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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문의 마지막 제자 '산동소패왕' 유운초무림 객잔/팔극권(八極拳) 2009. 2. 14. 08:53반응형
팔극권의 역사상 이서문 선사님에 이어 유명한 이는 뭐니해도 유운초 선사님 일 것입니다.
전설적인 무술가 이서문의 마지막 제자였다는 것 자체로서도 세인들의 관심을 끌 수 있지만 분명, 그의 무술은 스승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유운초 선사님의 타개 (완벽한 자세)
젊은 시절의 산동성에서 무패의 행진(주: 이때 산동소패왕이란 칭호를 얻음), 또 전쟁 기간의 정부의 비밀 요원(주: 황하1호)으로서의 활약, 대만 총통부 시위관의 훈련 교관으로서의 무력은 영웅의 그것이었으며 실제로도 대만의 텔레비전에서 그의 일화를 소재로 다수의 드라마로 제작 되었습니다.
유운초는 매우 어린 시절부터 이서문 밑에서 무술을 익혔습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창현 일대의 관리를 맡고 있었으므로 이서문을 초빙해서 유운초의 무술 교육을 맡길 정도로 부유했습니다. 그 시절 유운초의 일과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수련하고 다시 점심 후 수련하는 극히 단순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이서문의 제자가 된지 반년이나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이서문이 유운초에게 가르쳐 준 것은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주: 마보를 말함) 하는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유운초는 싫증을 느껴 수련에 흥미를 잃게 되자 그의 아버지가 이서문에게 아이가 흥미를 가질 만할 것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이서문은 단호한 얼굴로
"내 교수 방식은 천천히 한 단계씩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 내 방식이 싫다면 내가 떠나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결국엔 이서문의 뜻을 꺾을 수 없었던지 유운초는 이서문의 교수 방식에 따라 무술을 수련 받았습니다. 당시 이서문은 이미 60대였지만 그가 말년에 집대성한 성과가 유운초에게 전수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유운초에게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서문이 사망한 뒤 그는 팔괘장, 당랑권을 수련했으며 1937년 군사학교에 입학해서 1939년 소위로 임관하여 정부의 비밀 요원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1949년 국민당 정부를 따라 대만으로 건너온 그는 1968년 정부 고위직을 경호하는 기관의 책임자로 임명이 되었으며 1971년에 무단을 설립하여 소욱창, 서기 등과 같은 걸출한 제자를 길러냅니다.
1992년 1월 21일, 8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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