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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무술 역대 최강의 실전무술가' 신창 이서문 (神槍 李書文)
    무림 객잔/팔극권(八極拳) 2009. 6. 2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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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창 이서문 (神槍 李書文) 傳

    이서문
    중국무술 팬으로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근세에 실재했던 중국무술 역사를 통틀어 "최강으로 평가되는 실전무술가"
    이서문의 이름은 창주의 창주일보 기자 안세화씨의 손으로부터 「체육보」라는 신문지상에 게재되었다. (주: 창현지)

    그 전역을 소개한다. "신창 이서문전" 이다.


    (1) 이서문 황서해에 입문하다.


    창주현 동80?리, 맹촌은 중국팔극권의 발양이다. 전설에 의하면, 건륭초년, 스스로 「癩(라)」라 칭하는 익명의 도사가 맹촌에 홀연 듯 찾아와서, 어릴때부터 무예를 익히고 있었던 吳鍾(오종)에게 권술의 형(形)을 가르쳤다.
    吳씨는 연습에 힘쓰고, 새로운 技를 도입하고 발전시켜, 차츰 독특한 품격을 가진 팔극권을 창시해낸다.
    이 권은 몸을 바싹 적에게 붙여, 近身短打(접근전), 「十字勁」,「沈墜勁」,「纏絲勁」을 발경의 기본으로 하는 것으로, 중국의 무술계 안에서도, 극히 공격성이 풍부한 권이다.

    청의 同治3년(西磨1864년), 이서문은 맹촌에서 남쪽 12?리(약 6km)떨어진 남량촌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권과 곤술을 좋아했지만 몸이 작고 허약하여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서문은 자신의 강한 氣性으로, 무예를 어떻게 해서라도 제것으로 하려고, 홀린 듯이 열중하여 연습하자「기가 미쳤다」고 불릴 정도까지 되었다.

    라동에 황서해라는 팔극권 5세가 있었다. 대창으로 이름을 떨친 장극명의 제자이고, 일찍이 그 무공으로 6품의 지위를 받고, 嫡傳(정전)을 이었다고 들은 이서문은 달려가 땅에 넙죽 엎드려 스승으로 모셨다.
    황서해도 가난한 집을 나와 어떤 큰 부자의 묘지기로 촌에서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이서문의 진지함과 품행바르고 똑똑하여, 임기응변이 아주 좋은 것을 보고,
    이놈은 큰 인물이 될 것이다. 하고 열심히 팔극권과 육합대창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라동은 남량촌으로부터 4km정도 떨어져 있고, 이서문은 매일 노사를 찾아가 권을 연습하고, 끝나자「선생님, 앞으로는 저의 포단을 갖다놓을테니까, 옆에 놓아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황서해는 일부러 노한 목소리로「안돼!!여기를 어디라고 알고있는 것이냐..
    엄숙한 장소다. 너는 지금까지처럼 밤에 찾아와라」하고 말했다.
    이서문은 어쩔수 없이 석식후, 라동촌까지 걸쳐 가고, 2∼3시간 수련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황서해는 이서문이 라동의 묘지에 도착하는 시간과 귀가시간도 지정하였지만, 시간에 맞추려면, 달리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달리는 법도 스승에게 배운 몇종류의 走法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것은 스승이 의식적으로 이서문의 각력을 단련시키기위해 부과한 트레이닝이란 것을 알았다.

    팔극권접근전을 가장 자신있어하고, 발경의 강맹함을 특징으로하는 권법이고, 정식으로는 "오씨개문팔극권"혹은 "개문팔극권"이라한다. "개문(開門)"이란 「적의문(방비하는곳)을 쳐서 연다(부순다)」라는 의미이다.

    팔극권의 투로에는 팔극소가(소팔극권이라한다. 기초공력을 연습하는 것), 팔극(화경을 배우는 것), 팔극대타(대팔극권을 둘이 상대하여 연습하는 것) 등이 일반적이고, 거기에 육대개(六大開)(6종의 핵심이 되는 권기의 단계적 연습), 팔대초식(산타의 기법), 이 있고, 전승자에 의해 금강8식, 영수권, 팔극연환권, 팔극쌍괘권, 육주두, 4랑매 등을 연습한다.
    또, 팔극권에는 6합대창법이 전해지고 있고, 근세부터는 벽괘장을 합쳐서 배우도록 되어있다.

    이서문은 「창현지」및 「오씨개문팔극권보」에 의하면, 남량촌의 출신이지만, 이서문의 개문제자인
    류운교 사범에 의하면 張? 출신.... 맹촌에서는 이서문의 스승은 황서해라 전해지고 있지만
    류운교사범에 의하면 맹촌의 金家에서 이서문은 팔극문의 무예를 배웠다고 한다.
    ※류운교는 류운초의 옛이름..


    (2) 이서문, 대창을 배우다.

    묘지에는 한쪽에 오래된 대추나무가 자라있고, 가을이 깊어지면 잎이 떨어지고, 거칠거칠한 나무껍질이 한층 더 두꺼워진다. 황서해는 이서문에게 3m 남짓 되는 백랍수로 만든 봉 한자루를 주고, 노송을 겨냥하여, 좌우로 세게 때리는 연습을 시켰다. 매일 밤 고된 연습으로, 이서문은 허리와 팔이 아팠지만, 이를 악물고, 계속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힘들고, 정말로 긴 봉을 지탱할 수 없게 되어 황선생에게 말했다.
    "선생님 이런 연습을 해서 실전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까? " 황서해는 "이것은 팔의 힘을 단련하기 위한 연습이다.
    어떤 기술의 연습이라도 정말로 습득하면 도움되지 않는 것은 없다... " 라 대답했다.

    대간(大杆)(긴 곤을 사용하는 곤술)」은 창주의 무예 가운데에서도 훌륭한 기술의 하나로
    벽, 점, 추, 교, 제, ... 등의 위력이 상당히 크고, 곤 위에 수선을 붙이면, 대창이 되어 살상력은 보다 강화된다.
    황서해는 오종정傳의 육합대창 창법을 남김없이 이서문에게 전했다.
    이서문은 스승의 가르침을 잘 지키고, 고된 단련을 참아내고, 팔의 힘은 점점 강하게 되어
    좌우, 상하 어느 쪽에서라도 오랜 대추나무의 두꺼운 껍질을 벗겨내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 1장 남짓 되는 봉끝으로 파종 후 흙을 누르는 돌 롤러를 들어올릴 수 있었고,
    대창의 경력도 그 가감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날, 이서문이 대창을 메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오자, 이웃사람이 그의 창법을 엿보고, 同臣(이서문의 호), 대창도 훌륭하게 되었군, 하나 보여주지 않을 텐가? 」하고 말했다.
    이서문은 "좋다" 하고, 대답하긴 했지만, 또 처음부터 투로를 반복하는 것도 귀찮아서 무언가 실제로 찔러주자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정원 안에 여기저기 찌를 목표를 찾아 돌아보았지만 적당한 것이 없었다.
    방에 돌아와 문득 벽을 보니 파리가 무리를 지어있어, 창을 쥐고서 차례로 찌르자, 파리가 한 마리 씩 지면에 떨어졌다. 이웃사람은 죽은 파리를 주워, 벽으로 다가가 구멍이 뚫린 여부를 찾았지만, 창에 찔린 흔적은 없었다. 이웃은 이서문의 창을 「진실로 신기다」라고 치켜세웠다.
    이서문은 보통 사람과 창으로 우열을 가릴 때 창끝은 바깥으로 하고, 봉 끝에 면을 두르고 적을 찔러 상대를 땅에 쓰러뜨렸다.
    자신의 창자루와 상대의 자루가 교차하면 급히 쥐로 자루를 당겨 적을 앞으로 꼬꾸라뜨렸다. ....


    (3) 천하제일 창

    1920년, 이서문은 38세로 연경(현재의 북경)으로 무술인 수업을 나갔다. 천단(天壇)광장에서 십 수인의 무술가와 기술을 겨루고, 차례차례 이기고 있었다. 마지막에 "황"이라 하는 자와 대창을 겨뤘다.
    황은 큰 몸집으로 힘이 세고, 창법에 숙달 돼있었으며,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둘은 하루 종일 시합을 계속하였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두 자루의 창이 부딪혀 교차할 적마다, 어느 쪽도 물러설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서문은 마침내 상대를 힘으로 누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깨닫고, 큰소리로 외쳤다. "죄송합니다. 손을 떼어주십시오..."
    황쪽도 이미 폭포처럼 땀을 흘리고, 기력이 다하고 있었기에, 손을 멈추고 창을 당겼다.
    이처럼 긴박했던 대전에는 결정적인 수법이 없으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이서문은 알고 있었다.

    그는 맹촌의 팔극권 4세의 문인인 오린서(통칭 吳春아저씨)의 것을 생각해 냈다. 오 아저씨는 풍부한 경험의 소유자였지만, 괴짜라 남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서문은 거기에서 가르침을 청할 방법을 생각해내고 한쪽 권을 다른 손에 포개어 공수의 예를 취하며 황에게 말했다. 「선배, 연경을 떠나지 말아 주십시오, 다음달 오늘 다시 뵙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창을 메고 떠났다.

    이서문은 창주에 돌아와 東南에 있는 史家에서 말에게 끌게하는 교차(轎車;옛날 사람을 태워 달리는 상자형의 가마)를 세를 내어 가마의 천장에 그의 대창을 꽃고 빨간 천에 「천하제일창」이라 쓴 기를 달고, 풍당당하게 맹촌을 목표로하여 차를 몰았다.
    차부에게는 맹촌에 도착하면 3냥의 은화를 준다고 약속해 놓았다. 차가 맹촌의 북쪽 길에 이르자 이서문은 차부에게 「어떤가.. 내가 말한대로 큰소리로 외치는거다... 남쪽길까지 가면 은화를 두냥 더 낼테니까」라고 말했다. 차부는 소리를 높여 「촌에 계신 여러분!!! 길을 열어 주십시오!! 천하제일의 창이 납시었습니다. 」라고 외쳤다.


    맹촌은 팔극권 명수의 산지이고, 큰 길가에서 이처럼 무예를 자랑하고 큰소리로 천하제일을 외치는 인물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팔극권 5세인 오회청(맹촌오가의 정계 ; 四世인 吳愷의 아들)에게 알리러 달려가는 자가 없을 리가 없었다. 당시 오회청은 21세로 혈기왕성한 연령, 보고를 받자마자 바로 이서문을 살폈다. 아무도 이서문과 다투려 하지않는 것을 보고, 부아가 치민 오회청은 "건방진놈, 이분의 대창에 걸리면, 네놈 따위는 벌레나 다를 바 없다"하고, 화를 내면서 집을 나갔다.

    이서문은 일부러 차부에게 차를 천천히 달리게 하면서, 더 크게 소리를 높이도록 했다.
    오회청은 멀리서 가마위에 있는 창과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보자마자 서서히 자신의 창을 큰길의 가운데에 놓고 옆에 섰다. 차부는 큰소리로 외치다가 문득, 길 한가운데 대창 한자루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뒤돌아 가마안에 있는 이서문에게 고했다. 「내려주십시요」이서문은 차에서 뛰어내려 창을 보고 금방 깨달았다.

    오회청은 이서문을 노려보며 서있었다. 「어이~! 밖에서 조금 이름을 알렸다고 해서, 그
    큰 낯짝을 내밀면 참을 수 없다.. 천하제일의 창이라면 꼭 그 솜씨를 보고 싶은데 보여주지 않을 텐가!!! 」
    하고 땅에 놓인 대창에 달려들어 발끝을 비틀어 창의 자루를 위로 한번 회전시켰다.
    그리고는 즉각 창끝을 이서문의 목 근처로 향했다. 이서문은 당황해서 공수의 예를 취하며
    사숙, 삼가 화를 가라앉혀 주십시오 이것은 오춘아저씨를 꾀어내기 위해한 행동으로 설마
    사숙이 집에 계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오린서에게 소식을 알린 사람이 있어 린서가 화가나 「놈을 여기로 데려오라!! 애송이 녀석이... 」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서문은 차부에게 명하여 차를 린서 아저씨의 저택 문에 대게 하고, 대창을 차에서 빼내어 공손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4) 오린서 비전을 전수하다.

    갑자기 "휙~"하는 소리와 함께 대창이 목 근처로 찔러 들어왔다. 이서문은 당황해서 창을 받는다.
    폭이 약 8장(약25m)정도 되는 안뜰에서 둘은 결투를 시작했다. 오린서는 기력을 넘쳐흐르게 하여, 이서문의 목 근처에서 창끝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이서문은 한가지 계책을 생각해내고, 일부러 창자루를 얽히게하여, 오린서의 대창을 눌렀다.
    오린서는「이녀석!!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권으로 나오다니…」하고 심중으로 생각하면서 「얏!! 」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양발을 재빠르게 전진하여 좌우로 훌쩍 몸을 펄럭이며, 갑자기 창을 위로 튕겨올렸다. 이서문의 창은 '붕'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높이 날아올라 갔다.

     다음순간,
    이서문은 성큼성큼 오아저씨 앞으로 달려나가 당에 무릎을 꿇고 「춘아저씨, 저의 이 우매한 권은 모두가 이 기술을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고 털어놓았다.
    이서문은 연경에서 있었던 타류 시합의 일을 아주 상세하게 오린서에게 고했다.
    오린서는 노했는지 노하지 않았는지 모를 큰소리로 말했다.
    「이 애송이가... 이 기술은 좌우과마압여세(좌우에서 말에 올라탄 것처럼 몸을 펄럭이고
    집오리처럼 발바닥을 붙여걷는다)라 한다. 」이서문은 가마에서 화려한 과자상자를 꺼내
    차례차례 오린서에게 보냈다. 마지막에 오아저씨를 가장 기쁘게 한 것은 1척2촌(옛날 구두의 촌법으로 40호)되는
    특대화였다. 왜냐하면 오아저씨의 발은 특별히 컷기 때문에...

    이서문은 「좌우과마압여세」의 숨겨진 기술을 배우자 집에도 돌아가지 않고, 바로 연경으로 가서, 황이라는 대창의 명수를 찾아내고 천단광장에서 시합을 했다. 2번의 맞붙음도 끝나지 않은 사이에 상대의 대창은 하늘로 날아 올랐다. 그 후, 여러명의 대창 명인과 기술을 겨루어도, 그를 능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순식간에 연경안에서 「신창 이서문」의 이름이 알려졌다. 사람들은 이서문은 몸은 비록 작지만, 신체는 철처럼 단단하고, 신체 어느 부위를 사용해도, 사람을 쳐서 쓰러뜨릴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이서문은 질리도록 무술를 연습하고, 고행을 싫어하지 않았다.


    (5) 연경 무술가를 격파하다.

    이야기를 바꿔, 이경림이 천진의 제독에 있을 때, 이서문의 위명을 전해듣고, 부대의 무술교련으로 초대했다.
    이경림은 극강현 사람으로 권행, 검술도 소양이 있고, 군대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무술가 였다.
    그는 이서문의 팔극권과 육합대창의 기술을 아주 존경하고 있었고, 늘 「동향인」이라 부르고, 친하게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이서문도 사퇴하기 어렵고, 하루종일 일정대로 무술지도를 수행했다.
    이서문이 시범을 보이는 날은 이경림과 그 자리에 늘어서 있는 각 장군들은 단지 어안이 벙벙하여 언제나 박수를 칠 뿐이었다. 왜냐하면 이서문이 일식 팔극권을 끝내면 조련장의 굳은 지면은 온통 울퉁불퉁하게 되어,  予脚(타여각;발바닥으로 지면을 "꽝"하고 밟는 보법)(주: 진각)에 의해 생긴 구멍이 군데군데 이어져 있기때문이었다.


    이서문의 공부와 이름은 차츰 먼곳까지 전해져, 마침내 연경에 까지 이르렀다.
    당시, 연경의 무술가들은 이서문의 이름 따위는 마음에 두지도 않았고, 그의 공부가 소문처럼 우수하다고는 믿고있지 않았다. 그러나, 유명하게 된 이상, 만약 이서문을 깨뜨리면, 연경무술가의 이름을 높일 수가 있었다. 그래서 가장 강한 두 명의 무술가를 천진에 보내고, 이서문의 주소를 알아내어, 그와 기술을 겨루고, 소문대로의 실력을 갖춘 주인공인가 어떤가를 시험하게 되었다. 둘은 이서문을 보자마자 싱글벙글 웃었다. 꼬마같은 야윈 남자로, 신장은 170cm에 미치지 못했다.
    이래서는 공부가 아무리 우수해도, 전신이 마치 철과 같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서문은 예를 갖추고 접대를 하였지만, 연경에서 온 두 객인의 눈빛에서 그 의중과 오만함을 알아채고, 시합을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고했다. 그래서 武를 통해 친구가 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도 좋다. 라고... 잔치를 베풀고 대접하였다.

    석상의 체격이 좋은 쪽이 「이선생의 "우뢰가 귀를 꿰뚫는 것 같다"는 고명은 전부터 삼가 듣고있습니다.
    오늘 이 눈으로 선생의 기술을 배견할 수 있다면 영광입니다.」라 말하면, 후배라 칭하는 쪽은 「우리들은 20여년 무예를 익히고 있지만 기량은 아직 많이 얕고, 이선생에게 예를 들어 하나, 둘이라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는지.. 시합을 청하고싶고... 」라 했다. 둘은 마침내 몸을 일으켜 차례로 이서문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그와 시합을 하지 않고는 끝내지 않을 태세를 표했다.

    이서문은 어쩔 수 없게 되어, 연회석을 정돈시키고는 무표정하게 「그럼!!」하고 말했다.
    당당한 체격쪽(이름은 불분명)은 배부르게 먹고 마신 후로 어떻게든 시합을 하고 싶어서
    조급해 있었기 때문에 「그럼!!」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앞으로 나아가 권을 내밀고, 갑자기
    이서문의 머리부위를 맹공했다. 이서문은 태연자약하면서, 몸을 돌리지도 굽히지도 않고
    탐마장」으로 상대의 정수리를 격침하여 즉사시켰다. 무예가 중에는 자신의 기량이 열등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가 많지만, 자칭「후배」라고 한 작은 쪽의 연경손님도 그 중의 한사람이었다.
    권을 포개어 송수의 예를 갖추며 「그럼!」하고 말하자마자 상대는 앞으로 돌진해 왔다.
    이서문은 재빠르게 전진하며 그 공격을 받고, 정면에서 장으로 일격을 가했다.
    적은 급하게 머리를 기울여 피하려 하였기 때문에 장은 그이 어깨에 떨어지고, 「우적!」하는 소리를 내며 견갑골이 산산히 부서져, 상대는 꽈당하고 식탁위로 쓰러졌다. 이 짧은 살인극에 보고있던 자들은 몸을 떨었다.

    ※이경림은 군인(장군)이다. 그의 무당검술은 유명해서 「천하제일검」으로 칭해졌다. 일찍이 남경의 중앙국술관에서 부관장을 역임했다.


    (6) 침추경의 위력.

    어느해, 이서문은 팔극권 5세중의 명수, 오회청과 이야기하고 천진으로 나왔다. 한가할 때,
    둘은 장법을 겨뤘다. 오회청은 대청에서 기둥에 기대어 장을 치자, 대청 전체가 진동했다.
    이서문은 대청중앙에 서서 장을 치자 대청 전체가 진동하여 벽토가 떨어졌다. 또 어느날은
    창에서부터 5척(1.5m)떨어진 실내에서 공기를 배격(밀어젖히듯 침)하자, 창의 장여지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창현지」에는 「옛날 그 연객을 타격한것과 고목을 꺽은 것과 같다」라고 기재되어있다.」

    전문에서 기술한 바와같이 팔극권의 발경의 방법에는 「침추경」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이 방법은 실재로 어느정도의 위력이 있는 것일까. 어느해 봄의 일이다.

    오회청은 거친 말을 샀지만, 일을 시키려 해도 말하는 것을 제대로 듣지 않고, 차거나 대들거나 했다.
    이서문이 말에게 「나에게도 대들려는 건가!!」하고 말했기에 오회청은 웃으면서 손그물을 이서문에게 건네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대들지 않을 거야」하고 말했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은 입을 뻗으며 대들며 달려들기에 이서문은 무릎을 들어 퍽하고 발의 아래턱을 찼다. 말은 큰 아픔을 느껴 히힝하고 콧소리를 내며 머리를 들고, 엉덩이를 내려 이서문을 차려고 했다.
    이서문은 재빠르게 알아차리고 말이 머리를 들었을 때에 그 갈기를 붙잡고, 기세좋게 올라타 날쌔게 말의 등에 걸터 앉자, 손그물을 잡고, 가슴으로 氣를 옮기면서 맹렬한 기세로 허리를 떨어뜨렸다.
    말은 히힝~~하고 소리높여 울고, 지면에 넙죽 엎드려 버렸지만 이서문이 기를 느슨하게 하는 사이에 양 발굽을 땅에 붙이고 또 일어섰다. 이서문은 다시 한번 힘을 넣어 허리를 떨어뜨리자, 난폭한 말은 「후∼후∼」하며 울면서, 네 번정도 땅에 기었다. 오회청은 그이상, 보다못해, 당황해 손을 흔들며 「빨리 말에서 내려와!! 그 이상하면 말이 죽어버려」하고 외쳤다.


    (7) 무서운 맹호경파산

    이서문의 손과 팔은 철과 같아서, 힘이 강하고 경을 사용하는 방법이 교묘하기 때문에
    동북3성, 연경, 천진, 랑방지구, 산동, 강소, 남경, 안휘, 하남 등 그가 이르는 곳 모두 무림의 명인들과 무술과 대창 시함을 셀 수 없을 정도로 행하였지만, 필적할 만한 자는 없었다.

    현. 청주시 무술협회 부주석인 이서정씨는 어렸을 때, 그를 만난적이 있다. 이서정씨의 아버지인 이우삼은
    연청권의 명가로, 이서문과 친교가 있고, 어느날 이서문이 방문했다. 우삼은 서정에게 「빨리 "흉권이(凶拳李)" 아저씨를 불러오거라!!」하고 말했다. 서정은 "흉권이"의 이름을 듣자마자 무서워서 온돌 위로 도망쳐 숨어버렸다.
     
    사실 이서문의 권각이 흉폭한 것은 유명해서
    그가 63세 때 제남의 어느 공원에서 수족을 움직이고 있을 즈음, 체구가 당당한 당랑권의 명수가 이서문은 나이가 환갑을 넘어서있는 듯하지만 움직임이 진실로 없는 것을 보고, 시합을 간청해 왔다.
    이서문이 「그럼, 먼저...!!!」라고 말하자 그 남자는 힘을 넣어 당랑조를 정면에서 맹렬하고 기세좋게 쳐들어 왔다. 이서문은 상대의 권에는 신경쓰지 않고, 그대로 앞발을 내밀어 팡! 하고 돌연 적의 가슴을 꿰뚫었다. 상대는 후방으로 쓰러진채 긴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이서문은 왜 이렇게도 차례로 강적을 쓰러뜨리고 불패를 계속했던 것인까. 그것은 결국
    그의 팔극권이 명인의 극전에 달하고, 내기를 완전히 몸에 익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팔극권 기격의 장점중 하나가 공격 당하면서 몸을 전진한다.


    맹호경파산」이라 칭해지는 형이 있다. 이것은 상대가 권으로 쳐들어 올때도 방어하지 않고, 그대로 접근전을 행하고, 압도적인 역량으로 적을 부수는 것으로 만약 상대가 앞으로 발을 들기라도 한다면 한층 더 불리하게 된다. 이 때문에 약한 상대라고 업신여기기도 하고, 거만한 대전자는 부상당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 「맹호경파산」기술로 그 진짜 기술을 체득하지 않거나 공격의 기초력이 얕거나 하면, 위험에 처한다.

    이서문의 연습법은 삼백근 이상(150kg정도)도 넘는 돌 로라를 2m남짓 높이의 화전 위로 들어올릴 정도로
    힘이 강했기 때문에 일반 기격가들은 모두 그의 「맹호경파산」을 무서워했다.

    ※이우삼 : 이우삼, 또다른 이름은 임춘, 비종문(연청권)의 진옥산 제자, 일찍이 장학양 장군에게 무술을 지도했다.


    (8) 방랑의 명인과 그 제자들

    이서문은 생애 남북을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고, 거둔 제자도 셀 수가 없다.
    위로는 저정계의 군인. 허난주, 그밖에 군인 고관인 엄국동, 류호신, 나옥곤들이,
    아래로는 끼니도 거르는 서민까지 있었다.
    전해지는 말로는 그는 만년, 하룡원사에게도 권술을 가르쳤다고 하지만, 상세한 고증은 어렵다.
     

    그러나, 그의 무수한 문하생 가운데 그 기술을 진실로 이어받은 자는, 동향의 곽전각은
    정진을 거듭하여 청나라의 광서제의 사범을 했다.

    또 맹촌의 류운교(주: 유운초)도 10세부터 이서문의 옆에서
    팔극권을 배우고 만년의 이서문이 가난해져서 그의 집에 몸을 의탁했을 때, 다시 십수년간 이서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래서 팔극권의 진수와 내기를 체득했다.


    1968년 류운교는 말레이시아에서 행해진 「중국무술표연대회」에 초대 되어 이서문 정전인 팔극권을 피력하고, 타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대만, 향만의 대표들은 그 측량할 수 없는 공부의 깊이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1928년 남경, 중악국술관이 생기고, 교사선발에서 전국으로부터 모집한 무술가들에게 처음으로 전국 국술시험이 행해졌다. 이서문과 같은 문하인 한화신, 조수덕(다르게는 마영도)들이 팔극권과 도수격투를 행해 함께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팔극권은 필수과목이 되었다.

    현재, 중국각지 및 해외에서 류포하는 팔극권은 이미 그 본래의 면목을 잃고있는 것도 있지만, 많은 것이 남경중앙국술관에서 그 근원을 내고 있다. 창주의 저명한 대육합권의 명가에서 솔각명수인 충의의 장녀, 가의의 남편인 이원지(창주가 화원 출신)은 남경 중앙 국술관에서 팔극권을 공부한 후 대만으로 건너가 무술 사범이 되었다. 그는 「 拳(거권)」이라고 팔극권의 명칭을 바꿨지만 맹촌 팔극권의 본류와는 현저히 다르다. 그에게 팔극권을 부분적으로 배운 무예가도 몇 명 있다.

    팔극권을 배우는 자로서 창주의 맹촌과 이서문의 일을 모르는 자는 없다. 어느해 이서문은
    산동의 어느 무술가의 기술교류 초대에 응하고 사랑하는 제자인 류운교를 데리고 나갔다.
    그런데 오래 체류하여 야위게 되었기에 돌아갈 때가 되어 류운교에게는 산동에는 보는 바와같이 무술가가 많고 여기에 머물며 연구, 저작을 계속하라고 말했기에 이서문은 어쩔수 없이 혼자서 돌아오게 했다(1934년).

    돌아가는 길에, 패한 것을 한으로 가지고 있던 자의 손에 의해 독살당했다. 향년 70세 였다.

    세상에 무술가는 많지만, 잘 고찰해 보면 종종 실력이 결여되어 있거나, 결국은 과장과 허위가 섞여있는 경우가 곧잘 있다.
    그러나 이서문은 중국무림 속에서 가장 실전력을 갖췄다. 「불패의 왕자」이다.

    ※이서문을 산동성에 초대한 것은 산동성제독인 장양오장군 및 황현의 무술가 정자성(육합당랑권)이다.



    < 이것이 발경의 위력이다!! >


    이서문 에피소드 1

    천진의 공원에서 이서문의 제자들이 참장(같은자세로 계속 서있는연습)을 하고있자,
    옆에서 연습을 하고있던 솔각(던지는 기술의 무술) 단체의 사범이 와서 「너희들, 매일 이러한 연습을 해서, 도대체 정말 도움이 되는가? 」라며 웃었다.

    제자들이 다가오는 이서문에게 고하자, 이서문은 바로 그 솔각의 사범이 있는 곳으로 가서,

    「너희들, 이렇게 시끌 벅쩍하게 연습을 해서, 도움이 되는건가? 」하고 도발했다.
    이서문이 몸집이 작은 것을 보고 화가난 그 사범은, 「뭐라고!!」하며 이서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 순간 이서문은 맹렬한 발경으로 상대의 명치부근에 정심주(팔꿈치로침)를 행했다.
    상대는 양눈, 양코, 양귀, 그리고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七孔噴血(칠공분혈)"의 상태로 즉사했다.
    이것은 많은 목격자가 전하는 실화이다.


    이서문 에피소드 2

    팔극권의 명인·이서문에게, 최후의 제자인 류운초씨가 동행하여, 북경에 갔던 때의 일이다.
    地元의 유명한 무술가가, 저명한 팔극권가·신창 이의 제자와 이서문이 왔다는 것을 전해듣고, 자택에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그 무술가는 이서문에게 「당신의 팔극권을 한수 가르침 받고 싶습니다.」하고 부탁했다.

    이서문은 찌르기에서 주법으로 변화하는 기술을 설명하려 하고, 「먼저 이렇게 친다.」하며, "툭"하고 쳤다.
    그러자 그 무술가는 꽈당하고 쓰러져 버렸다.


    이서문은 「팔극권의 진수는 여기서부터다, 어째서」라 말하고, 제자인 류운초씨가 당황해서
    그 무술가를 살피자 마자, 그는 이미 죽어있었다. 이서문의 공부는 이상하게 높았기에, 컨트롤이 듣지않아 가볍게 치는것만으로 죽어버렸던 것이다. 둘은 당황해서 기차를 타고, 고향인 창주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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