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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시래" 돼지불백 족발 보쌈 맛집

 

"약방불백" 그리고 "토시래" 가게 이름이 특이하게 두개 입니다.

 

이름처럼 맛있는 대표 메뉴가 돼지불백 과 족발 인데요.

 

서울 약수역과 청구역 사이에 있고 주차공간이 있어 주차가 가능하답니다. 

 

[신당_약수 맛집]

 

 

 가성비 좋은 돼지불백으로 식사를 하시거나, 쫄깃하고 두툼한 족발 또는 보쌈이 먹고 싶을때 방문해 보심 좋을것 같네요.

 

[신당_약수 맛집]

 

 

첨 놀러온 지인들과 꼭 가서 먹어보는 곳인데 지금까진 다 맛있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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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신당동 340-80 | 토시래 약수역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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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늑대(天狼)

MIXI (Martial arts, Investment in stocks X Information tech) World...since 2008

서장. 전설의 대결


쇼와 26(1951년)년 10월... 리오 데 자네이루의 마라카난·스타디움...

세기의 유술 시합 단판 승부가 벌어졌습니다.

 한때 세계 최강의 격투가라는 칭호까지 얻었던 전설의 유도가 '마에다 미츠요'의 후계자 리오·그레이시(170cm/63kg) 그리고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후에 기무라 없는 당대 최강의 유도가기무라 마사히코(175cm/85kg)의 3 R 각 라운드당 10분의 결투.(기무라의 키에 대해서는 170이라는 자료도 있고 178이라는 자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보편적인 것은 175였다는 자료입니다.

기무라 마사히코

이에 175로 일단 쓰기로 합니다.
 모 스포츠 신문에 나온 UFC의 역사라는 글을 보면 무슨 기무라와 가토가 전부 100킬로가 넘는다고 해뒀던데, 그건 제대로 자료를 뒤져보지 않고 글을 쓰셨기 때문입니다. 기무라는 85킬로, 가토는 80킬로였습니다. 게다가 기무라와 엘리오가 10살이나 차이가 나서 나이에서도 기무라가 유리했다고 해 둔 것 같았는데 기무라 34, 엘리오42 즉 8살차이였습니다.
 그 칼럼 중 마에다 미츠요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잘못된 점이 많이 보였는데 엘리오 편에서도...많이 안타깝더군요. 너무 유술가들의 편을 들어주고자하는 어투가 역력해서...)

 이 시합 전에 가토 5단이 엘리오에게 패배하는 바람에 기무라는 비장한 각오로 시합장에 나타납니다. 물론 웃음을 머금고 있기는 했었지만 그 속은 편치 않았겠죠. 한번도 맞서본 일이 없는 유술이라는것과 맞서야한다는 것 또한 무척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미 기무라 마사히코의 나이 34세. 전성기를 한참 지나버린 그가 브라질까지 오게 된 것은 자신이 총 책임자로 있는 '프로유도'의 홍보를 위해서였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레이시 유술과 싸운건 강도관 유도가 아니라 프로유도였던 것이죠. 물론 이때 이미 프로유도 단체는 소멸했었지만, 스스로의 유파는 프로유도였고, 이를 이용한 프로레슬링을 계획하고 있었죠.

  시합장에 들어서자 기무라는 흠칫 놀라게 됩니다. 바로 거기에는 관이 놓여 있었던 것이죠. 엘리오는 기무라에게 그것은 기무라가 죽으면 들어가게 될 관이라고 하며 자신감을 피력했습니다. 엘리오는 그것을 보고 웃었다고 하죠. 속마음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자기 관이라고 들고 나온 걸 보고 보고 웃는 사람은...^^

  당시 엘리오는 수많은 발레투도 시합에서 패배 없이 승리를 거두던 입장이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고 비교적 자신이 없는 분야였던 타격을 배제한 상태에서 유술만으로 기무라를 상대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기세가 등등했습니다.(카지와라 잇키 씨의 공수 바보일대에서는 엘리오 그레이시를 200킬로가 넘는 괴물 유도가라고 묘사해 두었고, 방학기씨의 바람의 파이터에서는 인디오 레슬러라고 묘사해 뒀지만...익히 아시다 시피 엘리오의 체격은 무도가로써 보통도 안되는 체격이었죠.) 엘리오가 타격이 약하다는 것은 이후 산타나에게 패배하면서 증명이 되기는 하지만 어쨌건 당시 브라질에서 엘리오라고 하면 최강의 격투가이자 유술가였습니다. 엘리오는 격투 전적에 패배라고는 2패 뿐인데 산타나와 기무라에게 당한 것이었습니다.

  엘리오는 서쪽 문을 통해, 그리고 기무라는 동쪽 문을 통해 등장합니다. 브라질에는 일본교민도 많았고 엘리오가 그렇게 일방적인 야유속에 경기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브라질인들의 엘리오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그 경기에 브라질 대통령까지 동참햇다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무라는 시합장에 오르면서 다시 한번 놀라게 되는데 바닥이 보통의 것보다 많이 물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기무라의 필살기인 밧다리 후리기와 한팔 업어치기를 봉쇄하기 위한 엘리오의 전략이기도 했고, 당시 유술 시합에 쓰이던 바닥은 유도에 비해 많이 무른 소재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본측에서는 엘리오의 계략이었다고 하기는 합니다만..저는 두사람 다 좋아하니까 어느 편을 들지는 않겠습니다^^

  1라운드가 시작되자 기무라는 엘리오를 메치려 하지만 엘리오의 번개같은 스피드에 쉽게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시 팔힘은 일본 제일이라는 정평이 나 있었던 기무라 답게 엘리오를 붙잡아 넘어뜨리고 누르는데 성공합니다. 이 때 엘리오는 이미 귀가 찢어져 피가나기 시작했습니다. 기무라는 엘리오를 죽이거나 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괜찮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엘리오는 정신력이 엄청난다고 정평이 나 있었던 만큼 당연히 그 정도로는 굴하지 않았죠. 그러다가 엘리오가 순간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그렇지만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기무라의 조르기와 꺾기를 방어합니다.(솔직히 제 생각에는 실신한 건 아닌 듯 한데, 일본측 자료에는 그렇게 되어 있더군요.) 기무라는 엘리오와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닌 만큼 "무리하지 마라!"라고 두번 정도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엘리오는 일어를 어느정도 알아들었다고 하죠.)

기무라 마사히코

   2라운드가 되자 엘리오의 끈질김에 혀를 내두른 기무라는 하는 수 없이 팔 얽어 비틀기를 써버립니다. 훗날 기무라 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이 기술은 사쿠라바가 그레이시 헌팅을 할 때 응용되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엘리오는 버티지만 이미 팔관절이 완전히 나가버린 상황이었죠. 우두둑 하는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관중들이 들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엘리오는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싸운다고 하였지만 보다못한 카를로스 그레이시가 타월을 던져 버립니다.

  기무라는 이 경기가 끝나고 나서 "과연 마에다 미츠요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이다. 엘리오의 투지야말로 일본 무사의 거울이다. 경기는 내가 이겼으나 승부에 대한 집념에서는 패배했다."라고 한 바 있습니다.

 (이 시합이 와전되어 기무라와 엘리오가 3시간이나 싸웠다느니, 기무라가 엘리오를 백번을 메쳤는데 엘리오가 버텼다느니 하는 헛소문이 돌게 되었습니다. 실제 시합시간은 13분이었고 시합 내용 자체로는 엘리오가 기무라에겐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1. 유도의 귀신-기무라 마사히코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후에 기무라 없다!"


1917년 9월 10일에 태어난 기무라 마사히코는  강을 끼고 있는 구마모토 현의 광산 마을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물속에 발을 담그고 돌멩이와 모래들을 퍼서 나르는 일을 하였다고 하죠. 물속에 하체를 담그고 하루 종일 있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단련이 됩니다. 물의 흐름을 계속 버티면서 허리와 다리가 자연스럽게 강해지죠. 또한 계속에서 돌멩이와 모래가 든 자루와 채를 손에 쥐고 날랐기 때문에 기무라의 악력이라는 것은 유도를 배우기 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 구마모토 출신들이 술을 잘하고 힘이 장사라고 하죠.

기무라 마사히코

 10세때 강도관에 입문한 기무라는 엄청난 트레이닝으로 원래 강했던 팔힘과 악력을 거의 사기 수준으로 끌어올리게 되는데요. 자전거 타이어를 이용한 트레이닝이 보급되지 않던 시절 나무에 흰띠를 묶어놓고 메치기 연습을 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트레이닝법이었는데요, 기무라가 끊어먹은 도복띠는 강도관 시절에만 무려 1000개에 달한다고 합니다.(유도를 해 보신 분들이면 다 아시겠지만 유도의 도복띠는 어지간해가지고는 튿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배밀기(유도식의 팔굽혀펴기)를 한 번에 1000회씩 할 정도의 팔힘과 지구력을 키웠습니다.

 (방학기씨의 만화 바람의 파이터를 보면 기무라가 달려오는 말을 메치는 일화가 나옵니다만, 이것은 아무래도 과장인 듯 합니다. 일본 측의 어떤 자료에도 그런 언급은 전혀 없거든요. 그리고 전성기의 기무라라면 그게 가능할런지도 모르지만 소년시절에 달려오는 말의 앞발을 잡고 메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죠, 중심이동이나 움직임 등이 사람과는 판이하게 다른 네발달린 짐승을 던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비현실적입니다^^)

  중학 4학년(지금의 고1)때 강도관 4단을 취득,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승단 기록을 세우게 되는 기무라는 이후 시합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 17세의 나이로 전일본 대회 최연소 우승 1935에서 1937년까지 전 일본 유도대회 3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이후 13년동안 1950년까지 무패, 10연속 우승이라는 깨지지 않을 대기록을 세우게 되죠(물론 무승부 기록은 있습니다.) 결국 기무라는 당시 히트하던 소설 스가타 산시로의 붐과 함께 재조명되기 시작한 산시로의 실제 모델인 강도관 사상 최강의 사나이 사이고 시로의 뒤를 잇는 '쇼와의 산시로'라는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후에 기무라 없다!'는 말은 이 기무라를 당시 사람들이 사이고 시로와 동급으로 인정해 줬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사이고 전에 야마아라시 없고, 사이고 후에 야마아라시 없다!'라는 말에 빗대어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이고 편을 읽으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사이고 시로는 강도관 122년 역사상 최강이라고 불리는 남자입니다. 그와 견줄만 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기무라야말로 천재중의 천재였다는 것이죠.

 (흔히들 김두한 씨의 일대기에 꼭 등장하는 마루오카와 기무라를 비교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만...마루오카는 체중 자체도 경량급이었고, 지명도에서도 기무라 마사히코하고는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원래의 유도 시합이라는 것은 당시에는 체급이라는 것이 없고 무차별급으로 진행되었지만 어전시합에 한해서 경량급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루오카는 그 부문에서 우승했던 것이죠.(사실 이 어전시합조차도 불분명합니다.) 방학기씨의 만화에는 이 마루오카가 유도8단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나이에 8단이라면 그건 대기록입니다. 당시 강도관에서 40대가 되기전에 8단 취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기무라나 사이고 시로도 하지 못한 일이죠. 한마디로 무척이나 과장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방학기씨가 만화를 그릴때 김두한씨가 생전에 라디오 프로에서 했던 증언을 자료로 참고해서 그렸기 때문에 틀린 부분이 너무 많이 나온 것이죠.-그 라디오 방송의 증언들이 허풍과 과장이 너무 심했다는 것은 김두한씨와 같이 건달 생활을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인정한 내용입니다.-장군의 아들 같은 영화를 보면 마루오카는 장신에다가 거구인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현역시절 170에 70킬로도 되지 않는 경량급이었습니다. 8단이라는 것도 당연히 거짓말이죠. 물론 마루오카가 그리 이름난 선수가 아니다 보니 정확한 단수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기무라나 아베 켄시로 같은 무적의 강자들이 버티고 있는데 혼자 8단까지 올라갈 수는 없었죠. 당시 일본 경시청 유도 지도 총감의 단수가 8단이었습니다.  

 일개 경찰서의 무술 지도 경부가 8단이라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이죠. 물론 이 마루오카 경부의 유도 실력은 비록 경량급이라도 어전 시합에서 우승을 할 정도이니 굉장하기는 했었던 듯 합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나가 떨어진 당시의 건달이나 야쿠자는 꽤 많았다고 하지요. 그러다보니 스스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종로의 건달들이 강하다는 것이 일본까지 정평이 나서 마루오카를 특별히 불러왔다느니, 마루오카가 어전시합 무제한급을 7연패를 했다느니 하는 과장과 헛소문을 퍼뜨린 듯 합니다.-무엇보다 공식적인 어전시합인 무차별급에서 마루오카라는 우승자는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 당시 우승자라고 올라있는 이름은 아베 켄시로와 기무라뿐이죠. 야인시대나 김두한씨의 팬 분들은 이 부분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품으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사실대로 쓴 것 뿐입니다. 저도 어린시절엔 김두한씨의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다 믿었었거든요. 그게 엄청난 과장과 허풍이 섞였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는 거의 10년이 걸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이야기지요.)

 기무라의 최종 단수는 강도관 7단이었는데 이는 기무라가 1950년에 강도관을 탈퇴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규정도 그렇지만 당시 강도관 규정에도 특별 승급이라는 것이 있어서 7단 정도까지는 별도의 승단 심사 없이 어전 시합 우승만으로 승급이 가능하였고, 기무라는 바로 그런 케이스로 올라간 것이었죠. 정상적인 승단 심사를 통한 것이었다면 33세때 7단이라는 건 말이 안될 정도의 단수 입니다.^^;; 물론 당시 7단이건 8단이건 기무라를 이길 사람은 없었겠지만 말이죠. 우리나라 유도도 올림픽 우승하면 자동으로 단수를 올려주는 특별승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올림픽 우승할 정도의 실력자라면 정식 승단을 하더라도 4단이나 5단 정도는 어렵지 않게 딸 듯 합니다만...

 

2. 기무라를 패퇴시킨 사나이!-아베 켄시로


기무라는 16세의 나이에 어전 시합에 최초로 참가하여 승승장구, 4강까지 진출합니다. 당시 기무라의 위력앞에 이름난 유도가들이 하나하나 다 나가떨어졌었는데 그를 지켜보던 가노 지고로 조차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고 하니 당시 기무라의 위력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아베 켄시로. 그는 당대 최강이라고 평가받던 유도가로써 168의 키에 71킬로. 경량급에 나가야 할 체중이었지만 워낙에 강자였기 때문에 무차별급에 출전하게 된 것이었죠.(체격은 마루오카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실력은 천지차이였던 듯 합니다.)

 기무라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밧다리 후리기를 하면서 한팔 업어치기를 할 요량으로 아베 켄시로에게 달려들지만 되려 아시바리(와사바리라고도 부르죠 우리나라에서는^^)를 당해 쓰러지면서 절반을 빼앗깁니다.(당시에는 절반 그리고 한판 두가지 뿐이었습니다. 그냥 밀려 넘어지는 그런건 점수로 인정도 안해 주던 시절이었죠.) 생전 처음으로 아시바리에 넘어져 본 기무라는 자존심이 상해 다시 달려드는 순간 자신의 복숭아 뼈 밑으로 아베의 발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다음 순간 기무라는 세상이 뒤집히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초고수의 아시바리를 당하게 되면 원래 머리부터 떨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안당해 봐서 모르겠습니다만(저는 도장에서 초고수한테 당한게 아니라서 그런가 봅니다^^)

 결국 아시바리 두방에 한판으로 무릎을 꿇게 된 것이죠. 이 대회 우승을 마지막으로 아베는 어전대회에 참가하지 않게 됩니다. 기무라에겐 가장 깨끗히 패해버린 시합이 되고 말았죠. 리벤지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아베 켄시로에게 패퇴했던 경험은 기무라에겐 엄청난 추진력이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한팔 업어치기의 연습에 주력하던 기무라는 이 일을 계기로 한가지 수련을 더 하게 되는데 바로 100개의 촛불을 켜고 발뒤축 후리기를 연습하여 풍압만으로 불을 꺼버리는 연습을 하게 된 것이죠.

 

3. 기무라와 프로유도

 

정식적 명칭은 국제 유도 협회이고 쇼와 25년(1950년)에 우시지마 8단이 만든 것입니다. 이 또한 수많은 문헌에서 기무라가 창시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프로유도라는 것은 고류 유술에 존재하는 수많은 살수와 역관절 메치기 같은 위험천만한 기술들을 다 복원시켜 스포츠 유도가 아닌 격투전용 유도를 지향하는 상당히 실전적인 무도였다고 합니다.

 사실 역관절 메치기같은 경우는 조금만 잘못해도 팔의 관절이 부러져버리는 것이 다반사이며, 낙법도 무척 까다로와서 메쳐지면 실신하거나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의 유도에서는 사라져 버렸지만 삼보에 아직 그 원형이 남아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삼보자료를 뒤져보시면 될 듯 합니다. 브라질리언 유술에도 역관절이 조금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역관절에 관한한 삼보쪽이 보다 더 체계가 있죠.(아무래도 엘리오나 카를로스 본인들이 메치기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물론 역관절 기술들에 관해서는 대동류와 아이키도가 가장 우수하기는 합니다만...

 손가락 관절기는 제대로 된 합기도를 조금만 익혀 보신 분들은 그 원리를 금방 아실 겁니다. 사실 손가락은 굉장히 민감하며 힘도 별로 없어 주먹으로 꽉 움켜 쥐기만 해도 기술의 반은 걸렸다고 할만큼 쉽게 적을 제압할 수 있는 기술이지만 역시 손가락이 부러지거나 불구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유도에서 금한 기술입니다.

 기무라는 강도관의 분위기가 너무 무도보다는 스포츠 쪽으로 기우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스스로는 연습때마다 살벌할 정도의 기술을 남발해, 그의 기술을 받아주는 사람들이 꼭 한 두명은 실신을 했다고 합니다. 하루에 100명과 대련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기무라는 이처럼 기술을 너무 세게 걸었기 때문에 강도관에서도 평가가 썩 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그에게 요시지마8단의 프로 유도는 그의 무도 정신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이었고, 기무라는 요시지마의 수제자로 들어가게 됩니다. 손가락 관절기까지 다 부활시켜버린 프로유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레이시 유술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이 프로 유도는 최영의 선생님의 실전공수처럼 엄청난 비난을 받으면서 전통 유도계의 압박에 의해 겨우 10회의 시합을 갖고 4개월만에 하와이에서 소멸하고 맙니다. 그리고 하와이에서 기무라는 프로레슬링을 하기로 결심, 브라질 순방에 나서고 거기서 엘리오와 맞서게 됩니다.

기무라 마사히코


4. 최영의와 기무라, 두 초인의 만남.

 

기무라 마사히코님의 일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당대 최강의 무도가 최영의님이시죠. 최영의님이 미국 순방에서 돌아와서 전통 무도계의 온갖 시기와 중상 모략때문에 고뇌하던 시절, 기무라 마사히코와 만나게 됩니다. 기무라 또한 프로 유도를 하는 바람에 강도관 유도계 인사들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공격을 당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하죠. 만나자 마자 둘은 십년지기처럼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그러나 한가지 실망스러운 점은 이 둘의 대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인데요, 솔직히 상당히 궁금하기는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최강자라고 인정해주는 사이였으니 말이죠. 기무라선생의 성격또한 최영의님 만큼이나 괴짜스러운 부분이 있어 아무하고나 친해지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두분은 마음이 잘 맞았다고 합니다. 최영의님은 자신이 직접 쓴 글에서 이렇게 언급하신 일이 있습니다. 뭐 바람의 파이터나 공수 바보일대에서는 둘이 대결한 적이있는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으나...뭐 아무도 안보는 곳에서 두분이 겨룬 일이 있는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최영의님도 기무라님도 아무도 그런 언급을 하신 일이 없으니 알 수 없는 일이죠.

"기무라야말로 최강의 유도가이고 진정한 무도인이었다. 그는 나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나보다 더 많이 단련하고 정진하는 내가 아는한도내에서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요즘의(당시, 1960년대) 일본 유도계는 네덜란드의 헤싱크(헤이싱이라고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5단에게 무릎을 꿇고 있다. 그러나...기무라 마사히코가 돌아온다면 헤싱크 따위는 그의 도복도 잡아보지 못할 것이며 3분을 버티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이것은 공수도인 최영의의 이름을 걸고 단언할 수 있다."

 최영의님과 함께 미국 순방을 떠나 사선을 함께 넘으며 우정을 다졌던 엔도 고키치 6단은 최영의님께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나도 유도가이다보니, 기무라 마사히코라는 인간을 한 번 이겨보고 싶어서 5년이나 죽어라 연마했습니다. 기무라의 필살기라는 한팔 업어치기와 밧다리 후리기는 나의 필살기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5년동안 이를 갈면서 연마했지만 막상 기무라씨와 맞잡는 순간에 땅에 쳐박히고 말았지요...몇초도 버티지 못했었죠...."

 이후 최영의님과 기무라는 같이 유도도 수련을 했는데, 최영의님 또한 4년만에 강도관 4단을 취득한 유도의 달인이었기 때문에, 직접 유도 대련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아무리 천하의 최영의님이라고 해도 유도로는 기무라의 적수가 되지 않았죠. 맞잡는 순간에 한팔 업어치기로 깨끗히 날아가 버리셨다고 합니다.

그 때 하신 말씀이 유명합니다. "나를 이렇게 메쳐버린 인간은 기무라 마사히코 뿐이다."

 

5. 기무라와 역도산 그리고 최영의...당대 최강의 남자들이 만나다!...그러나...

엘리오 그레이시를 격침시키고 일본 유도의 강함을 증명한 기무라, 그러나 일본에서 그를 맞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관심조차 기울여 주지 않았죠. 훗날 그레이시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그레이시를 격파한 사나이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이 때만해도 그건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외국가서 허접한 유술가 하나 잠재우고 온 것이라고 여겼고, 더군다나 귀신 기무라가 패한다는건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쇼와29년(1954년)에 역도산님과 함께 드디어 테그팀을 결성하여 본격적인 프로레슬링 시합을 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싸운 상대는 바로 유명한 샤프 형제였죠. 샤프형제와의 시합을 구경하던 최영의님은 역도산과 기무라에 대해 엄청나게 실망을 하시게 됩니다. 최영의님이 미국에서 목숨을 걸어가며 싸웠던 톰 라이스가 하던 것과같은 실전형 레슬링이 아니라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마찬가지인 경기였기 때문이죠. 게다가 기무라는 아예 무시당하는 역이고 오로지 역도산님만을 띄워주는 각본 또한 최영의님을 화나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런 쇼의 들러리나 서 주고 있는 기무라님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역도산 선생은 익히 알려진대로 미국에서 톰 라이스와 진검승부를 하다가-사실은 각본이 있었으나 톰 라이스가 무시하고 시작하자마자 달려들었죠. 역도산님이 이기는 각본이었기 때문에 훗날 역도산vs기무라 전에서의 기무라처럼 일부러 맞아주거나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처음에는 역도산님도 그와 제법 접전을 벌이셨지만 잠시후에 거의 일방적인 폭행을 당하고 중상을 입으신 바가 있습니다. 톰 라이스는 원래 세계 챔피언까지 노리던 복싱계의 강자였죠, 모션이 크고 궤도가 단조로운 가라데 촙은 그의 가드와 풋웤에 완전히 무력했습니다.

최영의 선생이 이후에 톰 라이스와 격돌, 늑골과 턱뼈를 날려 버리면서 톰 라이스의 격투인생은 그걸로 끝나게 됩니다만,  이 또한 역도산님에게는 치욕스러웠던 듯 합니다. 그러나 최영의님은 역도산님이 보기엔 너무나 강했고, 또한 너무 완고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기무라 선생처럼 뒷 공작을 할 약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죠. 때문에 실제로 진검 대결을 벌이지 못할 바엔 또 다른 최강자인 기무라 선생을 눌러 버리는 것이 났다는 판단을 하셨던 듯 합니다. 최선생님이 프로레슬링을 할 리가 없으니 가난한 기무라선생을 끌어들이고, 자신의 각본 속에서 '기무라는 역도산보다 못하다'라는 인식을 일본인들에게 심어주게 된 것이죠.)

 그리고 최영의님은 기무라를 설득, 결국 기무라 마사히코와 역도산의 진검 승부가 결정이 나게 됩니다. 당시 일본 언론에서는 이 시합을 '간류지마의 결투'라 하여 엄청난 관심을 보였는데요, 간류지마의 결투라는 건 바로 사상 최강의 사무라이라는 미야모토 무사시와 또 다른 검의 귀신 사사키 고지로의 싸움을 의미합니다. 즉 최강은 둘이 될 수 없고, 이 둘은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에 비견할만하다는 의미였던 것이죠.

 최영의님이 이후에 기술한 자서전을 보면 당시의 역도산님이나 기무라님 모두 엄청나게 강했지만, 기무라님은 이미 나이가 마흔에 가까워 절정에 달한 젊은 역도산에 비해 불리한 감이 없지 않았다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실력만을 놓고 볼때 기무라님이 약간우위에 있었다고 판단하신 듯 합니다. 시합직전까지도 기무라님의 승리를 확신하셨다 합니다.

 

6. 제 2차 간류지마의 결투...그러나 고지로는 무사시를 이기지 못하는 것인가?


 간류지마의 싸움에서 무사시가 온갖 심리전을 다 이용해서 승리를 따낸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검의 실력만이라면 고지로가 무사시보다 못할 것은 전혀 없었다고 하죠. 이 싸움은 무사시의 '검술'의 승리가 아니라 '병법'의 승리였다고 알려지게 됩니다. 기무라와 역도산의 시합 또한 역도산이 쳐 놓은 그물에 기무라가 걸려든 꼴이었습니다. 당시의 동영상을 보면 가무라가 역도산에게 맞는 순간에 무방비로 있다가 어이없이 쓰러지는 것을 확인 할 수있습니다. 그리고 뭔가 억울해하는 기무라의 모습도 확인이 가능하죠. 

 훗날 말년의 기무라가 토크쇼에 출연해 당시의 사정에 대해 언급한 바 있었고, 그 내용은 최영의님의 자서전과 바람의 파이터, 공수 바보일대 등에 나왔던 내용과 거의 일치하므로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일본 만화중 베스트 셀러로 꼽히는 공수 바보일대에서 기무라가 병든 아내의 약값을 구하기 위해 역도산에게 져 줘야만 했던 서글픈 사연이 나오고, 그 이후 역도산님의 비정상적인 행동들이 그대로 기술되었을 때 역도산님의 수제자였던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 김일-오오키 긴타로, 이 세명의 프로레슬링의 거목들이 아무런 반론도 내 놓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부분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보입니다. 공수 바보일대의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바람의 파이터와 똑 같습니다. 최영의님의 자서전과도 일치하죠^^

 실제로 최영의님이 당시 실신한 기무라님을 보면서 격분한 나머지 역도산님에게 죽여버리겠다고 호통을 치신 일은 꽤 유명합니다. 이후 역도산님이 최영의님을 겁내서 피해다닌 것도 다 사실인 듯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역도산님이 이 무렵에 야쿠자들을 두들겨 패고 다니며 술에 빠져 사실 때, 역도산님의 뒤를 봐주던 양원석-야나가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합니다.-이라는 조선계 야쿠자의 존재입니다. 보통 알려진 내용은 역도산님이 워낙에 싸움에도 강했기 때문에 아무리 행패를 부려도 야쿠자들이 그냥 맞아주고 자리를 피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죠.-야쿠자들이라면 정 안되면 떼거지로 달려들어 칼로 난도질을 해 버릴 수 도 있고, 총을 쏠 수도 있습니다. 단지 싸움에 질 것 같다는 이유로 역도산님을 피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가 않습니다.- 이 야나가와라는 인물은 일본에서는 이제 전설이 되어버린 초과격 무투파 야쿠자의 두목으로써 10명도 안되는 조직원을 이끌고 120명이 넘는 야쿠자 조직을 피를 피로 씻는 싸움으로 단 하루만에 쓸어버리면서 전 일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갔던 무시무시한 남자였습니다. 맨손 뿐 아니라 무기의 사용에 능하고 기습에 능해 한번 붙었다 하면 반드시 바닥을 피로 칠해야 싸움을 끝냈다고 할 정도였으며 당시 야쿠자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라고 불릴 정도의 야쿠자였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역도산의 뒤를 봐 주고 있었던 것이죠. 때문에 야쿠자들이 감히 역도산님을 죽일 생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렁이도 밟히기만 하면 꿈틀하는 법이죠...

  훗날 최영의님의 이 역도산님에 대한 행동에 반감을 품은 김일 선수가 최영의님에게 도전을 하였지만, 김일님은 최영의님에게 도전할만한 자격이 안되었죠. 프로레슬링에서도 최고가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이노키와 바바를 제압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최영의님에 대한 도전은 아무도 수긍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결국은 김일님도 도전한다고 엄포만 놓았을 뿐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고 맙니다. 사실, 김일 선생이 도전하실 때의 정황을 고려해 보면 정말 도전하실 생각이었다면 조일삼형제분이나 로야마님, 사토 카츠아키님같은 당시 극진의 간판을 짊어진 사범님들들을 먼저 쓰러뜨려서 최영의님이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드셨어야했겠죠. 그 정도 단계는 거쳐야 둘의 인지도 차이를 메꿀 수 있었을테니까요. 일본에서는 세계 최강의 초인이자 무신으로까지 칭송받는 분에게 도전하는 일인데 아무리 프로레슬링 테그 챔피언이라고 하더라도 그 격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지요.

 사실 역도산님 측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는 없지만(죽은 자는 말이 없죠) 여러가지 정황을 감안하면 최영의님의 말씀이 옳은 듯 합니다.

 

기무라 마사히코


7.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스스로 꺾어버린 무도가의 자존심...그리고 은퇴...

기무라 마사히코는 결국 이 석연치 않은 사건으로 프로레슬링을 그만두고 개인도장을 운영하며 실전에서는 손을 떼게 됩니다. 기무라가 그렇게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던 자신의 무도가로써의 명예를 팽개쳐 가며 지키려고 했던 아내는 기무라의 정성 덕택인지 병세가 호전되어 기무라의 곁을 지켜주게 되었습니다.(솔직히 저라고 해도 기무라 선생의 입장이었다면 두말않고 역도산님의 각본대로 놀아나 주었을 것 같습니다. 명예도 중요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니까요.)

  사실 기무라 선생은 어린시절부터 가족의 사랑이라는 것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얻게된 아내는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가족이었고 쉼터였습니다. 아내또한 기무라를 지극 정성으로 내조해 줬었고 깊이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아내가 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기무라 선생이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죠. 자신의 명예, 귀신이라는 칭호...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던 것입니다. 역도산님이 3번의 매치를 제의하면서 2번은 짜고하고 마지막은 진검승부라고 했을 때 기무라님은 이미 시합이 한 번으로 끝날 것이라는 각오를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무도 인생의 끝이 될 것이라는 것도 어느정도 예상했다고 하죠. 다만, 역도산님의 무도인으로써의 자존심에 실날같은 희망을 걸고 그에 응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그러나 결과는 기무라 선생의 추측대로 진행이 되고 말았죠. 훗날 기무라 선생은 인터뷰에서 그 때의 일은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유일한 가족인 사랑하는 아내를 잃지 않았기 때문에...

 은퇴후의 기무라 선생의 얼굴에는 뭐지 모를 평안함과 부드러움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프로레슬링시절의 그 찌들고 무기력한 모습은 사라져 버렸죠. 무도는 기무라 선생에게 아무런 영광도 주지 않았습니다. 귀신을 굴복시킬 정도라던 유도솜씨도 남의 책략에 들러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에게 프로레슬링은 각본이 있는 것이라는 것이 알려진 1960년대 중반부터는 이에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인들도 '그러면 그렇지, 진검승부라면 프로레슬링 최강자가 아니라  상대가 전세계의 누구라고 할지라도 천하무적 기무라가 그렇게 질 리가 없다.'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뭐 정작 기무라 선생 본인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는 태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역도산님이 톰 라이스를 일본으로 데려와 일방적인 구타끝에 승리를 하게 되지만 이는 오히려 그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만들었습니다. 톰 라이스는 최영의님에게 패배하면서 최선생의 해머같은 정권에 이미 격투가로써의 인생은  끝나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싸울 수 없는 톰 라이스는 돈 때문에 일본까지 오게 된 것이었고 역도산님은 이를 이용, 일본인들 앞에서 그를 이겨버립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당시의 관중들에게 각본이나 쇼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음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고 맙니다. 톰 라이스는 처음부터 누가보기에도 전의조차 없었던 것이죠. 정말 명예 회복을 하고 싶었다면 자신을 참패시킨 톰 라이스를 그 지경으로 만든 최영의님에게 도전을 했었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8. 그레이시와 함께 되살아난 유도의 귀신 기무라 마사히코
.

 

그레이시 패밀리의 발레투도가 세계를 휩쓸게 되자, 이 그레이시를 일찌감치 격파해 버렸던 기무라 마사히코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무라 님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고, 다만 그 당시에 엘리오를 이기는 필름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죠. 그러면서 사람들은 기무라를 역도산에게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패배한 힘없는 유도가가 아닌 진정한 최강의 유도고수로 다시한번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쿠라바 카즈시라는 뛰어난 그래플러가 그레이시 패밀리를 기무라 록으로 격침 시키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기무라에 대한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사쿠라바가 호이스를 쓰러뜨린 다음날 신문에는 '사쿠라바, 일본 격투계 50여년만의 비원성취'라는 기사가 1면 톱으로 실리게 됩니다. 바로 엘리오가 기무라에게 무릎을 꿇은지 50여년이 지났기 때문이죠. 그리고 공개된 필름 속의 기무라는 역도산님과의 시합에서 무기력하게 실신해버린 삶에 찌들어버린 모습이 아니라 그 막강한 그레이시 유술을 일방적으로 부수는 가공할 실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강자의 모습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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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진공수도 창시자 최영의 선생님 글입니다. 

"네가 젊은너희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남자한테 제일 중요한것은 야심이다.. 
돈을 잃은것은 작은것이다 신용은 중요한것이다. 그러니 신용을 잃어 버리면 안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용기다.
용기를 잃어버린것은 전부 잃은것이다..... 

예전에 나의 도장으로 전화가 왔다 
극진수련생들이 야쿠자들과 싸워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서 도장운영이 힘들다는것이였다.
난 싸운 제자들에게 단번에 때려치라고 했다.
그런 정신으로 할꺼면 도장은 의미가 없다고..... 
너희들 길에서 누가 너희어깨를 치고 발을 밟고 시비를 건다면 사과를 해라 그런대도 싸움을 건다면 싸워라..... 
무엇때문에 가라데를 수련했는데 그런 패기도 없다면 가라데를 때려쳐라 적에게 등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극진의 역사다.

남자로써 싸움을 못하면 실격이다 
싸움에 강한사람은 빠르다 빠른사람은 싸움뿐만 아니라, 
그 무엇에도 강하다.... 돈을버는것도 싸움을 하는 방식으로 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죽을때까지 전쟁이다...... 
싸움의 무대는 도장이 좋다. 몸이 엉망이 될때까지 싸워보는것도 좋다 그러면서 배워가는거다. 
사무라이는 칼을 매일간다. 하지만 칼을 뽑지 않는데 그 의미가 있는것이다. 
극진의 정신은 너희도 알고있겠지 
고개는 숙이고 눈은높이 입은 신중하고 마음을 넓게 
효를 원점으로 모두에게 의롭게 해라.......... 
여자를 볼때도 집에 효도를 하는가를봐라 효를 아는사람은 누구에게도 잘한다.... 그것은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잘되는일은 남의덕으로 돌려라........ 
잘못되는일은 나의탓으로 돌려라..... 
그리고 스스로 성장하는거다.... 
나 의에에는 모두가 내스승이다......... 

실천이 없으면 증명이 없고 증명되지 못하면 존경받지 
못한다......... 

어쨎든 노력이다... 노력하지 않고 강해질수 있다면 내가 가장 배우고 싶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남자의 무능은 죄다... 부모님의 주신 감사한 몸을 왜 단련하지않는가! 왜 공부하지 않는가! 

돈을 쫒지 마라 여자와 명예도 마찬가지다.
돈,여자,명예가 쫒아오는 남자가 돼라... 
다시한번 말하지만 남자는 야심이 있어야 한다 
야심이 있는남자가 씩씩하다, 용기가 있다 
목표가 있기때문에 성장하는거다....... 
남자는 죽을때까지 전쟁이다..... 

정의없는 힘은 무능이다 하지만 힘없는 정의도 무능이다 
솔직히 말한다면 난 너희들이 이겼으면 좋겠다...... 
이기고 싶은마음이 진짜다...... 강해지길 바란다. 
이제부터 세상은 너희들의 것이다 다만 용기가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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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저씨" 원빈의 사용 무술 칼리 아르니스, 에스크리마

  

실전 무술인 필리핀의 칼리 아르니스는 호신술로 각 국 특수부대, 경찰들이 배우는 실전지향적 무술이며, 칼리 라고도 알려져 있다.


영화 ‘아저씨’로 화제가 되었던 아르니스는 처음 농부(섬 주민)들이 일을 하다가 그 모습 그대로 싸운 것이 전장무술로 발전한 무술이다. 그렇기에 매우 실전 지향적이다. 하지만 요즘 전쟁도 없고 싸움하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호신술로 각 국 특수부대, 경찰들이 배우고 있으며 국제화 되어 남녀노소 이 무술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아르니스는 칼리 아르니스, 에스크리마 라고도 불리는데 에스크리마는 스페인어로 필리핀 무술 아르니스를 일컫는 말이고 칼리 아르니스는 힌두교의 죽음의 여신인 ‘칼리’의 이름을 따서 명명 하였다, 칼리는 여섯 개의 손마다 칼을 쥐고 있는 무장한 여자의 형상을 나타낸다.

 

서태평양 가운데 있는 7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공화국, 필리핀! 그 곳에 두 번째로 큰 섬, 민다나오의 면적은 우리나라 남한의 1.2배의 넓이로 지하자원이 풍부한 “약속의 땅”이라 불리고 있으며, 역사상 외세의 침입으로 부터 약속의 땅을 지킨 무술 아르니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실제로도 공간의 효율적 활용과 무기 선택의 다양함 등으로 실전성이 높은 무술로 평가되어 진다.

 

2014년 8월경 EBS에서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제37화] 무림기행 - 필리핀 아르니스 편"에서 소개가 되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해당 영상을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영화

 EBS 프로그램 사이트 바로가기

 

이 무림기행 편에서는, 과거 인기드라마 였던 '파랑새는 있다'에서 차력사 역할을 했던

배우 이상인 씨가 동행하며 레이터를 합니다. 

 

아래는 소개에 나오는 이상인 씨의 어록 입니다.

 

인생이 그러하듯 무예도 하나의 과정이다. 더 나아지기 위한 고된 여정이다

 

동작 하나에도 이유가 있고, 무기 하나에도 장인 정신이 들어있다..

무술이란 게 단순히 그냥 공격과 방어가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가 함께 하고

사람들의 감정이 들어 있다는 걸 이번 여행으로 알게 됐다“ - 배우 이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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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재정부에서 2014년 갑오년 새해부터 달라지는 제도들과 법규를 183건 발표했습니다.


그중에서 중요한 것들만 간단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취득세 영구인하

지금까지 9억 원 이하 주택 1%, 9억 원 초과 4%였던 취득세율이 내년 1월부터 6억 원 이하 1%, 6억 원 초과 9억 원 이하 2%, 9억원 초과 3% 로 내림. 취득세율 인하는 올해 8월 28일 이후 돈을주고 거래한 부동산 취득분부터 소급 적용됨.


2. 소득공제 -> 세액공제 전환

- 새해부터 현행 소득공제 제도가 세액공제로 전환. 앞으로는 보장성 보험료, 개인연금, 소기업·소상공인 공제부금 납입액은 12%, 의료비·교육비 지급액은 15%, 기부금액 3천만 원 이하는 15%, 3천만 원 초과 금액은 30%를 세액공제 받게됨.


3. 최저임금 금액 시급기준 5210원으로 인상


4. 도로명주소 전면 시행

- 그동안 시범적으로 시행됐던 도로명주소 사용도 전국으로 확대. 새해부터는 관공서에 전입·출생·혼인신고 등을 할 때 반드시 도로명주소를 사용해야 합니다.


5. 전국호환 교통카드 출시

- 내년 상반기부터 교통카드 한 장으로 전국의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6. 대체휴일제 적용

- 법정 공휴일이 일요일과 셥칠때 평일 하루를 더 쉬는 제도로 내년 추석부터 처음 적용되며, 내년 추석연휴는 연휴 첫날이 일요일이므로 연휴와 마주한 평일인 10일이 대체휴일로 지정 결국 6일부터 10일까지 닷새를 쉴 수 있게 되네요.


7.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

-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되어 전국 주요 문화시설의 무료 또는 할인 관람, 야간개방, 문화 프로그램 제공


8. 65세 이상 최대 20만원 기초연금 지급 

- 7월부터 도입되며 65세 이상 소득하위 70%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최대 20~10만원까지 기초연금이 지급.


9. 75세이상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

- 내년 7월경부터 7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임플란트 보험급여가 적용됨


10. 체당금 상한액 인상

- 기업의 문제로 임금이 체불된 근로자들에게 주는 체당금이 월 평균급여의 80% 수준의 최고 상한액 1,800만원으로 인상됨.


11. 비정규직 국민임대주택 우선공급 대상으로 지정.


12. 동물등록제 전국확대


13. 군대 병사들의 월급 인상

- 병사들 월급이 올해 대비 15% 증가하여 이등병은 11만 2천5백원, 병장은 14만 9천원으로 인상.


14. 비행기 이착륙시 스마트폰 등의 휴대용 전자기기를 자유롭게 사용 가능 및 생활용품의 기내반입 허용.


15.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제도 폐지, 만 19세 이하부터 주택청약 가능.


새해 달라지는 것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바뀌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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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나라, 터키의 한국사랑에 대하여


'터키'라는 국가를 말하면 우리는 이스탄불, 지중해의 나라, 형제의 나라 등 여러 수식어를 떠올리지만 정작 우리나라와 터키가 왜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워지는 지 그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아느냐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6.25 때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고.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파병 된 15,000명이 넘는 터키군 대부분이 자원병이였으며 그중 3,500명이 사망(미국 다음으로 많은 사상자)할 정도로 그들이 열심히 싸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병력을 파견했으며,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싸웠을까요.. 


터키에 가면 관공서나 호텔의 국기대에 터키국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게양되어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터키인들 역시 한국인에게 굉장히 우호적이며,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대한민국 '코리아'를 Brother's country 라 부릅니다. 

또, 한국말과 비슷한 단어가 많은 헝가리 사람들 역시 한국이랑 헝가리랑 sister다 라는 얘기를 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요.. 


여기, 한 아침 라디오방송에서 나온 이야기를 잠시 참고해보도록 하지요.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투르크'라고 부른다. 

우리가 코리아를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것처럼. 


역사를 배웠다면 

과거 고구려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돌궐'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을 것이다. 

투르크는 돌궐의 다른 발음이며.. 

같은 우랄 알타이 계통이었던 고구려와 돌궐은 동맹을 맺어 가깝게 지냈는데 

돌궐이 위구르에 멸망한 후, 남아있던 이들이 서방으로 이동하여 

결국 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원래, 나라와 나라사이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지만 

돌궐과 고구려는 계속 우호적이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 불렀고 세월이 흘러 지금의 터키에 자리잡은 그들은, 

고구려의 후예인 한국인들을 여전히, 그리고 당연히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즉,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형제의 관계였던 것이다. 

6.25 때부터가 아니고. 


그렇다면 의문점 하나. 

우리는 왜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그리고 터키인들은 왜 아직도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를까? 


답은 간단하다. 

역사 교과서의 차이다. 


우리나라의 중,고 역사 교과서는 '돌궐'이란 나라에 대해 

단지 몇 줄만 할애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돌궐이 이동해 터키가 됐다느니 훈족이 이동해 

헝가리가 됐다느니 하는 얘기는 전무하다. 


터키는 다르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경험했던 터키는 그들의 역사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역사 과목의 비중이 아주 높은 편이며 

돌궐 시절의 고구려라는 우방국에 대한 설명 역시 아주 상세하다. 

'형제의 나라'였다는 설명과 함께. 


그래서 대부분의 터키인들은 한국을 사랑한다. 

설령 한국이 그들을 몰라줄지라도.. 


실제로 터키인들은 한국인들 역시도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인들도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 칭하며 그들을 사랑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터키의 한 고위층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했다. 

자신을 터키인이라 소개하면 한국인들에게서 큰 환영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은 데 대해 놀란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다. 


'터키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돌아온 답은 대부분 '아니오'였다. 

충격을 받고 터키로 돌아간 그는 자국 신문에 이런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한다. 


'이제.. 짝사랑은 그만합시다..' 


이런 어색한 기류가 급반전된 계기는 바로 2002 월드컵이었다.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 터키를 응원하자'라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을 타고 여기저기 퍼져나갔고 

터키 유학생들이 터키인들의 따뜻한 한국사랑을 소개하면서 

터키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증폭되게 되었다. 

6.25 참전과 올림픽 등에서 나타난 그들의 한국사랑을 알게 된 한국인들은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터키의 홈구장과 홈팬들이 되어 

열정적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하이라이트는 한국과 터키의 3,4위전. 

자국에서조차 본 적이 없는 대형 터키 국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터키인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한다. 

경기는 한국 선수들과 터키 선수들의 살가운 어깨동무로 끝이 났고 

터키인들은 승리보다도 한국인들의 터키사랑에 더욱 감동했으며 

그렇게.. 한국과 터키의 '형제애'는 더욱 굳건해졌다. 


우리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터키가 형제의 나라가 된 궁극적인 이유를 모르면 

KBS의 어느 아나운서가 패널이었던 터키인에게 '아우님'이라 불렀던 

어리석은 짓도 가능한 것이다. 

형제는 '형과 동생'을 따지자는 말이 아니다. 

그들에게 형제는 곧 친구며 우방이니까. 


- 10월 16일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대전지역 98.1MHz)



터키의 언어에는 순우리말과 비슷한 단어가 참 많습니다. 


말뿐 아니라 음식, 문화, 습성, 국민정서 (터키인 우월주의에, 감정적 다혈질이면서 반대로 다정다감하고, 거나하게 놀기 좋아하고, 어쩜 그렇게 성질 급한 것까지..)도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유럽인치고는 흔하지 않게 몽고반점도 있습니다. 


과거 돌궐(투르크 => 터키)과 고구려는 그냥 우방이 아니라, 이와 잇몸 같은 관계였다고까지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돌궐의 공주와 결혼을 하였을 정도니까요. 


고구려 멸망 후 돌궐도 망했으며 서쪽으로 옮겨 서돌궐을 건국하게 됩니다. 서돌궐이 훗날 오스만 제국... 그리고 터키가 됩니다. 


혈통이 고구려와 혼혈이라고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 교과서에서 돌궐을 다루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돌궐의 위치 때문이 아니였나 생각됩니다. 

사서에는 고구려와 돌궐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당시 돌궐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영토가 중앙아시아, 즉 실크로드(서안) 부근까지가 영토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돌궐은 만주 지역에까지 영토를 넓힌 적도 없습니다. 

따라서, 고구려의 영토가 만주와 한반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중앙 아시아 까지(돌궐과 맞닿은), 매우 방대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이유도 여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터키'라는 나라는 과거 청동기시대인 배달국, 고조선, 부여 시대에는 동이족에 속해 있다가 고구려의 세력이 확장되면서 고구려가 부여를 정벌하자 그곳에 살던 원주민(예맥 동이족)들이 요하를 건너가 이루게된 민족입니다. 


돌궐족은 중국의 대부분을 수나라가 통일하자 고구려와 돌궐은 연합하여 수나라를 공격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히려 수나라의 침략을 받아 요서지방은 수나라에 점령되고 돌궐은 서쪽으로 쫓겨나게 되는데 그들이 서쪽으로 이주해 정착하여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건설하였고, 아랍과 발칸반도를 지배하며 강성했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19세기 중반부터 쇠퇴하면서 주변의 영토를 잃고(소수민족 모두 독립) 지금에 터키만 남게 된 것입니다. 


같은 우랄-알타이 계통의 언어를 사용했지만 통일신라시대 이후 우리는 중국의 영향으로 한문을 사용했고, 터키는 아랍의 영향을 받아 언어는 전혀 다르게 발전하게 됩니다. 



유전학이나 인류학적으로도 터키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몇개 안되는 북방계 몽골리언국가(몽고, 한국, 일본, 에스키모, 인디언) 중 하나로, 헝가리 와 함께 북방계 몽골리언의 유전자가 많이 남아있는 유럽국가입니다. 


터키인은 '코리아'의 어원이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의 영문표기라는 것까지도 알고 있습니다. 대단한 형제사랑이지요.. 


그렇다면, 북한도 같은 민족인데 어째서 한국과 형제인 터키가 6.25 때 남한편에만 병력을 파병했을까.. 


한국과 일본의 관계만큼이나 아르메니아인들과 터키는 견원지간입니다. 아니, 원수지간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겠네요. 


과거 아르메니아인(오스만 기독교인들)들이 터키인(투르크 이슬람교도)에게 대학살을 당했기 때문이지요. 


과거 오스만터키에서 소수민족들이 독립을 하면서 쇠약해진 국력과 맞물린 굴절된 민족주의로 말미암아 아르메니아인 수천명이 죽임을 당하는 1차 대학살의 참사가 벌어집니다. 


유럽으로 남진하려하는 러시아의 힘을 얻어 루마니아와 세르비아가 독립을 하게되고 오스만터키의 아르메니아 영토 대부분을 러시아가 차지하는 셈이 되자 이에 분노한 투르크인들이 러시아와 붙어먹은 아르메인들을 표적으로 인종청소라는 대학살을 감행한거죠. 


1차 대학살 20년후 또 다시 오스만터키 정부의 도움을 받은 투르크 이슬람교도들은 아르메니아인 5만명에 대학살을 자행합니다. (2차대학살) 게다가 정부는 학살된 아르메니아인 외 175만명을 추가로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로 추방하고 그 추방하는 과정에 60만명이 사막에서 목숨을 잃게 됩니다. 

(1894년~1915년까지 250만명이였던 아르메니아인은 30만명만이 살아남게 됩니다.) 


그후 1912년 발칸전쟁 때 몬테니그로, 불가리아, 그리스가 오스만터키에서 독립할 때도 알게모르게 러시아가 개입하여 아르메니아인을 도와줍니다. 따라서 러시아가 북한을 지원하기 때문에 당연히 터키는 그 반대 쪽인 남한에만 병력을 파견한 거지요. 



형제의 나라, 터키의 한국사랑에 대하여


물론 혹자는 당시 터키가 미국과의 우방적 연계로 말미암은 국제적 이득을 노린 선택일 뿐이였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역사의 흐름이라는 큰 범주에서 바라본다면, 

터키가 2차 세계대전 때 우리의 동맹국 중의 하나였던 이유가 필연적으로 러시아와 적대 관계일 수 밖에 없는 과거사 때문이였다고 보는게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형제의 나라.. 


한국의 경제성장을 자기일처럼 기뻐하고 자부심을 갖는 나라, 2002년 월드컵 터키전이 있던 날 한국인에게는 식사비와 호텔비를 안받던 나라.. 월드컵 때 우리가 흔든 터키 국기(國旗)가 터키에 폭발적인 한국 바람을 일으켜 그후 터키 수출이 2003년 59%, 2004년 71%나 늘어났다는 KOTRA 통계가 있습니다. 


이런 관계를 지닌, 자기 나라로부터 수백만리 떨어진 곳에서 보내는 의리와 애정을 받는 나라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세계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대부분의 위인들은 평생 독서를 즐겼으며, 그들이 가장 즐겨 읽었던 분야는 역사라고 합니다. 


우린 세계사를 떠나 국사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관심이나 있을까요.. 


아니, 제대로 된 우리의 국사나 현대사를 과연 배운 적이나 있었나요.. 


내 나라 역사조차 바로 알지 못하면서 남의 역사를 논했던 제 모습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새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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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극권의 보법 (步法)

아주 오래전에 일본 "무술"지에 나온 내용을 아는 분께서 번역해 놓으신건데 팔극권을 수련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내용은 팔극권과 당랑권으로 유명한 소욱창 노사님이 일본을 방한해서 나눈 인터뷰중 보법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정심주 (소욱창 노사)


가장 중요한 발의 사용법

-소선생의 팔극권은 상당히 먼곳까지 밟아들어가는군요. 다른 팔극
권에선 거의 밟아들어가지 않고 연습하는곳도 있습니다.

蘇-앞서 얘기했듯이 칠때에는 권으로만 치는게 아니고. 체중을 실어 신체중심을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신체를 부딪혀갈 때 단순히 힘만
이 아니라 중심을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팔극권에서는 두 개의 힘으로 사람을 친다.
 하나는 그 사람의
권으로 치는 힘. 또 하나는 그 사람의 중심이다.
 

 팔극권은 왜 권으로 치는 것이 반이라고 하는 것인가.
 보법의 역할이
크고 손은 곤(棍)과 같이 변하여 견고히 상대를 잡기 때문이다. 그때 힘과 중심으로 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크게 밟아들어가는 연습을 해야한다.
 밟아들어가는
것이 작으면 손의 힘과 신체를 움직이는 힘, 그것에서 경(勁)과 기(氣)의 힘으로 칠뿐으로, 중심(에서 치는 힘)은 없어지게 된다.

 우리들은 이와같은 힘으로 친다(동작으로 보이며). 이러면 두 개의 힘이 더해진다. 때문에 타인의 팔극권이 어떤건가를 보려면 밟아들어 가는 것이 큰가 어떤가를 보지 않으면 안된다.

-기본을 연습할 때에는 크게 밟아들어가고, 후에 짧은 것을 연습하는 것입니까?

蘇-기본인 '충추'를 연습할 때에는 반드시 크게 앞으로 밟아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밟아들어가는 발의 무릎도 쭉 펴지 않으면 안된다. 때문에 많은 선생은 나의 움직임을 보고 밟아들어가는 것이 크다고 생각 할 것이다.

 나의 1보는 당신의 2보에 해당한다. 빠르기는 같다.

 이전, 수행에 있어서 '老師留一步(노사류일보)(노사는 1보를 감추어 엿본다keep)' 라고 말하여진다.
 功夫에서는 步(발의 처리)에 주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손은 아니다. 손에는 아무 비밀도 없다. 손에 어떠한 것이 있어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은 없다.
 두 개의 다리가 지켜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리신체와 함께 피하는 것이 가능하고, 상대가 칠때에도 내 다리가 움직이면 상대의 쳐내는 것은 미치지 않는다. 나의 두다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상대에게 반드시 맞는다. 그 때문에 는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서기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신체, 중심, 힘을 옮겨간다. 당신의 보폭이 작으면, (상대에게) 쫓기게 된다.
 

功夫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치는 것이지만, 그중 가장 어려운 것은 상대에게 달라붙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리가 있으면 어느 정도 쳐도 상대를 맞출 수는 없다. 내가 一拳을 지켜 지닐수 있는 곳에선 당신은 결코 나를 칠수 없다.
 따
라서 당신은 반드시 보법에 의해 상대에게 들러붙어, 들러붙은 상대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상대를 치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상대 신체의 표면만을 치는 것이 된다.

학생 (의 성질)이 좋지 않을 때에는, 나는 보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 사람이 上手가 되어도 사람을 쳐서 쓰러뜨리는 것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공기를 치고 있을 뿐으로, 사람의 내측을 치지 않기 때문이
다.

따라서 功夫에서 가장 중요한 선생이 '1보를 감추고 기회를 엿본다' 그리고'1보를 나간다' 이다.
'老師留一手(노사류일수)(노사는 1수를 머무른다)'라고 하는 것은 틀린 것으로, '老師留一步'라고 하는 것이 맞다.
일체의 어떠한 手라도 머무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은 모든 수법을 가르쳐도 보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당신은 사람을 쓰러뜨릴수 없다.
상대에게 가까이 가서 어떻게 치는 것인가.

안에는 나아가기, 물러나기, 피하기가 포함되어 있다.

팔괘장이 왜 강하다고 하는가는 步의 문제이다. 팔괘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步로, 보의 변화에의해 신체를 옮겨간다.

-그래서 팔괘장은 우선 보법을 연습하는군요.

蘇-팔괘장에서는 당니보, 파구보로 쳐낸다.
당니보도 본질은 팔극권의 밟아들어가기와 같아서, 一步에 앞으로 중심이 이동하는 것을 배운다. 진짜 실력있는 무술가는 이 걷는 방법이 습관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보통 걷는 방법을 보는 것 만으로도 실력을 알 수 있다.

파구보를 쓰는 것인가라고 할 때, 신체를 비틀 듯 하며 중심과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안된다. 똑바로 나아가고 있을 때 전신(轉身)하려고 하면 반드시 어떤 동작이 필요하다. 파구보는 작은 동작중에서 전환하는 동작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에 의해 1초시간을 나눠 채우는 것이 가능하다.
 
싸우는 것은 1초간의 안쪽에서 승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과 싸울때에는, 당랑권도 마찬가지지만 팔극권에서는 1수에 승리를 얻고, 제 2수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여지고 있다.

 
'어이, 괜찮아? 2 ~3발 쳤으니 반격해라'
영화에서나 곧잘 있는 것일 뿐으로, 원래는 맞지 말고 자신이 먼저 친다.

첩산고 (소욱창 노사)


팔극권의 '이서문'이 가장 좋아한 것이 사신법(捨身法)이다.

이서문은
상대가 침과 거의 동시에 되돌려쳤다.
상대가 빠르면 빨라서 당했다.

상대가 치면 나도 친다고 하는 방식으로, 이쪽이 빠르면 먼저 상대를 치고, 상대는 나를 칠 수 없다.
 그 때문에 발경의 문제에서 이쪽에서
칠 때 상대의 쳐내는 것이 여러번 있더라도 상대의 경이 불충분하고 이쪽의 경이 충실하다면 상대를 쳐서 쓰러뜨리는 것이 가능하다.

이서문은 '사신법'을 가장 좋아했다. 사신법을 사용해서 반드시 이서
문은 一手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하며, 그 순간에(사신법을 쓰는 순간에)상대에겐 틈이 생기고 지키는 시간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상대가 전신의 모든 힘을 집중시켜서 치려고 할 때, 거기에 틈이 생긴다. 몸안의 모든 에너지가 권에 모여 몸은 비게 된다. 그것으로 사람을 쳐서 죽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사신법은 이서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비밀기술이었던 것이다.
이서문은 나와 같이 작은 체구이다.
중국의 산동, 하북에서 모두로부터 업신여겨졌다.
'좋다, 쳐보아라'
다음 순간에 상대는 맞아서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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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 팔극권 (武壇 八極拳)의 특징


팔극권은 창현일대에 존재하는 권법으로 그다지 널리 퍼지진 못했으나 이미 무술계에서는 그 이름이 널리 퍼져 명문권법으로서 공인받게 되었다. 현재는 남경이남까지 전해져 익히는 자가 많아졌다. 지금은 점점 더 늘고있는 추세다.
그곳이 그렇게 된 것에는 또한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팔극권이 우수하기 때문일 것이다. 팔극권의 이러한 특징은 모두 8가지로 나눌 수 있다.

무단(武壇)의 공식 로고

첫 번째로 수련할 때에는 순서가 있다. 중국 권법은 내용이 비록 매우 오묘할 지라도 수련할 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 반드시 순서를 따라 차례차례 익혀가야 하며 다음 단계로 배울 권법을 정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이는 팔극권이 그만큼 익히기 힘든 권법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소팔극 기초를 닦는 것으로, 대팔극그 기술을 거리낌없이 쓰는 것으로, 그리고 육대개그 궁극의 기예를 터득하는데 있다. 팔극권에 있어 단조의 기예는 다음에 익힐 것에 도움이 되고 시일이 점점 지나면 더더욱 다양해지는 변화를 숨기고 있다.

두 번째발경에는 방법이 있다. 발경이 없는 지르기는 단지 몸만 건강하게 할 뿐이다. 근본이 없는 무술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금이 수많은 권법이 있지만 이미 발경법을 잃은 것이 많다.

팔극권의 발경방법은 아주 간단한데 아마 그래서 아직까지 보존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 방법을 주고받으며 서로 공부를 터득했던 것이다.

세 번째실용적이다. 팔극권은 절대 크고 화려하지 않다. 한동작, 한동작의 목적은 오직 상대에 대한 응수이며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실효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타자(타子)의 기초이다. 권법의 근본은 다리에 있다. 이는 다리의 수련이 극히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무술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 중에는 이 수련을 견디지 못해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팔극권의 타자는 수년에 걸쳐서 수련하여 투로 속에 융합한다. 팔극권을 수련할 때에는 이 단계를 반드시 지나지 않으면 안된다. 고통이 없으면 얻을 수 없고 견디지 못하면 그만 두는 수밖에 없다. ???. 그 단계를 딛고 넘어서야 성취할 수 있다. ???, ???. 도중에 그치면 안되며 도중에서 다시 배우는 것은 어렵다.

다섯 번째간단한 역학이다. 팔극권은 화려하지 않고 초식 또한 극히 간단하여 외우기도 쉽고 사용하기도 쉽다. 이러한 특징은 수련시 하반공부에 있으며 복잡하지 않고 표면상으로 이해가 안간다든지 공허한 부분이 없기 때문에 수련하는 사람이 어려워하지 않는다.

여섯 번째변화가 많다. 팔극권은 간단하고 허식이 없어 처음 배울 때는 그 기술이 얕고 보잘 것 없으나 시간이 지나면 깊고 중후해져 마지막에는 정수를 얻게 된다.

그리고 보기에는 비록 단순하나 담고 있는 것은 풍부하다. 숙련하게 되면 변화가 끝이 없어진다. 상대에 따라 변화하니 마치 거울 같고 그 하나하나가 진짜가 아닌 것이 없으니 진정 무궁무진하다 하겠다.

일곱 번째초식이 접근전용이다. 팔극권은 적과 가까이서 싸울 때 쓰는 것이 목적으로 고안된 기술의 묶음들이다. 따라서 한 초식마다 결정적인 때 치명적인 부위에 쓸 수 있고 수 백가지 초식 중에 가장 근접한 상태에서 쓸 수 있는 것 중 하나이다.

근접한다는 것가장 빠르고 , 가장 직접적이고 또한 가장 유효하고 가장 쉽게 변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팔극권 초식의 오묘함과 깊고 풍부함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없다.

여덟 번째기술이 가장 완전하다. 팔극권의 수련은 세 투로의 단계에 있다. 각 투로마다 약간씩 다른 목적이 있고 수련법이 틀리다. 상대와의 접전시 응용단계에 이르면 자기 방어, 상대제압, 상중하반, 길고 짧은 싸움, 하나하나에 대한 마땅한 방법은 없으나 팔극권은 각 상황에 맞는 가장 정형적인 방향을 제시하여 준다.

※ 이상 '팔극권술술요' - 유공운초선생

유운초 선사님의 휘호


경도공법(勁道功法)


팔극권에서 경의 훈련할 때에는 반드시 순서를 지켜야 한다. 처음은 침추경( 墜勁). 다음은 십자경(十字勁), 마지막으로 전사경(纏絲勁)이다. 이와같은 순서를 밟아가며 익히면 어떤 무술에서 익히는 발경이라도 그 기초가 된다.

침추경 : 다리와 사지백해(四肢百骸)의 단련으로 체중을 낮춰야 하며, 경을 단련할 때에는 산과 같이 우뚝 서 있어야 한다.

십자경 : 상하좌우 4방향 즉, 마치 십자형태로 펼쳐진 경이다. 침추경을 익히고 있어야만 경력을 모을 수 있으며 생각 또한 사면팔방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전사경 : 십자경이 꼬이고 속에서 모여 나가는 경이다. 영활하면서 민첩해야만 경이 나갈 수 있고 느낌을 받아 쏠 수 있다.

위에 서술한 것은 팔극권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 차례대로 익히게 되면 위로 올라가기 위한 기초가 된다.

팔극공법에서 나타나는 손발부위는 가장 기본적으로 웅보(곰형), 통배(호랑이형)의 두 개이다.

웅 보는 팔극권만의 독특한 것으로 경을 훈련할 때 관계 있으며 응용보법으로도 관계가 있다. 또한 다른 훈련법도 많이 존재한다.

통배상체 훈련이다. 어깨와 등에서 경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으로 '통비'라고도 쓰며 그 뜻은 팔을 펼치다 혹은, 경을 펼치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자의 뜻과는 달리 훈련 동작은 다른데 외관상 좌우로 두팔이 앞으로 나아가 치는 것을 통상 '통비'라고 적는다. 통배, 통비는 읽을 때 같은 소리로 들리기 때문에 구별이 안된다.


팔극기공은 '마쉼'과 '들이쉼' 두 호흡이 기본이다.
다만 마쉼과 들이쉼을 훈련하기 전에 반드시 기를 단전에 가라앉히고 (축기, 납기) 기를 온몸에 돌게하는(인기, 행기) 두가지 기초공부가 되어야 한다.

첫 번째로 기를 쓸 수 있게끔 하고 두 번째로 기를 한 곳에서만 운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기초공이 끝나면 다시 신체의 다른 부위를 사용하여 ''하고 코로 내밷은 다음 입으로 ''하고 들이쉬어 동작과 합쳐 발경에 쓴다.


팔극공법 중에는 반드시 도구를 사용해서 단련해야 하는데 '첩산고'와 '타사대'가 그것이다.

첩산고는 외부에서는 '철산고'라고 쓰는데 이는 이 공이 그만큼 신체를 철이나 돌처럼 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타사대는 각 문파마다 가지고 있는 훈련법 중 하나이다. 다만 이를 이용해 얻으려 하는 바가 서로 다르고 연습법 또한 다르다. 팔극문에서 사대의 단련방법과 사대의 종류도 많고 사용방식도 각기 다르다. 또 지방마다 그 방법이 다르다. 그 중에 사대를 몸위에 올려놓는 방법은 창현 지방의 특수한 가는 모래를 이용한다.(창현에는 어린아이의 아랫도리를 불에 구운 모래를 기저귀에 넣어 채우는 풍속이 있다. 기저귀에 오줌을 싸지 않고 수시로 모래만 갈아줄 수 있어 위생적이고 편리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작이 어렵다. 때문에 공업사회인 지금은 외부에서 대량으로 생산한 도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 이상 '팔극권술술요' - 유공운초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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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극권(八極拳)의 개요

중국에는 수많은 무술의 문파가 있는데 실전상에서 명성을 떨친 문파는 그리 흔치 않다.
그러나 몇몇 문파는 실전에서 아주 이름을 날렸는데 그중 팔극권은 특히 유명하다.

우리나라 사람들 에게는 생소한 팔극권은 중국 북방의 강권에 속하는 무술중에 하나로 모양은 소박하고 화려 하지 않으나 그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팔극권에는 수많은 명인 이 있으나 그중에서도 신창 이서문 (창을 잘써서 붙은이름)은 특히 유명한데 그는 키는 작고 몸은 외소 했지만 그의 공력은 대단했으며 몇백번의 결투에서 한번도 패한적이 없는 불패의 영웅으로 유명하다.

무단 팔극권

무단 팔극권


이서문은 처음에는 소림권을 배웠으나 후에 팔극권 으로 바꾸었는데 성격이 괴팍하고 고집이 심하고 싸움을 좋아해 스승이 처음에는 팔극권을 전수하기를 꺼려 했으나 그의 노력이 대단해 허락했다.

그는 시합에 있어서 한수 이상을 써본적이 없으며 그당시 에는 이서문은 한방이면 끝난다 라는 노래가 유행했을 정도 라고 한다.

이서문은 또한 수많은 훌륭한 제자를 많이 배출 했는데 곽전각 이라는 개문제자 는 청조 마지막 황제인 부의 에게 팔극권을 전수했다.

이서문의 마지막 제자 유운초는 팔괘장 또한 고수이며 그는 여러사람의 훌륭한 스승을 두었다.

그 럼 팔극권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팔극권은 예,방,의,고. 라는 형태의 공격법을 가지고 있으며 기공발경을 하며 단타를 위주로 하는 무술인데 금강팔식, 소팔극 ,대팔극,과 그외의 비전 기법(주: 육대개, 팔대초)이 있으며 이서문은 맹호경파산 이라는 비술을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금강팔식중 첫번째인 충추가장 중요하며 옛날 사람들은 그기법만을 3년씩 수련했다고 한다.

충추와 같은 기법은 다른 무공에도 찾아볼수 있으며 이것들 역시 중요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팔극권에는 독특한 보법인 틈보 또는 츰보(주: 발의 앞쪽을 축으로 몸의 회전을 일으킴)라는 것이 있으며 이것이 팔극권의 발경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요즈음 팔극권을 익힐때 벽괘장을 함께 익히며 팔극과 벽괘를 함께 익히면 귀신도 그 기법을 두려워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단하다.

또한 팔극권은 입신중정,삼반합일 등의 자세를 중요시 하며 태극권,형의권,팔괘장 등의 내가권은 기를, 소림권은 힘을 사용한다고 흔히들 얘기하나 팔극권은 기력합일을 채택하고 있다.

한국 무단팔극권 도관 (www.wutankorea.co.kr) 메인

무단 팔극권 (사진은 유운초 선사님)



팔극권의 수련과정

팔극권은 '소팔극', '대팔극', '육대개' 등, 크게 3개의 투로로 나뉜다.
이를 자세하게 풀어보겠다.

소팔극'은 '소파자'가 원래 이름으로 '소가자'이다.
팔극문에 들어올 때 최초로 배우는 투로로 매우 중요하다.
연습시에는 작고 완만하게 해야한다. 처음 배울 때는 매 동작마다 반드시 8번 호흡하고 자세를 수정해야 한다. 그렇게하여 공력이 깊어지면 호흡횟수를 늘린다.
이것은 기를 단련하는데 목적이 있으며 기가 온몸에 충만하게 하면 몸이 튼튼해지고 마음을 건장하게 만들어 준다.
동시에 침추, 탱장, 온중, 균칭 등의 요령을 익힌다.

'대팔극'은 '대파자'가 원래 이름으로 '대가자'이다. '소팔극' 후에 배우는 두 번째 투로이다.
연습시에는 자세를 크게 펴고 동작을 명쾌하게 하며 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자세는 판안하게, 발경은 빠르면서도 가볍게, 수법은 세밀하게, 보법은 생기있도록 하는데 모두 소팔극에서 배운 기초와 의미 위에서 수련할 수 있도록 한다.

'육대개'는 팔극권의 중요한 기법 중 하나이다. 원래 팔극권의 정식제자에게만 전하는 것으로 외부로는 전해지지 않았다.
따라서 육대개의 이름은 들어본 사람이 많아도 실제로 배운 이는 극히 드물다. 소팔극과 대팔극을 익힌 후에 배우는 것으로 매우높은 공부를 요한다.

육대개는 6개로 나뉘는데 각각의 기법이 분명하다. 각 기법을 서로 연관시켜 연습하고 숙련한다. 연습 시에는 정확한 자세,노리는 곳이 분명하게끔 해야한다.
팔극권을 배움에 있어서는 반드시 한결같아야 하며 차례대로 익혀야만 잘못 나아가지 않는다.

팔극권은 지역에 따라 그 명칭이 다르나 기법, 투로 상은 거의 변함이 없다.
염산현에는 '신팔극','노팔극'으로 칭한다.
남부지방의 영진현일대에는 '사팔극', '활팔극'으로 부른다. 창현에서는 '소팔극', '대팔극'으로, 혹은 '소가자','대가자'로 이른다. 왜 이름이 다른지는 논할 필요가 없다. '팔극권'이면 모두가 같은 것이다.

팔극권 - 유공운초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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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늑대(天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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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무술의 발경(發勁)


몇년전만 하여도 무술의 발경(주: 발력 이라고도 함)에 관한 이론을 보여주거나
시범을 하게 되면 속임수에 의한 허무맹랑한 것으로 여기며 미친 사람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무술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시대인 만큼 미국 일본을 비롯해 여러나라에서
발경의 이론이 인정되고 있다

상대가 공격을 가해왔을때 그 공격이 펼쳐지는 마지막 단계가
가장 위력적이고 최대한의 효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그렇기에 방어를
하려면 공격을 시작하는 순간이나 진행되고 있을때에 하게 된다

상대가 방어할수있는 이유는 확실한 거리에서 손과 발을
구부렸다가 펴면서 치거나 차고 큰 동작으로 휘둘러 사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어가 곤란하고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어떤 것인가를 연구하게 되었는데 상대와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공격할수있는 방법이 촌경(寸勁)이며 거리가 제로
상태일때 타격이 가능한 방법을 분경(分勁)이라고 했다

이소룡이 롱비치에서 시범보였던 1인치 펀치가 바로 영춘파의 촌경인 셈이다

발경거리에 따라 척(尺) 촌(寸) 분(分)으로 나눈다
또 다른
분류 방법으로 명경(明勁) 암경(暗勁)이라는 말을 쓰는데
척(尺)경을 명경이라고 하며 거리와 동작이 큰것을 말하고 이와
대조적으로 거리가 아주 가까운 촌(寸) 분(分)경을 암경이라고 하는데
그 위력은 동일하다

팔극권 아키라 천장

발경암경(주:암타)이라고도 하는데 그 위력이 동일하다.
발경은 각개의 문파에 따
라서 그용도나 방법이 다르고 경을 발휘하는 경도(勁道)의 구성이 다르다

암경은 형의 태극 팔괘 그리고 팔극 등 주된 공격형태가 접근전으로 되어
있을때 필요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당랑권과 같은 권법은 중거리 전술을 중심이므로 암경과는
다른 발경법을 쓴다

본래 당랑권은 대단히 신속한 신법(身法) 동작을 요구하며
공방의(攻防) 중에 환수(煥手)를 포함한 속도 속에서 대타중심의 수련을
할때만 상당한 위력을 내게 되는데 이것을 자연경(自然勁)이라고한다

이는 순전히 척경(尺勁)이고 속칭 탄황경(彈簧勁)이라고도 한다
그 기본적인 원리는 급속한 신법의(신법)의 전개와 가속도를 얻은
권(拳) 각(脚)의 타출(打出)로 이루어지는데 이를 십자경(十字勁)라고 칭한다

십자경은 명경의 일종이기는 하지만 엄밀하게는 명 암의중간적인 위치에 속한다
당랑권의 붕추(崩錘: 滴星煥頭)와 형의팔식권(八式拳)의 주저천추
팔극권의 궤슬에서 편춘각(編椿脚)에 이르는 수법이나 번자등은 모두
같은
원리로 이루어져있는데 팔극권에서는 개경이라고 부른다.
(주: 실제 팔극권에서 개경(개합경)과 십자경은 구분됩니다)


책상 위에 구슬을 놓고 엄지와 둘째 손가락을 이용하여 둘째손가락으로
튕겨 낼때의 원리가와 같다 엄지와 둘째손가락을 맞대고 힘을 넣은 다음
엄지를 때면 엄지가 아래로 내려가고 둘째손가락이 튕겨 나간다
이때
엄지에 비유할수 있는 것이 방어에 쓰는 봉안(封按)의 손이며 둘째손가락의
원리에 해당되는 것이 타격하는 손이다

당랑 팔극 형의 등의 상대가 공격해 들어오는 순간에 반격을 하는데
이때의 충격은 예상보다 커지게 되며 이것을 병경이라는 그원리는
정지된 상태의 물체가 받는 충격이 큰 것과 동일하다

팔극권 정심주

한손으로 물체를 잡아 끄는 것보다 허리 뒤로 감아서 양손으로 밀고
당기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이런한 워리를 이요한 것이 권녕경(圈寧勁)이며
십장요음각(十字요陰脚) 칠성보추(七星補추)등이 이에 해당되고
태극권의 도권굉(도捲肱)팔극권의 퇴보벽박(退步劈樸)의 원리도 같다

발경에는 체중이나 신체중심의 무겁고 가벼움과는 무관한 관계에 있다
발경의 연습에서는 특히 신체의 중심을 낮춰야 한다
낮추는
자세와 함께 비틀어 공격하는 것을 침신경(枕身勁)(주: 침추경) 
전사경(纏絲勁: 神絲勁) 이라 하는데 실제로는 침추 전사 십자(十字)가 함께
존재한다

작용 반작용탄성(彈性)을 최대한 이용할수 있는 자세에서
발경의 위력을 발휘할수 있다 영춘권의 측신마(側身馬)
팔극권의 반마식(半馬式) 형의권의 삼체식(三體式)은 모두 같은
자세라고 볼수 있으며 지르는 순간의 중앙은 뒷족의 1/3 지점에 있게 된다

팔극권이나 형의권의 공통된 원칙이 있다면 바로 관성을(慣性) 이용한
보법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달리는 자동차가 급정거를
한다면 그 탄력에 의하여 앞쪽으로 모든 것이 쏠리게 된다
이런 원리를
이용하여 충격을 크게 하는 보법으로 발전 되었다

이외에도 각문파에 따라서 찰과경(擦과勁)이라든지 진진경(震振勁)등의
여러가지 용어가 있다

초급 단계방경(放勁)이라고 부르는데 상대를 치면 상대가 뒤로 튕겨나가거나 쓰러지게 되며

중급 단계의경(意勁)이라하는데 상대가 앞으로 쓰러지게 된다

고급단계사경타법(死勁打法)이라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다

발경의 이론 가운데 또 양경(陽勁)과 음경(音勁)이 있는데 양경은
큰동작의 공격이며 음경은 작은 동작의 공격이다
거리에 따라 명경
암경과 흔히 혼동된다

발경은 말이나 글로써 표현하기 아주 어렵다

그래서 고대의 사람들은 이런 말을 남겼다

"축경(蓄勁)이란 활시위를 잡아당긴것 같으며 발경이란 화살이
시위를 떠날때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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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늑대(天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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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2006년 7월경에 네이버 무예동에 올렸던 저의 글 입니다.

은빛늑대 입니다. 

그동안 길다면 긴시간동안 무예동과 함께 해 오면서 그다지 많은 글을 올리지는 못한거 같습니다.

사실 어쩌면 무예동과 같은 온라인 동호회에서의 글의 파장이 생각보다 꽤 크다는 것을 알기에 짧은 지식과 경험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글로 적는것이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란 것이 맞을겁니다.

며칠전 사쉼님이 올린 글을 읽고 한동안 곰곰히 생각해 보았고, 그래서 앞으로는 미력하나마 제 생각과 경험들을 올려볼 생각입니다.

이유는 아직 저보다 수련경력 짧거나 초보자 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고, 그분들에게 부족한 글이나마 수련에 도움이 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잡설이 길었네요.

'현대사회에서 무예수련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는 무예 수련을 하는 수련생이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의문일 겁니다.


수련의 이유는 각양각색으로

'단지 강해지고 싶어서..'

'독특한걸 배워보고 싶어서..'

'수련하는것 자체가 좋아서..'

등등 개인마다 다른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 입니다.


또한, 이유는 시간이 지남에따라, 수련을 해감에 따라, 나이가 듬에 따라 변하게 됩니다.

학생때는 아무래도 '강해지고 싶다' '맞고 다니기 싫다' '당당하고 싶다'의 이유로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었을때 같은 이유가 무술수련의 의미를 찾기 힘들것 입니다.

이유야 어쨌든 현대사회는 몸을 맞대고 주먹질을 하기 쉬운 그런시절은 이미 지났고, 사실 지금의 무술수련이란 것은

비주류들의 취미로 치부될 만큼 보통사람들은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시점에서 성인기준으로 현대사회에서의 무술수련의 이유가 아닌 의미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물론 '의미따윈 필요없어...단지 좋아서 하면 그뿐이지...'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분명 있을것이라 생각되지만...

수련의 이유뿐만 아니라 그 의미 또는 가치를 인식하게 되었을때, 앞으로의 수련방향과 더 나은 자기자신을 고찰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저 역시 고민해 본 부분이고... 

극단적으로는 '차라리 조금 더 일찍 무술이 통용되던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황당한 상상도 가끔하긴 합니다만...

지금은 어느정도 정립이 되었기에 얘기해보려 합니다.

결론적으로 현대사회에서 무술수련의 의미

"건강은 물론 수련을 통해 생긴 자신감을 바탕으로 사회생활에서의 당당함과 그로인한 적극적인 도전으로 자기발전과 성공을 위한 밑거름"

으로 정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누구나 남들보다 무엇이든지 내가 더 잘하는 것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비단 그분야가 아닌 다른분야의 일을 할때도 보다 당당할 수 있는 법입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이일은 당신보다 조금 못하지만, 특정분야에서 만큼은 당신보다 확실히 잘한다는 생각이 곧 사회생활의 자신감으로 이어지며, 나아가 새로운 분야의 일을 배우거나 할때도 더 능동적인 사고로 접근할 수 있게 되어, 결과적으론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 수 있는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어느정도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만, 무술수련이란 유니크적인 특성과 신체단련으로 인한 정신수련적인 면까지 확장시켜 본다면 더 나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현대사회에서 무술수련의 의미로 삶기에 충분하다는것이 나름대로의 결론이었습니다.

부족하나마 글을 읽은 후
현재 나름대로의 무술수련의 이유와 각자의 삶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련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슴 합니다.

                                                                                                              - 은빛늑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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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데코마(Conde Koma) 마에다 미츠요


1. 마에다 히데요-전설의 시작.

콘데코마_마에다 미츠요 1



마에다 미츠요는 아오모리 현 출신이었습니다. 본명은 마에다 히데요였고, 강도관 입문후에 마에다 미츠요로 개명합니다. 유도의 본관인 강도관이 창립되기 2년전인 1880년에 태어났다고 합니다.(1878년이라고 기록된 자료도 있습니다.) 강도관의 창립자이자 유도의 창시자였던 가노 지고로와는 21살 차이죠^^ 아버지는 스모 선수로 이름이 높았다고 하죠. 비록 마에다 히데요의 체격은 작았으나 힘만큼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장사였다고 합니다.

 

사실 그의 유년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거의 없습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자료라는 게 별로 확실치 않습니다. (만화책 '콘데 코마' 때문에 그의 일대기가 꽤 잘못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사실 그 만화의 60%는 픽션이라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뭐 예를 들자면 양심류의 사무라이에게 양심류 유술을 배워 가노 지고로에게 복수를 하러 간다든가 하는 그런 내용 말이죠. 그런데 어떤 글에서는 이것이 정설인냥 설명을 하는 것을 봤는데 이것은 만화와 현실을 혼동한 것에서 오는 실수라고 생각됩니다.
실제 마에다는 가노에겐 굉장히 공손한 제자였다고 합니다. 만화책에서의 가노에게 허구헌날 시비거는 그런 이미지는 어디까지나 가상의 것이죠. 또한  앞서 설명 드렸듯 가노 지고로와 마에다는 21살이나 차이가 납니다. 게다가 강도관의 최강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사이고 시로요코야마 사쿠지로였죠, 가노는 마에다의 전성기에 40이 넘어서 이미 싸움을 받아줄 나이는 아니었던 것이죠.
특히 미국에서의 싸움 내용등은 다 픽션입니다.^^;; 마지막 상대로 등장하는 전설의 실전 프로레슬러 프랭크 고츠-최영의님이 직접 언급한 바 있는 강자중의 강자였죠.-와는 대결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한가지 더 아쉬운 점은 이 콘데 코마의 번역을 담당하신 분이 강도관의 상황이나 그런 부분에 대해 그다지 아는 바가 없으셨던 것 같다는 점입니다.
사천왕중 한사람인 야마시타 요시카즈-혹은 요시츠쿠라고도 합니다.-를 야마시타 기쇼라고 번역을 해 두었고 토미다 츠네지로의 이름을 토미다 헤이시로라고 번역해 뒀는데, 이는 일어식 이름을 잘못 읽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모 스포츠 신문에 나왔던 마에다 미츠요에 대한 글에도 야마시타 기쇼라는 이름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글 쓰신 분이 만화책의 자료를 너무 믿으신 듯 합니다. 근데 지금은 어찌된 일인지 그 이종격투기 칼럼이 사라져 버렸더군요.)

 

콘데코마 만화책 1

확실한 것은 마에다 미츠요는 양심류 유술을 어릴때 배웠다는 것인데요, 이것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는게, 그 당시에는 강도관 유도가 아니라면 도츠카 양심류가 거의 모든 유술계를 장악하고 있던 시절입니다. 자연스럽게 양심류 유술을 익히게 된 것이죠. 그러나 양심류와 그의 분파들...예를들면 양이심두류같은 유파들은 타 유파의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신들의 기술만 고집하는 폐쇄적인 성향이 있었습니다. 필요한 것이라면 오키나와의 가라데까지 받아들이려 했던 가노 지고로의 강도관에 지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운명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결국 마에다가 강도관에 입문할 무렵(1897년)에는 1890년에 열린 강도관 vs 양심류의 경찰청 유술대회에서 요코야마와 사이고의 활약으로 양심류가 패배하면서 이미 양심류 유술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는 처지였습니다. 마에다 미츠요는 작은키(165라고 하는 기록도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보이고, 160이 안되는 키였다는게 정확한 자료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당시 일본에서 165라면 표준보다 큰 키입니다. 일본에서 작다고 소문날 리가 없는 것이죠.)에도 불구하고 천부적인 자질로 강도관에서 4단을 획득합니다. 지금의 브라질 유술의 승단 난이도와 이 당시의 강도관의 유도 승단 난이도는 비슷했으므로 20세도 안된 나이에 4단이라는 것은 엄청난 실력이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2. 강도관 4천왕과 마에다 미츠요.

 

다른 쪽 자료에서는 마치 이 4천왕과 마에다가 다 함께 강도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하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한 사천왕의 이름도 틀렸더군요. 우선 4천왕을 알아보면 사이고 시로, 요코야마 사쿠지로, 야마다 츠네지로, 야마시타 요시카즈(루즈벨트의 유도사범, 사천왕중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강도관을 지키며 10단을 추증받은 인물이며 가노 지고로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일컬어지는 인물입니다.) 인데, 야마다는 이후 토미다가의 양자가 되어 토미다 츠네지로로 개명하게 됩니다.  토미다 츠네지로의 아들인 토미다 츠네오는 바로 그 유명한 유도소설 '스가타 산시로'(강도관 역사상 최강의 사나이이자 위의 사천왕 중 일원이었던 사이고 시로를 모티브로 만든 소설)의 저자입니다.

 

특히 이 중에서 단연 강자라고 불리던 사이고 시로의 경우 강도관을 일본 최강의 무도관으로 키운 장본인으로써 수많은 타류시합에 단한번의 패배도 없었고, 그 누구도 메칠 수 없었던 엄청난 균형감각의 소유자였습니다.
가노 지고로 또한 자신의 글에서 "사이고 시로는 내가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고, 그의

콘데코마_만화책 2

메치기는 극한까지 이르렀다."고 극찬을 했었죠. 그런 그가 어느날 갑자기 중국으로 가 버린 것이죠(중국으로 건너가지 않았다는 설도 유력합니다.) 그가 가노 지고로에게 남긴 '지나 도항 의견서'는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마에다가 입관할 무렵엔 그는 이미 사라진 후였죠.
그러나 마에다 미츠요의 생김새나 성격 등이 사이고와 너무 흡사해서 다른 관원들이 신기해 했다고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콘데 코마를 보면 마에다 미츠요가 사이고 시로의 야마아라시를 구사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 또한 픽션입니다. 강도관 역사상 야마아라시를 구사한 사람은 사이고 뿐이었습니다. 이후의 유도가들 중 그 어느 누구도 흉내조차 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마에다는 이후 이 사천왕중 한 사람인 토미다 츠네지로와 함께 1904년에 미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미국 최고의 명문 사관학교인 웨스트 포인트에서 둘이 시범을 보였는데, 그 학교의 정식 종목이던 레슬링을 하는 사람들과 겨루게 되었습니다. 마에다가 승리하자 토미다도 도전을 받았는데, 본래부터 강도관 4천왕중 가장 약하다는 평가를 받던 사람인데다가 나이까지 40줄에 있어서 레슬링 선수에게 제압당하고 맙니다. 이에 다시 마에다가 나서 그를 쓰러뜨렸다고 하죠. 이후 마에다와 토미다는 헤어져서 각자 유도를 가르치러 다니게 되는데 프린스턴 대학에서 잠시 강의를 했다고 합니다만, 워낙에 궁색한 생활을 하게 되고 보다 강한자와 싸워보겠다는 스스로의 결심을 지키기 위해 스트리트 파이트로 뛰어듭니다.

 

3. 뉴욕등 미국에서의 스트리트 파이트

 

흔히들 이 까페에서 하는 논쟁 중에 실전과 무도라는 것이 있는데, 마에다 미츠요는 이 실전이라는 것을 무척 중요시 여겨, 날짜를 잡고 싸우거나 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합니다. 특히 당시의 갱들과도 마찰이 잦았는데 마에다는 그들과 싸울 일이 있으면 그자리서 두들겨 패고, 밥먹다가도 나가서 싸우고, 길가다가 싸우고...하루에 두세번 싸운 일도 예사였다 하며 상대방들은 칼이나 병을 기본으로 들었다고 하죠. 당시의 미국의 치안 상태는 극도로 나쁜 때였고(갱스 오브 뉴욕이라는 영화를 생각하시면 될 듯, 물론 마에다가 건너간 것은 그보다

40년 정도가 더 지난 상황이었지만 1차 대전 전의 미국의 치안 상황은 남북 전쟁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하죠.) 그런 곳에서 싸움을 계속했으니 마에다 미츠요의 배짱도 알아줘야 할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권총 세례를 받은 일도 여러차례 있었다고 합니다.(콘데 코마 만화책에 나오던 이기면 1000달러라는 간판은 실제로 걸고 다녔다고 합니다.)  결국 미국에서 2000회에 이르는 스트리트 파이트에서 모두 승리하면서 미국에는 더 이상 적수가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요즘같이 치안이 좋은 시대라 하더라도 "I'm Maeda Mitsuyo, You can get 1000$ by defeating me!" 이런 간판 달고 다니려면 보통 배짱으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입니다. 이 때 마에다는 이 문구를 달고 뉴욕을 활보했다고 하죠. 그러나 처음에는 마구잡이로 달려들던 미국인들도 마에다의 무시무시한 싸움실력과 총알이 날아와도 달려드는 배짱에 기가 질려서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딜가나 무서운 인간은 존재하기 마련이죠. 바로 미국 최고의 괴력을 자랑하던 부쳐 보이의 존재였습니다. 아무런 기술도 없이 오로지 힘만으로 미국 전역을 굴복시켰던 스트리트 파이트의 최강자였죠. 이름나 복서이건 레슬러이건 이 남자 앞에서는 앞도적인 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만화 콘데 코마에서는 이 부쳐보이가 무슨 택견을 쓰니 복싱의 강자였다느니 하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작가는 태권도과 택견의 기원상의 차이조차 제대로 인식 못하는 오류를 범해 이 만화의 작품가치를 더욱 떨어뜨리고 맙니다.)

 

막상 시합이 정해지자 뉴욕 전체가 떠들썩 해지게 되었는데요, 아무도 마에다의 승리를 점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부쳐보이를 이기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190이 넘어가는 부쳐보이를 160도 안되는 마에다가 무슨 수로 이길 수 있을런지도 의문이었습니다. 강도관 미국 총 책임자였던 토미다 츠네지로만이 마에다가 충분히 이길 것으로 판단했다고 합니다.

 

시합링 위에서 스트리트 파이트가 아닌 레슬링 룰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넘어뜨리는 거라면 제아무리  미국에서는 힘이 천하장사라도 유도의 달인인 마에다 앞에서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것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죠. 순식간에 바닥에 몇번이나 패대기 쳐 진 부쳐보이는 결국 다 필요없다며 스트리트 파이트로 달려들게 됩니다. 그러나 그 엄청난 거구가 공중에 160도 안되는 사나이에게 붕떠서 나가 떨어지는 장면은 미국인들에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그 순간에 이미 부쳐보이는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결국 이 시합은 싸움으로 변해 버리고 마에다는 이것이야말로 기다리던 것이었죠. 가능하면 유도룰이나 레슬링 룰로 싸워달라는 토미다의 부탁 때문에 마지못해 레슬링 룰로 하고 있었지만 스스로는 스트리트 파이트가 하고 싶었던 것이죠. 순식간에 부쳐보이에게 플라잉 암바를 걸어 그 자리서 게임을 끝내버리고 맙니다. 이 싸움을 통해 유도의 강함이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고, 훗날 루즈벨트 대통령까지 야마시타 요시카즈 선생에게 유도를 개인지도 받게 됩니다.

 

4. 본격적인 이종격투와 마에다 스타일의 확립.


(주: 마에다 미츠요와 가장 유사한 스타일의 격투가 힉슨 그레이시. 도복에는 일어로 적힌 힉슨 그레이시라는 글자가 눈에 띄죠. 힉슨은 스스로를 콘데 코마의 유지를 받드는 사무라이라고 늘상 강조하곤 합니다.)
 

콘데코마_마에다 미츠요 2

힉슨의 경기 모습을 보면 그의 아버지 엘리오와는 완전히 다른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엘리오의 판박이에 가까운 호이스와 비교해보면 간단합니다. 엘리오도 인터뷰에서 "힉슨보다는 호이스가 나의 유술과 닮은 것을 구사한다."라고 했는데, 그것은 힉슨이 호이스보다 유술실력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마에다에 가까운 플레이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원래부터 힘이 장사였던 마에다 미츠요는 완력을 요하는 메치기나, 강력한 스탠딩 레슬링, 그리고 누르기 등에도 능했는데 엘리오는 워낙 기본 체력이 약했던 관계로 마에다가 전수한 기술의 반도 제대도 구사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대신, 자신이 구사할 수 있다고 판단된 기술만큼은 엄청나게 연마해서 수많은 시합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만큼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도록 단련한 것이죠. 그러다보니 그의 유술 자체도 관절기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기술의 폭이 좁아지게 된 것이죠. 그러나 힉슨은 본으로만 존재하게 된 기술들 중 필요한 것을 다시 복원시켜 그의 기술로 만들었습니다. 기본체격과 힘에서 엘리오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힉슨이었기에 마에다의 유술을 복원하면서 자신에 맞추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죠.

 

이러한 이유로 마에다 미츠요의 플레이 스타일은 힉슨과 무척 유사했다고 하는데요, 발로 밟는 듯한 동작을 페인트로 넣고 치고 들어가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고 합니다. 그렇다곤 해도 기본적으로 그는 강도관 유도의 고수였고, 사이고에 이은 2대 최강자였기 때문에 메치기 실력도 굉장했다고 하죠. 때문에 공격 패턴도 변화무쌍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영국의 캐치 레슬링 대회에 참전하게 되는데, 도복을 입지 못하는 규정상 마에다는 결승에서 패배, 2번의 준우승을 기록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몇가지 싸움 패턴을 연마하는데 바로 도복이 없는 경우의 공격방식이죠, 낮은 테클 이후의 암바나 마운트 펀치 등을 연구하게 됩니다. 그레이시 패밀리의 공격 패턴은 마에다가 이 때 연구한 걸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엘리오는 마에다의 기술을 다 구사할정도로 튼튼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의 모든 기술을 전수받았던 카를로스 그레이시와는 달리 테클에 이은 관절기만을 집중적으로 연마하게 됩니다.(물론 익히 알려진대로 엘리오는 어린 시절에 워낙에 허약해서 마에다에게 직접 유술을 전수받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솔직히 엘리오의 전성기 시절 필름을 보더라도 메치기는 별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이 무렵에 마에다스스로 오픈 핑거 글러브를 고안해 냅니다. 상대를 보호하면서 관절기를 걸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글러브였죠. 그는 서로를 최소한의 룰로 싸우게 할 수 있는 발레투도를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고삼아 말씀 드리면 마에다의 타류 시합(무도인끼리 정식으로 날짜를 잡고 싸움) 전적은 1000전에 이릅니다. 캐치레슬링 결승에서의 2패를 제외하면 모두 이겼다고 합니다.

(주: 오픈 핑거 글러브는 마에다 미츠요가 원조격)
 

 5. 코마 백작 등장

 

콘데코마_마에다 미츠요 3

본시 마에다 미츠요세계를 돌며 자신의 강함을 입증하려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08년에 이르게 된 곳이 바로 스페인인데, 스페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체구가 여타 유럽에 비해 작은 편이라 체격에 열등감이 많고 성격이 화끈해 체격을 극복할 수 있는 격투술에 관심이 많습니다.(이건 제가 직접 거기가서 생활하면서 느낀 점입니다. 특히 제가 있던 그 조그마한 동네에도 태권도 도장이 있었습니다. 성함은 기억이 안나지만 태권도8단이라고 하시더군요. 한국인 사범님들이 스페인에는 정말 많습니다. 여기저기 널린게 무술도장이구요.) 그래서인지 스페인에서 마에다의 주가는 폭등하게 됩니다. 마에다는 보통 거기서 코마루라는 이름을 썼는데, 이는 마에다 본인의 호탕한 성격 때문에 수입을 왕창 써 버리고 평소에는 궁하게 사는 패턴을 반복하다보니 툭하면 '코마루... 코마루(코마루는 일어로 궁하다는 뜻입니다.)' 라고 중얼거려 친구들이 붙여준 이름이라고 하죠. 그런데 코마루는 어감이 별로 좋지 않아, 마에다는 그냥 코마라고 고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연전연승하자 스페인인들이 그에게 격투기의 귀족이라는 의미에서 백작이라는 별명을 붙입니다. (Conde-정확한 발음은 꼰데 입니다-는 스페인어로 백작이라는 뜻입니다.)

 

6. 브라질, 그리고 그레이시 패밀리


(주: 마에다 미츠요가 제2의 고향을 꿈꾸던 아마존)
 

1915년에 브라질 베렌이라는 곳에 마에다는 정착을 하게 됩니다. 1927년에 일본 기업들은 아마존의 토마사수라는 지역에 대규모 이민을 위한 도시를 건설하는데,  마에다 또한 중요한 인물로 끼어들게 됩니다. 미국과는 달리 브라질은 이주를 장려하고 있었고, 특히 아마존 정글에 대해서는 아예 개발 촉진을 위해 일본인들의 진출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마에다는 바로 이 아마존 정글에 제2의 일본을 건설하고 싶었던 것이죠. 그러나 일본인들은 근본적으로 허약한 체질이었고, 마에다는 아마존의 말라리아의 무서움을 너무 간과했던 것이죠. 스스로는 강골이었기에 그런 점에 둔감했던 것일 수도 있구요.

 

 그 계획이 틀어지고 일본인의 이주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많은 낙담을 하고 이주민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만을 하게됩니다. 그러면서 현지 유력인사들과도 친분을 쌓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카를로스 그레이시의 아버지 가스타우 그레이시였던 것이죠. 그레이시 가문은 원래 스코틀랜드에서 건너온 가스타우의 할아버지인 조지 그레이시가 그 시조라고 합니다.
당시 스트리트 파이트 같은 걸로 여러가지 말썽을 부리던 장남 카를로스 그레이시를 그의 아버지 가스타우가 도장에 데려오면서 그레이시가문의 전설이 시작되게 됩니다.(힉슨의 아버지로 유명한 엘리오 그레이시는 11살이나 어린 동생이었습니다.)

 

7. 왜 유술이라고 부르는가?

 

글을 읽다보면 마에다는 유도가인데 왜 그레이시는 유술을 칭하게 되었는가? 하는 궁금증이 드실 수 있습니다. 강도관 유도는 강도관이 제 궤도에 오르게 되자 일체의 타류 시합을 금하게 됩니다. 마에다 미츠요는 그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스스로를 파문시켜 버린 것이죠. 그래서 유도라는 명칭을 스스로 봉하고 유술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 그레이시의 유술은 일본 유술이 아니라 유술을 체계화한 유도에서 온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일본의 정통 유술에 있는 관절기보다 브라질 유술의 관절기가 더욱 다양하고 강력한 것이죠.

 

어떤 글에는 브라질 유술에는 하체 관절기가 없다는 둥 엉뚱한 의견을 제시하면서 브라질 유술의 한계를 논하는 것을 봤는데, 그것은 브라질 유술의 기원을 잘 모르면서 비판을 하려다보니 생긴 일입니다. 일본의 고류 유술에는 물론 하체 관절기가 없지요. 그것은 전장에서 무사들이 하체 관절기를 썼다간 상대가 칼로 내리칠테니까요. 전장용 살상무도인 일본의 고류 유술에는 당연히 필요없는 기술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브라질 유술은 일본 고류 유술이 기원이 아니라 유도가 기원인 무도입니다. 엄밀히 말해 브라질 유도인 셈이죠. 스승인 가노 지고로와의 의리를 지키려는 마에다의 사정에 의해 명칭만 빌려썼을 뿐, 고류 유술의 브라질 변형판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유술의 체계화를 이룬 유도에선 이미 맨손 격투를 상정한 하체 관절기가 만들어져 있었다고 하죠. 제대로 본으로 정립된 것은 아닙니다만.(원래 유술 유파들 중에는 하체 관절기를 가지고 있었던 유파가 있기는 했었던 듯 합니다. 그러나 힐 훅같은 그런 고급적인 형태는 아닌 듯 합니다.) 또한 마에다캐치레슬링, 프로레슬링 등과의 대결을 통해 하체 관절기를 본격적으로 연마해서 체계화 시킵니다.(물론 이후에 레슬링 쪽의 하체 관절기도 도입되었다 합니다.) 그것은 당연히 그레이시에게 전해졌지요. 브라질 유술에 하체 관절기가 없다는 주장은 브라질 유술에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콘데코마_마에다 미츠요 4

 

8. 마에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아오모리.

 

40여년의 타지 생활 끝에 그는 두번의 결혼을 하고 브라질에서 노후를 보내게 됩니다.그러나 그의 생활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첫번째 아내였던 프랑스계 여성은 딸까지 낳았지만 그 딸이 2살 되는 해에 둘 다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리고 44세 되던 때에 스코틀랜드 계의 여성과 재혼을 합니다. 일본 정부에서는 1940년에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고 교통편까지 주선해 주었지만 마에다가 거절했다고 합니다.

 

너무나 돌아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는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마에다는 스스로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두번째 아내였던 스코틀랜드 계의 여인이 마에다가 자신을 버릴까봐 마에다의 일본행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죠. 당시 브라질 현지에서 타국인과 결혼한 일본인들이 일본에 가고나서는 돌아오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 했었다고 합니다.. 교통 사정도 무척 나쁘던 시절이고, 브라질이 그렇게 살기 쾌적한 곳도 아니었고 치안도 일본보다 훨씬 나빴죠. 무엇보다 워낙에 병약했던 아내였고, 마에다 또한 워낙에 깊이 사랑했는지라 그는 곁에 있어달라는 아내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 아내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일본행은 입 밖에도 내지 않고 평생을 보낸 것이죠. 남자중의 남자라 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스승 가노의 유도를 스트리트 파이트와 타류시합에 사용했던 자신에대한 죄책감도 한 몫 했을 수도 있을 것 같구요.)

 

결국 마에다 미츠요 본인은 그의 고향 아오모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브라질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인은 신장 질환이었다고 하는데, 브라질등의 남미쪽은 원래부터 수질이 썩 좋지 못합니다. 수도 시설과는 관계 없이 기본적으로 지하수나 강물의 수질이 우리나라의 것보다 많이 못한 편이죠. 특히 어린 시절을 남미에서 보내고 온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눈가에 주름이 굉장히 심합니다. 마에다 또한 이런 것들의 영향 탓인지 신장에 이상이 온 것이었죠.

 

폭풍처럼 살아간 그가 마지막 순간에 남긴 말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고국의 물이 먹고 싶어..."

 

결국 죽음을 눈앞에 둔 마지막 순간에 고향인 아오모리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던 것이죠.

 

그리고는 그의 제2의 고향 브라질 베렌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 후 50년, 마에다가 남긴 마지막 유산그레이시 일족은 최강의 무도집단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등장하게 됩니다.


 

부록

 

유술? 주짓수?

 

먼저 주짓수라는 것에 대한 용어 정리부터 해야겠군요.

 

주짓수란 엄밀히 말해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유술(柔術)의 원어 발음인 일어식으로는 쥬짓츠(츠와 츄의 중간 발음)가 됩니다. 이걸 마에다 미츠요가 영어(JIU-JITSU)로 표기한 걸 그냥 영어식으로 읽어 주짓수라고 읽은 것이죠.(처음 표기한 마에다와 읽는 카를로스 그레이시의 읽는 방법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이 유술이라는 무도는 일본의 것으로써 5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이걸 흔히
고류 유술이라고도 하는데, 관절기, 차기, 지르기, 메치기 등 전장에서 쓸 수 있는 격투기술을 다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의 고류 유술엔 힐훅이나 니바와 같은 관절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장에서는 쓸 수 없는 관절기이기 때문입니다. 다리를 붙드는 순간에 칼에 찔려버릴테니까요.)

이 고류 유술은 유파만해도 200개가 넘고 각자의 특색을 지니고 있었습니다.(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도 고류 유술들이 등장했는데, 하체관절기가 나온 것이 옥의 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걸 주짓츄라고 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야와라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도 '야와라(일본어로 부드러울 '유'를 의미)'라는 이름의 무술로 들어왔는데 아직도 야와라 도장이 몇군데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합기도 유파중 절반 정도가 바로 이 야와라에서 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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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늑대(天狼)

MIXI (Martial arts, Investment in stocks X Information tech) World...since 2008


진정한 무술을 배우려는 자들에게
                                                       
                                                                  - 유운초(劉雲樵) 노사(老師)


- 신창 이서문의 정식제자로서 유명한 유운초 노사가 작년 여름에 武
檀日本分會의 설립에 맞추어 방일한 것은 전 호의 무술에서 알린대로
이다. 그때 유사범은 일본분회 학생들에게 수차례에 걸쳐 강습회를 개
최했다. 무술을 배우는 자들이 지켜야할 준수를 말하고 또, 학생들의
질문에도 부담 없이 응답했다.

팔극권 유운초 선사팔극권 유운초 선사 (이미지 출처 www.wutankorea.co.kr)

 여기서는, 그 유사범의 강습회 안에서 몇 가지를 발췌해서 소개하겠다.
무술을 배우는 모든 자들, 이제부터 무술을 배우려고 하는 자들에게도
큰 참고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 참된 무술과 문(門) 


 무술을 배우기에 있어서 우선 이해해야 할 것은 문(門)이란 관념이다.
문파(門派)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관념이다.

각 문파(門派) 에는 제각기 대표적인 것이 없어서는 안된다.

즉, 그 문파의 무술이 가지는 독자성인데, 그것은 기식(起式)을 시작하는
처음 동작에서 모두 나타나야 한다.
기식(起式)은 그 문파(門派)의 대표적인 동작인 문( 門 )을 표현한 것이
어야 한다.
 
나(유운초)는 일찍이 사부 4명한테서 네 가지 무술을 배웠다. 예를 들면
팔극권, 그 문파를 대표하는 것 -팔극권의 기식-은 이런데다가 (시범을
보이며), 연청권, 당랑권, 팔괘장, 각각 기식은 이러하다. (시범을 보이며)
또 태극권은 이러하다... 이들은 즉,. 개개의 무술의 문(門)이다.

마치 각 가정, 가족, 남편에게 있어 대표적인 것으로, 예를 들면 가문이나

격식이 있듯이 그 문파를 대표하는 것이다. 만약, 남편 문파에 그 특징을
짓는 문(門 )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문파라고 부를 수 없으며, 집에 문(입
구)가 없는 것과 같고, 무술에서는 그 무술을 학습할 때 결국 입문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또, 만약 그 문파의 무술을 내 보일 때, 그 문이 가진 독자성, 특징이 표
현되지 않고 다른 것과 구별할 수가 없다면 그 공부(공부)는 죽는 거나 마
찬가지다.

사람이 각자 개성이 있고 특징이 다르듯이, 무술도 또, 각자의 문파의 성

격, 특징이 다르다. 우리들 무술은 각자의 문파의 성격, 특징을 먼저 이해
하고, 그것들이 가진 의미를 전달하지 않으면 그 무술은 전혀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특징이 다른 각자의 문파이지만 그 응용, 사용
에 있어서는 최종적으로 많이 닮아 있다. 즉, 내측에 함유하는 [동서(東西)]
-기술의 초식을 나타냄- 는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그것을 표현할 때의
전달방법이 크게 달라져 내려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소림권의 초식, 태극권, 팔괘장, 형의권, 당랑권....이와 같이 각
자 표현은 다르지만안에 함유되어있는 [동서(東西)]는 약간의 차이는 있
어도 서로 닮은 것이다.
-이하, 용법분해 설명

또, 어떤 기법, 초식 중에도 [솔( )-내던지다, 타(打), 금나(擒拿)-관절기
꺽기] 3법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안된다.
- 이하 동일기법에서의 [솔, 타, 금나]의 응용분해 설명

그리고, 어떤 동작 중에도, 용법, 응용기술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
은 무술이라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응용동작은 반드시 정확해야한다. 부
정확한 동작 안에는 용법은 존재하지 않고, 아무리 그것을 연습해도 평생
사용할 수 없다. 소위 [(形不正), (則法不存)]- 형태가 정확하지 않으면 존
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다. 어떠한 보법(步法), 신법(身法), 수법(手法)중
에도 용법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올바른 무술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손,
발, 신체 각 어느 부분도 소홀히 하면 안된다. 손을 예를 들어보자. 손가
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엄지손가락이다. 물건을 잡아서 집어 들 때, 꼭
엄지손가락을 쓴다. 엄지손가락이 없으면 능숙하게 집을 수도 없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따라서 수법(手法)에서도 엄지손가락은 반드시 세워서
표현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옛날 강호(江湖) - 일본에서 말하
는 야쿠자의 세계- 에서는 엄지손가락을 감추는 것을 예의로 했다. 이유
는 엄지손가락을 내는 것은 대면한 상대에게 [자신은 도움이 되는 자] 라던
가 [상대방에게 살의가 있다] 란 뜻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겸허를 제
1의 덕으로 하는 강호에서는, 자기를 크게 표방하는 행위는 가장 혐오 받
았다. 따라서, 이런 관습이 있는 강호에서 발생하거나 또 그 안에서 익혀
진 기술은 모두 그 관습에 따르고, 손을 내밀 때 엄지손가락을 감추듯 변
화해 버렸다. 따라서, 손을 내밀 때 엄지손가락을 꺾듯이하는 무술은 강
호(江湖)풍이 매우 많이 베어 있음을 배제 할 수 없다.
 

우리들 무림 (무술계)의 사람들은 그런 관습도 없는 데다, 엄지손가락은
필히 사용해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므로 꼭 세워서 표현해야 한다. 옛날의
강호(江湖)풍을 익힐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들 무림계(武林界)는 무술에 종사하는 자로서 긍지를 가지고 강호(江
湖)나 흑사회(黑砂會)-야쿠자나 비밀조직등을 주체로 하는 사회-를 따라서
는 안된다.
 정통무술을 배우는 우리들은 이런 강호나 흑사회의 악습은 필요 없는 것
이기 때문이다. 강호에서의 무예 자나 흑사회, 비밀조직원이 행하는 무술
기법과 우리들 무림계의 무술은 근본적으로 전혀 틀린 것이다. 이 점도 충
분히 주의해서 해 나가야 한다. 

       무단팔극권 유운초 선사님의 휘호
                              유운초 선사님의 휘호

● 무술을 배우는 자가 지켜야할 세 가지 준수

중국무술은 도(道)를 중시한다. 여기서 말하는 도(道)란 인도(仁道)를
말한다. 인(仁)-착하다, 만물을 낳다-이란, 덕성(德性) - 어질고 성실한
성품- 이 없으면 도(道)가 될 수 으며 배움에 가치가 없어진다. 무술을
배우는 목적은 수신(修身)과 양성(養性)-생명의 근본을 키우다- 에 있지,
남을 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수신과 양성이 무술을  배우는 가장 기본
적인 조건이 된다. 수신의 목적은 신체를 단련해서 사회와 각 가정, 가족
을 이롭게 하기 위함이다. 건강한 신체가 없으면, 머리로 어떤 일을 생각
해도 실현가능성이 적어지고, 공(空)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나는 여기 모
인 젊은이들에게, 신체를 단련하는 것을 희망한다.
그럼 어떤 식으로 단련하면 좋은가 하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무술을 배
우는 자는 이하 세 가지 사항을 꼭 알아야 한다.

첫째, 성리(性理) 자신의 생리적 면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일, 하는 일을
건강하게 잘 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제 1이다.

둘째, 역학(力學) 어떤 동작, 자세라도 역학적 법칙에 들어맞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역학적 법칙에 거슬린다면 상대를 쓰러뜨리기 전에 자기가
자신의 동작에 엎어져 버리고 말 것이다.

세 번째는 응용(應用)이다. 어떤 자세든지 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각각 수법에 둘 수 있는 응용을 모르면 안된다. 그리고 그 응용에
있어서도 그 방법은 결코 성리(性理) 및 역학(力學)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무술을 배우기에 있어, 모든 동작과 자세를 지금 말한세 가지 사항에 들어
맞는지 어떤지 확인해야한다.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면 무술을 배워서 신체에 악영향을 끼치는 일
은 결코 없을 것이다.

이상이 여러분에게 바라는 내 희망이며, 금회 강연회의 전언이다. 그럼 여
러분에게서 받은 질문에 대답하겠다.

● 외국인이 중국무술을 배우기에 있어 주의해야 할 점은....

-우리들은 모두 동양, 동방, 아시아인이다. 아시아인의 체능(體能)은 동일하
다. 생리 관습, 상태등 각각 조건은 같다. 따라서 인간으로서의 운동량도 같
다. 서구인들과는 체격이나 성격이 틀리다. 중국의 무술은 아시아인의 무술이
다. 결코 중국인만의 것이 아니라 아시아인 모두가 배우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시아인을 향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점을 잘 이해해 주기 바
란다.

중국무술은 그것이 무(武)의 술(術) -굳세어지는 수단- 으로 제안해서

볼 때 방신(防身), 살인의 기술은 반드시 들어가 있다. 현대에 이르러 중국의
무술은 수신과 양성의 면이 표출 되어 오고 있지만 본래 무술은 살인의 기술에
서 편출 되어 온 것이다.(방신-자신의 능력으로 방어하다) 따라서 품덕(品德)
이 없는 자에게는 결코 그 기술을 전하려고 하지 않았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무술을 매우는 목적은 수신, 양성이나, 또 하나는 방신
이란 면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싸움을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라, 만일
에 대비 스스로 몸을 지킨다는 뜻이다. 그것은 최종적으로 수신에, 그리고 양
성에 연결되어간다.

지금 여기서, 중국무술과 서양에서 생긴 소위 스포츠와 비교해 보자
중국무술은 추구성을 가지며 시간적이지 않아 도(道)를 가지며, 연령에 구애받
는 일이 없다. 반대로 서양의 스포츠는 한 가지 운동이며, 일정한 나이를 경계
로 해서 그 능력을 잃어 가는 것이다. 그것은 즉 생리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물을 끓이는 것과 같고, 100도이상 온도를 올리
려고 하면 물은 수증기가 되어 물 자체량은 줄어들고 결코 100도를 넘지 않고
결국 맨 나중에 텅 비어 버린다.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50이 되어서도 60이 되어서까지 제 1선에서 활약하는 일
은 매우 어렵지만, 우리들 아시아 무술에 있어서는 50, 60이 전성기 완숙기라고
조차 말할 수 있다. 그리고 60부터 70이 되어도, 한번 쌓아둔 역량은 떨어지는
일없이 오히려 점점 나이와 함께 연마되어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이야기를 원래대로 돌려 말하면, 이 무술이란 것은 결코 중국인만의 것이 아니
라 우리들 아시아의 문화이다. 따라서 우리들 아시아인간은 누구든지 이것을 추
구하고 연구해 갈 수 있다.

단지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조건이 무엇인가를 말하자면, 그것은 끝까지 추구, 연구해 가려함이며 그것들을
가지고 보호하고 유지해 가는 일이다. 그렇게 함에 따라 처음으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렸는가 이해할 수 있게되는 것이다. 무술이란, 그것을 맹목적으로 신앙
하는 일이 아니라, 다방면에서 추구하고 연구하고 활용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고,
문화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존재가치가 나오는 것이다.
무술의 추구 연구에 대해서 중요한 것을 한가지만 말하자면, 그것은 정(靜)과 동
(動) 두자로 나눌 수가 있다. 정안에 동을 추구하는 일, 즉 정중구동(靜中求動)이
며, 거기서 점차 동중구정(動中求靜)으로 이동해 가야 한다.

                      

● 공부(功夫)와 공력(功力)과는 어떻게 틀린가?

공부(功夫)란 시간(時間)이라는 말이고 공력(功力)이란 무술을 연습할 때의 표현
이다. 시간을 들일 때, 시간이 있을 때, 그것이 공부(功夫)이다. 공부(功夫)가 있
나 없나 하는 것은 시간이 있나 없나(얼마나 오랜 시간을 투자했는가)에 달려있다.
무술의 표현이 좋지 않으면 그것은 즉 공력(功力)이 없다는 셈이며 표현이 멋지다
면 공력(功力)이 있다는 셈이다.
예를 들어, 권법을 할 때, 그 치는 방법이 도리에 맞으면 공부(功夫)가 있다고 해
석하고, 그 표현이 좋으면 공력(功力)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 무술의 일상생활화에 대해서....

무술을 배운다는 것은 앞에 말했듯이 수신과 양성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기 신체를 보호하는 일이며, 건강을 지키고 정신을 안정시키
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 있어 규칙 있는 생활을 하며, 자기 신체에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루 24시간 중 8시간의 수면, 8시간의 일, 공부, 그
리고 8시간의 연습. 이 세 8시간을 정확히 나누어 사용해야 한다. 아침 오전 중에
는 공기가 맑을 때이다. 이 좋은 시간에 늦잠을 자서는 안된다. 자연계의 동물도
활동을 시작하고, 이 신선한 공기를 마신다. 우리들 인간도 이 중요한 시간을 낭
비해서는 안 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하급동물조차 하는 일을 따라가지 못하
는 것은 태만과 낭비일 수밖에 없다.

이른 아침 4시부터 8시는 활동, 운동의 시간이다.

오후, 점심시간은 휴식의 시간이다. 왜냐하면 이 때가 되면 공기는 점차 탁해지고
태양은 높이 떠 기온은 상승한다. 이때 인간은 조용하게 2시간 정도 휴식을 취해야
한다.
저녁 6시부터 10까지는 정(靜)과 동(動)이 서로 섞여 교환될 때로, 열기는 하강하
고, 탁한 공기가 조금씩 변화를 개시할 때이다. 이 때도 활동, 운동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10시를 넘기면 휴식, 즉 수면을 취해야 할 시간이다. 다음날 4시까지 신체의
긴장을 풀어 주어야 할 시간이다. 공기는 정체해서 탁하고, 만물은 탁한 기운을 밖
으로 뿜어내게 된다. 이 시간은 조용하게 휴식해야 한다. 이 시간에는 유해한 인간,
동물이나 벌레들의 활동이 시작한다. 바퀴벌레나 쥐, 박쥐등 은 밤을 기다려서 활동
을 시작한다. 따라서 이 시간에 휴식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자는 반드시 이 시간의 탁
기(濁氣)의 영향을 받아 나빠진다. 탁기가 정신, 심리면 에 큰 이상을 미치기 때문이
다.

이런 점을 모르고서 과연 무술을 배울 수가 있을까?

무술을 배우는 자는 이러한 자연계의 기(氣)에 대해 반드시 이해하고 또 그것을 좋

은 방향으로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한편 성(性)에 대해 콘트롤 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에게 욕망은 있기
마련이지만, 그것을 충분히 콘트롤 할 수 없어서는 무술은 배울 수가 없다. 욕정에
닿는 대로 행동해서는 결코 기질(氣質)을 양성할 수 없다. 무술의 목적의 하나로는,
자기의 기질(氣質)도 변화시켜 가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영웅(英雄)의 풍
격을 갖춘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을 알고 이해해서 무술을 익혀 연습하면 반드시 완성하고 성공하는 법이
다. 나는, 많은 젊은이 참된 무술을 올바른 방법으로 학습, 연습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바이다. 그리고, 아시아 문화인 무술을 다음 세대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전해
주기를 재차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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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늑대(天狼)

MIXI (Martial arts, Investment in stocks X Information tech) World...since 2008

신창 이서문 (神槍 李書文) 傳

이서문
중국무술 팬으로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근세에 실재했던 중국무술 역사를 통틀어 "최강으로 평가되는 실전무술가"
이서문의 이름은 창주의 창주일보 기자 안세화씨의 손으로부터 「체육보」라는 신문지상에 게재되었다. (주: 창현지)

그 전역을 소개한다. "신창 이서문전" 이다.


(1) 이서문 황서해에 입문하다.


창주현 동80?리, 맹촌은 중국팔극권의 발양이다. 전설에 의하면, 건륭초년, 스스로 「癩(라)」라 칭하는 익명의 도사가 맹촌에 홀연 듯 찾아와서, 어릴때부터 무예를 익히고 있었던 吳鍾(오종)에게 권술의 형(形)을 가르쳤다.
吳씨는 연습에 힘쓰고, 새로운 技를 도입하고 발전시켜, 차츰 독특한 품격을 가진 팔극권을 창시해낸다.
이 권은 몸을 바싹 적에게 붙여, 近身短打(접근전), 「十字勁」,「沈墜勁」,「纏絲勁」을 발경의 기본으로 하는 것으로, 중국의 무술계 안에서도, 극히 공격성이 풍부한 권이다.

청의 同治3년(西磨1864년), 이서문은 맹촌에서 남쪽 12?리(약 6km)떨어진 남량촌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권과 곤술을 좋아했지만 몸이 작고 허약하여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서문은 자신의 강한 氣性으로, 무예를 어떻게 해서라도 제것으로 하려고, 홀린 듯이 열중하여 연습하자「기가 미쳤다」고 불릴 정도까지 되었다.

라동에 황서해라는 팔극권 5세가 있었다. 대창으로 이름을 떨친 장극명의 제자이고, 일찍이 그 무공으로 6품의 지위를 받고, 嫡傳(정전)을 이었다고 들은 이서문은 달려가 땅에 넙죽 엎드려 스승으로 모셨다.
황서해도 가난한 집을 나와 어떤 큰 부자의 묘지기로 촌에서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이서문의 진지함과 품행바르고 똑똑하여, 임기응변이 아주 좋은 것을 보고,
이놈은 큰 인물이 될 것이다. 하고 열심히 팔극권과 육합대창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라동은 남량촌으로부터 4km정도 떨어져 있고, 이서문은 매일 노사를 찾아가 권을 연습하고, 끝나자「선생님, 앞으로는 저의 포단을 갖다놓을테니까, 옆에 놓아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황서해는 일부러 노한 목소리로「안돼!!여기를 어디라고 알고있는 것이냐..
엄숙한 장소다. 너는 지금까지처럼 밤에 찾아와라」하고 말했다.
이서문은 어쩔수 없이 석식후, 라동촌까지 걸쳐 가고, 2∼3시간 수련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황서해는 이서문이 라동의 묘지에 도착하는 시간과 귀가시간도 지정하였지만, 시간에 맞추려면, 달리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달리는 법도 스승에게 배운 몇종류의 走法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것은 스승이 의식적으로 이서문의 각력을 단련시키기위해 부과한 트레이닝이란 것을 알았다.

팔극권접근전을 가장 자신있어하고, 발경의 강맹함을 특징으로하는 권법이고, 정식으로는 "오씨개문팔극권"혹은 "개문팔극권"이라한다. "개문(開門)"이란 「적의문(방비하는곳)을 쳐서 연다(부순다)」라는 의미이다.

팔극권의 투로에는 팔극소가(소팔극권이라한다. 기초공력을 연습하는 것), 팔극(화경을 배우는 것), 팔극대타(대팔극권을 둘이 상대하여 연습하는 것) 등이 일반적이고, 거기에 육대개(六大開)(6종의 핵심이 되는 권기의 단계적 연습), 팔대초식(산타의 기법), 이 있고, 전승자에 의해 금강8식, 영수권, 팔극연환권, 팔극쌍괘권, 육주두, 4랑매 등을 연습한다.
또, 팔극권에는 6합대창법이 전해지고 있고, 근세부터는 벽괘장을 합쳐서 배우도록 되어있다.

이서문은 「창현지」및 「오씨개문팔극권보」에 의하면, 남량촌의 출신이지만, 이서문의 개문제자인
류운교 사범에 의하면 張? 출신.... 맹촌에서는 이서문의 스승은 황서해라 전해지고 있지만
류운교사범에 의하면 맹촌의 金家에서 이서문은 팔극문의 무예를 배웠다고 한다.
※류운교는 류운초의 옛이름..


(2) 이서문, 대창을 배우다.

묘지에는 한쪽에 오래된 대추나무가 자라있고, 가을이 깊어지면 잎이 떨어지고, 거칠거칠한 나무껍질이 한층 더 두꺼워진다. 황서해는 이서문에게 3m 남짓 되는 백랍수로 만든 봉 한자루를 주고, 노송을 겨냥하여, 좌우로 세게 때리는 연습을 시켰다. 매일 밤 고된 연습으로, 이서문은 허리와 팔이 아팠지만, 이를 악물고, 계속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힘들고, 정말로 긴 봉을 지탱할 수 없게 되어 황선생에게 말했다.
"선생님 이런 연습을 해서 실전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까? " 황서해는 "이것은 팔의 힘을 단련하기 위한 연습이다.
어떤 기술의 연습이라도 정말로 습득하면 도움되지 않는 것은 없다... " 라 대답했다.

대간(大杆)(긴 곤을 사용하는 곤술)」은 창주의 무예 가운데에서도 훌륭한 기술의 하나로
벽, 점, 추, 교, 제, ... 등의 위력이 상당히 크고, 곤 위에 수선을 붙이면, 대창이 되어 살상력은 보다 강화된다.
황서해는 오종정傳의 육합대창 창법을 남김없이 이서문에게 전했다.
이서문은 스승의 가르침을 잘 지키고, 고된 단련을 참아내고, 팔의 힘은 점점 강하게 되어
좌우, 상하 어느 쪽에서라도 오랜 대추나무의 두꺼운 껍질을 벗겨내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 1장 남짓 되는 봉끝으로 파종 후 흙을 누르는 돌 롤러를 들어올릴 수 있었고,
대창의 경력도 그 가감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날, 이서문이 대창을 메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오자, 이웃사람이 그의 창법을 엿보고, 同臣(이서문의 호), 대창도 훌륭하게 되었군, 하나 보여주지 않을 텐가? 」하고 말했다.
이서문은 "좋다" 하고, 대답하긴 했지만, 또 처음부터 투로를 반복하는 것도 귀찮아서 무언가 실제로 찔러주자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정원 안에 여기저기 찌를 목표를 찾아 돌아보았지만 적당한 것이 없었다.
방에 돌아와 문득 벽을 보니 파리가 무리를 지어있어, 창을 쥐고서 차례로 찌르자, 파리가 한 마리 씩 지면에 떨어졌다. 이웃사람은 죽은 파리를 주워, 벽으로 다가가 구멍이 뚫린 여부를 찾았지만, 창에 찔린 흔적은 없었다. 이웃은 이서문의 창을 「진실로 신기다」라고 치켜세웠다.
이서문은 보통 사람과 창으로 우열을 가릴 때 창끝은 바깥으로 하고, 봉 끝에 면을 두르고 적을 찔러 상대를 땅에 쓰러뜨렸다.
자신의 창자루와 상대의 자루가 교차하면 급히 쥐로 자루를 당겨 적을 앞으로 꼬꾸라뜨렸다. ....


(3) 천하제일 창

1920년, 이서문은 38세로 연경(현재의 북경)으로 무술인 수업을 나갔다. 천단(天壇)광장에서 십 수인의 무술가와 기술을 겨루고, 차례차례 이기고 있었다. 마지막에 "황"이라 하는 자와 대창을 겨뤘다.
황은 큰 몸집으로 힘이 세고, 창법에 숙달 돼있었으며,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둘은 하루 종일 시합을 계속하였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두 자루의 창이 부딪혀 교차할 적마다, 어느 쪽도 물러설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서문은 마침내 상대를 힘으로 누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깨닫고, 큰소리로 외쳤다. "죄송합니다. 손을 떼어주십시오..."
황쪽도 이미 폭포처럼 땀을 흘리고, 기력이 다하고 있었기에, 손을 멈추고 창을 당겼다.
이처럼 긴박했던 대전에는 결정적인 수법이 없으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이서문은 알고 있었다.

그는 맹촌의 팔극권 4세의 문인인 오린서(통칭 吳春아저씨)의 것을 생각해 냈다. 오 아저씨는 풍부한 경험의 소유자였지만, 괴짜라 남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서문은 거기에서 가르침을 청할 방법을 생각해내고 한쪽 권을 다른 손에 포개어 공수의 예를 취하며 황에게 말했다. 「선배, 연경을 떠나지 말아 주십시오, 다음달 오늘 다시 뵙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창을 메고 떠났다.

이서문은 창주에 돌아와 東南에 있는 史家에서 말에게 끌게하는 교차(轎車;옛날 사람을 태워 달리는 상자형의 가마)를 세를 내어 가마의 천장에 그의 대창을 꽃고 빨간 천에 「천하제일창」이라 쓴 기를 달고, 풍당당하게 맹촌을 목표로하여 차를 몰았다.
차부에게는 맹촌에 도착하면 3냥의 은화를 준다고 약속해 놓았다. 차가 맹촌의 북쪽 길에 이르자 이서문은 차부에게 「어떤가.. 내가 말한대로 큰소리로 외치는거다... 남쪽길까지 가면 은화를 두냥 더 낼테니까」라고 말했다. 차부는 소리를 높여 「촌에 계신 여러분!!! 길을 열어 주십시오!! 천하제일의 창이 납시었습니다. 」라고 외쳤다.

맹촌은 팔극권 명수의 산지이고, 큰 길가에서 이처럼 무예를 자랑하고 큰소리로 천하제일을 외치는 인물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팔극권 5세인 오회청(맹촌오가의 정계 ; 四世인 吳愷의 아들)에게 알리러 달려가는 자가 없을 리가 없었다. 당시 오회청은 21세로 혈기왕성한 연령, 보고를 받자마자 바로 이서문을 살폈다. 아무도 이서문과 다투려 하지않는 것을 보고, 부아가 치민 오회청은 "건방진놈, 이분의 대창에 걸리면, 네놈 따위는 벌레나 다를 바 없다"하고, 화를 내면서 집을 나갔다.

이서문은 일부러 차부에게 차를 천천히 달리게 하면서, 더 크게 소리를 높이도록 했다.
오회청은 멀리서 가마위에 있는 창과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보자마자 서서히 자신의 창을 큰길의 가운데에 놓고 옆에 섰다. 차부는 큰소리로 외치다가 문득, 길 한가운데 대창 한자루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뒤돌아 가마안에 있는 이서문에게 고했다. 「내려주십시요」이서문은 차에서 뛰어내려 창을 보고 금방 깨달았다.

오회청은 이서문을 노려보며 서있었다. 「어이~! 밖에서 조금 이름을 알렸다고 해서, 그
큰 낯짝을 내밀면 참을 수 없다.. 천하제일의 창이라면 꼭 그 솜씨를 보고 싶은데 보여주지 않을 텐가!!! 」
하고 땅에 놓인 대창에 달려들어 발끝을 비틀어 창의 자루를 위로 한번 회전시켰다.
그리고는 즉각 창끝을 이서문의 목 근처로 향했다. 이서문은 당황해서 공수의 예를 취하며
사숙, 삼가 화를 가라앉혀 주십시오 이것은 오춘아저씨를 꾀어내기 위해한 행동으로 설마
사숙이 집에 계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오린서에게 소식을 알린 사람이 있어 린서가 화가나 「놈을 여기로 데려오라!! 애송이 녀석이... 」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서문은 차부에게 명하여 차를 린서 아저씨의 저택 문에 대게 하고, 대창을 차에서 빼내어 공손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4) 오린서 비전을 전수하다.

갑자기 "휙~"하는 소리와 함께 대창이 목 근처로 찔러 들어왔다. 이서문은 당황해서 창을 받는다.
폭이 약 8장(약25m)정도 되는 안뜰에서 둘은 결투를 시작했다. 오린서는 기력을 넘쳐흐르게 하여, 이서문의 목 근처에서 창끝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이서문은 한가지 계책을 생각해내고, 일부러 창자루를 얽히게하여, 오린서의 대창을 눌렀다.
오린서는「이녀석!!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권으로 나오다니…」하고 심중으로 생각하면서 「얏!! 」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양발을 재빠르게 전진하여 좌우로 훌쩍 몸을 펄럭이며, 갑자기 창을 위로 튕겨올렸다. 이서문의 창은 '붕'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높이 날아올라 갔다.

 다음순간,
이서문은 성큼성큼 오아저씨 앞으로 달려나가 당에 무릎을 꿇고 「춘아저씨, 저의 이 우매한 권은 모두가 이 기술을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고 털어놓았다.
이서문은 연경에서 있었던 타류 시합의 일을 아주 상세하게 오린서에게 고했다.
오린서는 노했는지 노하지 않았는지 모를 큰소리로 말했다.
「이 애송이가... 이 기술은 좌우과마압여세(좌우에서 말에 올라탄 것처럼 몸을 펄럭이고
집오리처럼 발바닥을 붙여걷는다)라 한다. 」이서문은 가마에서 화려한 과자상자를 꺼내
차례차례 오린서에게 보냈다. 마지막에 오아저씨를 가장 기쁘게 한 것은 1척2촌(옛날 구두의 촌법으로 40호)되는
특대화였다. 왜냐하면 오아저씨의 발은 특별히 컷기 때문에...

이서문은 「좌우과마압여세」의 숨겨진 기술을 배우자 집에도 돌아가지 않고, 바로 연경으로 가서, 황이라는 대창의 명수를 찾아내고 천단광장에서 시합을 했다. 2번의 맞붙음도 끝나지 않은 사이에 상대의 대창은 하늘로 날아 올랐다. 그 후, 여러명의 대창 명인과 기술을 겨루어도, 그를 능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순식간에 연경안에서 「신창 이서문」의 이름이 알려졌다. 사람들은 이서문은 몸은 비록 작지만, 신체는 철처럼 단단하고, 신체 어느 부위를 사용해도, 사람을 쳐서 쓰러뜨릴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이서문은 질리도록 무술를 연습하고, 고행을 싫어하지 않았다.


(5) 연경 무술가를 격파하다.

이야기를 바꿔, 이경림이 천진의 제독에 있을 때, 이서문의 위명을 전해듣고, 부대의 무술교련으로 초대했다.
이경림은 극강현 사람으로 권행, 검술도 소양이 있고, 군대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무술가 였다.
그는 이서문의 팔극권과 육합대창의 기술을 아주 존경하고 있었고, 늘 「동향인」이라 부르고, 친하게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이서문도 사퇴하기 어렵고, 하루종일 일정대로 무술지도를 수행했다.
이서문이 시범을 보이는 날은 이경림과 그 자리에 늘어서 있는 각 장군들은 단지 어안이 벙벙하여 언제나 박수를 칠 뿐이었다. 왜냐하면 이서문이 일식 팔극권을 끝내면 조련장의 굳은 지면은 온통 울퉁불퉁하게 되어,  予脚(타여각;발바닥으로 지면을 "꽝"하고 밟는 보법)(주: 진각)에 의해 생긴 구멍이 군데군데 이어져 있기때문이었다.


이서문의 공부와 이름은 차츰 먼곳까지 전해져, 마침내 연경에 까지 이르렀다.
당시, 연경의 무술가들은 이서문의 이름 따위는 마음에 두지도 않았고, 그의 공부가 소문처럼 우수하다고는 믿고있지 않았다. 그러나, 유명하게 된 이상, 만약 이서문을 깨뜨리면, 연경무술가의 이름을 높일 수가 있었다. 그래서 가장 강한 두 명의 무술가를 천진에 보내고, 이서문의 주소를 알아내어, 그와 기술을 겨루고, 소문대로의 실력을 갖춘 주인공인가 어떤가를 시험하게 되었다. 둘은 이서문을 보자마자 싱글벙글 웃었다. 꼬마같은 야윈 남자로, 신장은 170cm에 미치지 못했다.
이래서는 공부가 아무리 우수해도, 전신이 마치 철과 같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서문은 예를 갖추고 접대를 하였지만, 연경에서 온 두 객인의 눈빛에서 그 의중과 오만함을 알아채고, 시합을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고했다. 그래서 武를 통해 친구가 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도 좋다. 라고... 잔치를 베풀고 대접하였다.

석상의 체격이 좋은 쪽이 「이선생의 "우뢰가 귀를 꿰뚫는 것 같다"는 고명은 전부터 삼가 듣고있습니다.
오늘 이 눈으로 선생의 기술을 배견할 수 있다면 영광입니다.」라 말하면, 후배라 칭하는 쪽은 「우리들은 20여년 무예를 익히고 있지만 기량은 아직 많이 얕고, 이선생에게 예를 들어 하나, 둘이라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는지.. 시합을 청하고싶고... 」라 했다. 둘은 마침내 몸을 일으켜 차례로 이서문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그와 시합을 하지 않고는 끝내지 않을 태세를 표했다.

이서문은 어쩔 수 없게 되어, 연회석을 정돈시키고는 무표정하게 「그럼!!」하고 말했다.
당당한 체격쪽(이름은 불분명)은 배부르게 먹고 마신 후로 어떻게든 시합을 하고 싶어서
조급해 있었기 때문에 「그럼!!」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앞으로 나아가 권을 내밀고, 갑자기
이서문의 머리부위를 맹공했다. 이서문은 태연자약하면서, 몸을 돌리지도 굽히지도 않고
탐마장」으로 상대의 정수리를 격침하여 즉사시켰다. 무예가 중에는 자신의 기량이 열등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가 많지만, 자칭「후배」라고 한 작은 쪽의 연경손님도 그 중의 한사람이었다.
권을 포개어 송수의 예를 갖추며 「그럼!」하고 말하자마자 상대는 앞으로 돌진해 왔다.
이서문은 재빠르게 전진하며 그 공격을 받고, 정면에서 장으로 일격을 가했다.
적은 급하게 머리를 기울여 피하려 하였기 때문에 장은 그이 어깨에 떨어지고, 「우적!」하는 소리를 내며 견갑골이 산산히 부서져, 상대는 꽈당하고 식탁위로 쓰러졌다. 이 짧은 살인극에 보고있던 자들은 몸을 떨었다.

※이경림은 군인(장군)이다. 그의 무당검술은 유명해서 「천하제일검」으로 칭해졌다. 일찍이 남경의 중앙국술관에서 부관장을 역임했다.

(6) 침추경의 위력.

어느해, 이서문은 팔극권 5세중의 명수, 오회청과 이야기하고 천진으로 나왔다. 한가할 때,
둘은 장법을 겨뤘다. 오회청은 대청에서 기둥에 기대어 장을 치자, 대청 전체가 진동했다.
이서문은 대청중앙에 서서 장을 치자 대청 전체가 진동하여 벽토가 떨어졌다. 또 어느날은
창에서부터 5척(1.5m)떨어진 실내에서 공기를 배격(밀어젖히듯 침)하자, 창의 장여지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창현지」에는 「옛날 그 연객을 타격한것과 고목을 꺽은 것과 같다」라고 기재되어있다.」

전문에서 기술한 바와같이 팔극권의 발경의 방법에는 「침추경」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이 방법은 실재로 어느정도의 위력이 있는 것일까. 어느해 봄의 일이다.

오회청은 거친 말을 샀지만, 일을 시키려 해도 말하는 것을 제대로 듣지 않고, 차거나 대들거나 했다.
이서문이 말에게 「나에게도 대들려는 건가!!」하고 말했기에 오회청은 웃으면서 손그물을 이서문에게 건네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대들지 않을 거야」하고 말했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은 입을 뻗으며 대들며 달려들기에 이서문은 무릎을 들어 퍽하고 발의 아래턱을 찼다. 말은 큰 아픔을 느껴 히힝하고 콧소리를 내며 머리를 들고, 엉덩이를 내려 이서문을 차려고 했다.
이서문은 재빠르게 알아차리고 말이 머리를 들었을 때에 그 갈기를 붙잡고, 기세좋게 올라타 날쌔게 말의 등에 걸터 앉자, 손그물을 잡고, 가슴으로 氣를 옮기면서 맹렬한 기세로 허리를 떨어뜨렸다.
말은 히힝~~하고 소리높여 울고, 지면에 넙죽 엎드려 버렸지만 이서문이 기를 느슨하게 하는 사이에 양 발굽을 땅에 붙이고 또 일어섰다. 이서문은 다시 한번 힘을 넣어 허리를 떨어뜨리자, 난폭한 말은 「후∼후∼」하며 울면서, 네 번정도 땅에 기었다. 오회청은 그이상, 보다못해, 당황해 손을 흔들며 「빨리 말에서 내려와!! 그 이상하면 말이 죽어버려」하고 외쳤다.


(7) 무서운 맹호경파산

이서문의 손과 팔은 철과 같아서, 힘이 강하고 경을 사용하는 방법이 교묘하기 때문에
동북3성, 연경, 천진, 랑방지구, 산동, 강소, 남경, 안휘, 하남 등 그가 이르는 곳 모두 무림의 명인들과 무술과 대창 시함을 셀 수 없을 정도로 행하였지만, 필적할 만한 자는 없었다.

현. 청주시 무술협회 부주석인 이서정씨는 어렸을 때, 그를 만난적이 있다. 이서정씨의 아버지인 이우삼은
연청권의 명가로, 이서문과 친교가 있고, 어느날 이서문이 방문했다. 우삼은 서정에게 「빨리 "흉권이(凶拳李)" 아저씨를 불러오거라!!」하고 말했다. 서정은 "흉권이"의 이름을 듣자마자 무서워서 온돌 위로 도망쳐 숨어버렸다.
 
사실 이서문의 권각이 흉폭한 것은 유명해서
그가 63세 때 제남의 어느 공원에서 수족을 움직이고 있을 즈음, 체구가 당당한 당랑권의 명수가 이서문은 나이가 환갑을 넘어서있는 듯하지만 움직임이 진실로 없는 것을 보고, 시합을 간청해 왔다.
이서문이 「그럼, 먼저...!!!」라고 말하자 그 남자는 힘을 넣어 당랑조를 정면에서 맹렬하고 기세좋게 쳐들어 왔다. 이서문은 상대의 권에는 신경쓰지 않고, 그대로 앞발을 내밀어 팡! 하고 돌연 적의 가슴을 꿰뚫었다. 상대는 후방으로 쓰러진채 긴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이서문은 왜 이렇게도 차례로 강적을 쓰러뜨리고 불패를 계속했던 것인까. 그것은 결국
그의 팔극권이 명인의 극전에 달하고, 내기를 완전히 몸에 익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팔극권 기격의 장점중 하나가 공격 당하면서 몸을 전진한다.


맹호경파산」이라 칭해지는 형이 있다. 이것은 상대가 권으로 쳐들어 올때도 방어하지 않고, 그대로 접근전을 행하고, 압도적인 역량으로 적을 부수는 것으로 만약 상대가 앞으로 발을 들기라도 한다면 한층 더 불리하게 된다. 이 때문에 약한 상대라고 업신여기기도 하고, 거만한 대전자는 부상당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 「맹호경파산」기술로 그 진짜 기술을 체득하지 않거나 공격의 기초력이 얕거나 하면, 위험에 처한다.

이서문의 연습법은 삼백근 이상(150kg정도)도 넘는 돌 로라를 2m남짓 높이의 화전 위로 들어올릴 정도로
힘이 강했기 때문에 일반 기격가들은 모두 그의 「맹호경파산」을 무서워했다.

※이우삼 : 이우삼, 또다른 이름은 임춘, 비종문(연청권)의 진옥산 제자, 일찍이 장학양 장군에게 무술을 지도했다.


(8) 방랑의 명인과 그 제자들

이서문은 생애 남북을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고, 거둔 제자도 셀 수가 없다.
위로는 저정계의 군인. 허난주, 그밖에 군인 고관인 엄국동, 류호신, 나옥곤들이,
아래로는 끼니도 거르는 서민까지 있었다.
전해지는 말로는 그는 만년, 하룡원사에게도 권술을 가르쳤다고 하지만, 상세한 고증은 어렵다.
 

그러나, 그의 무수한 문하생 가운데 그 기술을 진실로 이어받은 자는, 동향의 곽전각은
정진을 거듭하여 청나라의 광서제의 사범을 했다.

또 맹촌의 류운교(주: 유운초)도 10세부터 이서문의 옆에서
팔극권을 배우고 만년의 이서문이 가난해져서 그의 집에 몸을 의탁했을 때, 다시 십수년간 이서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래서 팔극권의 진수와 내기를 체득했다.


1968년 류운교는 말레이시아에서 행해진 「중국무술표연대회」에 초대 되어 이서문 정전인 팔극권을 피력하고, 타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대만, 향만의 대표들은 그 측량할 수 없는 공부의 깊이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1928년 남경, 중악국술관이 생기고, 교사선발에서 전국으로부터 모집한 무술가들에게 처음으로 전국 국술시험이 행해졌다. 이서문과 같은 문하인 한화신, 조수덕(다르게는 마영도)들이 팔극권과 도수격투를 행해 함께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팔극권은 필수과목이 되었다.

현재, 중국각지 및 해외에서 류포하는 팔극권은 이미 그 본래의 면목을 잃고있는 것도 있지만, 많은 것이 남경중앙국술관에서 그 근원을 내고 있다. 창주의 저명한 대육합권의 명가에서 솔각명수인 충의의 장녀, 가의의 남편인 이원지(창주가 화원 출신)은 남경 중앙 국술관에서 팔극권을 공부한 후 대만으로 건너가 무술 사범이 되었다. 그는 「 拳(거권)」이라고 팔극권의 명칭을 바꿨지만 맹촌 팔극권의 본류와는 현저히 다르다. 그에게 팔극권을 부분적으로 배운 무예가도 몇 명 있다.

팔극권을 배우는 자로서 창주의 맹촌과 이서문의 일을 모르는 자는 없다. 어느해 이서문은
산동의 어느 무술가의 기술교류 초대에 응하고 사랑하는 제자인 류운교를 데리고 나갔다.
그런데 오래 체류하여 야위게 되었기에 돌아갈 때가 되어 류운교에게는 산동에는 보는 바와같이 무술가가 많고 여기에 머물며 연구, 저작을 계속하라고 말했기에 이서문은 어쩔수 없이 혼자서 돌아오게 했다(1934년).

돌아가는 길에, 패한 것을 한으로 가지고 있던 자의 손에 의해 독살당했다. 향년 70세 였다.

세상에 무술가는 많지만, 잘 고찰해 보면 종종 실력이 결여되어 있거나, 결국은 과장과 허위가 섞여있는 경우가 곧잘 있다.
그러나 이서문은 중국무림 속에서 가장 실전력을 갖췄다. 「불패의 왕자」이다.

※이서문을 산동성에 초대한 것은 산동성제독인 장양오장군 및 황현의 무술가 정자성(육합당랑권)이다.



< 이것이 발경의 위력이다!! >


이서문 에피소드 1

천진의 공원에서 이서문의 제자들이 참장(같은자세로 계속 서있는연습)을 하고있자,
옆에서 연습을 하고있던 솔각(던지는 기술의 무술) 단체의 사범이 와서 「너희들, 매일 이러한 연습을 해서, 도대체 정말 도움이 되는가? 」라며 웃었다.

제자들이 다가오는 이서문에게 고하자, 이서문은 바로 그 솔각의 사범이 있는 곳으로 가서,

「너희들, 이렇게 시끌 벅쩍하게 연습을 해서, 도움이 되는건가? 」하고 도발했다.
이서문이 몸집이 작은 것을 보고 화가난 그 사범은, 「뭐라고!!」하며 이서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 순간 이서문은 맹렬한 발경으로 상대의 명치부근에 정심주(팔꿈치로침)를 행했다.
상대는 양눈, 양코, 양귀, 그리고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七孔噴血(칠공분혈)"의 상태로 즉사했다.
이것은 많은 목격자가 전하는 실화이다.


이서문 에피소드 2

팔극권의 명인·이서문에게, 최후의 제자인 류운초씨가 동행하여, 북경에 갔던 때의 일이다.
地元의 유명한 무술가가, 저명한 팔극권가·신창 이의 제자와 이서문이 왔다는 것을 전해듣고, 자택에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그 무술가는 이서문에게 「당신의 팔극권을 한수 가르침 받고 싶습니다.」하고 부탁했다.

이서문은 찌르기에서 주법으로 변화하는 기술을 설명하려 하고, 「먼저 이렇게 친다.」하며, "툭"하고 쳤다.
그러자 그 무술가는 꽈당하고 쓰러져 버렸다.


이서문은 「팔극권의 진수는 여기서부터다, 어째서」라 말하고, 제자인 류운초씨가 당황해서
그 무술가를 살피자 마자, 그는 이미 죽어있었다. 이서문의 공부는 이상하게 높았기에, 컨트롤이 듣지않아 가볍게 치는것만으로 죽어버렸던 것이다. 둘은 당황해서 기차를 타고, 고향인 창주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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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늑대(天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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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전설의 대결


쇼와 26(1951년)년 10월... 리오 데 자네이루의 마라카난·스타디움...

세기의 유술 시합 단판 승부가 벌어졌습니다.

 한때 세계 최강의 격투가라는 칭호까지 얻었던 전설의 유도가 '마에다 미츠요'의 후계자 리오·그레이시(170cm/63kg) 그리고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후에 기무라 없당대 최강의 유도가 기무라 마사히코(175cm/85kg)의 3 R 각 라운드당 10분의 결투.(기무라의 키에 대해서는 170이라는 자료도 있고 178이라는 자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보편적인 것은 175였다는 자료입니다.

기무라 마사히코

이에 175로 일단 쓰기로 합니다.
 모 스포츠 신문에 나온 UFC의 역사라는 글을 보면 무슨 기무라와 가토가 전부 100킬로가 넘는다고 해뒀던데, 그건 제대로 자료를 뒤져보지 않고 글을 쓰셨기 때문입니다. 기무라는 85킬로, 가토는 80킬로였습니다. 게다가 기무라와 엘리오가 10살이나 차이가 나서 나이에서도 기무라가 유리했다고 해 둔 것 같았는데 기무라 34, 엘리오42 즉 8살차이였습니다.
 그 칼럼 중 마에다 미츠요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잘못된 점이 많이 보였는데 엘리오 편에서도...많이 안타깝더군요. 너무 유술가들의 편을 들어주고자하는 어투가 역력해서...)

 이 시합 전에 가토 5단이 엘리오에게 패배하는 바람에 기무라는 비장한 각오로 시합장에 나타납니다. 물론 웃음을 머금고 있기는 했었지만 그 속은 편치 않았겠죠. 한번도 맞서본 일이 없는 유술이라는것과 맞서야한다는 것 또한 무척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미 기무라 마사히코의 나이 34세. 전성기를 한참 지나버린 그가 브라질까지 오게 된 것은 자신이 총 책임자로 있는 '프로유도'의 홍보를 위해서였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레이시 유술과 싸운건 강도관 유도가 아니라 프로유도였던 것이죠. 물론 이때 이미 프로유도 단체는 소멸했었지만, 스스로의 유파는 프로유도였고, 이를 이용한 프로레슬링을 계획하고 있었죠.

  시합장에 들어서자 기무라는 흠칫 놀라게 됩니다. 바로 거기에는 관이 놓여 있었던 것이죠. 엘리오는 기무라에게 그것은 기무라가 죽으면 들어가게 될 관이라고 하며 자신감을 피력했습니다. 엘리오는 그것을 보고 웃었다고 하죠. 속마음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자기 관이라고 들고 나온 걸 보고 보고 웃는 사람은...^^

  당시 엘리오는 수많은 발레투도 시합에서 패배 없이 승리를 거두던 입장이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고 비교적 자신이 없는 분야였던 타격을 배제한 상태에서 유술만으로 기무라를 상대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기세가 등등했습니다.(카지와라 잇키 씨의 공수 바보일대에서는 엘리오 그레이시를 200킬로가 넘는 괴물 유도가라고 묘사해 두었고, 방학기씨의 바람의 파이터에서는 인디오 레슬러라고 묘사해 뒀지만...익히 아시다 시피 엘리오의 체격은 무도가로써 보통도 안되는 체격이었죠.) 엘리오가 타격이 약하다는 것은 이후 산타나에게 패배하면서 증명이 되기는 하지만 어쨌건 당시 브라질에서 엘리오라고 하면 최강의 격투가이자 유술가였습니다. 엘리오는 격투 전적에 패배라고는 2패 뿐인데 산타나와 기무라에게 당한 것이었습니다.

  엘리오는 서쪽 문을 통해, 그리고 기무라는 동쪽 문을 통해 등장합니다. 브라질에는 일본교민도 많았고 엘리오가 그렇게 일방적인 야유속에 경기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브라질인들의 엘리오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그 경기에 브라질 대통령까지 동참햇다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무라는 시합장에 오르면서 다시 한번 놀라게 되는데 바닥이 보통의 것보다 많이 물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기무라의 필살기인 밧다리 후리기와 한팔 업어치기를 봉쇄하기 위한 엘리오의 전략이기도 했고, 당시 유술 시합에 쓰이던 바닥은 유도에 비해 많이 무른 소재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본측에서는 엘리오의 계략이었다고 하기는 합니다만..저는 두사람 다 좋아하니까 어느 편을 들지는 않겠습니다^^

  1라운드가 시작되자 기무라는 엘리오를 메치려 하지만 엘리오의 번개같은 스피드에 쉽게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시 팔힘은 일본 제일이라는 정평이 나 있었던 기무라 답게 엘리오를 붙잡아 넘어뜨리고 누르는데 성공합니다. 이 때 엘리오는 이미 귀가 찢어져 피가나기 시작했습니다. 기무라는 엘리오를 죽이거나 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괜찮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엘리오는 정신력이 엄청난다고 정평이 나 있었던 만큼 당연히 그 정도로는 굴하지 않았죠. 그러다가 엘리오가 순간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그렇지만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기무라의 조르기와 꺾기를 방어합니다.(솔직히 제 생각에는 실신한 건 아닌 듯 한데, 일본측 자료에는 그렇게 되어 있더군요.) 기무라는 엘리오와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닌 만큼 "무리하지 마라!"라고 두번 정도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엘리오는 일어를 어느정도 알아들었다고 하죠.)

기무라 마사히코

   2라운드가 되자 엘리오의 끈질김에 혀를 내두른 기무라는 하는 수 없이 팔 얽어 비틀기를 써버립니다. 훗날 기무라 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이 기술은 사쿠라바가 그레이시 헌팅을 할 때 응용되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엘리오는 버티지만 이미 팔관절이 완전히 나가버린 상황이었죠. 우두둑 하는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관중들이 들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엘리오는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싸운다고 하였지만 보다못한 카를로스 그레이시가 타월을 던져 버립니다.

  기무라는 이 경기가 끝나고 나서 "과연 마에다 미츠요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이다. 엘리오의 투지야말로 일본 무사의 거울이다. 경기는 내가 이겼으나 승부에 대한 집념에서는 패배했다."라고 한 바 있습니다.

 (이 시합이 와전되어 기무라와 엘리오가 3시간이나 싸웠다느니, 기무라가 엘리오를 백번을 메쳤는데 엘리오가 버텼다느니 하는 헛소문이 돌게 되었습니다. 실제 시합시간은 13분이었고 시합 내용 자체로는 엘리오가 기무라에겐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1. 유도의 귀신-기무라 마사히코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후에 기무라 없다!"

1917년 9월 10일에 태어난 기무라 마사히코는  강을 끼고 있는 구마모토 현의 광산 마을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물속에 발을 담그고 돌멩이와 모래들을 퍼서 나르는 일을 하였다고 하죠. 물속에 하체를 담그고 하루 종일 있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단련이 됩니다. 물의 흐름을 계속 버티면서 허리와 다리가 자연스럽게 강해지죠. 또한 계속에서 돌멩이와 모래가 든 자루와 채를 손에 쥐고 날랐기 때문에 기무라의 악력이라는 것은 유도를 배우기 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 구마모토 출신들이 술을 잘하고 힘이 장사라고 하죠.

기무라 마사히코

 10세때 강도관에 입문한 기무라는 엄청난 트레이닝으로 원래 강했던 팔힘과 악력을 거의 사기 수준으로 끌어올리게 되는데요. 자전거 타이어를 이용한 트레이닝이 보급되지 않던 시절 나무에 흰띠를 묶어놓고 메치기 연습을 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트레이닝법이었는데요, 기무라가 끊어먹은 도복띠는 강도관 시절에만 무려 1000개에 달한다고 합니다.(유도를 해 보신 분들이면 다 아시겠지만 유도의 도복띠는 어지간해가지고는 튿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배밀기(유도식의 팔굽혀펴기)를 한 번에 1000회씩 할 정도의 팔힘과 지구력을 키웠습니다.

 (방학기씨의 만화 바람의 파이터를 보면 기무라가 달려오는 말을 메치는 일화가 나옵니다만, 이것은 아무래도 과장인 듯 합니다. 일본 측의 어떤 자료에도 그런 언급은 전혀 없거든요. 그리고 전성기의 기무라라면 그게 가능할런지도 모르지만 소년시절에 달려오는 말의 앞발을 잡고 메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죠, 중심이동이나 움직임 등이 사람과는 판이하게 다른 네발달린 짐승을 던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비현실적입니다^^)

  중학 4학년(지금의 고1)때 강도관 4단을 취득,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승단 기록을 세우게 되는 기무라는 이후 시합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 17세의 나이로 전일본 대회 최연소 우승 1935에서 1937년까지 전 일본 유도대회 3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이후 13년동안 1950년까지 무패, 10연속 우승이라는 깨지지 않을 대기록을 세우게 되죠(물론 무승부 기록은 있습니다.) 결국 기무라는 당시 히트하던 소설 스가타 산시로의 붐과 함께 재조명되기 시작한 산시로의 실제 모델인 강도관 사상 최강의 사나이 사이고 시로의 뒤를 잇는 '쇼와의 산시로'라는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후에 기무라 없다!'는 말은 이 기무라를 당시 사람들이 사이고 시로와 동급으로 인정해 줬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사이고 전에 야마아라시 없고, 사이고 후에 야마아라시 없다!'라는 말에 빗대어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이고 편을 읽으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사이고 시로는 강도관 122년 역사상 최강이라고 불리는 남자입니다. 그와 견줄만 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기무라야말로 천재중의 천재였다는 것이죠.

 (흔히들 김두한 씨의 일대기에 꼭 등장하는 마루오카와 기무라를 비교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만...마루오카는 체중 자체도 경량급이었고, 지명도에서도 기무라 마사히코하고는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원래의 유도 시합이라는 것은 당시에는 체급이라는 것이 없고 무차별급으로 진행되었지만 어전시합에 한해서 경량급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루오카는 그 부문에서 우승했던 것이죠.(사실 이 어전시합조차도 불분명합니다.) 방학기씨의 만화에는 이 마루오카가 유도8단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나이에 8단이라면 그건 대기록입니다. 당시 강도관에서 40대가 되기전에 8단 취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기무라나 사이고 시로도 하지 못한 일이죠. 한마디로 무척이나 과장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방학기씨가 만화를 그릴때 김두한씨가 생전에 라디오 프로에서 했던 증언을 자료로 참고해서 그렸기 때문에 틀린 부분이 너무 많이 나온 것이죠.-그 라디오 방송의 증언들이 허풍과 과장이 너무 심했다는 것은 김두한씨와 같이 건달 생활을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인정한 내용입니다.-장군의 아들 같은 영화를 보면 마루오카는 장신에다가 거구인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현역시절 170에 70킬로도 되지 않는 경량급이었습니다. 8단이라는 것도 당연히 거짓말이죠. 물론 마루오카가 그리 이름난 선수가 아니다 보니 정확한 단수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기무라나 아베 켄시로 같은 무적의 강자들이 버티고 있는데 혼자 8단까지 올라갈 수는 없었죠. 당시 일본 경시청 유도 지도 총감의 단수가 8단이었습니다.  

 일개 경찰서의 무술 지도 경부가 8단이라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이죠. 물론 이 마루오카 경부의 유도 실력은 비록 경량급이라도 어전 시합에서 우승을 할 정도이니 굉장하기는 했었던 듯 합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나가 떨어진 당시의 건달이나 야쿠자는 꽤 많았다고 하지요. 그러다보니 스스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종로의 건달들이 강하다는 것이 일본까지 정평이 나서 마루오카를 특별히 불러왔다느니, 마루오카가 어전시합 무제한급을 7연패를 했다느니 하는 과장과 헛소문을 퍼뜨린 듯 합니다.-무엇보다 공식적인 어전시합인 무차별급에서 마루오카라는 우승자는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 당시 우승자라고 올라있는 이름은 아베 켄시로와 기무라뿐이죠. 야인시대나 김두한씨의 팬 분들은 이 부분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품으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사실대로 쓴 것 뿐입니다. 저도 어린시절엔 김두한씨의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다 믿었었거든요. 그게 엄청난 과장과 허풍이 섞였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는 거의 10년이 걸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이야기지요.)

 기무라의 최종 단수는 강도관 7단이었는데 이는 기무라가 1950년에 강도관을 탈퇴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규정도 그렇지만 당시 강도관 규정에도 특별 승급이라는 것이 있어서 7단 정도까지는 별도의 승단 심사 없이 어전 시합 우승만으로 승급이 가능하였고, 기무라는 바로 그런 케이스로 올라간 것이었죠. 정상적인 승단 심사를 통한 것이었다면 33세때 7단이라는 건 말이 안될 정도의 단수 입니다.^^;; 물론 당시 7단이건 8단이건 기무라를 이길 사람은 없었겠지만 말이죠. 우리나라 유도도 올림픽 우승하면 자동으로 단수를 올려주는 특별승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올림픽 우승할 정도의 실력자라면 정식 승단을 하더라도 4단이나 5단 정도는 어렵지 않게 딸 듯 합니다만...

 

2. 기무라를 패퇴시킨 사나이!-아베 켄시로


기무라는 16세의 나이에 어전 시합에 최초로 참가하여 승승장구, 4강까지 진출합니다. 당시 기무라의 위력앞에 이름난 유도가들이 하나하나 다 나가떨어졌었는데 그를 지켜보던 가노 지고로 조차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고 하니 당시 기무라의 위력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아베 켄시로. 그는 당대 최강이라고 평가받던 유도가로써 168의 키에 71킬로. 경량급에 나가야 할 체중이었지만 워낙에 강자였기 때문에 무차별급에 출전하게 된 것이었죠.(체격은 마루오카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실력은 천지차이였던 듯 합니다.)

 기무라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밧다리 후리기를 하면서 한팔 업어치기를 할 요량으로 아베 켄시로에게 달려들지만 되려 아시바리(와사바리라고도 부르죠 우리나라에서는^^)를 당해 쓰러지면서 절반을 빼앗깁니다.(당시에는 절반 그리고 한판 두가지 뿐이었습니다. 그냥 밀려 넘어지는 그런건 점수로 인정도 안해 주던 시절이었죠.) 생전 처음으로 아시바리에 넘어져 본 기무라는 자존심이 상해 다시 달려드는 순간 자신의 복숭아 뼈 밑으로 아베의 발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다음 순간 기무라는 세상이 뒤집히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초고수의 아시바리를 당하게 되면 원래 머리부터 떨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안당해 봐서 모르겠습니다만(저는 도장에서 초고수한테 당한게 아니라서 그런가 봅니다^^)

 결국 아시바리 두방에 한판으로 무릎을 꿇게 된 것이죠. 이 대회 우승을 마지막으로 아베는 어전대회에 참가하지 않게 됩니다. 기무라에겐 가장 깨끗히 패해버린 시합이 되고 말았죠. 리벤지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아베 켄시로에게 패퇴했던 경험은 기무라에겐 엄청난 추진력이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한팔 업어치기의 연습에 주력하던 기무라는 이 일을 계기로 한가지 수련을 더 하게 되는데 바로 100개의 촛불을 켜고 발뒤축 후리기를 연습하여 풍압만으로 불을 꺼버리는 연습을 하게 된 것이죠.

 

3. 기무라와 프로유도

 

정식적 명칭은 국제 유도 협회이고 쇼와 25년(1950년)에 우시지마 8단이 만든 것입니다. 이 또한 수많은 문헌에서 기무라가 창시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프로유도라는 것은 고류 유술에 존재하는 수많은 살수와 역관절 메치기 같은 위험천만한 기술들을 다 복원시켜 스포츠 유도가 아닌 격투전용 유도를 지향하는 상당히 실전적인 무도였다고 합니다.

 사실 역관절 메치기같은 경우는 조금만 잘못해도 팔의 관절이 부러져버리는 것이 다반사이며, 낙법도 무척 까다로와서 메쳐지면 실신하거나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의 유도에서는 사라져 버렸지만 삼보에 아직 그 원형이 남아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삼보자료를 뒤져보시면 될 듯 합니다. 브라질리언 유술에도 역관절이 조금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역관절에 관한한 삼보쪽이 보다 더 체계가 있죠.(아무래도 엘리오나 카를로스 본인들이 메치기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물론 역관절 기술들에 관해서는 대동류와 아이키도가 가장 우수하기는 합니다만...

 손가락 관절기는 제대로 된 합기도를 조금만 익혀 보신 분들은 그 원리를 금방 아실 겁니다. 사실 손가락은 굉장히 민감하며 힘도 별로 없어 주먹으로 꽉 움켜 쥐기만 해도 기술의 반은 걸렸다고 할만큼 쉽게 적을 제압할 수 있는 기술이지만 역시 손가락이 부러지거나 불구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유도에서 금한 기술입니다.

 기무라는 강도관의 분위기가 너무 무도보다는 스포츠 쪽으로 기우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스스로는 연습때마다 살벌할 정도의 기술을 남발해, 그의 기술을 받아주는 사람들이 꼭 한 두명은 실신을 했다고 합니다. 하루에 100명과 대련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기무라는 이처럼 기술을 너무 세게 걸었기 때문에 강도관에서도 평가가 썩 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그에게 요시지마8단의 프로 유도는 그의 무도 정신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이었고, 기무라는 요시지마의 수제자로 들어가게 됩니다. 손가락 관절기까지 다 부활시켜버린 프로유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레이시 유술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이 프로 유도는 최영의 선생님의 실전공수처럼 엄청난 비난을 받으면서 전통 유도계의 압박에 의해 겨우 10회의 시합을 갖고 4개월만에 하와이에서 소멸하고 맙니다. 그리고 하와이에서 기무라는 프로레슬링을 하기로 결심, 브라질 순방에 나서고 거기서 엘리오와 맞서게 됩니다.

기무라 마사히코


4. 최영의와 기무라, 두 초인의 만남.

 

기무라 마사히코님의 일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당대 최강의 무도가 최영의님이시죠. 최영의님이 미국 순방에서 돌아와서 전통 무도계의 온갖 시기와 중상 모략때문에 고뇌하던 시절, 기무라 마사히코와 만나게 됩니다. 기무라 또한 프로 유도를 하는 바람에 강도관 유도계 인사들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공격을 당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하죠. 만나자 마자 둘은 십년지기처럼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그러나 한가지 실망스러운 점은 이 둘의 대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인데요, 솔직히 상당히 궁금하기는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최강자라고 인정해주는 사이였으니 말이죠. 기무라선생의 성격또한 최영의님 만큼이나 괴짜스러운 부분이 있어 아무하고나 친해지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두분은 마음이 잘 맞았다고 합니다. 최영의님은 자신이 직접 쓴 글에서 이렇게 언급하신 일이 있습니다. 뭐 바람의 파이터나 공수 바보일대에서는 둘이 대결한 적이있는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으나...뭐 아무도 안보는 곳에서 두분이 겨룬 일이 있는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최영의님도 기무라님도 아무도 그런 언급을 하신 일이 없으니 알 수 없는 일이죠.

"기무라야말로 최강의 유도가이고 진정한 무도인이었다. 그는 나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나보다 더 많이 단련하고 정진하는 내가 아는한도내에서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요즘의(당시, 1960년대) 일본 유도계는 네덜란드의 헤싱크(헤이싱이라고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5단에게 무릎을 꿇고 있다. 그러나...기무라 마사히코가 돌아온다면 헤싱크 따위는 그의 도복도 잡아보지 못할 것이며 3분을 버티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이것은 공수도인 최영의의 이름을 걸고 단언할 수 있다."

 최영의님과 함께 미국 순방을 떠나 사선을 함께 넘으며 우정을 다졌던 엔도 고키치 6단은 최영의님께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나도 유도가이다보니, 기무라 마사히코라는 인간을 한 번 이겨보고 싶어서 5년이나 죽어라 연마했습니다. 기무라의 필살기라는 한팔 업어치기와 밧다리 후리기는 나의 필살기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5년동안 이를 갈면서 연마했지만 막상 기무라씨와 맞잡는 순간에 땅에 쳐박히고 말았지요...몇초도 버티지 못했었죠...."

 이후 최영의님과 기무라는 같이 유도도 수련을 했는데, 최영의님 또한 4년만에 강도관 4단을 취득한 유도의 달인이었기 때문에, 직접 유도 대련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아무리 천하의 최영의님이라고 해도 유도로는 기무라의 적수가 되지 않았죠. 맞잡는 순간에 한팔 업어치기로 깨끗히 날아가 버리셨다고 합니다.

그 때 하신 말씀이 유명합니다. "나를 이렇게 메쳐버린 인간은 기무라 마사히코 뿐이다."

 

5. 기무라와 역도산 그리고 최영의...당대 최강의 남자들이 만나다!...그러나...

엘리오 그레이시를 격침시키고 일본 유도의 강함을 증명한 기무라, 그러나 일본에서 그를 맞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관심조차 기울여 주지 않았죠. 훗날 그레이시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그레이시를 격파한 사나이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이 때만해도 그건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외국가서 허접한 유술가 하나 잠재우고 온 것이라고 여겼고, 더군다나 귀신 기무라가 패한다는건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쇼와29년(1954년)에 역도산님과 함께 드디어 테그팀을 결성하여 본격적인 프로레슬링 시합을 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싸운 상대는 바로 유명한 샤프 형제였죠. 샤프형제와의 시합을 구경하던 최영의님은 역도산과 기무라에 대해 엄청나게 실망을 하시게 됩니다. 최영의님이 미국에서 목숨을 걸어가며 싸웠던 톰 라이스가 하던 것과같은 실전형 레슬링이 아니라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마찬가지인 경기였기 때문이죠. 게다가 기무라는 아예 무시당하는 역이고 오로지 역도산님만을 띄워주는 각본 또한 최영의님을 화나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런 쇼의 들러리나 서 주고 있는 기무라님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역도산 선생은 익히 알려진대로 미국에서 톰 라이스와 진검승부를 하다가-사실은 각본이 있었으나 톰 라이스가 무시하고 시작하자마자 달려들었죠. 역도산님이 이기는 각본이었기 때문에 훗날 역도산vs기무라 전에서의 기무라처럼 일부러 맞아주거나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처음에는 역도산님도 그와 제법 접전을 벌이셨지만 잠시후에 거의 일방적인 폭행을 당하고 중상을 입으신 바가 있습니다. 톰 라이스는 원래 세계 챔피언까지 노리던 복싱계의 강자였죠, 모션이 크고 궤도가 단조로운 가라데 촙은 그의 가드와 풋웤에 완전히 무력했습니다.

최영의 선생이 이후에 톰 라이스와 격돌, 늑골과 턱뼈를 날려 버리면서 톰 라이스의 격투인생은 그걸로 끝나게 됩니다만,  이 또한 역도산님에게는 치욕스러웠던 듯 합니다. 그러나 최영의님은 역도산님이 보기엔 너무나 강했고, 또한 너무 완고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기무라 선생처럼 뒷 공작을 할 약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죠. 때문에 실제로 진검 대결을 벌이지 못할 바엔 또 다른 최강자인 기무라 선생을 눌러 버리는 것이 났다는 판단을 하셨던 듯 합니다. 최선생님이 프로레슬링을 할 리가 없으니 가난한 기무라선생을 끌어들이고, 자신의 각본 속에서 '기무라는 역도산보다 못하다'라는 인식을 일본인들에게 심어주게 된 것이죠.)

 그리고 최영의님은 기무라를 설득, 결국 기무라 마사히코와 역도산의 진검 승부가 결정이 나게 됩니다. 당시 일본 언론에서는 이 시합을 '간류지마의 결투'라 하여 엄청난 관심을 보였는데요, 간류지마의 결투라는 건 바로 사상 최강의 사무라이라는 미야모토 무사시와 또 다른 검의 귀신 사사키 고지로의 싸움을 의미합니다. 즉 최강은 둘이 될 수 없고, 이 둘은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에 비견할만하다는 의미였던 것이죠.

 최영의님이 이후에 기술한 자서전을 보면 당시의 역도산님이나 기무라님 모두 엄청나게 강했지만, 기무라님은 이미 나이가 마흔에 가까워 절정에 달한 젊은 역도산에 비해 불리한 감이 없지 않았다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실력만을 놓고 볼때 기무라님이 약간우위에 있었다고 판단하신 듯 합니다. 시합직전까지도 기무라님의 승리를 확신하셨다 합니다.

 

6. 제 2차 간류지마의 결투...그러나 고지로는 무사시를 이기지 못하는 것인가?


 간류지마의 싸움에서 무사시가 온갖 심리전을 다 이용해서 승리를 따낸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검의 실력만이라면 고지로가 무사시보다 못할 것은 전혀 없었다고 하죠. 이 싸움은 무사시의 '검술'의 승리가 아니라 '병법'의 승리였다고 알려지게 됩니다. 기무라와 역도산의 시합 또한 역도산이 쳐 놓은 그물에 기무라가 걸려든 꼴이었습니다. 당시의 동영상을 보면 가무라가 역도산에게 맞는 순간에 무방비로 있다가 어이없이 쓰러지는 것을 확인 할 수있습니다. 그리고 뭔가 억울해하는 기무라의 모습도 확인이 가능하죠. 

 훗날 말년의 기무라가 토크쇼에 출연해 당시의 사정에 대해 언급한 바 있었고, 그 내용은 최영의님의 자서전과 바람의 파이터, 공수 바보일대 등에 나왔던 내용과 거의 일치하므로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일본 만화중 베스트 셀러로 꼽히는 공수 바보일대에서 기무라가 병든 아내의 약값을 구하기 위해 역도산에게 져 줘야만 했던 서글픈 사연이 나오고, 그 이후 역도산님의 비정상적인 행동들이 그대로 기술되었을 때 역도산님의 수제자였던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 김일-오오키 긴타로, 이 세명의 프로레슬링의 거목들이 아무런 반론도 내 놓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부분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보입니다. 공수 바보일대의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바람의 파이터와 똑 같습니다. 최영의님의 자서전과도 일치하죠^^

 실제로 최영의님이 당시 실신한 기무라님을 보면서 격분한 나머지 역도산님에게 죽여버리겠다고 호통을 치신 일은 꽤 유명합니다. 이후 역도산님이 최영의님을 겁내서 피해다닌 것도 다 사실인 듯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역도산님이 이 무렵에 야쿠자들을 두들겨 패고 다니며 술에 빠져 사실 때, 역도산님의 뒤를 봐주던 양원석-야나가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합니다.-이라는 조선계 야쿠자의 존재입니다. 보통 알려진 내용은 역도산님이 워낙에 싸움에도 강했기 때문에 아무리 행패를 부려도 야쿠자들이 그냥 맞아주고 자리를 피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죠.-야쿠자들이라면 정 안되면 떼거지로 달려들어 칼로 난도질을 해 버릴 수 도 있고, 총을 쏠 수도 있습니다. 단지 싸움에 질 것 같다는 이유로 역도산님을 피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가 않습니다.- 이 야나가와라는 인물은 일본에서는 이제 전설이 되어버린 초과격 무투파 야쿠자의 두목으로써 10명도 안되는 조직원을 이끌고 120명이 넘는 야쿠자 조직을 피를 피로 씻는 싸움으로 단 하루만에 쓸어버리면서 전 일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갔던 무시무시한 남자였습니다. 맨손 뿐 아니라 무기의 사용에 능하고 기습에 능해 한번 붙었다 하면 반드시 바닥을 피로 칠해야 싸움을 끝냈다고 할 정도였으며 당시 야쿠자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라고 불릴 정도의 야쿠자였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역도산의 뒤를 봐 주고 있었던 것이죠. 때문에 야쿠자들이 감히 역도산님을 죽일 생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렁이도 밟히기만 하면 꿈틀하는 법이죠...

  훗날 최영의님의 이 역도산님에 대한 행동에 반감을 품은 김일 선수가 최영의님에게 도전을 하였지만, 김일님은 최영의님에게 도전할만한 자격이 안되었죠. 프로레슬링에서도 최고가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이노키와 바바를 제압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최영의님에 대한 도전은 아무도 수긍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결국은 김일님도 도전한다고 엄포만 놓았을 뿐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고 맙니다. 사실, 김일 선생이 도전하실 때의 정황을 고려해 보면 정말 도전하실 생각이었다면 조일삼형제분이나 로야마님, 사토 카츠아키님같은 당시 극진의 간판을 짊어진 사범님들들을 먼저 쓰러뜨려서 최영의님이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드셨어야했겠죠. 그 정도 단계는 거쳐야 둘의 인지도 차이를 메꿀 수 있었을테니까요. 일본에서는 세계 최강의 초인이자 무신으로까지 칭송받는 분에게 도전하는 일인데 아무리 프로레슬링 테그 챔피언이라고 하더라도 그 격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지요.

 사실 역도산님 측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는 없지만(죽은 자는 말이 없죠) 여러가지 정황을 감안하면 최영의님의 말씀이 옳은 듯 합니다.

 

기무라 마사히코


7.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스스로 꺾어버린 무도가의 자존심...그리고 은퇴...

기무라 마사히코는 결국 이 석연치 않은 사건으로 프로레슬링을 그만두고 개인도장을 운영하며 실전에서는 손을 떼게 됩니다. 기무라가 그렇게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던 자신의 무도가로써의 명예를 팽개쳐 가며 지키려고 했던 아내는 기무라의 정성 덕택인지 병세가 호전되어 기무라의 곁을 지켜주게 되었습니다.(솔직히 저라고 해도 기무라 선생의 입장이었다면 두말않고 역도산님의 각본대로 놀아나 주었을 것 같습니다. 명예도 중요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니까요.)

  사실 기무라 선생은 어린시절부터 가족의 사랑이라는 것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얻게된 아내는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가족이었고 쉼터였습니다. 아내또한 기무라를 지극 정성으로 내조해 줬었고 깊이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아내가 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기무라 선생이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죠. 자신의 명예, 귀신이라는 칭호...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던 것입니다. 역도산님이 3번의 매치를 제의하면서 2번은 짜고하고 마지막은 진검승부라고 했을 때 기무라님은 이미 시합이 한 번으로 끝날 것이라는 각오를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무도 인생의 끝이 될 것이라는 것도 어느정도 예상했다고 하죠. 다만, 역도산님의 무도인으로써의 자존심에 실날같은 희망을 걸고 그에 응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그러나 결과는 기무라 선생의 추측대로 진행이 되고 말았죠. 훗날 기무라 선생은 인터뷰에서 그 때의 일은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유일한 가족인 사랑하는 아내를 잃지 않았기 때문에...

 은퇴후의 기무라 선생의 얼굴에는 뭐지 모를 평안함과 부드러움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프로레슬링시절의 그 찌들고 무기력한 모습은 사라져 버렸죠. 무도는 기무라 선생에게 아무런 영광도 주지 않았습니다. 귀신을 굴복시킬 정도라던 유도솜씨도 남의 책략에 들러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에게 프로레슬링은 각본이 있는 것이라는 것이 알려진 1960년대 중반부터는 이에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인들도 '그러면 그렇지, 진검승부라면 프로레슬링 최강자가 아니라  상대가 전세계의 누구라고 할지라도 천하무적 기무라가 그렇게 질 리가 없다.'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뭐 정작 기무라 선생 본인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는 태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역도산님이 톰 라이스를 일본으로 데려와 일방적인 구타끝에 승리를 하게 되지만 이는 오히려 그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만들었습니다. 톰 라이스는 최영의님에게 패배하면서 최선생의 해머같은 정권에 이미 격투가로써의 인생은  끝나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싸울 수 없는 톰 라이스는 돈 때문에 일본까지 오게 된 것이었고 역도산님은 이를 이용, 일본인들 앞에서 그를 이겨버립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당시의 관중들에게 각본이나 쇼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음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고 맙니다. 톰 라이스는 처음부터 누가보기에도 전의조차 없었던 것이죠. 정말 명예 회복을 하고 싶었다면 자신을 참패시킨 톰 라이스를 그 지경으로 만든 최영의님에게 도전을 했었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8. 그레이시와 함께 되살아난 유도의 귀신 기무라 마사히코
.

 

그레이시 패밀리의 발레투도가 세계를 휩쓸게 되자, 이 그레이시를 일찌감치 격파해 버렸던 기무라 마사히코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무라 님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고, 다만 그 당시에 엘리오를 이기는 필름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죠. 그러면서 사람들은 기무라를 역도산에게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패배한 힘없는 유도가가 아닌 진정한 최강의 유도고수로 다시한번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쿠라바 카즈시라는 뛰어난 그래플러가 그레이시 패밀리를 기무라 록으로 격침 시키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기무라에 대한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사쿠라바가 호이스를 쓰러뜨린 다음날 신문에는 '사쿠라바, 일본 격투계 50여년만의 비원성취'라는 기사가 1면 톱으로 실리게 됩니다. 바로 엘리오가 기무라에게 무릎을 꿇은지 50여년이 지났기 때문이죠. 그리고 공개된 필름 속의 기무라는 역도산님과의 시합에서 무기력하게 실신해버린 삶에 찌들어버린 모습이 아니라 그 막강한 그레이시 유술을 일방적으로 부수는 가공할 실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강자의 모습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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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수련원칙

3. 동공시 몸의 연속성과 호흡



수련 시, 3개의 활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상체의 활이다.

이것은 머리 꼭대기에서 사타구니까지 뻗어있다.

두 번째 활은 팔과 등이다.
두 개의 중지(middle fingers)는 등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활과
같은 모양을 형성한다.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등을 열고, 어깨와 팔을 방송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 활은 하체이다.
무릎을 열고 사타구니를 거둠으로써 아-치를 형성한다. 이것은
앉은 자세를 안정화 시킨다.

숨은 코로 쉬는 것이 중요하다.
혀를 입 천장에 붙이면 이것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숨은 느리고, 깊으며, 규칙적이어야 한다. 호흡을 동작과 일치시
키려 할 필요는 없다.

수련 시, 마음에 새겨야 할 몇 가지 비법이 있다.
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원(unity circle)의 개념인데,
실제로 이것은 머리 끝부터 시작하여 발까지, 팔과 어깨를 감싸
는 구( sphere)를 의미한다.

이것은 전술한 3개의 활을 연결시킨다.
이 원은 몸의 연결과 열림에 대한 자각(awareness)에서부터 생
겨난다.
통일원은 좋은 자세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자각은 수련자가 자신의 동작을 교정하는 과정을 도와줌

으로써 수련의 질을 높여준다.
이 원은 가장 광범위한 영역을 감싸는 것이기 때문에,
수련자가 어떤 방향으로든 불균형을 초래하는 것을 막아준다. 이
것은 풍선과 같은 것인다.
풍선을 불면, 그것은 모든 방향에 대해서 공평하게 팽창한다.
태극권에 있어서도 우리는 우리의 몸을 모든 방향으로 팽창시킨
다.

원에 대한 자각은 당신의 동작을 교정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당신은 그 원을 완성할 수 있도록 방송하고 팽창하게 될 것이다.
원은 가장 균형이 잡힌 기하학적 형태이다.
원은 통일된 형태이기 때문에, 원 속의 모든 점들은 동등한 중요
성을 갖는다.

그 중심은 매우 견고하며 강력하다.

무술적 관점에서, 원은 공과 같다.
당신이 공의 한 쪽 면을 때리면, 표면이 들어가고, 반대편이 되튀
어 당신을 때릴 것이다
이러한 효과는 방어와 공격이
1개 동작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응은 구분 동작으로 이루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오른 쪽을 공격하면,
신체의 오른 쪽이 양보되면서, 왼 손은 자동적으로 선회하여 되받
아 치게 된다.
또 하나의 비밀은 팽창을 통하여 방송하는 것이다.
관절들을 엶으로써, 근육이 이완되고 기는 더 원활하게 순환된다.
마음 또한 더 평온해 진다.

수련 시, 당신은 서 있다.
그러나 앉아 있는 것처럼 느낀다. 사실은 당신은 서 있다.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서 있다.
무릎과 팔꿈치는 굽혀져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마치 펼쳐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들은 실제로 굽혀져 있다.
굽혀져 있다. 굽혀져 있지 않다. 굽혀져 있다. 이 경우,

마지막 문장은 처음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자세에 대한 처음의 지각(awareness)과 마지막의 지각
(consciousness)은 상당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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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수련원칙

2. 올바른 자세와 자세에 따른 의념


어떻게 하면 좋은 자세를 얻을 수 있는가?
 

사람들은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뿌리를  내린 자세란 낮은 자세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으나, 이것은 뿌리 내림과는 다른 개념이다.

나무가 성장할 때, 뿌리가 커지고 깊어질 뿐만 아니라, 가지와 잎도 비례적으로 확장된다.
당신이 뿌리 내림을 구한다면, 관절을 열어야 한다.
발이 땅 속 깊숙히 닿는 것처럼 느낀다.

수련을 할 때, 척추는 하늘과 땅을 향하여 늘어나는 것처럼 느낀다.
중국에서는 사람이란 하늘과 땅을 잇는 존재라고 일컬어진다.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나무와 같이 반대 방향으로도 자라야 한다.

이와 같은 팽창과 올바른 태극권 수련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첫 번째로, 코 끝과 배꼽을 잇는 수직선이 존재해야 한다.
목은 이완되어야 하고, 어깨 위에 편안하게 놓여 있어야 한다.
머리의 위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머리가 어떤 방향으로든 기울어진다면, 몸은 그 즉시 균형을 잃어버리게 된다.

힘을 주지 않은 상태에서, 머리 꼭대기는 마치 하늘에 닿는 것처럼 느낀다.
또는, 머리 꼭대기가 줄로 하늘에 매달린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머리 꼭대기로부터의 팽창된 느낌은 등을 열어주며 기가 척추를 따라 순환하도록 해준다.

턱은 약간 아래로 당겨서 목이 보이지 않도록 한다. 이것은 코가 배꼽과 일직선 상에 놓이도록 해준다.
눈꺼풀은 커어튼과 같이 이완한다.
눈꺼풀이 이완되면, 마음이 평온해질 수 있고,

신체 근육의 긴장을 풀어줄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얼굴의 근육 또한 부드럽게 이완시켜 줄 필요가 있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당신의 모습은
진지하여야 하지만 너무 진지해서는 안된다.


시선은 정면을 향하지만, 밖을 보는 것은 아니다.
대신에, 우리의 눈은 신체 내부와 자세를 본다.
이것은 신체 내부의 지각력 유지에 도움을 주며, 마음의 방송을 향상시킨다.
우리의 눈이 밖을 보게 된다면, 기를 잃게 되는데, 그 이유는 기가 의식의 방향을 따르기 때문이다.

입은 닫아야 하나, 턱을 악 다물어서는 안된다. 혀는 윗 면을 입 천정에 가볍게 붙인다.
이것은 코로 호흡하게 하며, 갈증을 막아 준다.
더 중요한 것은, 혀는 인체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 통로인,
중앙의 지배적인 경락 들을 연결시키는 다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락 들을 연결함으로써, 에너지는 온 몸을 순환할 수 있게 된다.


가슴은 안으로 들어가고, 등은 밖으로 나온다.
이것의 의미는 어깨를 약간 앞으로 이완시켜
등 근육을 펴주고 가슴에 공동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상체의 방송은 팔의 길이(범위)를 늘여준다.
게다가, 이것은 팔의 관절을 확장시켜, 기의 흐름을 향상시킨다.
이는 또한 느리고, 깊은 호흡을 도와준다.


어깨를 이완시키고, 팔꿈치는 떨어뜨린다.
이것은 팔이 마치 책상 위에서 쉬고 있는 것처럼,
또는 무언가가 팔을 잡아올리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의미이다.


팔꿈치를 무릎 방향으로 가라 앉히는 것은 어깨의 방송을 도와준다.
팔꿈치를 가라앉힘으로 해서,
팔의 길이가 늘어나고, 힘과 근육의 유동성이 증대된다.
이것은 또한 상대방에 대한 더 향상된 지각력을 가능하게 한다.
상대방의 움직임, 에너지, 의도를 더 쉽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어깨 관절의 방송은 또 다른 중요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팔이 앞 쪽으로 확장됨에 따라, 어깨는 뒤쪽으로 확장된다.
이것은 마치 거대한 공을 팔로 감싸 안으려는 것과 같다.
등은 둥글게 뒤쪽으로 확장된다. 동시에 팔은 공을 앉기 위해 앞으로 뻗는다.
어깨가 방송되면, 어깨 위의
경혈 'Ju Gu (LI16)' 부근을 열어주는 침하(depression)가 나타난다.
수련 시, 견갑골 사이에 있는 경혈
'Shen Dao (GV11)'를 통하여 팔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손목은 열리고 확장되어야 한다.
손 또한 열리고 약간 구부려야 하는데, 마치 축구공이 손바닥에 놓인 것과 같다.
엄지와 손을 연결하는 관절은 열려야 한다.
우리는 이 관절을 호랑이의 입이라 부른다.


손가락들은 마치 양 손이 중지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손의 방송은 힘이 손가락 끝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해주며, 손의 부상을 예방한다.
등의 아랫 쪽은 열려야 한다.


골반은 미려가 가라 앉을 수 있도록 앞 쪽과 위쪽으로 당긴다.
마치 의자에 앉은 것처럼 느껴진다.


등을 여는 것은 몸의 중심이 발로 떨어지도록 해준다.

이것은 좋은 균형을 유지하면서,
어느 방향으로든 무게를 이동시킬 수 있도록 해준다.
등의 아래쪽을 열면, 상체와 하체는 명문혈 (GV4)을 통하여 통합된다.


엉덩이는 힘을 주지 않으면서 옆으로 연다.
이것은 사타구니 근육을 방송하는 것이다.


두 무릎은 힘을 주지 않으면서 서로 약간 밀어낸다.
비록 두 무릎은 떨어져 있지만, 관절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존재한다.
두 무릎은 마치 말을 탔을 때 처럼, 상대방을 향하여 안쪽으로 틀어진다.


허벅지는 엉덩이에서 무릎까지 바깥 쪽으로 나선을 그리듯 한다.
이러한 동작은 다리의 힘을 열어주며, 뿌리 내림의 느낌을 촉진한다.
다리의 자세는 등이 완전히 열릴 수 있도록 매우 안정된 기반을 제공한다.


무릎은 수직으로 약간 구부린다.
이것은 구부려 있는 중에 펴진 것이며, 펴 있는 중에 구부린 것이다.
무릎은, 더 견고하게 앉고, 미려를 더 가라 앉힐 수 있도록, 위를 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릎을 구부리는 것은 어느 방향으로든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준다.
이것은 힘이 관절을 통과할 때, 부상입지 않도록 해준다.


발목 관절도 손목처럼 열려야 한다.
열림은 유동성을 증대시키며,
움직일 때 아주 부드러운 전환이 나타나도록 해준다.


발은 매우 중요하다. 발가락은 고양이 발처럼 구부려 땅을 살짝 움켜잡아야 한다.
발바닥은 약간 아-치형을 이룬다.
이러한 자세는 땅의 에너지를 몸으로 흡수할 수 있도록 해준다.
발가락의 움켜쥠은 무릎에 가볍고 유동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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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태극권 수련 원칙 中
(Fundamentals of Correct T'ai Chi Practice)
                By Ting Kuo-Piao (William 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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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수련 원칙

1.마음자세
 
왜 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 동안 태극권 수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온 몸을 방송시키지 못하며, 온 몸을 통하여 에너지를 느끼지 못 하는 것일까?

그들의 동작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통합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이렇게 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올바른 태극권 원칙을 적용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어떤 사람들은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너무 진지하게 수련하거나, 또는 너무 진지하지 않게 수련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무 진지하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평온해 질 수 없으며, 방송될 수 없다.

이 점을 생각해야 한다.
당신이 너무 진지하다면, 근육과 피부는 긴장되고 굳게 된다.
민감도는 떨어지며, 몸이 딱딱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수고
를 감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지각력(awareness)을 강화시켜 줄 만한 여력이 별
로 남아있지 않게 된다.

반면, 학생이 진지한 주의 없이 수련에 임한다면,

그의 시선은 방황을 하게 되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며,
안절부절 못하게 될 것인 바, 이렇게 된다면, 그들은 태극권의 특
성을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태극권은 에어로빅 체조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태극권의 공력을 길러 나가고, 태극권의 통합, 협조, 조화를 성취
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적 평온을
이루기 위해서 특정한 지점에 정신을 집중한다.
이러한 방법은 신체의 다른 부분을 희생해서,
특정 부위로 기와 혈을 불균형하게 흐르도록 유도한다.
기는 의식의 방향을 따른다는 사실을 상기함이 중요하다.
좋은 자세는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며, 기를 원활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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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바른 태극권 수련 원칙 中
                                (Fundamentals of Correct T'ai Chi Prac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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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라 그레이시

재색을 겸비한 미녀 격투가 키라 그레이시
현역 모델 출신으로 변호사가 되기위해 대학에서 공부중

재색을 겸비한 미녀 격투가 키라 그레이시(19)가 8일, PRIDE나 LOVE IMPACT 등 일본에서의 시합에 조건부 참전의사를 표명했다. 키라는 홉슨 그레이시의 귀여운 딸이며 헨조의 여동생. 증조부 카를로스는 힉슨이나 호이스의 아버지인 엘리오의 형에 해당하는 정통파 그레이시. 현역 모델이면서, 04년 7월에 행해진 유술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는 등, 유술 세계 제일의 실력을 자랑한다.

재색을 겸비한 미녀 격투가 키라 그레이시(19)가 8일, PRIDE나 LOVE IMPACT 등 일본에서의 시합에 조건부 참전의사를 표명했다. 키라는 홉슨 그레이시의 귀여운 딸이며 헨조의 여동생. 증조부 카를로스는 힉슨이나 호이스의 아버지인 엘리오의 형에 해당하는 정통파 그레이시. 현역 모델이면서, 04년 7월에 행해진 유술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는 등, 유술 세계 제일의 실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후지이 메구미, 시나시 사토코, 츠지 유카등의 이름을 든 키라는, 일본의 격투기의 성원에 대해 「언젠가 일본의 팬 앞에서 시합을 해 보고 싶다」라고 참전에 긍정적. 유술 세계 여자 최고수로 적지에서 싸울 용기 있는 격투가가 나타날지, 향후의 동향이 주목된다.

 이 날, 키라는 후지텔레비에서 방영하는 「세계 충격의 대단한 깜짝! 대집합 - 격투왕스페셜」(14일 19시~20시 54분 방송)에 출연. 유도 경험이 있는 선수를 상대로 화려한 유술 테크닉을 보였다. 

 ■키라 「하이안 숙부는 과보호!」
 현역 모델의 미모를 자랑하는 키라에, “최강 일족”의 삼촌이 나쁜 벌레가 붙지 않게 눈을 부라리고 있는 것이 판명됐다. 특히“광견”하이안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며 애정이 남달라, 키라는 「삼촌의 과보호로 곤란해진다. 보이프렌드가 되려면, 우선 하이안과 좋아져야 한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키라 「일본에서 시합 하고 싶다」

일본의 인상은?

 훌륭하다! 매우 좋은 곳. 거기에 일본인은 모두 친절하고 디즈니랜드에도 데려가 주었다(웃음). 나의 일족은 일본과 교류가 많고 유술은 일본이 발상지이니까, 더욱 애착이 간다. 더우기 일본에서 격투기 팬으로부터 싸인을 요구받아 깜짝 놀랐다. 이렇게 알려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언젠가 세미나 등을 통해 교류해 보고 싶습니다.

유술을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

 8년 전부터. 그렇지만 어릴 때로부터 주위에는 대회에 나가는 사람들 뿐이었기 때문에(웃음), 매우 가까이에서 부터 느끼고 있었다. 옆에서 삼촌들이 가르쳐 주는지라 늘 흉내 정도는 내고 있었으니까.

유술을 하며 「이제 그만두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다. 유술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나의 역할은 유술을 온 세상의 여러 사람에 알리는 것. 아직 남성에 비하면 경기 인구는 적지만, 팬암(미국 유술 선수권)으로도 5회 시합하러 나갔고, 남성과 같이 싸웠다. 이제부터라도 여성 유술가가 많아질거라 생각한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유도경기를 보았는가?

 그렇다. 그렇지만 브라질에서는 자국의 선수가 나오는 시합 외에는 TV로 방영하지 않기 때문에, “야와라 ”나, 일본 선수의 시합을 보지 못했다. 아, 마라톤의 동메달에는 대단히 감동했다!


일본의 여자 격투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있는지?

 팬암(03년 4월에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개최된 유술 대회)에서 싸운 후지이 메구미는 매우 강했다. 게다가, 시나시 사토코 선수를 알고 있고, 츠지 유카 선수와도 만났던 적이 있다.

PRIDE로부터 출장 요청이 있으면?

 종합룰 말고 유술 시합이라면 나가 보고 싶다. 나는 유술가이니까. 유술을 연구해 검은띠를 메고 싶다. 시나시와도 유술 시합이라면 OK. 원래 시나시씨는 삼보 선수 아닌가? 종합룰은 가능하면 삼촌들에게 맡기고 싶다.

유술 기술 중 특기는?

 오모플라타도 잘 사용하지만, 제일은 암락. 오모플라타로 부터의 암락 이라든지, 여러가지 변화가 있다. 실은 처음 배운 기술이 암락이었다.

지금 유술 이외에 하는 것이 있다면?

 해변에서 서핑 하는 것. 거기에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여자 선수 이외에 일본의 격투가 중 아는 사람이 있다면?

 우노 선수나 사쿠라바 선수, 거기에 요시다 선수. 그레이시와 싸우고 있기 때문에 알고 있다. 거기에 PRIDE에 나오는 선수.

판크라스나 PRIDE에서 활약하는 콘도 선수나, 슈토의 사토 루미나 선수도 서핑을 하고 있는걸 알고 있는지?

 아, 그런가! 언젠가 함께 서핑 해 보고 싶지만, 재미로 하고 있는 정도라 부끄럽다.

당신같이 아직 일본에는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강호 그레이시가 있는지?

 네. 호쟈는 아직 일본에서 시합을 하고 있지 않지만, 매우 강하다.

그러고 보면 하이안 선수가 당신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며 귀여워하고 있다던데. 삼촌들 중에서 제일, 시끄러운 것은 역시 하이안?

 네(웃음). 하지만, 거의 과보호 수준―.


보이프렌드가 되려면 하이안 선수의 허가가 필요하지 않을지?

 그렇다. 우선은 하이안과 사이가 좋아지지지 않으면 (웃음). 하지만, 헨조도 호이스도 힉슨 삼촌도, 장소는 떨어져 있어도 대회 등으로 미국에 가면 매우 잘 해 준다. 삼촌들을 비롯한 일족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키라 그레이시 유술 시합 영상 >

     


19세.. (주: 포스팅 당시가 2006년 7월경이었으니 지금은 22세 정도 되었겠군요..)

주짓수 갈색띠..

힉슨 그레이시의 조카 랍니다.

키라 그레이시 양..

이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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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진가라데 창시자 최영의 선생님 글입니다.

"네가 젊은너희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남자한테 제일중요한것은 야심이다..
돈을잃은것은 작은것이다 신용은 중요한것이다 그러니 신용을 잃어 버리면 안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용기다.
용기를 잃어버린것은 전부 잃은것이다.....

예전에 나의 도장으로 전화가 왔다
극진수련생들이 야쿠자들과 싸워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서 도장운영이 힘들다는것이였다.
난 싸운 제자들에게 단번에 때려치라고 했다.
그런 정신으로 할꺼면 도장은 의미가 없다고.....
너희들 길에서 누가 너희어깨를 치고 발을 밟고 시비를 건다면 사과를 해라 그런대도 싸움을 건다면 싸워라.....
무엇때문에 가라데를 수련했는데 그런 폐기도 없다면 가라데를 때려쳐라 적에게 등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극진의 역사다.

남자로써 싸움을 못하면 실격이다
싸움에 강한사람은 빠르다 빠른사람은 싸움뿐만 아니라,
그무엇에도 강하다.... 돈을버는것도 싸움을 하는방식으로하기때문이다.........

남자는 죽을때까지 전쟁이다......
싸움의 무대는 도장이 좋다 몸이 엉망이 될때까지 싸워보는것도 좋다 그러면서 배워가는거다.
사무라이는 칼을 매일간다 하지만 칼을 뽑지 않는데 그 의미가 있는것이다.
극진의 정신은 너희도 알고있겠지
고개는 숙이고 눈은높이 입은 신중하고 마음을 넓게
효를 원점으로 모두에게 의롭게 해라..........
여자를 볼때도 집에 효도를 하는가를봐라 효를 아는사람은 누구에게도 잘한다.... 그것은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잘되는일은 남의덕으로 돌려라........
잘못되는일은 나의탓으로 돌려라.....
그리고 스스로 성장하는거다....
나 의에에는 모두가 내스승이다.........

실천이 없으면 증명이 없고 증명되지 못하면 존경받지
못한다.........

어쨎든 노력이다... 노력하지 않고 강해질수 있다면 내가 가장 배우고 싶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남자의 무능은 죄다... 부모님의 주신 감사한 몸을 왜 단련하지않는가! 왜 공부하지 않는가!

돈을 쫒지 마라 여자와 명예도 마찬가지다.
돈,여자,명예가 쫒아오는 남자가 돼라...
다시한번 말하지만 남자는 야심이 있어야 한다
야심이 있는남자가 씩씩하다, 용기가 있다
목표가 있기때문에 성장하는거다.......
남자는 죽을때까지 전쟁이다.....

정의없는 힘은 무능이다 하지만 힘없는 정의도 무능이다
솔직히 말한다면 난 너희들이 이겼으면 좋겠다......
이기고싶은마음이 진짜다...... 강해지길 바란다.
이제부터 세상은 너희들의 것이다 다만 용기가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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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극권의 비전

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말씀드리지만,

팔극권의 비전은 노력입니다.

"어찌되었든 노력이다... 노력하지 않고 강해질수 있다면 내가 가
장배 우고 싶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라고 말씀하시는 최영의 선생님 말씀 처럼
저 또한 노력하지 않고 강해지는 그런 방법이 있으면
찾고 싶지만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다 싶이 그런 방법은 세상에 없습니다.

소욱창 노사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기공이든, 그 무엇이든, 쉽게, 편안하게 고수가 되는 그 모든 방법은
가짜입니다.

무술을 즐기고 수집하는 것과 무술을 수련 하는 것은 절대 다른 "것"
입니다.

서울 무단팔극권 정식도관 (http://cafe.naver.com/wutangbaji)서울 무단팔극권 정식도관 (http://cafe.naver.com/wutangbaji)

일찍히 저희 팔극권이 유명하게된 이유는
기존의 많은 투로를 버리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초적인
기술을 재구성, 재배치하여 내면에 변화가 생길때까지 끊임없이
반복 숙달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유도 선수가 업어치기라는 기술을 익힙니다만,
그런 선수들 중에서 시합에서 한판 업어치기를 할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업어치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할수 있도록 연습되어진 사람만이
실전에서 업어치기를 사용할수 있는 것이지요.

즉,
저희 팔극권의 비전은 내가 배운 기술을 실전에서도 사용할수
있는 기술로 만들기 위해 끊임 없이 무한 반복하는 것이며,

강함이란, 반복을 통해 완벽히 내것으로 만들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졌을때 가질수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힘든 육체와의 싸움,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과의 싸움,
나태한 자신과 싸움,
시간과의 싸움,
돈과의 싸움 등등,
엄청난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 최영의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강함이란,
이런 수련을 통해서 강해진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강해질수 있다는 말씀이겠지요..


저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들 강해집시다..
오늘 하루도 쟁취하는 하루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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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권술에 존재하는 참장은 건강을 위한 기공으로서의 효과와 올바른 자세로 몸을 교정하게 해주어 양생을 위해서 추천할만 합니다.

실제로 지속적으로 설수록 몸에 매우 좋으며, 무술에 필요한 근육을 기르면서 기공을 하는 효과가 납니다.

약간 휘은 척추의 교정효과도 있구요.

그러나 잘못된 자세로 계속 설 경우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낼 수도 있을만큼 올바른 자세로 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참장에 관심이 있어서 혼자 서고있는 분들이나 현재 수련중인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으로
참장시 신경써야할 중요 체크포인트에 대해 써 볼려고 합니다.

 '입신중정(미려중정)' 등과 같은 전문?용어는 쓰지 않고 초보자를 기준으로 풀어서 쉬운말로 쓰도록 하지요.

기본적으로 참장을 어떻게 선다는 것은 다른 책이나 글을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들어가기에 앞서 참장은 기본적인 형태와 심법은 같지만 권술이나 문파마다 조금씩 틀리므로 이것만 맞다고는 할 순 없습니다. 다만, 아래는 제가 수련하는 무단 팔극권에서 서는 방식이며, 이렇게 서는 방식도 매우 효과적이란 것을 말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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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장시 체크 포인트 >


1.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는 곳은 없는지..
(처음부터는 안빠지나 항상 의식적으로 힘을 주지않으려 노력해야함. 특히 어깨 주의)

2. 양발의 보폭은 어깨넓이 또는 어깨넓이보다 약간 더 벌리는 정도...

3. 양발의 모양이 11자 가 유지 되는지..

4. 양무릎을 안쪽으로 조여 주어야 합니다.

5. 양발에 체중이 50:50으로 분배되어 있는지..

6. 척추가 바로 섰는지...(입신중정)
  (보통 척추를 일자로 세웠다는 느낌이 들때보다 조금 앞쪽으로 기울어진 정도가 바로 서진 위치입니다.)

7. 양발가락으로 땅을 조으고 있는지...(십지지조)
  (새가 전선을 움켜쥐듯 땅을 움켜쥔다는 느낌)

8. 양무릎이 양발의 엄지발가락보다 앞으로 나오면 안됩니다.
  (이를 지키지 않을시 체중부하로 무릎이 상할 수 있습니다)

9. 엉덩이를 말아 넣어야 합니다.
   (오리 궁댕이처럼 엉덩이가 나오면 안되며, 엉덩이를 당겨 넣어야 함)

10. 허리쪽 골반과 허벅지 사이에 각이 존재해야 합니다.

11. 입으로 숨을 쉬지는 않는지..
(입은 다문상태로, 코를 통해 호흡을 하며..호흡은 관여하지 말고 자연호흡으로 내버려 둡니다.)

12. 턱을 당겨야 하며, 눈은 반쯤뜬 눈으로 전방 15도 아래쪽을 봅니다.
(턱을 당기는 느낌은 마치 밧줄에 목이 매달려 정수리부분이 당겨지는 느낌입니다.)

13. 팔은 보통 가벼운 주먹으로 어깨높이 정도로 힘을 뺀상태로 앞쪽으로 자연스럽게 들고있습니다.
(팔은 쭉펴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팔꿈치가 아래쪽을 향하도록 드는 것입니다)

14. 무리해서 낮게 설필요는 없습니다. 낮게서면서 위에 언급한 요결이 무너지는 것은 오히려 몸에 해로울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높은 자세로 시작하며...요결을 지킬수 있는 범위내에서만 낮추도록 합니다.

15. 참장을 처음서거나 얼마되지 않았을때는 위 요결을 지키며 서다보면, 참장중에 어깨, 허벅지, 허리 등의 근육이 아프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는 참장시 평소 안쓰던 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이며, 아픈것은 정상이기에 참고서시면 됩니다.

꾸준히 서다보면 근육이 풀리고 힘이 빠지면서 통증은 사라질 것입니다.

당부드리는 말 : 누가뭐래도 직접 오프라인상에서 배우는게 가장 좋습니다.
       여건상 그게 안된다면, 책자나 온라인상의 글과 사진을 통해 충분히 감을 잡으신후,
       위에 적혀있는 주의사항들을 참고하여 높은 자세부터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이 참장을 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해서 적어 보았습니다.

                                                                                           - 은빛늑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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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2005년 7월경 네이버 무예동에 올렸던 제 글을 다시 수정 편집한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은빛늑대 입니다.

곽가 팔극권은 이씨 팔극권의 하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서문 선사님의 이가 팔극권은
통칭해서 이씨나 이가 팔극권이라 부르긴 하나 일반적으론 구분을 둡니다.

우선 이씨 팔극권은 크게 동북계열 팔극권무단 팔극권으로 나누어 집니다.

동북계열 팔극권은 이서문 노사님이 배운 초창기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며 약간 투박하고 강직한 느낌입니다.

[동북계열 팔극권]을 굳이 구분하자면,
초기제자이신 곽전곽 노사님이 청의 마지막황제인 부의를 호위하며 마지막에 정착한 중국 장춘에서 담길당 노사님으로 전수되어진게 [장춘 팔극권],
곽전곽 노사님의 조카인 곽경운 노사님의 자손들이 대를이어온 [곽가 팔극권]으로 나눌어 불려집니다.

사실 조금 다르긴 한데 같은 동북계열이라 느낌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팔극권 철산고(첩산고)


[무단 팔극권]은 말년의 이서문 노사님의 생각과 변화를 거친 팔극권 입니다. 느낌은 동북에 비해서 약간 세련되고 끈적근적한(저는 이런 느낌을 좋아합니다. 설명하기 애매한데...적에게서 안떨어지고 공격한다는 그런느낌...)그런 느낌입니다.

무단 팔극권은 아시다시피 이서문 노사님의 마지막 제자이신 유운초 노사님이 주축으로 만들어진 대만 무단의 팔극권이며, 팔극권에 팔괘장의 기법이 조금 녹아 있습니다. 제가 수련하는 팔극권 이기도 합니다.


정리를 해보면...

통상 이씨 팔극권으로 지칭되는 팔극권은 크게 동북계열 팔극권과 무단 팔극권으로 나뉘며, 동북계열 팔극권을 굳이 구분하자면 장춘팔극권과 곽가 팔극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참고로

유명하고 대표적인게 무단 팔극권, 오가(개문) 팔극권, 동북계열(장춘,곽가) 팔극권 입니다만,

그외 김가, 마가, 회족, 중앙국술관식(굳이 이것도 구분을 하자면 이서문노사님 계열이긴 하나 군사훈련을 위해 과정이 많이 생략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팔극소가가 없습니다.-_-;)등의 다양한 팔극권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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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2005년 10월경에 네이버 무예동에 올렸던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은빛늑대 입니다.
오랫만에 글 올려봅니다. ^^

먼저 답변하기에 앞서 올리는 글은 제 경험과 지식내의 개인적인 생각에서의 답변임을 미리 밝힙니다.
수련한 경력이 짧고, 제가 고수도 아니므로 틀릴 수도 있읍니다.
그냥 참고삼아 봐주셨슴 합니다.

촉수괴물님의 질문의 의도는 원류냐 아니냐 진짜냐 가짜냐의 문제가 아닌
추가된것 없이 원형을 얼만큼 더 보존하고 있는 곳이 어디냐의 질문으로 전 이해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아시다시피 원형 그대로 보존을 한다고, 가장 실전적이다는 말은 아니란 것에 동감하실줄로 압니다. 기술의 추가나 개선은 더 효율성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핵심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의 받아들임은 그렇지 않음 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형 그대로의 보존과 개선된 것의 문제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어느쪽이 더 효율적이고 실전적이라고 구분 지을수 있는 것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팔극권 쌍장(호박)


먼저, 가장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는 중앙국술관식 팔극권에 대한 제 생각을 말해보자면 군대식(중앙국술관)의 팔극권은 빠르게 익히기 위해(실제 전쟁에서 쓸려면 오래걸리면 안되죠^^;) 단조수 위주의 과정으로 되어있는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실제 팔극권 수련이란게 꾸준한 단련과정이 필요한 법이고 나름대로의 커리큘럼을 지키며 가야 제대로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군대식의 느낌은 빨리 쓰기위해 꼭 필요한 것들조차 생략해 버린 느낌입니다.(인스턴스 적인...)

한 예로, 어떤면에서 보면 팔극권에서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소가식의 과정 자체가 없습니다.
이(서문) 노사님도 국술관 팔극권이 만들어 질때 굉장히 노하셨단 일화도 있구요.
팔극권의 가장 원형에 근접했다기보단 오히려 가장 멀 것 같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멀다 함은 촉수괴물님이 의도한 유파의 원형에서 멀다는 뜻입니다. 가짜니 안좋다니 그런 뜻이 아니니 오해하시는분 없으시길...)


그리고 원류라 하면 오가(개문)쪽이 맞겠으나, 말씀하신것처럼 여러가지를 받아들여진 부분이 보입니다.
뭔가 배울게 많아졌다고 생각 됐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엔 대표적 몇가지 팔극권 유파들 중 배울게 가장 다양한 듯? 합니다.

언제부터 추가가 된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오련지 노사님 대로 넘어오면서가 아닌가 추측...)
일단 추가가 없는 원형 보전이라는 의미에서 원하시는 답은 아닐 듯 하구요.
(당연히 원류가 왜곡 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효율성과 필요성에 의해 추가된 것 이겠지요.)


무단 팔극권 같은 경우 촉수괴물님의 생각처럼 배울것의 갯수는 많지 않다고 생각됩니다만..^^;
단지 하나하나가 매우 깊습니다.

제가 알기론 이노사님의 말년의 팔극권에 유노사님이 배운 팔괘장의 기법이 녹아있는 게 특징이고, 팔극연환권이란 최종 투로가 하나 더 추가 되었다는 정도의 차이로 압니다. 그외의 과정은 특별히 원류에서 크게 추가된것은 없고, 단지 효율성을 위해 개선된 것은 보입니다. 팔극권 내에서의 개선은 이 노사님이 말년에 정리하신 부분으로 압니다. (예를들면 대전붕추 같은 기술의 추가나 맹호경파산 기법의 효율적 변화 등...)

무단이란게 팔극권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무술들의 총체라 다른 무술들도 다 있기에 뭔가 배울게 많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고 추측해 봅니다.  

어쨌든 이 노사님이나 유노사님이 매우 뛰어나신 분인건 사실이지만, 원형 그대로의 보전이라는 의미로 본다면 이쪽도 원하시는 답변은 아닐꺼 같습니다.


결론은 팔극권 원형만의 기법을 굳이 찾으신다면 이노사님이 초기에 배운 팔극권이 가장 가깝지 않을까 합니다.

현재 그쪽은 곽전각, 곽경운(이름이 확실치 않네요..거억이..;)  노사님 쪽 유파인 동북팔극권으로 불리는 장춘/곽씨 팔극권 입니다.

둘다 곽가 팔극권인데 왜 장춘/곽씨 라고 제가 구분을 두었냐면, 장춘은 일반적으로 잘 아는 곽전각 노사님의 제자인 담길당 노사님 쪽이고, 곽가쪽은 아마 곽경운 노사님쪽에 가전되어 온것으로 압니다.

실제 투로나 단조수를 봐도 매우 투박하고 강직한 느낌이 많이 듭니다.

이쪽이 아무래도 이노사님이 그분의 스승님으로 부터 전수받은 팔극권의 배운 그대로를 전해 줬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때, 촉수괴물님이 원하시는 답변에는 제일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마가나 김가 등 여러가지 팔극권이 더 있으며, 그쪽은 제가 모르는 부분이고 아는범위에서의 답변인지라 실제로 이외 다른 유파가 원형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는 점을 밝히고 넘어갑니다.

첫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원형 그대로라고 해서 더 실전적이다 아니다는 논외대상이 아닙니다.
더 효율적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부분일 것입니다.

버추어파이터 팔극권 아키라


다른 권술도 그렇겠지만, 팔극권이란 것이 단순히 동작을 외운다고 전수 되어진다기 보단, 얼마나 그 원리에 충실하고 그것을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스승님께 배워도 시간이 지나면 각자 제자들만의 다 다른 팔극권이 나오게 마련입니다.(어느무술이던 마찬가지..)
요지는 얼마나 스승에게서 배운 팔극권의 원리를 잘 이해했고, 몸으로 익혔고, 또 표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똑같은 모양이 아니라고 해서 잘못된 팔극권이 아니란 거지요.(사실 변화되는게 당연한 거죠.)이런 맥락에서 보면 사실 질문하신 의문점이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무술 어떤 유파에서 수련을 하던지, 스스로에게 만큼은 그 무술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또 좋아해서 수련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뭘 하던지 실제 운동은 안하고, 말로만 또는 인터넷으로만 무술하는? 사람보단 훨씬 나은 분들 이니까요. 

마지막으로, 팔극권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분이 손에 꼽히는데, 새로운 유파가 많이 생겨난다는 것 자체는 마치 태극권의 새로운 유파가 많이 생겨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어 씁쓸하네요.

제대로 이해하고 익히지도 못한 사람이 새로운 유파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실전을 표방한다면
그 자체가 사이비의 남발과 질의 저하 와도 같은 것이니까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은빛늑대 -

 

.......질문........

>팔극권이 일본에 소개돼면서..

>유파가 더 늘어낫다고 하더군요..

>과거 아는분에게서.. 오씨 팔극권서적을 훑어볼 기회가 있엇는데..

>일본유술인지 뭔지 관절기가 엄청많더군요;;

>아마 이것 저것 받아들이고 기술이 늘어가는 과정일거라 생각하는데요..

>정말 단순하고 팔극권외 잡탕은 없고 짤막한것만 있는 유파는 없는지 알고싶군요.

>이서문계가 그렇다고는 하는데.. 무단만봐도 익힐게 많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_-;;

>중앙국술팔극쪽이 군대식이라는 소릴 들었는데..

>군대식이면 짧으면서 효용적으로 짜여진게 아닐지..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시절도 많이 흘럿고 중앙국술팔극도.. 여러 부연가지를 덧입혓으리라 보는데..

>당시의 군대식.. 자료를 가지셨거나 보신분들의 의견을 구하며..

>그러한 자료는 어디서 어떻게 구할수잇는지 알려주셧으면합니다.

>현재 새로운 팔극유파도 많이 생긴것으로 압니다..

>팔극의 원이치 그대로면서 아무것도 첨가치 아니한것..

>그리고 짧고 효과적일것..

>이런요소에 맞는건 없는지 알고싶군요..

>현재 군대식이 가장 근접하다고 짐작하고잇습니다만..

>많은분들. 팔극의 여러유파를 보신분들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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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카페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한 번 글을 적어야 할 것 같아서 남깁니다.


제가 적는 글은 무단의 공식(公式)적인 입장은 아닙니다.

그리고 제 글을 보고 무단 팔극권이 더 좋다 오가 팔극권이
더 좋다 하는 초등학생 수준의 비교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적는 글은 지금까지 제가 팔극권을 수련하고 각 파의
거의 모든 팔극권을보고 경험을 하여서 이해를 한 개인적인
기준이 많이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무단 팔극권 애니 로고


역사적으로 고증된 바 대로 팔극권의 시원은 중국 맹촌의 오가
(吳家)가 시조입니다.

여기서 근래 100년의 기간 동안에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었는데
아마 무단 팔극권과 오가 팔극권은 서로 다른 점이 가장 많은
팔극권일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뿌리는 팔극권이지만 무단 팔극권은 이제
‘다른 차원의 무술’로 발전을 해 나온 상황이고 지금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 근원에는 이서문 공유운초 선사 두 분의 공이 제일로
큽니다.

이제 좀 구분을 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1. 무단 팔극권의 독특한 경(勁)의 수련법

무단 팔극권은 이제 하나의 새로운 내가권의 형태로 정립
되었습니다.

기존의 내가권과는 약간 다른 형태의 경법을 사용하지만 팔괘장,
육합당랑권,태극권,심의육합권등의 장점을 수용 발전시켜 독특한 
경력(勁力)을 만들어 내는 수련체계를 정립
시켰고 신체의
직임에
있어서도 기존의 팔극권과는 아주 차이가 나는 유연한 움
직임
보입니다.


전사경, 십자경, 침추경, 투화경, 폭발경경법이 있으며 오행기
(五
行氣)를 단련하여 인체 내부에 흐르는 기(氣)의 순환과 단련
근골 외피의 단련보다 우선시 합니다.

이 부분은 오가 팔극권에는 없는 새로운 수련체계입니다.


2. 전투방법의 차이점

많이 알려진 팔극권의 전투법인 붕,감,돌,격기본 전술은 동일
하지만 그 활용에 있어서 보다 유연하고 끈적거리며 여유있는
전투
을 구사합니다.

이 부분은 비교를 해서 직접 경험을 해보면 빨리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3. 단련의 차이점

무단 팔극권에서도 배타공이나 근육단련법인 팔굽혀 펴기등을
하지만 방법이 기존의 무술과 많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팔굽혀펴기도 수련생들에게 시켜보면 10개도 제대
소화를 시키지 못합니다.


평소에 4~50개씩 하던 사람도 말이죠..

그리고 외가 쪽인 외피나 근골의 단련보다는 정확한 자세와 호흡
수련에서 나오는 인체의  올바른 힘인 경력(勁力)의 양성에
수련의
중점
을 두고 있습니다.


올바르고 힘든 참장의 수련을 제일 중요한 수련방법으로 삼습니다.

참장이 안되면 무단 팔극권의 정확한 힘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외의 다른 차이점들은 글로는 설명을 하기가 좀 힘든 부분입니다.

무단 팔극권은 팔극권 뿌리에서 나왔지만 지금은 새로운 형태의
극권으로 정립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단 팔극권이 최고의 팔극권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최고의 무술은 최고의 수련자가 만들어 내겠지요..

저는 아직도 수련이 많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더욱더 땀을 흘리며 스승님들의 경지를 따라가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무단의 스승이신 서기 사부님께서는 1990년대 중반에 중국의
가,장춘,곽가,마가등등의 많은 팔극권들을 두루 둘러보시고 교류
하신 후에 한마디를 남기셨습니다.


‘뿌리는 한 곳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이렇게나 달라진 팔극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개략적으로 두 팔극권의 차이점을 적어봤습니다.

팔극권을 배우시거나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 차이점은 참고로만
하시고 각자의 성격과 자질에 맞는 팔극권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지금은 종가(宗家)나 서로 간의 우월성 비교로 무술을 수련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자기에게 맞는 팔극권을 찾아서 수련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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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3편입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단지 팔극당랑권의 강함을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중국전통무술이 결코 겉모습만 아름다운 화권수퇴의 무술이 아닌 진정한 강함이 있는 무술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을 일본의 중국 전통 무예애호가에게 알리게 되었다는데 있다.

 

시합직후의 사진입니다.

 

 

(註.이 시합의 격렬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얼굴의 상처가 잘 보여줍니다.

사부님은 흐믓하게 웃고 계시지만 이때 마튜테는 갈비뼈에 금이 가 있었다고 합니다.

승자가 뼈에 금이 갔다면 ..상대방은 어떠했는지...상상에 맏기겠습니다.)


현재 중국무술계는 혼란의 극에 달해 있다.


한편으로는 표연시합에서 승리하기 위해 투로 연무 속에서 화려함만을 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투로를 부정하고 공부와는 동떨어진 이론으로 산타를 말하고 있다.

(注.현대의 우슈와 산타시합을 모두 이야기하시는 것으로 장권,남권,태극권,상형권등은 각 무술의 고유한 신체 움직임이나 功夫의 수련과 표현방식에서 벗어난 의미없는 체조적인 움직임이 그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무술의 핵심인 투로의 수련을 통해서 얻어진 功夫와 기술로 시합을 하거나 실제
격투를 해야 하는데 투로,기술수련 따로 산타기술 수련 따로의 웃지 못할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이 현대 중국무술(우슈)의 현실입니다.


투로에 포함된 기술은 그대로 실전에서 적용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투로는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중국무술을 수련하시는 분들은 자신의 선생이 투로 따로 실전 기술 따로의 무술을
지도해 주고 있다면 한번쯤 깊은 고민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더욱이 각각의 단체가 내부에서 대회를 열고 승리와 패배에 일희일우하고 있다는 것이다.

(注. 이런 경우가 많죠. 세계 무술대회,세계 ~~태극권대회 라고 개최를 해서 어설픈 투로 표연 시합과 산타 시합 등을 해놓고 트로피를 골고루 받아 오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자기들끼리 하는 집안잔치가 대부분이죠.

게다가 중국까지 가서 그걸 하다니..돈은 중국인들이 다 가져가고 우리는 쓸모없는 상장과 트로피에 허영심만 잔뜩 들어서 돌아오죠. 슬픕니다 정말로.)

 

게다가 악의를 가지고 타문파를 부정하고 자화자찬을 하는 무리도 있다.

(注.이런 경우는 늘 있는 일이니까.)

 

중국무술을 배우면서 자신이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는 발경법 등의 고등기술을 부정하고 비소(非笑)화하는 파렴치한도 있다.

(注. 중국무술의 진정한 가치가 이 발경법 등의 고등 기술 속에 있다면 제일 거짓이 많은 것도 이 고등기술입니다.


발경법의 예만을 들자면 이것을 정확히 배운 사람은 그 가치를 정확히 알고 충분히 사용합
니다.

하지만 배우지 못하거나 이론만 아는 자들은 비웃거나 가짜라고 치부하고 험담을 늘어 놓죠.

본인이 진정으로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서 배워 보면 그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발경법이 진짜냐 가짜냐는 본인이 직접 배워보면 됩니다.

아무리 글로 적어서 설명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이 제 입장이고 전통 무술 수련자들의 입장 입니다.

궁금하신 분께서는 직접 수련을 해보세요.

그것이 제일 확실한 방법입니다. (다만 많은 시간과 정성과 비용은 듭니다.)

 

지금은 바로 대동단결하여 중국전통무술의 우위성을 내외에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로 이대로는 중국무술의 장래가 한심할 따름이다.


꽤나 좁은 중국무술의 세계 안에서 타인을 신경 쓰며 일희일우하는 것을 그만 둬야 하는게
아닌가?


지금이 바로 자기가 믿는 길을 나아가고 세계의 무술계 격투기계를 향해 중국무술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의지를 보여줄 때가 아닌가?


다행히 현재는 무에타이뿐만 아니라 각각의 세계의 이름을 가진 오픈 토너먼트가 있어 실력을 시
험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일본의 중국 무술 수행자들이 더욱 분발하기를 바란다.        

 

팔극당랑무예관

대사부 소욱창


마지막 글속에 소욱창 사부님의 모든 마음이 다 들어있고 저도 똑같은 마음입니다.

 

소욱창 사부님과 마튜테의 최근 사진입니다.



이건 팔극당랑문의 세계합숙훈련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파티하는 장면입니다.


중국무술을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 수련 정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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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늑대(天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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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마튜테는 베네쥬엘라 사람으로 팔극당랑문 소욱창 대 사부님의 대제자중 한 분입니다.
 

타류시합에서 얻은 성과를 자료와 함께 3편에 걸쳐서 올릴 계획입니다.

인터넷에서 논쟁을 하기 좋아하며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어리석은 이들에게는 또 다른 논쟁거리가 되겠지만 그런 바보 겁쟁이들이 아닌 진정한 무술의 길을 찾는 사람에게는 좋은 자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보고 왈가왈부를 할 사람들은 조용히 도관을 방문해서 직접 중국무술에 대한 경험을
해보길 권합니다.

그게 제일 빠르겠죠.

아래의 내용은 소욱창 사부님의 글에 제가 간단한 註를 달아서 올렸습니다.

 

-2편- 


97년 라퓨엘 마튜테는 그 해 시합에 참가하는 것을 그만 두려고 생각하여 나에게
담하였습니다.
 

나는 「3년 연속우승의 타이기록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다.

가장 좋은 것은 신기록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이 말에 다시 대회에 출장할 것을 결심하고 만일 시합에서 지게 되는 일은 있
을 수 없다며 시간이 허락하는 한 나와 생활을 함께 하며 배웠다.

(註.대단하죠. 스승이 시키니까 바로 군말없이 행동에 옮기는 마튜테도..

존경스러운 대 선배님입니다.)


나는 당랑권의 분신팔주권의 주법과 슬법의 절초를 지도했고 또한 가장 중요한 팔극
권의 육대경가식의 첩신고전투법의 절초기법을 힘든 수련 끝에 몸에 익히게 해주었.


(註.당랑권의 분신팔주는 짧은 투로이지만 근접접에 많이 사용되는 팔꿈치(주)와 무
릎(슬),허벅지(과)등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방법을 배우는 투로입니다. 당랑권의 비기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건 기술 자체의 구성때문이 아니라 이 기술이 주는 강력한 힘때문입니다.


과감하게 상대에게 몸을 던지며 파고 들어서 기술을 구사하기 때문에 강력한 공력과
확실하게 상대를 봉쇄하는 법,단경(短勁)의 발경법을 구사할 수 있어야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고급 과정의 연습법입니다.

공력이 없이 투로만 배운다면 전혀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육대경가식은 소욱창 사부께서 구성을 하신 팔극당랑문의 고유기법입니다.

육대개로 알려진 비기를 구체적으로 수련하는 과정입니다.

이 또한 강력한 공력이 중요한 투로로 초식 자체만 배워서 실제로 사용을 할려면 확실하게 상대에게 당하고 맙니다.


나중에 제가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첩신고(첩산고,철산고등으로 알려진 고법입니다.)

전투법은 접근기에서 아주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친히 지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아래의 기법이 지도받은 기술을 사용하는 한 장면입니다.


그 결과 97년도 우승했으며 챔피온의 자리에 올랐다.

이미 4년 연속우승을 하였고 세계기록달성으로 말하게 됐으나 웬일인지 대회주최자는 5년 연속 우승하지 않으면 정식으로 세계기록으로 승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98년 10월 5번째의 대회출장을 결의한 라파엘 마튜테는 다시 나의 곁으로 찾아와서 2주간에 걸친 입실훈련을 통해 5번째의 우승을 향하여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나의 당랑권의 분신팔단의 비전 주법인 밀주 일초와 밀주의 실전용법 및 팔극권의 육대개 두 초식을 그에게 자세히 지도하여 싸움에서 승리를 바라는 그를 지켜내게 될 새로운 초를 몸에 익히게 해주었다.

(註.위의 기술에 대한 해설은 공개가 불가합니다. 제가 허락을 받지 못해서 자세히 적을 수가 없군요. 저도 배운 기술이기는 하지만 설명을 못해서 아쉽지만. 아주 강력하고 각 기술 시전이 될 때는 상대를 절명케 할 수 있는 절초들입니다. 아쉽지만 명은 지켜야 하니까..)


3개의 절초는 지금까지 한번도 시합 등에서 사용했던 것이 아닌 것이어서 마튜테
는 한 점의 의심도 없이 이것을 배우고 12월 중순에 다시 방콕에 갔다.

(註.이러한 스승에 대한 확고한 믿음. 이제는 동양에서도 사라져 가는 사제師悌간의 믿은이 서양에서 나오다니..)


이 해의 출장선수의 수는 예년에 비해 아주 많아 라파엘 라퓨테는 수많은 강적을 쓰
러뜨, 용쟁호투의 결승전에서도 승리해 살아남아 마침내 우승을 하는데 성공하였였다.
      

5년 연속 우승의 쾌거에 대회주최자도 역시 팔극당랑문 라파엘 마튜테의 세계기록수립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챔피언벨트와 동시에 5년 연속우승자를 증명하고 칭송하는 방패를 그에게 수여했다.

아래의 사진은 트로피와 벨트,시합의 실제 보도자료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의 무에타이 타도의 비원도 마침내 달성하게 된 것이다.

 

아주 흐믓하신 표정의 우리 소욱창 사부님~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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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마튜테는 베네쥬엘라 사람으로 팔극당랑문 소욱창 대 사부님의 대제자중 한 분입니다.

타류시합에서 얻은 성과를 자료와 함께 3편에 걸쳐서 올릴 계획입니다.

인터넷에서 논쟁을 하기 좋아하며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어리석은 이들에게는 또 다른 논쟁거리가 되겠지만 그런 바보 겁쟁이들이 아닌 진정한 무술의 길을 찾는 사람에게는 좋은 자료가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보고 왈가왈부를 할 사람들은 조용히 도관을 방문해서 직접 중국무술에 대한 경험을
해보길 권합니다.

그게 제일 빠르겠죠.

아래의 내용은 소욱창 사부님의 글에 제가 간단한 註를 달아서 올렸습니다.

 

-라파엘 마튜테-


1998년 12월 중순 나의 애제자 라파엘 마튜테(베네수엘라)가 방콕에서 열린 무에타이 월드챔
온쉽(타이 킥복싱 협회 주최)에 출장해서 그랜드챔피온의 영예에 빛났다.

그는 작년까지 이미 4년연속 세계챔피온이 되어 있어서 98년 우승한 것으로 5년 연속 세계챔피온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하였다.


게다가 그가 싸움에 사용한 것은 순수한 중국무예의 기술뿐이었다.

라파엘 마튜테는 나에게 무술을 배우기 시작해 이미 십 수년이 되었다.

내가 베네수엘라에 살고 있을 때 당랑권이나 팔극권 팔괘장등을 배웠다.

그 후 그는 국내외 시합에 적극적으로 출장하여 서서히 이름을 알리게 되고 무술가로서 확고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인격도 훌륭하고 적극적으로 배우고 수행의 고통도 두려워하지 않고 절대지지 않을 만큼강한 정신력도 견지하였다.

 

1989년 베네수엘라 국가체육성은 무에타이의 일류선수 몇 명을 타이에서 초빙하여 시합을 개하고 흥행을 하였다.

그 시합은 격렬하였고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들은 시합 전에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통역을 통하여
우리는 시합에서 지지 않는다
.」
라고
베네수엘라 무술계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러나 시합은 2일 후로 다가왔고 시합 후 즉시 그들은 귀국하겠다고 말했다.

준비의 시간도 없고 무에타이의 룰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합을 해서 패하게되면 베네수엘라 무술계의 명예는 지켜지지 못하게 되므로 이 도전에 대해  무술계의 장로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당시 체육성의 임원을 맡고 있던 나는 침묵할 수 없어서 공항에서 그들에게 선언하였다.


[몇 년 후 반드시 나의 제자를 타이에 보내 시합에 출장시키겠다]

라고 그때부터 나는 무에타이
에 대한 보복의 계획을 시작하였다.    

 (註.소욱창 사부님의 성격이 나오는 부분입니다. 소사부님은 원래 파이터의 기질이 대단한 분이라 이런 건 못 참죠.)


1990년부터 92년까지 나는 바르셀로나올림픽의 경비관계자를 지도하기 위해 스페인에 체재
하였.

1992년 올림픽이 끝날 때 나는 미국으로 거처를 옮겨 무관을 열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마튜테에게 산타의 지도를 시작하였다.

시작부터 그를 92년 보스턴, 93년에 마이애미에서 개최하는 국제시합에 출장시켜 전부 우승하였다.


이 일로 나는 이전에 선언한 일을 실행에 옮길 시간이 왔다고 생각하여 94년 라파엘 마튜테를
정식으로 방콕에 파견하여 무에타이 월드 챔피온쉽에 출장시켰다.

이 대회는 무에타이로 불리고 있었지만 전세계의 무술, 격투관계자에게 문을 열어놓아 출장자가 대단히 많았다.
 

시합방법은 무에타이의 룰에 기초하고 방어도구의 착용여부는 본인의 선택에 맡겨졌다.

물론 승리자에게는 상금이 주어졌다.


그렇게 해서 이 94년의 대회에서 나의 제자가 나의 희망대로 우승하였다.

 

(아래 사진들은 그 시합의 모습들입니다.)


 

95년, 96년도 연속 출장하여 연속 우승하였다.

나는 매우 바빠서 시합을 보러 갈 수 없었지만, 시합 후 내 앞에 (그가)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그는 항상 만신창이여서 시합의 격렬함을 알 수 있었다.

(註.다른 자료 사진에 보면 항상 얼굴이 엉망진창이더군요)


마튜테가 96년에 우승한 것으로 프로 무에타이 챔피온쉽은 이전의 이 대회
에서 달성한 3관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습니다.

이 때부터 대회주최자도 별수없이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하여 무에타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챔피온쉽의 자리를 탈환하려고 필사적이 되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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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팔극권이라고 하지만, 이미 오씨팔극권과 이서문 -> 유운초
의 무단 팔극권은 다른 무술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저희 도관에도 오가팔극권 수련을 위해서 중국에 다녀온 분이 있지만, 같은 팔극권의 이름을 사용하지만, 같은 무술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 합니다.


같은 스승, 이서문 -> 곽전곽-> 담길당
                       ㅣ             -> 곽문학
                         -> 유운초

즉, 곽전곽->담길당 노사님의 동북(장춘) 팔극권과 곽전곽->곽문학 노사님의 곽가 팔극권 그리고 유운초 선사님의 무단 팔극권 모두 뿌리는 같지만, 세월이 흐르고 다시 만나서 동작을 비교했을때 그 수련 방법과, 동작의 다름에 모두 놀랐던 적이 기사화 되었었습니다.

(간혹 이씨 팔극권, 무단팔극권, 동북(장춘)팔극권등의 명칭을 가지고
통칭해서 동북팔극권 밖에 없다고 하시는 분들은...지식의 부족
이라고 설명 드리고 싶습니다.)

결국 무술이란, 근본을 제외한다면 수련자, 시간, 환경에 따라 변화 발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진리라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진가태극권과 양가태극권이 차이를 설명할수 있겠습니다. 같은 태극권임에 동의하지만, 같은 무술이라는 것에는 동의 할수 없겠죠.

결론적으로 말하면,
즉, 저희 만의 독특한 발경을 위한 수련체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씨팔극권에는 발경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중국에서 수련하셨던 분이 말씀하시더군요.)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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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문과 무단 팔극권에 대하여

이서문은 결혼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사모 되시는 분께서 친정으로 가버리셨습니다.
직업 무술가는 원만한 가정 꾸미기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이서문은 성격도 괴팍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수련과 제자의 교습으로 보냈을 테니 더욱 그러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창주 철사자창주 철사자

이서문의 아들로 알려진 '이아당'은 이서문의 먼 친척뻘로 양자로 들인 인물입니다.
이서문은 팔극권을 각 파 별로 배우고 연구한 인물입니다. 팔극소가 2로와 맹호경파산, 육합대창만 했다는 얘기는 틀린 얘기입니다.

이서문은 어려서 한족팔극권의 명사였던 장극명(황사해
의 사부)의 아들인 장경성에게 입문하려 했으나 이서문을 탐탁치 않게 여긴 장경성은 동문 황사해에게 소개 시킵니다.
역시
이서문이 탐탁치 않았던 황사해 이지만, 사부의 아들이자 동문 형제인 장경성의 부탁을 거절 못하고 제자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 후 김전승과의 인연으로 김가에 들어가 김가 팔극권배우게 됩니다.
대부분 이서문의 사부는 황사해로 알려져 있지
만,

유운초 노사의 기억으론 이서문은 김가의 팔극을 배웠다고만
했답니다. 어떤 것이 사실인지...

북경으로 나간 이서문은 창술시합에서 비긴 후 맹촌으로 가서 현재 오가 팔극권의 장문인인 오련지노사의 조부인 오회청과 그 친척 오린서에게 창술을 특훈받고 다시 북경에서 창시합을 벌여 가볍게 승리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서문계의 팔극권에는 팔극소가에 1로니 2로니 하는 명칭이 없습니다.
오가팔극권에나 있는 구분입니다. 그것도 오련지
노사의 아버지인 오수봉노사 대에 이르러서야 그렇게 된 것입니다.

팔극소가배우는 단계가 나아감에 따라 수련체계가 달라지는
데, 그것을 연공경험과 타문파의 장점을 넣어 12개의 소가를 만들게 되어 그것들을 1로 ~12로로 부르는 것입니다.
(주: 소가의 투로 형태가 달라지는 것은 오가(개문)팔극권 입니다.)

이서문계에는 없
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기본 적인 소가 동작들도 변하지 않습니다.
 (주: 동작들은 변하지 않으나 단계가 나아감에 따라 소가를 수련하는 방식은 단계별로 나눠집니다.) 


무술가들에게는 개인적으로 치중해서 수련 하는 투로와 기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서문이 실전에서 애용한 기법맹호경파산
이지, 이것만 수련 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같은 이서문계의
노사분들도 각자 좋아하시는 기법들이 다릅니다.

무단의 로고무단의 로고

그리고 무단에는 이서문이 생전에 정리 요약한 팔극권만이 전승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것은 이웃 나라에서 나오는 매체들 을 보다 보면 그런 글들이 있긴 합니다. 누구는 뭐를 빼고, 누구
는 뭘 더 가르쳐 주고 하는 것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식 제자
를 들이면 그 문파에서 필수적으로 전승 되어야 하는 것은 꼭 전수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 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가르쳐 주는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무단에도 금강팔식, 소팔극, 대팔극, 팔극대타, 육대개, 팔대초 등이 모두 전수 되고 있습니다.
육대개, 팔대초는 그 이론은 모든 팔극
문파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을 제자에게 어떤 형태로
전승해 주는 가전승자마다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각 팔극문파마다 이론은 같지만, 그것을 형태로 나타내는 초식은 약간씩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무단 팔극권의 특징으로는 이서문 만년의 성과라고 불리워지는 '팔극연환권' 이 있습니다.
뭐 특별한 것은 아니고,
육대팔초까지 끝난 제자가 전수 받는 투로로 말 그대로 육대팔초의 연환법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투로는 그래서 형태만 아는 것으론 별 가치가 없는 투로입니다.

무단에선 육대개 팔대초는 육대개권 48단 조수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무단에는 이서문의 어레인지 팔극권 투로 외에도 한족 고전 팔극권의 투로들도 전승 되고 있습니다.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단팔극권에서 행하는 투로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기초공부 과정에 대해서는 제가 앞전에 쓴 글이 있아오니 검색하시면 나올 것입니다.
 

간혹 라탄의 한족팔극권 원로 노사분들 앞에서 팔극권 시연을 하게 될 경우 '자네의 소가 2로 잘 봤네...' 하실 경우 그것은 팔극소가의 정형화된 1로, 2로 등으로 나뉜 투로를 얘기 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 과정을 넘은 다음 단계의 소가를 말씀한다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이서문에 대한 잡담

저 자신도 이서문이란 옛 선배고수님을 아주 좋아합니다.
제가 얻어 들었는 그에 대한 얘기 좀 할께요.

이서문이 그공력이 얼마나 대단하셧는지 그 진각 동작시에 발로 땅바닥 한번 구르면 (옛날 중국지방에서 마당에 깔던 )벽돌이 그 진동에 조각조각 부서졌다 합니다. 

그리고 유운초 대사범님이 제자로 있기전에 다른제자분들과 잡담중. 
그 제자중 한분이 호두를 손으로 잡아서 깨먹는걸 보시고 단지 엄지와 검지로 살짝 집어서 깻다고 합니다. 그래서 놀란 여러 제자들이 (다들 엄청난 고수였읍니다.)아무리 똑같이 하려고 해도 안되자 그중 한분이 <사부님,혹시 팔극수련시에 철사장이나 응조공(북파 응조문의 외공)등의 외공을 단련하십니까?>라고 물었다 합니다. 

그래서 이서문 선사님이 제자들한테 말하기를   <워낙 나의 팔극의 수련을 계속하면 그 경력이 온몸에 충만하여 어떤 외공을 따로 안해도 온몸의 어디서도 그 힘을 자유자재 로 낼 수 있다> 고 말했답니다. 

여러분의 팔극수련에 도움되는 명언 한마디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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