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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하철역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돕다. 이상한 하루
    세상 리뷰 2009. 4. 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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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4월 3일) 자정을 조금넘겼을때 신도림역에서 겪은 일입니다.
    
    이날은 금요일이라 회사 회식을 3차까지 가서 지하철 막차시간에 맞춰 겨우 막차인것 같은 지하철을 탈 수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집이 상수역이고 회사가 양재역인지라 3호선을 타고 약수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는 노선을 이용합니다만 이날은 회식을 하다 나와보니 11시 50분경이고 강남에서 하다보니 3호선을 갈아타면 지하철이 끈기겠더군요.
    고민끝에 2호선으로 한번에 갈 수 있는 곳까지 가자는 생각에 상수에서 비교적 가까운 2호선 합정역을 목표로 강남역에서 타게된 것입니다. 

    두세역쯤 지날때인가 갑자기 방송이 나오더군요.
    "이 열차는 신도림까지만 운행합니다. 더 가실분은 갈아타시고 어쩌고저쩌고..."
    과연 신도림에서 12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갈아타는 막차가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뒤로한채 술을 먹어 반쯤은 알딸딸하고 반쯤은 별로인 기분으로 신도림역에서 내렸습니다. 아니 내려라고 하니 어쩔수 없이 쫒겨난 거지만...

    아실지 모르겠으나 신도림역은 목적지인 합정역방향 그리고 출발역인 강남역방향 또하나는 서쪽으로 가는 까치산 방향의 세갈래로 나누어 지며 탑승선로도 3곳 입니다.
    사건후에 안 사실이지만 까치산 방향의 선로에만 보호문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더군요. -_-
    그리고 합정역으로 갈려던 기차가 신도림역이 종착역일때는 이 까치산 방향의 타는곳에 열차를 세우구요. 그걸 몰랐던 저는 여기서 갈아타는 막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뒤늦게 눈치채고 열심히 뛰어 제대로 막차를 갈아타긴 했습니다만...^^;)

    서울시 지하철역

    탑승역의 거의 마지막칸(정확히는 끝블럭 바로 전블럭)에 서서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막차시간대고 내일이 주말이라 그런지 술에 취해 몸을 못가누는 분들이 참 많더군요.
    의자에 앉아 주무시는분...벽에 기대 주무시는분...바닥에 주저앉아 주무시는분...그리고 누워서..;;

    그 순간 갑자기 "쿠궁!!"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순간 '에이 설마...' 하는 불안한 생각이 스치고 바로 옆쪽 정확히 말하면 제가 서있던곳이 끝칸 바로 옆이었으므로 끝칸에서 들린 소리였습니다.
    자정이 넘은 막차시간이라 마지막 블럭에는 서있는 사람이 없었던거 같은데...뭐지?

    설마하는 생각으로 마지막 블럭의 지하철 선로를 내려다보니 양복을 입은 정장차림의 회사원 아저씨가 몸을 못가눈채로 서류가방과 함께 떨어져 있었습니다.

    헉! 사고다...솔직히 2초쯤 생각했었습니다. 처음 경험이었고 선로 아래로 뛰어내려서 구해야된다는 생각과 그래도 선로인데 지하철이 들어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그리고 막차시간이라 지하철이 빨리 오지는 않을테니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등등

    그 순간 제 앞에 계시던 아저씨 한분이 그쪽으로 뛰시더군요. 저도 생각하는걸 관두고 반사적으로 움직였습니다. 
    불과 몇초사이 옆블럭으로 간 그 아저씨와 조금 저보다 일찍 도착한 다른 청년한분이 뛰어내려 그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못가누어 떨어진 회사원 아저씨를 부축하려하며 괜찮냐고 묻더군요.
    그리고 저와 거의 동시에 친구인 듯한 학생두명이 뛰어오더군요.
    일단 위험하니 승강장 위로 옮기는게 우선이라 생각되어서 그렇게 말하며 두분은 아래서 저를 포함한 세명은 위에서 사고를 당한 분을 끌어올려 구석으로 옴겼습니다.

    여전히 그분은 술을 마니 드셔서 몸을 가누지 못하시더군요. 그래서 혼자 두면 또 위험할 것 같아 일단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부축해 드렸고 잠시후 열차가 들어와 막차니 일단 태우는게 안전할 거 같아 태워드리며 사건은 일단락 되었습니다..

    아마 신도림역의 CCTV에 작은 사건으로 찍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걸 보고 역무원이 와본걸 테니까요.

    그 뒤에는 지하철 승강장이 잘못됐슴을 깨닫고 출발하기전에 다시 반대편으로 뛰느라 그때 뛰어온 역무원에게 자세한 정황을 말하지는 못했지만...지켜본 사람들이 있었으니 잘 되었을 거라 믿습니다.
    당시에는 불과 몇십초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잘 못느꼈었는데 막상 지하철 막차를 다시 갈아 타고오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게 하더군요.
    몸을 못가눌정도로 어찌보면 목숨을 담보로 회식을 하는 우리나라 회사문화라던지...
    과연 선로에 떨어진 그 회사원 아저씨는 오늘일을 기억할까? 
    그 짧은순간 잠깐 망설였던 나보다 한발앞서 빨리 뛰어 가시던 의협심을 가진 아저씨와 청년...
    뒤이어 도와주러온 어린 학생친구들...
    그리고...왜 그쪽에만 안전문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던거지?...

    한편으론 이런 조금 위험한 상황에서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는(물론 지켜본 사람들이 더 많긴 했습니다만..^^;)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작지만 놀란 경험을 뒤로한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놀라움과 따뜻함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낀 이상한 하루였습니다.

    Ps. 술은 정말 몸을 가눌 수 있을 정도만 마시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필름이 끊기고 몸도 못가늘 정도로 마신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것과 다를 바 없고 이런 사건에 예외가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운이좋아 항상 도와줄 사람이 있다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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