당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하죠. 만나자 마자 둘은 십년지기처럼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그러나 한가지 실망스러운 점은 이 둘의 대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인데요, 솔직히 상당히 궁금하기는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최강자라고 인정해주는 사이였으니 말이죠. 기무라선생의 성격또한 최영의님 만큼이나 괴짜스러운 부분이 있어 아무하고나 친해지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두분은 마음이 잘 맞았다고 합니다. 최영의님은 자신이 직접 쓴 글에서 이렇게 언급하신 일이 있습니다. 뭐 바람의 파이터나 공수 바보일대에서는 둘이 대결한 적이있는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으나...뭐 아무도 안보는 곳에서 두분이 겨룬 일이 있는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최영의님도 기무라님도 아무도 그런 언급을 하신 일이 없으니 알 수 없는 일이죠.

"기무라야말로 최강의 유도가이고 진정한 무도인이었다. 그는 나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나보다 더 많이 단련하고 정진하는 내가 아는한도내에서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요즘의(당시, 1960년대) 일본 유도계는 네덜란드의 헤싱크(헤이싱이라고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5단에게 무릎을 꿇고 있다. 그러나...기무라 마사히코가 돌아온다면 헤싱크 따위는 그의 도복도 잡아보지 못할 것이며 3분을 버티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이것은 공수도인 최영의의 이름을 걸고 단언할 수 있다."

 최영의님과 함께 미국 순방을 떠나 사선을 함께 넘으며 우정을 다졌던 엔도 고키치 6단은 최영의님께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나도 유도가이다보니, 기무라 마사히코라는 인간을 한 번 이겨보고 싶어서 5년이나 죽어라 연마했습니다. 기무라의 필살기라는 한팔 업어치기와 밧다리 후리기는 나의 필살기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5년동안 이를 갈면서 연마했지만 막상 기무라씨와 맞잡는 순간에 땅에 쳐박히고 말았지요...몇초도 버티지 못했었죠...."

 이후 최영의님과 기무라는 같이 유도도 수련을 했는데, 최영의님 또한 4년만에 강도관 4단을 취득한 유도의 달인이었기 때문에, 직접 유도 대련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아무리 천하의 최영의님이라고 해도 유도로는 기무라의 적수가 되지 않았죠. 맞잡는 순간에 한팔 업어치기로 깨끗히 날아가 버리셨다고 합니다.

그 때 하신 말씀이 유명합니다. "나를 이렇게 메쳐버린 인간은 기무라 마사히코 뿐이다."

 

5. 기무라와 역도산 그리고 최영의...당대 최강의 남자들이 만나다!...그러나...

엘리오 그레이시를 격침시키고 일본 유도의 강함을 증명한 기무라, 그러나 일본에서 그를 맞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관심조차 기울여 주지 않았죠. 훗날 그레이시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그레이시를 격파한 사나이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이 때만해도 그건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외국가서 허접한 유술가 하나 잠재우고 온 것이라고 여겼고, 더군다나 귀신 기무라가 패한다는건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쇼와29년(1954년)에 역도산님과 함께 드디어 테그팀을 결성하여 본격적인 프로레슬링 시합을 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싸운 상대는 바로 유명한 샤프 형제였죠. 샤프형제와의 시합을 구경하던 최영의님은 역도산과 기무라에 대해 엄청나게 실망을 하시게 됩니다. 최영의님이 미국에서 목숨을 걸어가며 싸웠던 톰 라이스가 하던 것과같은 실전형 레슬링이 아니라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마찬가지인 경기였기 때문이죠. 게다가 기무라는 아예 무시당하는 역이고 오로지 역도산님만을 띄워주는 각본 또한 최영의님을 화나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런 쇼의 들러리나 서 주고 있는 기무라님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역도산 선생은 익히 알려진대로 미국에서 톰 라이스와 진검승부를 하다가-사실은 각본이 있었으나 톰 라이스가 무시하고 시작하자마자 달려들었죠. 역도산님이 이기는 각본이었기 때문에 훗날 역도산vs기무라 전에서의 기무라처럼 일부러 맞아주거나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처음에는 역도산님도 그와 제법 접전을 벌이셨지만 잠시후에 거의 일방적인 폭행을 당하고 중상을 입으신 바가 있습니다. 톰 라이스는 원래 세계 챔피언까지 노리던 복싱계의 강자였죠, 모션이 크고 궤도가 단조로운 가라데 촙은 그의 가드와 풋웤에 완전히 무력했습니다.

최영의 선생이 이후에 톰 라이스와 격돌, 늑골과 턱뼈를 날려 버리면서 톰 라이스의 격투인생은 그걸로 끝나게 됩니다만,  이 또한 역도산님에게는 치욕스러웠던 듯 합니다. 그러나 최영의님은 역도산님이 보기엔 너무나 강했고, 또한 너무 완고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기무라 선생처럼 뒷 공작을 할 약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죠. 때문에 실제로 진검 대결을 벌이지 못할 바엔 또 다른 최강자인 기무라 선생을 눌러 버리는 것이 났다는 판단을 하셨던 듯 합니다. 최선생님이 프로레슬링을 할 리가 없으니 가난한 기무라선생을 끌어들이고, 자신의 각본 속에서 '기무라는 역도산보다 못하다'라는 인식을 일본인들에게 심어주게 된 것이죠.)

 그리고 최영의님은 기무라를 설득, 결국 기무라 마사히코와 역도산의 진검 승부가 결정이 나게 됩니다. 당시 일본 언론에서는 이 시합을 '간류지마의 결투'라 하여 엄청난 관심을 보였는데요, 간류지마의 결투라는 건 바로 사상 최강의 사무라이라는 미야모토 무사시와 또 다른 검의 귀신 사사키 고지로의 싸움을 의미합니다. 즉 최강은 둘이 될 수 없고, 이 둘은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에 비견할만하다는 의미였던 것이죠.

 최영의님이 이후에 기술한 자서전을 보면 당시의 역도산님이나 기무라님 모두 엄청나게 강했지만, 기무라님은 이미 나이가 마흔에 가까워 절정에 달한 젊은 역도산에 비해 불리한 감이 없지 않았다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실력만을 놓고 볼때 기무라님이 약간우위에 있었다고 판단하신 듯 합니다. 시합직전까지도 기무라님의 승리를 확신하셨다 합니다.

 

6. 제 2차 간류지마의 결투...그러나 고지로는 무사시를 이기지 못하는 것인가?


 간류지마의 싸움에서 무사시가 온갖 심리전을 다 이용해서 승리를 따낸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검의 실력만이라면 고지로가 무사시보다 못할 것은 전혀 없었다고 하죠. 이 싸움은 무사시의 '검술'의 승리가 아니라 '병법'의 승리였다고 알려지게 됩니다. 기무라와 역도산의 시합 또한 역도산이 쳐 놓은 그물에 기무라가 걸려든 꼴이었습니다. 당시의 동영상을 보면 가무라가 역도산에게 맞는 순간에 무방비로 있다가 어이없이 쓰러지는 것을 확인 할 수있습니다. 그리고 뭔가 억울해하는 기무라의 모습도 확인이 가능하죠. 

 훗날 말년의 기무라가 토크쇼에 출연해 당시의 사정에 대해 언급한 바 있었고, 그 내용은 최영의님의 자서전과 바람의 파이터, 공수 바보일대 등에 나왔던 내용과 거의 일치하므로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일본 만화중 베스트 셀러로 꼽히는 공수 바보일대에서 기무라가 병든 아내의 약값을 구하기 위해 역도산에게 져 줘야만 했던 서글픈 사연이 나오고, 그 이후 역도산님의 비정상적인 행동들이 그대로 기술되었을 때 역도산님의 수제자였던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 김일-오오키 긴타로, 이 세명의 프로레슬링의 거목들이 아무런 반론도 내 놓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부분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보입니다. 공수 바보일대의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바람의 파이터와 똑 같습니다. 최영의님의 자서전과도 일치하죠^^

 실제로 최영의님이 당시 실신한 기무라님을 보면서 격분한 나머지 역도산님에게 죽여버리겠다고 호통을 치신 일은 꽤 유명합니다. 이후 역도산님이 최영의님을 겁내서 피해다닌 것도 다 사실인 듯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역도산님이 이 무렵에 야쿠자들을 두들겨 패고 다니며 술에 빠져 사실 때, 역도산님의 뒤를 봐주던 양원석-야나가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합니다.-이라는 조선계 야쿠자의 존재입니다. 보통 알려진 내용은 역도산님이 워낙에 싸움에도 강했기 때문에 아무리 행패를 부려도 야쿠자들이 그냥 맞아주고 자리를 피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죠.-야쿠자들이라면 정 안되면 떼거지로 달려들어 칼로 난도질을 해 버릴 수 도 있고, 총을 쏠 수도 있습니다. 단지 싸움에 질 것 같다는 이유로 역도산님을 피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가 않습니다.- 이 야나가와라는 인물은 일본에서는 이제 전설이 되어버린 초과격 무투파 야쿠자의 두목으로써 10명도 안되는 조직원을 이끌고 120명이 넘는 야쿠자 조직을 피를 피로 씻는 싸움으로 단 하루만에 쓸어버리면서 전 일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갔던 무시무시한 남자였습니다. 맨손 뿐 아니라 무기의 사용에 능하고 기습에 능해 한번 붙었다 하면 반드시 바닥을 피로 칠해야 싸움을 끝냈다고 할 정도였으며 당시 야쿠자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라고 불릴 정도의 야쿠자였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역도산의 뒤를 봐 주고 있었던 것이죠. 때문에 야쿠자들이 감히 역도산님을 죽일 생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렁이도 밟히기만 하면 꿈틀하는 법이죠...

  훗날 최영의님의 이 역도산님에 대한 행동에 반감을 품은 김일 선수가 최영의님에게 도전을 하였지만, 김일님은 최영의님에게 도전할만한 자격이 안되었죠. 프로레슬링에서도 최고가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이노키와 바바를 제압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최영의님에 대한 도전은 아무도 수긍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결국은 김일님도 도전한다고 엄포만 놓았을 뿐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고 맙니다. 사실, 김일 선생이 도전하실 때의 정황을 고려해 보면 정말 도전하실 생각이었다면 조일삼형제분이나 로야마님, 사토 카츠아키님같은 당시 극진의 간판을 짊어진 사범님들들을 먼저 쓰러뜨려서 최영의님이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드셨어야했겠죠. 그 정도 단계는 거쳐야 둘의 인지도 차이를 메꿀 수 있었을테니까요. 일본에서는 세계 최강의 초인이자 무신으로까지 칭송받는 분에게 도전하는 일인데 아무리 프로레슬링 테그 챔피언이라고 하더라도 그 격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지요.

 사실 역도산님 측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는 없지만(죽은 자는 말이 없죠) 여러가지 정황을 감안하면 최영의님의 말씀이 옳은 듯 합니다.

 

기무라 마사히코


7.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스스로 꺾어버린 무도가의 자존심...그리고 은퇴...

기무라 마사히코는 결국 이 석연치 않은 사건으로 프로레슬링을 그만두고 개인도장을 운영하며 실전에서는 손을 떼게 됩니다. 기무라가 그렇게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던 자신의 무도가로써의 명예를 팽개쳐 가며 지키려고 했던 아내는 기무라의 정성 덕택인지 병세가 호전되어 기무라의 곁을 지켜주게 되었습니다.(솔직히 저라고 해도 기무라 선생의 입장이었다면 두말않고 역도산님의 각본대로 놀아나 주었을 것 같습니다. 명예도 중요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니까요.)

  사실 기무라 선생은 어린시절부터 가족의 사랑이라는 것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얻게된 아내는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가족이었고 쉼터였습니다. 아내또한 기무라를 지극 정성으로 내조해 줬었고 깊이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아내가 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기무라 선생이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죠. 자신의 명예, 귀신이라는 칭호...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던 것입니다. 역도산님이 3번의 매치를 제의하면서 2번은 짜고하고 마지막은 진검승부라고 했을 때 기무라님은 이미 시합이 한 번으로 끝날 것이라는 각오를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무도 인생의 끝이 될 것이라는 것도 어느정도 예상했다고 하죠. 다만, 역도산님의 무도인으로써의 자존심에 실날같은 희망을 걸고 그에 응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그러나 결과는 기무라 선생의 추측대로 진행이 되고 말았죠. 훗날 기무라 선생은 인터뷰에서 그 때의 일은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유일한 가족인 사랑하는 아내를 잃지 않았기 때문에...

 은퇴후의 기무라 선생의 얼굴에는 뭐지 모를 평안함과 부드러움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프로레슬링시절의 그 찌들고 무기력한 모습은 사라져 버렸죠. 무도는 기무라 선생에게 아무런 영광도 주지 않았습니다. 귀신을 굴복시킬 정도라던 유도솜씨도 남의 책략에 들러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에게 프로레슬링은 각본이 있는 것이라는 것이 알려진 1960년대 중반부터는 이에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인들도 '그러면 그렇지, 진검승부라면 프로레슬링 최강자가 아니라  상대가 전세계의 누구라고 할지라도 천하무적 기무라가 그렇게 질 리가 없다.'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뭐 정작 기무라 선생 본인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는 태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역도산님이 톰 라이스를 일본으로 데려와 일방적인 구타끝에 승리를 하게 되지만 이는 오히려 그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만들었습니다. 톰 라이스는 최영의님에게 패배하면서 최선생의 해머같은 정권에 이미 격투가로써의 인생은  끝나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싸울 수 없는 톰 라이스는 돈 때문에 일본까지 오게 된 것이었고 역도산님은 이를 이용, 일본인들 앞에서 그를 이겨버립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당시의 관중들에게 각본이나 쇼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음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고 맙니다. 톰 라이스는 처음부터 누가보기에도 전의조차 없었던 것이죠. 정말 명예 회복을 하고 싶었다면 자신을 참패시킨 톰 라이스를 그 지경으로 만든 최영의님에게 도전을 했었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8. 그레이시와 함께 되살아난 유도의 귀신 기무라 마사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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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시 패밀리의 발레투도가 세계를 휩쓸게 되자, 이 그레이시를 일찌감치 격파해 버렸던 기무라 마사히코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무라 님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고, 다만 그 당시에 엘리오를 이기는 필름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죠. 그러면서 사람들은 기무라를 역도산에게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패배한 힘없는 유도가가 아닌 진정한 최강의 유도고수로 다시한번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쿠라바 카즈시라는 뛰어난 그래플러가 그레이시 패밀리를 기무라 록으로 격침 시키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기무라에 대한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사쿠라바가 호이스를 쓰러뜨린 다음날 신문에는 '사쿠라바, 일본 격투계 50여년만의 비원성취'라는 기사가 1면 톱으로 실리게 됩니다. 바로 엘리오가 기무라에게 무릎을 꿇은지 50여년이 지났기 때문이죠. 그리고 공개된 필름 속의 기무라는 역도산님과의 시합에서 무기력하게 실신해버린 삶에 찌들어버린 모습이 아니라 그 막강한 그레이시 유술을 일방적으로 부수는 가공할 실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강자의 모습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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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늑대(天狼)

MIXI (Martial arts, Investment in stocks X Information tech) World...since 2008

1. 사이고 시로 탄생

사이고 시로는 원래 아이즈번 출생(1863)으로 말투에 아이즈 사투리가 심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키는 일본인 중에서도 작은 편이라 153센티 정도였다는게 정설입니다.

 근데 사이고는 남들과는 다른 신체적 특성이 있었는데...바로 사이고의 발가락은 무척 길어 물갈퀴 같았다고 합니다.(곰발톱 같았다는 말도 있고, 문어발과 같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하여간 발가락이 굉장히 길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합니다.)

사이고 시로사이고 시로

 사이고는 당시 아이즈 출신이라면 보통 익혔다는 아이즈의 오토메(오토베가 아니라 오토메라고 합니다, 이에 정정합니다. 이것은 고유 명사가 아니라, 각 다이묘-영주 쯤 되겠군요-가 다스리는 지역마다 지역마다 할당된 각 지역의 고유 유술을 통칭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타 지방으로는 갖고가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하는구요. 그래플링공장님께서 교정해 주셨습니다.)유술을 어린 시절부터 익혔습니다. 아이즈의 오토메유술은 여러가지 공격 테크닉을 가진 아이즈 비전의 무술로써 그 이름이 높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비전이라고 할 만한것이 바로 오시키우치라는 기술들인데 이것은 앉은 상태에서 상대를 역관절꺾기로 쓰러뜨리는 기술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막부시대에는 대다수의 영주들이 성을 짓고 살았고, 그 성의 영주가 있는 본당 안에서는 무릎을 꿇고 움직이는 슬행(膝行)의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영주가 위급할 때 앉은 상태에서도 적을 막을 수 있는 테크닉을 연마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 아이즈 오토메유술의 오시키우치는 바로 대동류 합기유술의 원조로써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합기도 계의 전설이신 최용술 도주가 익힌 합기유술도 바로 이것이 뿌리이죠.(참고로 말씀드리자면 현재의 해외의 대동류에서는 이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동류를 제외한 모든 무술 연구가들은 다 인정하고 있구요, 의견은 분분하지만, 저는 일단 다수 의견쪽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시로는 어린시절 아이즈의 비전 오시키우치의 이름난 고수였던 사이고 타노모의 집에서 자랐습니다. 사이고 타노모는 사정상 호시나 치카노리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고 닛코의 토쇼라는 궁전에서 신관 노릇을 하고 있는 아주 고위층의 인물이었죠. 시로의 아버지는 하급군인으로써 타노모의 집의 가신(가신 중에서도 가장 하급의 가신이었다고 함.)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호시나 치카노리는 그렇게 지체가 낮은 시로를 어린시절부터 잘 돌봐 주었고 거기다가 아이즈 비전의 오토메유술을 직접 하나에서 열까지 가르쳤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유일전승이라는 비전중의 비전인 오시키우치까지 가르쳤죠.시로가 강도관 입문후 2년째인 17세 되던해에는 그를 양자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본디 가장 하층민 계급이던 시로가 그런 지체높은 집의 양자로 들어간 것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역시 가장 유력한 것은 타노모의 숨겨둔 아들이었기 때문이라는 설입니다.  이후 호시나 치카노리(타노모)는 시로에게 사이고 시로라는 이름을 쓰도록 하고 사이고 가문을 다시 부흥시키려고 합니다. 메이지 21년에 정식으로 정부의 허락을 얻게 되었죠.

(조금 씁쓸한 것은 미국, 캐나다등지의 대동류 합기유술 사이트 등에서는 이 사이고 시로를 대동류의 마스터라고 선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틀린 말입니다. 사이고는 대동류를 익힌 적이 없습니다. 아이즈의 오토메유술을 익힌 것이죠. 그런데도 "대동류를 워낙 오래 연마했으므로 유도 선수들 따위는 상대도 안되었다!"라는 억지 논리를 내 세운 영문 사이트를 보니 할 말이 없더군요. 한 이탈리아 사이트-스페인어랑 비슷해서 그럭저럭 읽을만 하더군요, 땀좀 흘렸습니다만 ^^-에서는 "대동류의 도움을 부인할 수는 없다. 16세에 지도원의 자격을 딴 것은 놀라운 것이 아닌가?" 이렇게 설명해 뒀는데 아무래도 서양쪽에서는 당시의 복잡한유술계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2. 사이고 시로, 운명의 스승 가노와의 만남!

사이고 시로

원래부터 일찌감치 무도를 접했던 사이고 시로는 1882년에 상경해서 이노우에 쿄타로의 천신진양류 유술도장에 들어가게 됩니다. 가노 지고로 편에서 설명했듯이 가노 지고로가 18세때부터 익혔던 무술이 바로 천신진양류였고, 이노우에 쿄타로는 바로 가노의 동문 선배였죠. 인사차 들렀던 가노의 눈에 바로 이 천재 사이고 시로가 눈에 띄고 만 것이죠.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바로 교수로 임명된 수재이자 천신진양류 최강의 유술가였던 가노 지고로는 사이고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보고 이노우에에게 부탁해 그를 강도관으로 데려가게 됩니다. 다다미 12개와 9명의 제자만으로 시작된 강도관...하나의 인재가 아쉬운 가노였습니다. 게다가 유도라는 신무술을 23세의 어린 나이로 창안해서 전 유술계를 적으로 돌려버린 것도 너무나 부담스러웠겠지요.

 그런 상황에서 사이고 같은 어마어마한 인재를 찾은 가노의 기분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겠죠^^(가노에게 사이고를 보내준 이노우에 쿄타로는 그 이후에도 요코야마 사쿠지로라는 걸출한 강자를 가노에게 보냅니다. 이 이노우에라는 인물은 천신진양류의 강자들을 강도관에 많이 입관시켰는데, 이것은 극도로 폐쇄적인 양심류가 판을 치는 유술계에 변화를 원하는 진보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상황을 조합해 볼 때, 강도관이 이름을 날리게 된 배경에는 이 이노우에라는 남자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다음해인 사이고가 16세 되던 때에 초단을 취득 최단시간에 초단을 따내는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가노는 자서전에서 사이고에 대해 "메치기의 극한에 달한 남자였다, 나는 그보다 강한 인간을 지금껏 본 일이 없다."라고 술회한 바 있습니다.(가노 지고로가 익힌 무술은 밧다리 후리기와 깃 조르기를 주무기로하는 천신진양류와 메치기를 주무기로 하는 기도류 유술 이 두가지가 근간이었다 합니다. 거기다가 유술의 체계화를 위해 타 유술의 기술들 중에서도 쓸모 있는 것은 다 받아 들였습니다.)


3. 강도관 4천왕! 도츠카 양심류와의 숙명의 사투

가노 지고로가노 지고로


가노의 자서전을 보면, 당시 최대의 세력을 자랑하던 유술유파는 도츠가 양심류였고, 누구든 유술로 이름을 날리려면 그걸해야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고 합니다.
가노는 고류 유술을 배격하면서 유도를 만들려는 생각은 한 일이 없지만 양심류 쪽에서 보면 가노는 정말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습니다. 강도관을 만들기 전에 이미 가노선생이 천신진양류와 기도류 유술의 마스터로써 양심류의 고수를 몇번 격파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죠. 20세에 불과한 가노 지고로에게 양심류의 고수들이 나가떨어져 버리는 광경은 당시로써는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더욱 충격적인 것은 당시 가노선생은 18세때부터 무도를 익힌 '초짜'였던 것이죠.(모든 방면에 능한 천재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같은 천신 진양류와 기도류에 양심류를 이기는 다른 사람은 없었던 관계로 양심류는 계속 최강의 이름을 유지합니다.(또한 가노 선생의 상대로 최고수를 내 보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보통 도장끼리 시합은 10명 정도를 내 보내는데, 가노선생은 무패였지만 양심류는 압도적으로 이기는 시합에 굳이 가노선생의 상대로 에이스를 쓰지는 않았던 것이죠.) 그러나 강도관이 생기고 가노가 본격적으로 제자를 양성하기 시작하자 전세는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거기에는 강도관 사천왕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사이고 시로가 입문하기 전에 먼저 입문해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 눈에 띄는 강자들이 있었는데 바로 야마시타 요시카즈(요시츠쿠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가노 지고로강도관시절의 가노 지고로

이후 미국에 건너가 루즈벨트에게 유도를 가르치고, 미군장교들에게도 전수한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강도관 4천왕중 유일하게 10단을 추증받은 인물로 가노 지고로의 유도를 가장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해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와 야마다(이후 토미다 가의 양자가 되면서 토미다 츠네지로로 개명) 츠네지로 이 두명이었습니다. 야마시타는 이미 사범대리라는 직함을 갖고 있었고, 야마다 또한 강도관의 분관을 맡고 있던 사범이었습니다.(이 둘은 가장 스탠다드하고 교과서적인 유도를 구사하는 사람들이어서 이후에 실전 전적보다는 지도자로써 이름을 남기게 된 사람들입니다.) 이 둘은 강도관 초기에 계속해서 도장깨기를 하러 찾아오는 고류 유술가들과 하루가 멀다하고 결투를해야했습니다. 가노가 직접 나설 수는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타류 유술의 고수들에 비해 월등하다고는 볼 수 없는 실력이었기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이고 시로의 등장으로 형세는 완전히 뒤집히게 되죠. 어느 누구도 사이고의 소매조차 잡아보지 못하고 메치기를 당해 날아가는 바람에 스승 가노가 타류 유술을 격파하며 얻었던 최강의 이름을 사이고가 그대로 이어가게 됩니다. 여기다가 이노우에 쿄타로의 천신진양류 도장에서 필살의 던지기인 덴구(天牛->여기에 대해서는 천우가 아니라 天狗라고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만...어느쪽이든 무관할 듯 합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후자인 듯 싶군요^^;; 실제로 요코야마가 기술명을 어디다 적은 일이 없으니 발음 때문에 후대에서 헷갈리게 된 듯 합니다.)던지기로 최강자의 명성을 날리던 요코야마 사쿠지로가 가세하면서 강도관 4천왕이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단 한차례의 패배도 없이 승승장구, 유도의 이름을 조금씩 높이기 시작하게 되죠.

 그리고 사이고 시로는 메이지 19년 강도관 5단을 취득, 명실상부한 최고수로 인정받게 됩니다. 사실 입관 4년만에 5단을 땄다는 것은 사이고가 그 전에 배웠던 아이즈 오토메유술의 오시키우치와 무관하지는 않을 듯 합니다. 당시의 강도관은 승단을 하려면 같은 급수의 상대를 7명을 연속으로 상대해 이겨야하는 가혹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1단이 되려면 갈색띠 7명을 연속으로 제압해야하는 것이죠. 물론 무조건 이겨야하며 무승부는 안되었다고 합니다.(후지와라씨의 만화 '콘데 코마' 에서는 한명만 이기면 승단되는 것처럼 해 놓았는데 이것은 고증을 제대로 못한 탓입니다. 작가 두분이 모두 그레이시 유술의 연구에만 치중한 나머지 유도에 대해선 너무 몰랐다고 볼 수 있구요.)

 거기다 한 참 서양인들이 일본에 들어오기 시작해 나라의 분위기가 흉흉한 때였는데 마침 사이고 시로가 행패를 부리던 이스트레이크라는 영국인을 한팔 업어치기로 바닥에 처박아 졸도시키는 일이 터지는 바람에 강도관의 명성은 엄청나게 높아지게 됩니다.(가노 지고로의 자서전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메이지 19년이었다고 하죠.)

 계속되는 강도관의 승리에 결국, 위기를 느낀 도츠카 양심류의 총사인 도츠카 히데키는 고류 유술의 필두가 되어 일본 무도의 패권을 놓고 강도관과 최후의 승부를 내려고 하게 되는데...


4. 필살! 야마아라시

결국 도츠카 히데키는 최종 승부를 내기로 결전장을 보내고 가노는 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비밀병기로 요코야마 사쿠지로를 데려 온 것이었죠. 1886년(1890년이후라는 설도 있음) 무코우가오카의 야요이 신사에서 경시청 주최로 양대세력의 대결이 대회형식으로 치뤄지게 됩니다. (캐나다와 미국 쪽의 사이트에서 이 결투에 대해 정말 리얼한 해설을 해 뒀던데, 읽다보니 무슨 실황 중계를 보는 느낌이^^) 원래는 두게임만 약속되어 있었는데 야마다와 야마시타가 간단히 승리를 해 버리고 맙니다. 야마다와 야마시타는 사천왕중에서는 약하다는 평을 받던 사람들인데 이렇게 간단히 이겨버리자 경시청 유술대회를 구경온 사람들에게 강도관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마음속에 세겨지게 됩니다.( 여담이지만 당시 일본의 결투 관습이 보통 2명으로 싸우자고 하면 그것은 4~5명의 대결을 의미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그냥 형식적으로는 간단한 친선대회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죠. 그러나 한 두명이 패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4~5명까지 붙이는 걸로 늘어나고 마지막에 에이스들끼리 끝장을 봐야하는 스타일이 유행이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도츠카 히데키는 자신의 비장의 카드를 내세우는데 그것이 바로 경시청의 유술총감을 맡고 있었던 유술 최강자중 하나인 나카무라 한스케(양심류의 분파인 양이심두류의 마스터였다고 합니다.)였습니다. 키가 180, 몸무게가 90킬로가 되는 당시 일본으로써는 거한중의 거한이라 할만한 사람이었죠. 그러나 가노는 히데키가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는 걸 미리 간파하고 있었기에 아껴두었던 비밀병기 요코야마를 내 보냅니다. 요코야마 또한 나카무라와 마찬가지로 거한이었기에 둘의 대결은 그야말로 볼만한 것이었다 하죠. 요코야마는 가장 파워풀한 유도를 구사하는 스타일이었는데, 특히 그의 필살기였던 덴구던지기(어깨로 들어메치기와 유사한 기술)는 한번 걸리면 무조건 상대가 실신하게 될 정도의 파괴력이 있는 것이었죠. 그러나 상대는 당대 최고수중의 한명이었고, 덴구던지기의 특성상 준비동작이 크기 때문에 쉽게 간파되어, 그 기술은 먹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반면에 나카무라 또한 계속 기술을 걸려고 했지만 요코야마는 그야말로 바윗덩어리 같은 중심을 가지 사나이라 꿈쩍도 안했다고 합니다.  서로 당신기(급소 가격기)까지 날려가면서 기술을 넣어보려 하지만 둘의 실력이 거의 대등한 관계로 지루한 공방전이 계속될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무도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경시청 무술총감이라는 엄청난 지명도를 가진 나카무라를 상대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공격을 퍼붓는 요코야마의 모습에 당시의 일본 무술계 인사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됩니다. 게다가 요코야마는 이제 20대 초반의 무도가였습니다. 요코야마의 나이만큼의 세월을 유술 수련에 정진했던 30세의 백전노장 나카무라가 그정도까지 고전을 한 것은 정말 큰 충격이었겠죠. 둘의 싸움은 무려 1시간이나 끌었다고 하는데요, 이를 심판이 중지시켜 무승부가 되고 맙니다. 나카무라와 요코야마는 둘다 내려오자마자 탈진해 쓰러져 버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결국 마지막 한 사람을 남긴 양심류는 최강중의 최강이라는 '테루지마 신타로'(쿄타로라는 자료도 있고 그냥 타로라는 자료도 있음,테루지마라는 성도 불확실하지만 몇가지 문헌에서 언급을 하고 있음)를 내 세우게 되는데 이를 맞상대한 것이 바로 강도관 최강의 남자 사이고 시로였습니다. 거구에 장신이었던 테루지마는 사이고를 메치려고 여러번 시도했지만 계속되는 사이고의 중심잡기 때문에 메쳐지지가 않았다 하죠.(사이고는 평소 낙법을 연마하기 위해 지붕에서 뛰어내렸다고 합니다. 보통의 낙법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죠, 그래서 사이고의 별명이 고양이었다고 합니다. 던지려는 순간에 몸을 회전시켜 두발로 서 버렸다고 합니다.) 계속 메치기가 실패해서 당황한 테루지마가 주춤한 순간에, 사이고는 갑자기 좌자연체로 기본서기를 바꿉니다.(유도를 하시는 분들은 좌 자연체, 우 자연체 같은 용어는 익히 아시겠습니다만, 자연체라는 건 별것 아닙니다. 그냥 서 있는 것을 말하는데, 다음 기술을 걸때의 방향과 디딤발을 자연체를 통해 결정하게 되는것이 보통입니다.) 본래 우 자연체로 계속 시합을 했던 탓에 그쪽 방어만을 생각하던 테루지마는 순간적으로 움직임이 굳어버리게 되는데, 그 순간 갑자기 공중에 떠서 날아가 버립니다. 당시에 구경온 모든 무술가 및 구경꾼들은 이 듣도 보도 못한  기상천외한 메치기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것이 사이고 시로의 필살기 중의 필살기 야마아라시였던 것이죠. 이 야마아라시에 테루지마는 그대로 실신해 버리게 되고...더군다나 사이고의 야마아라시는 상대방을 마지막 순간까지 확실히 감아서 측방낙법을 쓰지 못하도록 고안된 철저한 공격용 메치기 였기 때문에, 그는 몇일동안 의식을 찾지 못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참고: 야마아라시?

그 의미는 산폭풍이라는 뜻인데, 사진의 저 자세에서 상대의 다리를 발바닥으로 차면서 발가락으로 그 찬다리가 빠지지 않도록 꽉 쥔뒤 계속해서 뒤로 차올리면서 앞으로 메쳐 버리는 기술입니다. 메치기 방어의 기본인 좌우 이동을 봉쇄해 버리기 때문에 걸렸다 하면 나가 떨어졌다 합니다. 이후 아무도 쓴 일이 없고 그냥 저런 식으로 본만 남아있는 환상의 메치기라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발가락이 평범한 사람이 쓸 기술이 아닌거죠^^ 타이밍 잡기도 무척 어렵고...그 천재 사이고 시로조차도 몇년이나 피를 토해가며 연마한 기술이라고 합니다. 끊어먹은 도복띠만해도 엄청났다고 합니다.(후지와라 씨의 만화, '콘데 코마'에 보면 발가락으로 상대의 다리 정면을 붙잡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잘못된 그림입니다. 야마 아라시는 비스듬하게 옆으로 차서 발가락으로 장단지 아랫쪽을 옆으로 잡아 올린 뒤 메치는 기술입니다. 후지와라씨의 베스트 셀러 '권아'에서의 팔극권 고증까지 의심하게되는 부분입니다. 또 마에다 미츠요가 야마아라시를 쓰는게 나오는데, 마에다는 야마아라시를 구사하지 못했습니다. 사이고의 뒤를 이을 천재라고 불리던 마에다 미츠요지만 야마아라시는 타고난 신체조건도 상당히 작용하는 기술이기 때문이죠.)


5. 사이고 시로 전에 야마아라시 없고 사이고 시로 후에 야마아라시 없다!

1886년의 결투로 완전히 밀려버린 도츠카 양심류는 1887년에 절치부심! 자신들의 대회를 통해 뽑은 최강의 강자 우케치 엔타로를 필두로 강도관과 열명씩의 선발을 내세워 다시한번 겨루게 되는데 이 승부에서 강도관 4천왕은 모두 승리를 거두고, 양심류는 3명의 무승부 외엔 전패를 하는 참담한 패배를 겪게 되면서 완전히 몰락합니다. 특히 양심류의 마지막 희망이던 우케치 엔타로는 사이고 시로에게 1분여만에 야마아라시의 제물이 되어 실신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강도관은 이로써 명실 상부한 최강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일본 최대의 무도조직으로 급부상합니다. 사이고 시로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사이고 전에 야마아라시 없고 사이고 후에 야마아라시 없다."라는 말이 나돌았다고 합니다.(기무라 마사히코의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뒤에 기무라 없다."는 여기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리고 그 무렵 동경대 교수로 재직중이던 가노 지고로는 학장과의 마찰로 유학을 강제로 가게 되는데 관장대리로 사이고를 임명합니다. 명실상부한 가노의 후계자로 인정받은 셈이죠. 그러나...


6. 강제추방...방랑...그리고 죽음

사이고는 1890년에 강도관에서 강제 추방을 당하게 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선 불명확하고 가노도 자신의 자서전에서 그 부분만은 언급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아마 강도관 규정을 어기고 타류시합을 했기 때문인 듯 한데,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이고 또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고, 추방 후에는 정치가로 이름을 날리던 스즈키 텐진에게 의탁하고 그곳에서 유술을 가르치게 됩니다.(이것이 후대에 사이고파 대동류 유술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게 됩니다. 대동류와는 별개의 것이죠. 얼마전 법정분쟁에 휘말렸다하는데 정확한 것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쪽 사이트에서 그렇게 설명을 해 뒀더군요.) 차마 유도의 간판을 걸 수가 없었던 것이죠. 나가사키에 머물던 사이고는 중국으로 도항하게 되는데(도항안했다는 설도 유력합니다.-사실은 이게 더 다수설임) 이 때 가노 지고로에게 반성 및 용서를 구하는 의미로 '지나 도항 의견서'라는 것을 보냈고 이것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저는 도항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이유는 그의 말년의 사진을 보면 중국인들의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또한 스즈키 텐진에 의탁한 것도 1890년이 아니라 몇년후의 일이죠. 중간에 전혀 없는 기록들은 그가 중국에 있었다고 보는게 앞 뒤가 맞는 듯 합니다. 더군다나 보통은 일본의 전통신발인 게타를 싣던 당시의 관습을 감안하면 갔다왔다는 쪽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하여간 강도관에 돌아오지 못하고 계속 떠돌던 사이고는 1922년 56세의 나이로 오노이치라는 곳에서 병으로 숨을 거둡니다. 이 소식을 접한 가노는 자신이 추방한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피를 토하듯 애통해했다고 하며 그 이듬해 사이고에게 6단을 추증했다고 합니다. 스승 가노 지고로는 1938년에 여행도중 히카와마루라는 배위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폐렴이었다고 하죠. 가노 지고로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이고의 일을 애통해했다고 합니다.(바로 그 3년 뒤에 그의 또 다른 수제자였던 마에다 미츠요가 브라질에서 죽게 되죠. 가노의 수제자들은 하나같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7. 사이고 시로, 소설/영화로 부활-스가타 산시로!

강도관 사천왕중 한명이었고 마에다 미츠요와 미국으로 떠난 일이 있었던 토미다 츠네지로는 그의 아들에게 사이고 시로의 강함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해 줬다고 합니다. 강도관 최강의 남자였고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을 유도의 천재의 이야기를 말이죠. 그 토미다 츠네지로의 아들 토미다 츠네오는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합니다. 무적의 야마아라시를 날리는 그야말로 폭풍같았던 최강의 유도가의 전설을 다시 부활시킨 것이죠 그것이 바로 소설-스가타 산시로였습니다. 이 소설은 그야말로 공전의 힛트를 기록했고 전후에는 신화적인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영화화 하게 됩니다.(세계 최고의 거장에 속하는 구로자와 감독의 데뷔작이 바로 이 스가타 산시로였다는 것이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내용을 잠시 들여다보면 수도관이라는 유도장의 야노 타다시 고로(가노 지고로가 모델인듯^^)라는 관장이 그들의 제자들과 함께 싸워나가는 것이 주된 골격이며, 스가타 산시로는 바로 그 수도관의 에이스로 등장합니다. 이 소설속의 스가타 산시로는 사이고와 완전히 같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요, 역시 압권이라 할만한 것은 스가타 산시로가 야마아라시를 구사하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여담이지만 이 소설과 영화에서 가라데를 구사하는 악당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의 가라데에 대한 일본인들의 나쁜 인식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죠. 상대를 보호해주는 방법도 갖춘 유도와는 달리 상대를 때려서 직접 부숴버리는 가라데는 그들의 입장에선 야만적인 무도라고 평가한 것입니다. 최영의님의 공수도 교본에 보면 "스가타 산시로로 인해 가라데의 인식이 결정적으로 나빠졌다, 그렇지만 공수가가 유도가에게 그렇게 진 적은 없다!"라고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오키나와 가라데를 처음 일본으로 초청한 것이 가노 지고로였고, 일본에 가라데라는 무술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오키나와 강유류 사범들의 강도관 연무이후라고 합니다.(가노선생 본인은 가라데를 좋아했던 것이죠^^)

공전의 힛트를 기록한 스가타 산시로는 그 속편까지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1981년 후지 티비에서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하게 됩니다.

이 소설과 영화가 등장한 이후, 일본에서는 최강의 유도고수에게 '스가타 산시로'라는 별명을 붙이는 것이 거의 관례가 되어 버렸습니다. 만화 '군계' 19권을 보면 유도 천재에게 '헤이세이의 산시로'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것이 나옵니다. 이 말은 헤이세이(지금의 일본의 연호) 시대의 스가타 산시로라는 뜻으로, 그가 최강의 유도고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브라질에서 온 유술 소년의 이름도 산시로라고 되어 있죠 그 때문에 그 만화 중간에 "누가 산시로인지 가려보자!"라는 장면이 나오는 겁니다. 누가 스가타 산시로의 칭호를 가질 자격이 있는지 알아보자는 의미라고 풀이할 수 있죠.바꿔말하면 헤이세이의 사이고 시로를 가리자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사이고 시로가 유도사에서는 거대한 존재로 남아있는 것이죠. 아무리 기무라 마사히코같은 사람들이 대단했다고 해도, "누가 이시대의 기무라인지 가려보자!"...이런 말은 안하니까요. 아마 이런 배경 스토리를 모르셨다면 그 부분에 대해 굉장히 의아하셨을거라고 생각합니다.(군계의 번역을 담당하신 분이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서 전혀 모르셨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생소한 내용을 그대로 번역하기 보다는 간단한 주석등으로 설명을 해 주셨더라면 훨씬 좋았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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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수련 원칙

1.마음자세
 
왜 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 동안 태극권 수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온 몸을 방송시키지 못하며, 온 몸을 통하여 에너지를 느끼지 못 하는 것일까?

그들의 동작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통합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이렇게 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올바른 태극권 원칙을 적용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어떤 사람들은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너무 진지하게 수련하거나, 또는 너무 진지하지 않게 수련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무 진지하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평온해 질 수 없으며, 방송될 수 없다.

이 점을 생각해야 한다.
당신이 너무 진지하다면, 근육과 피부는 긴장되고 굳게 된다.
민감도는 떨어지며, 몸이 딱딱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수고
를 감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지각력(awareness)을 강화시켜 줄 만한 여력이 별
로 남아있지 않게 된다.

반면, 학생이 진지한 주의 없이 수련에 임한다면,

그의 시선은 방황을 하게 되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며,
안절부절 못하게 될 것인 바, 이렇게 된다면, 그들은 태극권의 특
성을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태극권은 에어로빅 체조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태극권의 공력을 길러 나가고, 태극권의 통합, 협조, 조화를 성취
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적 평온을
이루기 위해서 특정한 지점에 정신을 집중한다.
이러한 방법은 신체의 다른 부분을 희생해서,
특정 부위로 기와 혈을 불균형하게 흐르도록 유도한다.
기는 의식의 방향을 따른다는 사실을 상기함이 중요하다.
좋은 자세는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며, 기를 원활하게 해준다.

=======================================================
                                                    올바른 태극권 수련 원칙 中
                                (Fundamentals of Correct T'ai Chi Practice)
                                               By Ting Kuo-Piao (William 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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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극권의 비전

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말씀드리지만,

팔극권의 비전은 노력입니다.

"어찌되었든 노력이다... 노력하지 않고 강해질수 있다면 내가 가
장배 우고 싶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라고 말씀하시는 최영의 선생님 말씀 처럼
저 또한 노력하지 않고 강해지는 그런 방법이 있으면
찾고 싶지만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다 싶이 그런 방법은 세상에 없습니다.

소욱창 노사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기공이든, 그 무엇이든, 쉽게, 편안하게 고수가 되는 그 모든 방법은
가짜입니다.

무술을 즐기고 수집하는 것과 무술을 수련 하는 것은 절대 다른 "것"
입니다.

서울 무단팔극권 정식도관 (http://cafe.naver.com/wutangbaji)서울 무단팔극권 정식도관 (http://cafe.naver.com/wutangbaji)

일찍히 저희 팔극권이 유명하게된 이유는
기존의 많은 투로를 버리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초적인
기술을 재구성, 재배치하여 내면에 변화가 생길때까지 끊임없이
반복 숙달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유도 선수가 업어치기라는 기술을 익힙니다만,
그런 선수들 중에서 시합에서 한판 업어치기를 할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업어치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할수 있도록 연습되어진 사람만이
실전에서 업어치기를 사용할수 있는 것이지요.

즉,
저희 팔극권의 비전은 내가 배운 기술을 실전에서도 사용할수
있는 기술로 만들기 위해 끊임 없이 무한 반복하는 것이며,

강함이란, 반복을 통해 완벽히 내것으로 만들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졌을때 가질수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힘든 육체와의 싸움,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과의 싸움,
나태한 자신과 싸움,
시간과의 싸움,
돈과의 싸움 등등,
엄청난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 최영의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강함이란,
이런 수련을 통해서 강해진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강해질수 있다는 말씀이겠지요..


저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들 강해집시다..
오늘 하루도 쟁취하는 하루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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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조 마지막 황제의 보디가드 '곽전각'

곽전각
은 17세부터 20년 동안 이서문에게 팔극권과 창술을 배웠습니다.(주: 이서문 노사의 개문제자)

이서문 휘하에서 무술을 배우던 곽전각은 훗날 이서문이 무술 교관으로 추천하여 그의 조카인 곽경운과 함께 1921년 천진으로 갑니다. 청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보의(주: 부의)는 군주제로의 복귀를 꾀했는데 1911년 중국의 공산혁명과 1912년 중화민국의 설립으로 계획이 무산됩니다.

보의는 일신상의 위협을 느껴 무술의 고수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는데 당시 그의 참모였던 허란주 장군의 천거로 조카 곽경운과 함께 1927년 보의의 전통어위로 임명이 됩니다.
(주: 한가지 재미난 사실은 마지막황제였던 부의 역시 팔극권을 수련하였습니다. 곽전각 노사는 부의의 보디가드임과 동시에 그의 사부가 되는 것이죠.)

보의는 그들이 보디가드의 자질이 있는가 시험해 보기 위해 초빙한 일본인 무술가 두 명과 시합을 하게 했는데 그들은 보통의 덩치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곽전각은 가볍게 상대방의 손가락을 꺾어 승리해 버립니다.
자신이 직접 상대할 필요가 없음을 느꼈는지 아니면 조카 곽경운의 무력도 보여주고 싶었는지 다음 상대를 곽경운에게 맡겼는데 곽경운 역시 배나 되는 덩치의 일본인 무술가를 어깨에 들쳐 내던져 버렸습니다.

이렇게 무사히 시험에 합격한 곽전각과 곽경운은 스승인 이서문의 만류를 뿌리치고 1932년 보의가 일본에 의해서 설립된 괴뢰정부 만주국의 국주에 오르자 장춘으로 옮겨갑니다.

뒤이어 1934년 이서문의 또 다른 제자인 주형무가 장춘으로 오면서 곽전각, 주형무 두 사람이 새로운 시스템의 팔극권을 보급하게 됩니다. 이를 '동북팔극', '장춘팔극', '춘팔극'이라고 사람들이 칭합니다.

그러나 그의 문하생들과 일본인들과의 충돌이 잦아지고 양국간의 군대에 충돌이 일어나면서 급기야 황궁의 호위군은 해산을 맞이하게 되었고 곽전각, 곽경운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이 진행됩니다.

곽전각은 1942년에 그리고 곽경운은 1987년에 각각 사망하였으며 현재 장춘에는 곽전각의 제자인 담길당(주: 동북/장춘팔극권)이 그리고 천진에는 곽경운의 아들인 곽문학(주: 곽가/곽씨팔극권)이 그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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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참 주식에 빠져있을때...
(지금은 주식의 폐쇄성 때문에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하기로 하고 거리를 두고 있는 중이랍니다. ^^)

2008년 상반기에 이트레이드 증권과 팍스넷에서 공동 주최로 열린

"주식부자프로젝트 시즌2"  실전리그 대회

"은빛고수"란 필명으로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은빛늑대..로 할까 생각도 했었는데 웬지 주식쟁이의 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결과는 다행히  일간리그 1위 수익률 94.69%
1백만원 계좌운영권을 획득해서
수상자 리그에도 참가하는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미리 말씀 드리지만 전 주식 고수가 될려면 아직은 멀은 사람입니다.

주식부자프로젝트 시즌2 참가결과

주식부자프로젝트 시즌2 일간리그 순위표

당시엔 열심히 했었고...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

재미난 경험이었지만 앞으로 이 대회는 참가하지 않을 생각이구요.
수수료가 좀 비싸더군요. ㅎㅎ

드리고 싶은 말은...
주식 투자를 하다보면 가끔씩은 운이 따라주어서 잘 되어서 누구나 큰 수익을 낼때가 있습니다.
초보라도 마찬가지로 그런 경우가 옵니다.

그러나 주식으로 큰 손해를 본 사람은 수익을 못내서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바로 손실이 났을때 미련을 버리지 못해 크게 당하기 때문이지요.(손절매)

몇번의 큰 수익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수익은 크게 손실은 짧게 가져가서 꾸준한 우상향의 수익을 낼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주식매매를 할때 한 두번의 큰 수익이 났다고 흥분해서 마치 스스로 고수인듯한 착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자만하되고 무리한 배팅과 미수 신용 등을 써서 한방을 노리다 정말 한방에 가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잘 될때일 수록 더욱 조심해야 하는 것주식매매 입니다.

잊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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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든지 항상 고수하수는 있는 법 입니다.
그리고 그 분야를 접하지 못한 일반인이 있습니다.

주식시장도 예외 일 수 없습니다.

주식을 해보지 않은 일반인들은 말합니다.
"주식을 하면 큰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데...그걸 왜 하냐고..."
이것은 주위에 주식을 해서 손해본 사람이 많기 때문에
막연히 안좋은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하수(초보)주식시장의 무서움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수업료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만의 매매법을 찾기전까지는
뇌동매매와 무리한 배팅을 종종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바꿀 수 있는 실력과 마인드를 기르는 것은
중수 더 나아가서는 고수로 가기위해 거쳐야하는 필수과정 입니다.

중수는 시장의 무서움을 잘 알고 연구하는 사람들 입니다.
시장의 무서움을 잘 알기에 뇌동매매나 무리한 배팅을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에
크게 먹을 수 있는 구간에서도 조금만 먹고 나올 경우는 있어도
이때부터는 거의 손해를 보지는 않습니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기꾼의 말을 믿지않으며, 내 자신이 고수가 되기위해 끊임없는 방법을 연구하며 실험을 합니다.
그리하여 나만의 방법을 발견했을때 고수로 가는 문을 마련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식투자의 고수들은 말합니다.
"주식만큼 쉬운것은 없다고...시장은 마치 금고와 같다고..."
그리고
"주식으로 돈을 잃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들의 말에는 생략된 문구가 있습니다.

"냉철한 판단력과 시장에 순응하는 자세 그리고 철저한 스스로의 매매원칙을 지킨다면..."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인과 하수는 이 의미를 이해하기도 공감 하기도 힘듭니다.
오히려 거짓말이나 장난이라도 흘려듣는 사람들이 많고
그저 부러워할 따름입니다.

주식이든 아님 다른 어떤 분야가 됐든지

사람은 자기가 아는만큼만 보이는 법 입니다.

또한 노력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는 자는 반드시 실패를 하게되어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나만은 예외겠지" "나는 달라"라고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에 의존하고, 직감을 믿고, 무모한 투자로 결국 큰 손해를 보고 맙니다.

분명한것은 끈임없는 노력과 공부와 냉철한 마인드콘트롤을 할 수 없다면
90%의 평범한 일반인으로 남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시중에 나와있는 주식관련도서의 대부분을 읽어보았다면...
당신은 이제 초보딱지를 땔 준비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비로소 주식시장에 입문할 자격을 갖춘 것입니다.
 
이는 방법의 차이일 뿐이지 어떤 분야든지 전문가가 되기위해서는 모두 해당되는 사항일 것입니다.

 
끈임없는 노력과 실패를 받아들이고 변화할 줄 아는 사람은

언젠가는 주식시장에서

10%의 중수가 될 것 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1%의 고수가 될 것 입니다.


아래의 말에 고수가 되는 열쇠가 있다고 믿습니다.

"주식은
타이밍의 미학이며 시장에 순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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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늑대(天狼)

MIXI (Martial arts, Investment in stocks X Information tech) World...since 2008

1. 손절매의 종류

- 이익 여부에 따라
보통 손절매하면 많은 투자자들이 손실을 볼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그분은 지금 계좌에서 돈을 90%이상 빼서 은행에 넣고 처음부터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면서 연습게임하듯이 소액으로 투자하는 것이 좋습니다. 손절매는 이익이 난 상태에서도 합니다.

1) 손익분기스탑 (Breakeven stop)

매수후 이익이 난 상태에서 반대의 움직임이 보일 때, 손익분기점을 시장을 빠져 나오는 포인트로 책정하고 그가격까지 내려오면 미련없이 던지는 것입니다.

 시장에는 "이익이 난 거래를 손실로 바꾸지 마라"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괜히 이전의 이익을 생각하고 들고 있다가 손실나면, 그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이고 탐욕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실 전에서는 내가 생각한 것과 움직임이 틀리면 본전매도를 하고 다시 냉정히 분석하고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하며, 괜시리 가지고 있다가 상당한 이익이 났다가 그것이 줄어드는데 이익 실현하지 못하고 버팅기다 손실로 변해 심리적인 갈등과 낭패감을 갖으면 다음 매매도 꼬이게 됩니다.

명심합시다. 이익이 쪼금이라도 나면, 흐름이 이상하고 내 평균단가를 위협하면, 최대한 참아 줄 수 있는 한도가 본전매도, 소위 Breakeven point (손익 분기점)을 설정하고 기계적으로 일단 던지고, 다시 기회를 노리는 것이 시장에서 살아 남는 법이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법이라는 것을!

2) 추적 스탑 (trailing stop)

주식을 매입후 이익이 나면, 발생하는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쓰이는 것으로 프로텍티브 스탑입니다만, 우리나라는 사전 주문이 안되므로, 늘 이익이 나면 자신의 매매기법에 따라 지지선을 지속 올려 그 지지선을 하회하면 팔아 그간의 이익을 보전하는 것입니다.

 만일 고점과 저점을 이용한 매매를 한다면, 계속 고점과 저점을 높여 상승한다면, 바로 이전의 저점을 스탑로스의 가격대로 하여, 계속 손절 가격을 올려 나가면 되고, 만일 이동평균선이나 밴드지표를 사용해도 마찬가지로 하면 됩니다. 단지 주의해야 할 것은 휩소를 피하기 위해 저는 종가를 많이 사용합니다.

3) 시간 스탑 (Time stop)

매 입했는데 손실은 나지 않더라도 오르지 않을 경우, 다른 주식은 팍팍 날라가는데 내종목은 그냥 횡보만 할 경우하는 것으로 그냥 가지고 있으면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심리적으로 빈곤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가치는 가격가치와 시간가치 두개가 있으므로 기회 비용 상실의 의미가 있으므로 전 매입후 하루 이틀안에 움직이지 않으면 비록 손실이 나지 않은 상태라로 손절을 합니다만 이는 스윙의 개념에서 이고, 포지션트레이딩의 경우 보통 3 ~ 6일의 기간이 추천되고 있지만, 단기냐 중기냐 장기투자냐에 따라서는 약간 기간 조정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움직이는 주식만 상대해야지, 장기간 횡보했다고 세력 매집주니 뭐니 하며 샀다가 장기간 그냥 세월을 보내는 것이 참 많은 투자자들의 행보이고 그 후 안올라 초조함과 박탈감으로 애를 태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 기간 횡보후 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주식이 못오르고 횡보할 때는 그많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더 크게 하락하기 위한 전조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 장기 횡보후 상승은 엄청난 폭등이 있지만 10중 한두개일뿐 나머지는 폭팍입니다.

 
근데 문제는 폭락을 이야기 하지 않고 한두개의 폭등을 사람들이 주목하다 보니, 장기 횡보 = 폭등주라는 등식이 시장의 Stereo type으로 정착했지만, 시장의 금언은 오를때 못오르면 폭락이라는 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4) 생각 스탑 (Thinking Stop?)

이건 이론에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간 시장에 참여하면서 깨지고 망가지고 그리고 그 이유를 매매일지를 통해 분석하다가 생각해내고 실천하는 것중 하나입니다. 간단합니다.

 매 매는 이유가 있어야 하고, 늘 매수할 때는 어떤 흐름으로 갈 것이다라고 예측하고 매수를 합니다. 문제는 손해를 보면 당연히 기준에 따라 손절에 들어갈 것이고, 이익이 났을때가 문제인데 예상한 흐름이 아닌 예측하지 못한 흐름으로 진행되어 나올때 입니다. 이때는 과감히 매도해버립니다. 이익이 나는데 왜 매도하냐고 물으면 초자입니다.

주식은 예측의 영역이 아니고 대응의 영역인데, 예측하지 못한 흐름이 나오면 이후 원할히 대응할 수 없고 여차의 경우 물릴 수 있습니다. 트레이더라면 자신이 예측한 흐름으로 가면 이익이 나더라도 그냥 보너스라 생각하고 미련없이 던질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생각의 스톱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만, 다르게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시장에서 오래 살아 남은 분들과 이야기해보면 그들도 표현이 다른분 결국 같은 의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살아남은데에는 다 이유가 있고 자신의 투자 기법을 정립하라는데는 다 이유가 있듯이 이 방법을 쓰지 않는다면 자신의 투자 기법을 정립 못한 것이라 봅니다.

5) 가격의 스탑 (price stop)

가 장 일반적인 것으로 매수후 몇 % 손실이면 자동 손절한다고 하는 것입니다만, 이를 지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문제는 이를 지킬 줄 알면 그나마 주식에 입문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손절매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아무리 짤게 짤라도 3%씩 열번이면 30% 손실입니다. 여기에 세금과 수수료까지 치면, 그야 말로 깡통차기 쉽상인 것이 주식 시장.

가끔 모 사이버 애널이 자신은 3%손실이면 기계적으로 짜른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길레 웃어 버린적이 있습니다. 하긴 그나마 안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보 통 하수와 고수의 차이는 손절의 %가 크냐 작냐라고 하는데 이는 단순 정해둔 수치가 아닙니다. 고수는 최대한 지지 근처에서 분할매수하기때문이고 하수는 아무데서나 매수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주식을 살때, 지지권부근에서 분할매수로 지지가격대가 무너지면 던지는 것을 습관으로 해야 하며, 추격매수는 왠간해서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회는 늘 있습니다. 지지 근처에서 산다는 내가 들어갈 자리와 나올 자리가 명확히 정해 진다는 논리적 근거에 의거하며, 분할매수 한다는 것은 물량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날아가면, 그냥 보내고 다음 정거장에서 (소위 저항 돌파후 형성한 지지권 혹은 눌림목의 지지권) 그 물량을 다시 같은 방법으로 확보한다는 것으로 탐욕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늘 시장은 열리므로 오늘 못사면 다음 기회가 있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투자자는 지지는 멀고 저항은 가까운 곳에서 추격매수하고, 기계적으로 손절했다고 좋아합니다. 깡통은 시간의 문제인 유형입니다. 게다가 몰빵매수를 합니다.

 손절을 위해서는 분할매수를 해야 하고, 손절못해 물린 경우 절대 물타기해서는 안되며, 물타기를 하려면 상승하여 다음 정거장에서 물량을 늘리는 불타기를 해야 합니다.

분할 매수는 그냥 호가마다 매수 주문 넣었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 이론적으로는 세번으로 나누어 지지권대 가까이에서 1-3-6 으로 매수하는 방법과 3-6-9로 물량을 나누어 매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전 3-6-9로 주로 하는데, 보통 지지권대가 9% 가격범위가 있다면 3% 떨어질 때마다 두배로 늘려서 지지권 마지노선까지 가면 손실은 3%내로 한정되며, 갑자기 급락이 나오면 뒤의 물량은 안사기 때문에 손실액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역으로 지지의 마지노선에서 사 올라가는 방법으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매도도 같은 방법을 써도 되지만 전 개인적으로 매도는 몰빵매도와 일정 수익 발생시 50%매도해 놓고 지켜 봅니다. 각자 맞는 스타일을 찾아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6) 이익목표 스탑

매 입시 목표가격을 설정하고, 이 가격에 도착하면 매도하고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대부분 투자자들이 꼭지에서 팔려고 바둥거리다 확보한 이익 다 놓치고 손실로 귀결합니다. 처음 매수시 설정한 목표에 다달으면 아무리 더 올라간다하더라도 이익을 실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요, 먹을때 확실히 먹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작은 이익을 목표로 하면 승율이야 좋겠지만, 큰추세의 이익은 향유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어 저는 절반매도를 권장합니다.

 50%매도하여 일단 이익을 취하고 나 머지는 갈때까지 한번 가보는 방법으로 예상외로 크게 가면 크게 먹고, 여차하면 트레일링스탑을 적용하여 빠져 나와 그나마의 수익을 챙기거나 최소한 본전 매도의 방법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방법을 쓰면 만일 5% 수익시 절반 매도하고, 좀 오르다 하한가로 치달으면 매도하여 최소한 똔똔을 할 수 있지만, 가만히 있으면 그냥 앉아서 손실을 키우게 되므로 일정 목표 도달시 정정물량 정리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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