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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의(최배달)와 이소룡에 대한 몇가지 오해2 <최영의편>무림 객잔/무예 이야기 2020. 1. 4. 20:27반응형
세상 사람들이 이소룡(브루스 리)과 최영의(최배달)에 대해 몇 가지 오해를 하는 점이 눈에 자주 띄어서 정보를 제공한다.
< 2 > 최영의에 대한 오해
최영의(최배달)에 대한 오해 역시 만만치 않다.
최영의가 대결한 사람들은 별로 강자들이 아니거나, 검증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최영의가 대결한 일본과 세계의 강자들은 공식적으로 실력을 검증받은 고수들이다.
한 예로, 최영의가 삼각차기로 KO 시킨 붉은전갈 톰라이스라는 프로레슬러는 역도산을 쓰러뜨린 강자이다. 최영의는 톰라이스와 공식 경기장에서 수많은 관객들과 언론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경기를 했다.
최영의가 일본 국내의 강자들을 이길 때도 많은 일본의 언론인들이 직접 목격하고 취재했다.
최영의의 많은 국제경기들은 수많은 관중과 언론인 앞에서 벌어진 공개시합이었다. 최영의가 대결을 벌일 때는 비공개 시합은 거의 없었고 모두 다수가 지켜보는 공개된 장소에서 벌어진 대결이었다. 공식 시합도 상당히 많다.
또한 최영의는 소와 대결을 벌일 때도 공개시합을 벌이고 영화필름에 담기까지 했다.
따라서 최영의 선생의 무용담은 신뢰해도 좋은 상당한 신뢰성을 갖고 있다.
최영의 선생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일부 허풍쟁이 무술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경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최영의 선생의 신조는 "증명 없이는 신뢰받지 못하고 존경받지 못한다"였다고 한다. 따라서 최영의 선생은 실전과 공식시합을 통한 실력의 증명을 가장 중시했다.
그의 실전공수도인 극진가라테도 그의 이러한 실전철학에서 나온 무술이다.
최영의의 이소룡에 대한 공식견해는 두 가지가 확인된다. 이 모두 최영의 선생의 무술저서와, 최영의 선생의 아들이 쓴 저서인 "This is 최배달"이라는 책에서이다.
하나의 견해는 "이소룡이 보여준 액션은 영화 속의 액션에 불과한데 어떻게 실전격투가인 나의 실력과 비교하는가"이며, 또 하나의 견해는 "이소룡은 몸무게를 더 불려야 한다"이다.
이 두 개의 견해가 최영의 선생 본인과 그의 아들의 저서를 통해 공식 확인되는 이소룡에 대한 견해이다.이렇게 확인 가능한 견해 이외에--- 최영의 선생의 제자들이 이소룡에게 덤볐다가 몰매 맞고 도망 왔는데 최영의 선생이 침묵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나, 최영의 선생이 후년에는 이소룡의 실력을 인정해서 "실제로 붙어보기 전에는 모른다"라고 했다는 이야기 등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풍문에 불과하다. 세상에 근거없는 풍문, 즉 지어낸 이야기는 무수하게 많다. 그런 풍문들을 다 믿으면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최영의 선생은 평소에 도덕성 배양을 강조한 무도가였다. 제자들 교육에도 엄격하고 바른 품성을 강조한 스승이었다. 따라서 이소룡의 도장에 그의 제자들이 쳐들어가거나, 특히 혼자 있는 이소룡에게 떼로 덤벼드는 비겁한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는 극진가라테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다.
또한 이소룡의 도장에 쳐들어가거나 이소룡이 혼자 있을 때 떼로 습격하는 상황이 도대체 언제 일어났다는 말인가? 이소룡이 무명 시절에는 미국에 사는 이소룡에 대해 알지도 못할테니 이소룡에게 단체로 덤비는 사태가 벌어지기 힘들 것이고,
이소룡이 유명해진 이후에는 영화촬영에 정신없어서 도장에 있지 않을텐데 도장 습격이라는 상황이 맞지 않는 것이다.
이소룡의 도장은 주로 중국 전통 무술가들에게 도전받았다고 한다.
이소룡의 개방적인 무술철학, 특히 외국인들에게 강습하는 것을 중국의 폐쇄적인 무술문화를 갖고 있던 화교들이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이소룡은 칼을 든 자객들한테 불의의 기습을 받아 배에 부상을 입었으나 같이 있던 친구와 함께 격퇴했다는 일화도 있다.
최영의 선생의 경우는 그가 도장을 차리자 그의 도장에 도전하는 일본 무술가들이 연이어 나타나자 피곤함을 느낀 최영의 선생이 더 이상의 도전을 없게 하기 위해 도장파괴에 나선 것이라고 한다. 도장파괴를 하여 전 일본의 무도계를 평정해도 도전과 협박이 끊이질 않자 자신의 위력을 증명하기 위해 소와 격투하는 이벤트를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소와의 대결에서 승리하자 더 이상의 도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최영의 선생 역시 자객의 습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자객을 죽이고(정당방위) 자객의 가족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한동안 그 가족과 함께 생활한 일화가 전해진다.
최영의 선생에 대한 최대의 오해는--- 그가 중국의 태극권사 진 노인에게 졌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사실이 아니며 극적으로 꾸며진 픽션이라고 한다.
최영의 선생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직접 들은 바에 따르면, 최영의 선생이 그 진 노인을 찾아갔을 때 노인이 너무 늙어보여서 차마 대결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노인에게 태극권에 대한 가르침을 청해서 배웠다고 한다. 단지 그 뿐이다.
이 이야기기 이상한 쪽으로 과장되어, 어떤 경우는 태극권을 비롯한 중국무술 신비주의로 흐르고, 어떤 경우는 극단적인 중국무술 폄하론으로 흐르는 등 헛소문의 근원이 되고 있다.
실제로는 최영의 선생이 태극권을 비롯한 중국무술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고 한다. 다른 무술의 장점을 흡수해서 더욱 강한 무술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한다. 위대한 무술가들은 종합 격투가의 면모를 보이게 마련인데, 우매한 중생들은 타 무술에 대한 폄하와 특정 무술에 대한 숭배증세를 보이고는 한다. 이 모두 무술에 대한 소양 부족 때문이 아닌가 싶다.최영의 선생에 대한 마지막 오해도 해명하자.
최영의 선생이 수련한 무술이 태권도라고 주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반일감정이 심하던 과거에는 그랬다. 최영의 선생의 무용담을 다룬 고우영 님의 만화 "대야망"에서도 극진가라테를 태권도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최영의 선생은 일본으로 건너가 정식으로 가라테 도장에 입관하여 가라테를 수련한 정통 가라테인이다. 키친 후나고시의 가라테 도장에서 수련했으며 강유류도 배웠다고 한다. 그의 극진가라테 기술체계는 모두 가라테의 그것이며, 수련법도 쇠 나막신(게다) 수련법이 있는 등 지극히 일본적이다.
그가 어릴 적에 머슴 범수로부터 택견을 배웠다고도 하고 18기를 배웠다고도 하나 어릴 적의 일일 뿐, 그가 일본에서 배우고 평생 동안 갈고 닦은 무술은 바로 가라테였다.
여기서 한 가지 추가해서 말씀드릴 것은, 태권도는 원래 일제시대에 가라테를 배운 한국의 가라테인들이 만든 현대무술이란 사실이다.
초기 태권도의 9대 문파 관장들은 모두 정식으로 가라테를 수련한 가라테인들이다. 그들의 스승은 일본의 가라테인들이었다.
택견과 가라테를 혼동하는 분들도 계시나, 택견과 가라테는 엄연히 기술체계가 다르고 수련체계가 다르고 문화적으로도 크게 다르다. 특히 초기 태권도와 택견은 엄청나게 다른 무술이다. 또한 태권도인들은 택견에 대해 별 관심도 보이지 않았으며 기술도 별로 도입하지 않았다. 태권도 창립과정에서 약간의 관심을 보였을 뿐이다.
태권도협회에서는 태권도의 위상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태권도가 한국 5000년 전통 무술이라는 신화를 보급시켰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오늘날 태권도 위상이 높아지자 태권도협회의 관계자들도 이 역사적 사실을 솔적히 인정하고 있다.
(신동아에 나온 태권도 국기원 부원장 이종우 님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영의 선생은 한국의 태권도와 극진가라테를 통합할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통합 도복까지 맞추고 한국에 와서 태권도인들을 만났다가, 우리나라 태권도계의 분열양상에 충격을 받고 통합시도를 포기하고 만다.
가라테와 초기 태권도가 비슷하지 않았다면 시도조차 못해볼 일이었던 것이다.
최영의 선생은 조국을 그리워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한국의 태권도가 한국 내에 충분히 보급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극진 가라테을 한국에 보급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영의 선생에 대한 마지막 오해를 풀어보자.
혹자는 최영의 선생의 "극진가라테 교범"을 읽고 최영의 선생이 너무 일본사람 같다면서 그의 민족정신을 의심한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인의 시각일 뿐, 일본 현지에 사는 재일교포의 입장이란 다르지 않을까 싶다.
최영의 선생이 일본국민들을 향해 "우리 일본인들은..."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당연하다. 입장 바꾸어 생각해보면, 어떤 주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책을 쓰면서 "우리 한국인은..."이라고 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최영의 선생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봐야 맞지 않을까.
최영의 선생은 일본에 살면서 일본문화인 가라테를 수련하고 발전시킨 사람이다.끝없이 일본 무도계와 정면대결한 사람이다. 그의 도전은 목숨까지 걸면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러한 그에게 일본에서 한국인 티를 내면서 살기까지 요구하는 건 좀 심한 요구는 아닐까?
최영의 선생의 일본이름은 오오야마 마츠다쓰... 최배달이었다. 배달민족임을 생각하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 조국이란, 자신이 창안한 무술인 극진가라테의 보급도 포기할 정도로 소중한 곳이었다. 그는 태권도가 한국에서 번창하고 전세계로 보급되기를 희망했고,
심지어 극진가라테와 태권도를 통합하려는 꿈까지 꾸었던 사람이다.
그런 그를 우리가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목숨을 걸고 전 일본무도계와 대결한 사람에게 우리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닐까?<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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