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저씨" 원빈의 사용 무술 칼리 아르니스, 에스크리마

  

실전 무술인 필리핀의 칼리 아르니스는 호신술로 각 국 특수부대, 경찰들이 배우는 실전지향적 무술이며, 칼리 라고도 알려져 있다.


영화 ‘아저씨’로 화제가 되었던 아르니스는 처음 농부(섬 주민)들이 일을 하다가 그 모습 그대로 싸운 것이 전장무술로 발전한 무술이다. 그렇기에 매우 실전 지향적이다. 하지만 요즘 전쟁도 없고 싸움하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호신술로 각 국 특수부대, 경찰들이 배우고 있으며 국제화 되어 남녀노소 이 무술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아르니스는 칼리 아르니스, 에스크리마 라고도 불리는데 에스크리마는 스페인어로 필리핀 무술 아르니스를 일컫는 말이고 칼리 아르니스는 힌두교의 죽음의 여신인 ‘칼리’의 이름을 따서 명명 하였다, 칼리는 여섯 개의 손마다 칼을 쥐고 있는 무장한 여자의 형상을 나타낸다.

 

서태평양 가운데 있는 7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공화국, 필리핀! 그 곳에 두 번째로 큰 섬, 민다나오의 면적은 우리나라 남한의 1.2배의 넓이로 지하자원이 풍부한 “약속의 땅”이라 불리고 있으며, 역사상 외세의 침입으로 부터 약속의 땅을 지킨 무술 아르니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실제로도 공간의 효율적 활용과 무기 선택의 다양함 등으로 실전성이 높은 무술로 평가되어 진다.

 

2014년 8월경 EBS에서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제37화] 무림기행 - 필리핀 아르니스 편"에서 소개가 되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해당 영상을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영화

 EBS 프로그램 사이트 바로가기

 

이 무림기행 편에서는, 과거 인기드라마 였던 '파랑새는 있다'에서 차력사 역할을 했던

배우 이상인 씨가 동행하며 레이터를 합니다. 

 

아래는 소개에 나오는 이상인 씨의 어록 입니다.

 

인생이 그러하듯 무예도 하나의 과정이다. 더 나아지기 위한 고된 여정이다

 

동작 하나에도 이유가 있고, 무기 하나에도 장인 정신이 들어있다..

무술이란 게 단순히 그냥 공격과 방어가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가 함께 하고

사람들의 감정이 들어 있다는 걸 이번 여행으로 알게 됐다“ - 배우 이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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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나라, 터키의 한국사랑에 대하여


'터키'라는 국가를 말하면 우리는 이스탄불, 지중해의 나라, 형제의 나라 등 여러 수식어를 떠올리지만 정작 우리나라와 터키가 왜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워지는 지 그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아느냐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6.25 때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고.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파병 된 15,000명이 넘는 터키군 대부분이 자원병이였으며 그중 3,500명이 사망(미국 다음으로 많은 사상자)할 정도로 그들이 열심히 싸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병력을 파견했으며,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싸웠을까요.. 


터키에 가면 관공서나 호텔의 국기대에 터키국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게양되어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터키인들 역시 한국인에게 굉장히 우호적이며,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대한민국 '코리아'를 Brother's country 라 부릅니다. 

또, 한국말과 비슷한 단어가 많은 헝가리 사람들 역시 한국이랑 헝가리랑 sister다 라는 얘기를 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요.. 


여기, 한 아침 라디오방송에서 나온 이야기를 잠시 참고해보도록 하지요.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투르크'라고 부른다. 

우리가 코리아를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것처럼. 


역사를 배웠다면 

과거 고구려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돌궐'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을 것이다. 

투르크는 돌궐의 다른 발음이며.. 

같은 우랄 알타이 계통이었던 고구려와 돌궐은 동맹을 맺어 가깝게 지냈는데 

돌궐이 위구르에 멸망한 후, 남아있던 이들이 서방으로 이동하여 

결국 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원래, 나라와 나라사이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지만 

돌궐과 고구려는 계속 우호적이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 불렀고 세월이 흘러 지금의 터키에 자리잡은 그들은, 

고구려의 후예인 한국인들을 여전히, 그리고 당연히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즉,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형제의 관계였던 것이다. 

6.25 때부터가 아니고. 


그렇다면 의문점 하나. 

우리는 왜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그리고 터키인들은 왜 아직도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를까? 


답은 간단하다. 

역사 교과서의 차이다. 


우리나라의 중,고 역사 교과서는 '돌궐'이란 나라에 대해 

단지 몇 줄만 할애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돌궐이 이동해 터키가 됐다느니 훈족이 이동해 

헝가리가 됐다느니 하는 얘기는 전무하다. 


터키는 다르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경험했던 터키는 그들의 역사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역사 과목의 비중이 아주 높은 편이며 

돌궐 시절의 고구려라는 우방국에 대한 설명 역시 아주 상세하다. 

'형제의 나라'였다는 설명과 함께. 


그래서 대부분의 터키인들은 한국을 사랑한다. 

설령 한국이 그들을 몰라줄지라도.. 


실제로 터키인들은 한국인들 역시도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인들도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 칭하며 그들을 사랑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터키의 한 고위층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했다. 

자신을 터키인이라 소개하면 한국인들에게서 큰 환영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은 데 대해 놀란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다. 


'터키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돌아온 답은 대부분 '아니오'였다. 

충격을 받고 터키로 돌아간 그는 자국 신문에 이런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한다. 


'이제.. 짝사랑은 그만합시다..' 


이런 어색한 기류가 급반전된 계기는 바로 2002 월드컵이었다.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 터키를 응원하자'라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을 타고 여기저기 퍼져나갔고 

터키 유학생들이 터키인들의 따뜻한 한국사랑을 소개하면서 

터키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증폭되게 되었다. 

6.25 참전과 올림픽 등에서 나타난 그들의 한국사랑을 알게 된 한국인들은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터키의 홈구장과 홈팬들이 되어 

열정적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하이라이트는 한국과 터키의 3,4위전. 

자국에서조차 본 적이 없는 대형 터키 국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터키인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한다. 

경기는 한국 선수들과 터키 선수들의 살가운 어깨동무로 끝이 났고 

터키인들은 승리보다도 한국인들의 터키사랑에 더욱 감동했으며 

그렇게.. 한국과 터키의 '형제애'는 더욱 굳건해졌다. 


우리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터키가 형제의 나라가 된 궁극적인 이유를 모르면 

KBS의 어느 아나운서가 패널이었던 터키인에게 '아우님'이라 불렀던 

어리석은 짓도 가능한 것이다. 

형제는 '형과 동생'을 따지자는 말이 아니다. 

그들에게 형제는 곧 친구며 우방이니까. 


- 10월 16일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대전지역 98.1MHz)



터키의 언어에는 순우리말과 비슷한 단어가 참 많습니다. 


말뿐 아니라 음식, 문화, 습성, 국민정서 (터키인 우월주의에, 감정적 다혈질이면서 반대로 다정다감하고, 거나하게 놀기 좋아하고, 어쩜 그렇게 성질 급한 것까지..)도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유럽인치고는 흔하지 않게 몽고반점도 있습니다. 


과거 돌궐(투르크 => 터키)과 고구려는 그냥 우방이 아니라, 이와 잇몸 같은 관계였다고까지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돌궐의 공주와 결혼을 하였을 정도니까요. 


고구려 멸망 후 돌궐도 망했으며 서쪽으로 옮겨 서돌궐을 건국하게 됩니다. 서돌궐이 훗날 오스만 제국... 그리고 터키가 됩니다. 


혈통이 고구려와 혼혈이라고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 교과서에서 돌궐을 다루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돌궐의 위치 때문이 아니였나 생각됩니다. 

사서에는 고구려와 돌궐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당시 돌궐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영토가 중앙아시아, 즉 실크로드(서안) 부근까지가 영토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돌궐은 만주 지역에까지 영토를 넓힌 적도 없습니다. 

따라서, 고구려의 영토가 만주와 한반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중앙 아시아 까지(돌궐과 맞닿은), 매우 방대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이유도 여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터키'라는 나라는 과거 청동기시대인 배달국, 고조선, 부여 시대에는 동이족에 속해 있다가 고구려의 세력이 확장되면서 고구려가 부여를 정벌하자 그곳에 살던 원주민(예맥 동이족)들이 요하를 건너가 이루게된 민족입니다. 


돌궐족은 중국의 대부분을 수나라가 통일하자 고구려와 돌궐은 연합하여 수나라를 공격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히려 수나라의 침략을 받아 요서지방은 수나라에 점령되고 돌궐은 서쪽으로 쫓겨나게 되는데 그들이 서쪽으로 이주해 정착하여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건설하였고, 아랍과 발칸반도를 지배하며 강성했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19세기 중반부터 쇠퇴하면서 주변의 영토를 잃고(소수민족 모두 독립) 지금에 터키만 남게 된 것입니다. 


같은 우랄-알타이 계통의 언어를 사용했지만 통일신라시대 이후 우리는 중국의 영향으로 한문을 사용했고, 터키는 아랍의 영향을 받아 언어는 전혀 다르게 발전하게 됩니다. 



유전학이나 인류학적으로도 터키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몇개 안되는 북방계 몽골리언국가(몽고, 한국, 일본, 에스키모, 인디언) 중 하나로, 헝가리 와 함께 북방계 몽골리언의 유전자가 많이 남아있는 유럽국가입니다. 


터키인은 '코리아'의 어원이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의 영문표기라는 것까지도 알고 있습니다. 대단한 형제사랑이지요.. 


그렇다면, 북한도 같은 민족인데 어째서 한국과 형제인 터키가 6.25 때 남한편에만 병력을 파병했을까.. 


한국과 일본의 관계만큼이나 아르메니아인들과 터키는 견원지간입니다. 아니, 원수지간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겠네요. 


과거 아르메니아인(오스만 기독교인들)들이 터키인(투르크 이슬람교도)에게 대학살을 당했기 때문이지요. 


과거 오스만터키에서 소수민족들이 독립을 하면서 쇠약해진 국력과 맞물린 굴절된 민족주의로 말미암아 아르메니아인 수천명이 죽임을 당하는 1차 대학살의 참사가 벌어집니다. 


유럽으로 남진하려하는 러시아의 힘을 얻어 루마니아와 세르비아가 독립을 하게되고 오스만터키의 아르메니아 영토 대부분을 러시아가 차지하는 셈이 되자 이에 분노한 투르크인들이 러시아와 붙어먹은 아르메인들을 표적으로 인종청소라는 대학살을 감행한거죠. 


1차 대학살 20년후 또 다시 오스만터키 정부의 도움을 받은 투르크 이슬람교도들은 아르메니아인 5만명에 대학살을 자행합니다. (2차대학살) 게다가 정부는 학살된 아르메니아인 외 175만명을 추가로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로 추방하고 그 추방하는 과정에 60만명이 사막에서 목숨을 잃게 됩니다. 

(1894년~1915년까지 250만명이였던 아르메니아인은 30만명만이 살아남게 됩니다.) 


그후 1912년 발칸전쟁 때 몬테니그로, 불가리아, 그리스가 오스만터키에서 독립할 때도 알게모르게 러시아가 개입하여 아르메니아인을 도와줍니다. 따라서 러시아가 북한을 지원하기 때문에 당연히 터키는 그 반대 쪽인 남한에만 병력을 파견한 거지요. 



형제의 나라, 터키의 한국사랑에 대하여


물론 혹자는 당시 터키가 미국과의 우방적 연계로 말미암은 국제적 이득을 노린 선택일 뿐이였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역사의 흐름이라는 큰 범주에서 바라본다면, 

터키가 2차 세계대전 때 우리의 동맹국 중의 하나였던 이유가 필연적으로 러시아와 적대 관계일 수 밖에 없는 과거사 때문이였다고 보는게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형제의 나라.. 


한국의 경제성장을 자기일처럼 기뻐하고 자부심을 갖는 나라, 2002년 월드컵 터키전이 있던 날 한국인에게는 식사비와 호텔비를 안받던 나라.. 월드컵 때 우리가 흔든 터키 국기(國旗)가 터키에 폭발적인 한국 바람을 일으켜 그후 터키 수출이 2003년 59%, 2004년 71%나 늘어났다는 KOTRA 통계가 있습니다. 


이런 관계를 지닌, 자기 나라로부터 수백만리 떨어진 곳에서 보내는 의리와 애정을 받는 나라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세계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대부분의 위인들은 평생 독서를 즐겼으며, 그들이 가장 즐겨 읽었던 분야는 역사라고 합니다. 


우린 세계사를 떠나 국사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관심이나 있을까요.. 


아니, 제대로 된 우리의 국사나 현대사를 과연 배운 적이나 있었나요.. 


내 나라 역사조차 바로 알지 못하면서 남의 역사를 논했던 제 모습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새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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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모험사극에서 정치사극으로의 중요한 전환점

인기드라마 '선덕여왕'이 모험 사극에서 정치 사극으로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고 있습니다.

모험사극이라 정의한 것은 판타지 RPG에서와 같이 주인공(덕만, 김유신, 비담, 김춘추 등)이 역경과 고난을 겪으며 성장(레벨업)해 결국 최종보스(미실)를 무찌르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던 것을 말합니다.

정치사극이라 정의한 것은  선덕여왕이란 배의 키를 잡고 있던 미실의 죽음과 함께 화려하게 하차한 고현정의 뒤를 이어 배를 이끌어 가기 위한 동기부여가 필요한데 그 동기부여를 선덕여왕의 집권후 각 세력의 정치적 대립에서 찾으려 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 붙인 말입니다.

선덕여왕

바로 50회에서 미실(고현정)의 죽음을 기점으로 시간적인 가속도가 붙어 내달리기 시작했다고 느낄 정도로 50화에 이은 51화 역시 몇년의 시간을 한 화 속에 담아 버렸습니다.

선덕여왕은 확실히 잘 만든 사극 드라마 입니다. 이 드라마의 장점을 말하자면 매우 많겠지만 이미 많은 블로거들이 앞다투어 올렸을 것이므로 다른 관점에서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를 살짝 비꼬아 평해보려 합니다.

미실이 죽는 50회와 덕만이 선덕여왕으로 집권한 이후의 이번 51화를 본 느낌은 한마디로
"너무 빠른 전개에 적응이 안되!" 였습니다.

선덕여왕 미실

숨겨진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미실이 빠진 선덕여왕이란 배를 이끌기엔 덕만(이요원)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을지 것이고 무엇인가 새로운 동기부여가 필요했을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그동안 미실을 주축으로 짜임새있게 느리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는 적절한 템포를 유지해 오던 극의 구성이 갑자기 한 화에 너무 많은 사건과 시간을 한꺼번에 담으려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지는 것이 사극이라 할지라도 시간적 구성은 우선 역사와 맞게 가는것이 보통이나 미실 사후의 칠숙과 석품의 난차마 난이라고 하기 부끄러울 정도로의 무모한 자살행위와 같이 아주 잛은 시간에 처리되어버렸으며 그 방식이나 구현도 초라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선덕여왕 칠숙의 난

물론 칠숙과 석품역을 맡은 안길강과 홍경인의 연기는 충분히 인상적이었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고는 생각합니다.

문제는 작가의 상상력이란 이유로 년도상 훨씬 뒤에 일어나고 이유 역시 다른 역사적 사건의 왜곡이 있었습니다.
어떤 재미를 주기위한 이유라도 사극은 역사 자체를 알려주기 위한 의미가 분명히 있으므로 역사적 사건의 시간마저 왜곡한 다는것은 박수쳐주기 힘든 부분
일 것입니다. 

칠숙의 난이 정리된 후 다음 51회 역시 한회 동안 선덕여왕 집권후 몇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한꺼번에 쭉 보내버립니다.
선덕여왕이란 인기사극에서 액션신이 많고 그만큼 비중있게 묘사했던 이의 모험사극과 달리 이번화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백제와 신라의 김유신의 전투신은 단 한컷도 등장하지 않고 단순히 승리하고 돌아오는 모습만 비친다던지 비담의 정치적 야망과 유신의 견제를 위한 대립구도와 갈등만 등장했을 정도로 극의 방향이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덕여왕 덕만 유신 비담

이러한 갑자기 빨라진 전개와 이전과는 다른 극의 진행방향으로 이전까지와의 선덕여왕과는 조금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고 적응하기 조금 힘든감이 있었습니다.

어쨌던 빠르게 전개된 사건들은 작가의 의도하에 어떤 메인 이벤트를 시작하기 위한 겉절이라 생각되어 후다닥 처리해 버린거라 믿고 싶습니다. 예를들면 백제와의 본격적인 전쟁 혹은 더 나아가 비담의 난 등을 진행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선덕여왕

솔직히 이번화까지만 보았을때는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으로서 덕만의 의지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비담과 유신이 이야기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의도한 중심된 이벤트가 다시 전개될 그때는 선덕여왕의 덕만을 중심으로 이전의 적절한 진행템포로 화려한 액션의 볼거리와 납득할 만한 전개등을 갖추어 미실의 빈자리를 다른 요소로 확실히 채워갈 수 있을 것 입니다.

모험사극에서 정치사극으로 그리고 또 어떠한 사극으로 변화되어 갈지 지켜볼 것이며 선덕여왕이란 동시대 최고의 인기사극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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