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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조 마지막 황제의 보디가드 '곽전각'
    무림 객잔/팔극권(八極拳) 2009. 2. 14.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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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조 마지막 황제의 보디가드 '곽전각'

    곽전각
    은 17세부터 20년 동안 이서문에게 팔극권과 창술을 배웠습니다.(주: 이서문 노사의 개문제자)

    이서문 휘하에서 무술을 배우던 곽전각은 훗날 이서문이 무술 교관으로 추천하여 그의 조카인 곽경운과 함께 1921년 천진으로 갑니다. 청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보의(주: 부의)는 군주제로의 복귀를 꾀했는데 1911년 중국의 공산혁명과 1912년 중화민국의 설립으로 계획이 무산됩니다.

    보의는 일신상의 위협을 느껴 무술의 고수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는데 당시 그의 참모였던 허란주 장군의 천거로 조카 곽경운과 함께 1927년 보의의 전통어위로 임명이 됩니다.
    (주: 한가지 재미난 사실은 마지막황제였던 부의 역시 팔극권을 수련하였습니다. 곽전각 노사는 부의의 보디가드임과 동시에 그의 사부가 되는 것이죠.)

    보의는 그들이 보디가드의 자질이 있는가 시험해 보기 위해 초빙한 일본인 무술가 두 명과 시합을 하게 했는데 그들은 보통의 덩치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곽전각은 가볍게 상대방의 손가락을 꺾어 승리해 버립니다.
    자신이 직접 상대할 필요가 없음을 느꼈는지 아니면 조카 곽경운의 무력도 보여주고 싶었는지 다음 상대를 곽경운에게 맡겼는데 곽경운 역시 배나 되는 덩치의 일본인 무술가를 어깨에 들쳐 내던져 버렸습니다.

    이렇게 무사히 시험에 합격한 곽전각과 곽경운은 스승인 이서문의 만류를 뿌리치고 1932년 보의가 일본에 의해서 설립된 괴뢰정부 만주국의 국주에 오르자 장춘으로 옮겨갑니다.

    뒤이어 1934년 이서문의 또 다른 제자인 주형무가 장춘으로 오면서 곽전각, 주형무 두 사람이 새로운 시스템의 팔극권을 보급하게 됩니다. 이를 '동북팔극', '장춘팔극', '춘팔극'이라고 사람들이 칭합니다.

    그러나 그의 문하생들과 일본인들과의 충돌이 잦아지고 양국간의 군대에 충돌이 일어나면서 급기야 황궁의 호위군은 해산을 맞이하게 되었고 곽전각, 곽경운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이 진행됩니다.

    곽전각은 1942년에 그리고 곽경운은 1987년에 각각 사망하였으며 현재 장춘에는 곽전각의 제자인 담길당(주: 동북/장춘팔극권)이 그리고 천진에는 곽경운의 아들인 곽문학(주: 곽가/곽씨팔극권)이 그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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