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는듯한 무술 게시판의 갑론을박 논쟁

몇년동안 여러 무술사이트를 보아오면서 게시판을 달구워온 토론 혹은 논쟁거리 중 하나하나가 
조금 멀찍이서 떨어져보면 한편의 아웅다웅 인생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정리차원에서 모아보았습니다. 

흥미 차원에서 봐주십시오. 

끝나지 않는 논란거리 "실전에는 어떤 무술이 좋은가?"

처음 말씀드릴 것 중에 가장 주된 논란거리는 아마도 '실전에는 어떤 무술이 좋은가'에 대한 것입니다. 

이 글만 보아도 짜증나거나 몸소리가 쳐지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대개 이런 질문을 처음 하는 분들은 중고생인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남을 때리며 괴롭히고 싶은데 어떤 무술이 좋아요? '하는 질문보다는 '나를 괴롭히는 넘이 있는데 어떤 무술을 배워야할까요?' 와 같은 절박한 심정에서의 질문이 많습니다 

철권 6


거기에 달리는 리플들은 초반에 대개 '복싱을 해보세요' '무에타이는 어떨까요' '유도가 낫지 않겠습니까' 등 특정무술을 권하는 평범한 리플이 달립니다 

그 다음에는 '어떤 무술이든 마찬가지니까 열심히 하는 사람의 몫이다'는 리플이 올라옵니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문구는 '최강의 무술은 없다,최강의 파이터만 있을 뿐이다'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조금 더 지나면 
'니들은 쌈박질하려고 무술배우냐,무술은 자기수양이다'는 류의 리플이 달리게 되죠. 
아이러니하게도 보통 싸움이 안 좋은 것이라는 걸 충고해주는 도덕적인 리플임에도 불구하고 중고생을 철없다며 꾸짖듯 감정적인 반말과 욕설이 섞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면 '맞는 게 돈 버는 것이다'는 충고도 올라오고 '공부잘해서 검사되는 게 이기는 거다'는 충고도 올라옵니다. 
'때리는 넘이 감방가니까 차라리 맞아라'는 리플에서 '경찰서 뒀다 뭐하느냐'는 리플도 올라오지요. 
같은 또래가 다는 리플의 경우 '그렇게 맞고 학교 다닐려면 뭐하러 당기냐 차라리 뒤져라'는 좀 야박한 글에서 '어디 학교냐 내가 애들 끌고가서 복수해줄께'등의 응원도 올라옵니다. 

과거 철없이 휘두른 자신의 주먹으로 인해 후회할 일 많았으니 '너희들은 내 전철을 밟지말라'는 눈물섞인? 선배의 경험담도 올라옵니다. 
간혹 어떻게 싸우라(이렇게 때리면 어떻게 피해서 어떻게 때려라)는 자세한 설명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실전" 그 자체에 대한 논쟁

이런 것과 연관된 질문중에 '실전 그 자체'에 대한 논쟁 또한 빠지지않습니다. 

'실전이 도대체 뭐냐'는 논쟁이 필수적으로 벌어집니다. 
서로에 대한 실전의 견해차가 다른거지요. 

보통 UFC,PRIDE,KOTC 등의 경기에서 주로 쓰여지고 효과적인 기술들이라고 알려지고 있는 것들은 무에타이와 유술계통입니다. 
그외에도 실전에 강하다고 한두번 이상 이름이 들먹거려진 무술들이 몇 가지 있는데 복싱,무에타이(킥복싱),유도,검도,레슬링, 최근에 뜨고있는 브라질유술 등등이 아닐까 합니다. 

어쨌든 무규칙격투대회들의 대외적인 홍보문구는 '무규칙 격투기'라고 하는데 대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물어뜯기,낭심치기,꼬집기(?),박치기,눈찌르기 등을 금하고 있어 100% 무규칙,100%실전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철권 6


그런데 표현상으로 실전무술(사실은 실전에 근접한 무술이겠죠)어쩌구 하는 말이 나오면 타무술을 수련하는 분들은 자존심이 상하게 됩니다.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 

실전을 보는 서로 다른 시각

보통 이 과정에서 실전을 더 넓게 더 잔인하게 정의하는 분들의 리플들이 달립니다. 
'대회에서 보는 것은 실전도 아니다.진짜 실전은 눈찌르고 깨물고 의자도 집어던지고 칼찌르고 다구리도 하는 것이 실전인데 감히 그 따위 대회를 실전대회라구? 
100% 진짜실전에 특정무술이 강하다고 할 수 있느냐'는 뜻이죠. 
오히려 눈찌르기나 급소공격, 이종격투기 장갑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의 발경 등에서 더 효과적인 무술이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분들은 천한것들 나가있어의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더럽게 땅바닥에 뒹굴며 싸우는 게 무술이냐?는 의견에서 이종격투기대회는 개싸움이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조금 더 중립적인 분들은 '싸워봐야 안다'이거나 '그 무술의 룰대로 하면 그 무술이 이긴다'의 의견을 피력하십니다.

무술 경력에 관한 이야기

그러다 무술경력 이야기도 나옵니다. 
몇달 배우고서 경기에 나가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경우가 있는 **타이 얘기가 나오면 타 무술을 오래 수련한 분들의 심기가 편치않습니다. 
'적어도 무술수련은 최소한 3년은 해야 기본은 겨우 뗐다고 하는 거지'라는 의견에서 '검은띠가 땀에 절고 많이 빨아서 백띠가 될때까지 정도는 해야지' 하는 의견도 나옵니다. 

그러다 어떤 분이 '저는 무술을 십오년 넘게 해왔지만 아직도 무술의 무자도 모르는 초보입니다... 
선배님들의 많은 가르침 부탁합니다' 하는 겸손????의 글이 올라오면 십년 한 사람도 조용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버추어 파이터 5


타 무술에 대한 견제

제일 강하다고 말해지는 그라운드계열 무술이나 그 무술을 수련한 강자에 대한 집중적인 공격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눈찌르고 붕알차면 이긴다' '일대다로 대련하면 그라운딩은 약하다' 
'나같으면 깔렸을 때 등짝에 칼 꽂겠다''딱딱한 바닥에서는 사용하기 힘들다' 
'사방을 막아놓은 링 자체가 그쪽 무술에 유리하게 만들어졌다' 
'태클들어올때 무릎으로 대가리 올려치거나 등짝에 팔꿈치로 내려치면 충분히 이긴다' 
'길거리에서 100%무규칙으로 싸우면 이긴다'는 류의...무술에 대한 반론에서부터 

'그레이시가문이 최강이라고 떠들어도 B급 파이터일뿐이다 
타이슨이나 국가에서 인정하는 올림픽 금메달들에게 이기겠느냐' 혹은 '누가 가서 저 잘 난 척 하는 넘 좀 패다오'는 류의 강자에 대한 반론까지 이어집니다. 
타이슨이 나오면 권투에 대한 얘기가 안 나올 수 없고 그러다보면 또 무에타이 이야기가 껴듭니다. 
로우킥으로 공격하면 끝난다는 무에타이응원에서 빠른 스텝으로 충분히 극복한다.주먹만 제대로 써도 무에타이 정도는 깬다, 
K-1에서 베르나르도 이기는 거 좀 봐라는 복싱응원이 싸웁니다. 

유명한 무술 고수에 관한 논쟁

타이슨이 나오면 이소룡도 나와야 되고 그가 영화배우냐 무술인이냐는 논쟁이 시작됩니다.
 

이소룡이 나오면 최영의도 질 수 없고 최영의가 나오면 필수적으로 극진가라데 얘기가 나옵니다. 
누가 극진가라데 칭찬을 하면 최영의가 워낙 강한 것이지 극진가라데가 강한 게 아니다라는 리플이 달립니다. 
간혹 최영의를 누가 최형의로 잘못 쓰기도 합니다. 
무술가 이름도 모르면서 무술을 하냐고 핀잔을 먹게 됩니다. 

중국무술로는 실전최강이었다는 팔극권의 이서문이 나오고, 형의권의 곽운심이 나오고 팔괘장의 동해천이 나옵니다. 그에 관련된 무용담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중국무술 얘기가 나오면 엄청 싸움이 길어집니다.(여기서 정리가 안됩니다) 

죽은 사람들 얘기를 뭐하러 하냐,그들에 대한 모독이라는 의견이 나올 때쯤 논쟁은 시들해집니다. 

엉뚱한 방향의 화두

그러다가 제 아무리 사람이 강해도 호랑이같은 맹수보다 세겠느냐는 다소 엉뚱한 의견이 나옵니다. 
그럼 여기저기서 보아뱀이 세다.불곰이 세다.아니다 북극곰이 세다.악어가 세다는 등의 동물이야기가 나옵니다.무술게시판이 동물원 게시판화되어갑니다. 
그러다가 개미가 나오고 그러다가 세균이 나오면서 얘기는 다시 시들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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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 게시판 논쟁의 오랜 단골거리

조폭얘기도 오랜 단골이고 조폭과 이종격투가가 싸우면 누가 이기느냐에 대한 
논쟁을 하다보면 해가 넘어갑니다.그러다가 특수부대 얘기가 나오면 거의 칼부림 납니다.
 

조용히 글만 보고 웃던 사람도 자신의 모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눈 돌아버립니다. 
거의 군부대와 군부대간의 싸움이 납니다. 어느 부대원이 쎌거야 어느 부대에선 어떤 무술을 
배우는데 실전적이더라 하는 미필자나 타군출신의 글도 올라오고 그 부대들이 약하니 세니가 무술이 시범용이니 아니니 얘기가 나옵니다. 
북파공작부대까지 거론됩니다. 
내가 휴가 나와서 어느 부대출신을 팼다...패싸움을 했는데 이겨서 전리품을 가져왔다는 류의 경험담들도 단골거리입니다. 

'무기'를 사용하는 실전에 관한 이야기

'무기'를 사용하는 실전에 대한 것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 아무리 강자라도 무기앞엔 소용없으니 강자도, 강한 무술도 없다'는 결론이 주류를 이룹니다. 

'아무리 강자라도 총 한방이면 죽는데 요즘 시대에 무술에 실전이 왜 중요하냐'는 게 
가장 많은 리플이 달리는 도덕적인 충고입니다. 

단순한 '의자'나 '칼'에서 점점 그 파워가 세집니다. 
무기는 '미사일'에서 '핵폭탄'까지 나옵니다. 

'핵폭탄'보다 더 센 것은 없으니 논쟁이 희미해질 무렵 결국 화두는 '실전'에서 '힘'의 논리로 넘어갑니다. 

이상한 '힘의 논리'로 

'몸'에서 나오는 힘보다는 
'권력'이나 '돈'에서 나오는 힘을 가지고 게시판의 방향이 조금 엉뚱하게 흘러갑니다 
'검사가 최강이다'에서 '돈이 최강이다' '부시대통령이 최강이다'는 리플까지 올라갑니다 

'정신에서 나오는 힘, 자제할 줄 아는 힘, 싸움을 피할 줄 아는 힘'이 최고라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지요. 

무술수련의 목적

그러다보면 무술수련의 목적으로 논쟁이 번집니다. 
그렇게까지가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정신수양,자기단련,남을 꺾어쓰러뜨리는 것 등등 
각자 다른 무술수련 목적이 
한두마디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체험담과 가치관이 필히 포함되므로 
얘기가 길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버추어 파이터 5


가장 큰 논쟁거리는 바로 이것

하지만 가장 큰 싸움거리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누군가 실전에 어떤 특정무술이 약하더라는 글을 올립니다.
이러면 끝장입니다. ^^

보통 글을 올리는 사람은 대부분 글의 투로 보아 중고생이 많습니다. 
그러면 그 무술을 배웠거나 좋아하는 사람들, 혹은 객관적인 입장을 갖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습니다. 
이쯤되면 슬슬 욕이 오갑니다. 

'내 친구가 **신인왕이라며 깝죽댔는데 **도를 배운 나한테 존나 맞았다' 
'**도를 얕보지마라. 예전엔 엄청 강했다' 
'살인기술이 많이 있지만 죽을까봐 안 쓰는 것 뿐이다' 
'도장이 예전에 비해 물러졌을 뿐이다' 
'애들다니는 도장이란 이미지 때문에 그렇다,구미에서는 제대로 한다' 
'점수제,호구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다' 
'구두 신고 제대로 앞차기 한번 맞아볼래? 너 뒤진다' 
'제대로 수련을 안한 넘이 너무 많아서 그래보이는거지 제대로 하는 사람에게 걸리면 뼈도 못추린다' 
'사범들이 미국에 정착할 때 타무술이나 깡패의 엄청난 도전을 받았지만 다 물리쳤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무술인데 그만큼 실전성을 인정받은 게 아니냐' 
'집에서 비디오로 이종격투기 몇번 본 걸 가지고 아는 체 하지마라 이 초딩 씹*야' 
'**타이가 **권 배운 사람에게 졸라 깨지는 걸 봤다' 
'**도의 모든 수련자와 다 붙어서 다 이기지 않는 한 더 강하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렇게 당신 무술이 강하면 **도 국가대표나 선수를 찾아가서 붙어봐라' 
는 류의 글이 올라가는 데 대부분 이 정도면 막 가자는 거지요가 됩니다. 
미운 넘과 싸움붙이고 싶은 국가대표로 자주 거명되는 사람은 죄없는 김제경입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화

그렇게 욕설이나 험한 말이 오가다가 
결국 온라인은 오프라인화되어가는 징조를 보입니다. 
서로의 전화번호를 물어보거나 이멜을 물어보며 쌈을 겁니다. 
니가 먼저 밝혀라 그럼 내가 연락할께 라는 한 수 접은 리플도 나옵니다. 
사기성이 농후하다 싶은 글은 바로 컴도사들이 뜹니다. 
아이피체크해서 혼내준다.쫓아가서 패준다 는 류의 글입니다. 

이쯤 돼서 조용히 사라지는 도전자가 있는가 하면 끝까지 익명성을 내세워 사람들을 조롱하며 잡을테면 잡아봐라는 도전자도 있습니다. 
그런 도전자들이 잡혔는지 안 잡혔는지는 아직 확인된 바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디어디에 나오라,한판붙자는 등의 심각한 상황도 발생합니다. 
정말 그들이 만나서 싸운 일은 몇 % 나 되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쯤 되면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깁니다. 
어디서 싸워요? 저도 갈게요 등의 리플이 달립니다. 

이러다가 말리는 사람이 생깁니다. 
대부분 화해하거나 무산됩니다. 
그러면 표현을 안했을 뿐 볼거리를 놓쳤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생깁니다. 

더 많이 있겠지만 이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어떠세요..
무술게시판에서 리플 논쟁이 한편의 인생드라마를 보는 것 같지 않나요? ^^

무술 게시판이라는 곳이 일반인들은 잘 접하기 어렵지만 무술인들에게는 네이버나 다음 아고라 못지않게 설전이 오가고 자존심이 걸려있는 재미난 곳이기도 합니다.
 
대개의 무술게시판에서 논쟁으로 흐르는 것들 중 특기할 만한 것 하나를 나름대로 정리해봤습니다. 

요즘은 게시판에 바로바로 리플 다는 기능이 있는 무술사이트가 줄어들어서 이런 글들을 보긴 힘들지만...예전에 마르스도 만만치 않았던 걸로 기억됩니다.

아무튼 돌이켜보면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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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늑대(天狼)

MIXI (Martial arts, Investment in stocks X Information tech) World...since 2008

서장. 전설의 대결


쇼와 26(1951년)년 10월... 리오 데 자네이루의 마라카난·스타디움...

세기의 유술 시합 단판 승부가 벌어졌습니다.

 한때 세계 최강의 격투가라는 칭호까지 얻었던 전설의 유도가 '마에다 미츠요'의 후계자 리오·그레이시(170cm/63kg) 그리고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후에 기무라 없는 당대 최강의 유도가기무라 마사히코(175cm/85kg)의 3 R 각 라운드당 10분의 결투.(기무라의 키에 대해서는 170이라는 자료도 있고 178이라는 자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보편적인 것은 175였다는 자료입니다.

기무라 마사히코

이에 175로 일단 쓰기로 합니다.
 모 스포츠 신문에 나온 UFC의 역사라는 글을 보면 무슨 기무라와 가토가 전부 100킬로가 넘는다고 해뒀던데, 그건 제대로 자료를 뒤져보지 않고 글을 쓰셨기 때문입니다. 기무라는 85킬로, 가토는 80킬로였습니다. 게다가 기무라와 엘리오가 10살이나 차이가 나서 나이에서도 기무라가 유리했다고 해 둔 것 같았는데 기무라 34, 엘리오42 즉 8살차이였습니다.
 그 칼럼 중 마에다 미츠요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잘못된 점이 많이 보였는데 엘리오 편에서도...많이 안타깝더군요. 너무 유술가들의 편을 들어주고자하는 어투가 역력해서...)

 이 시합 전에 가토 5단이 엘리오에게 패배하는 바람에 기무라는 비장한 각오로 시합장에 나타납니다. 물론 웃음을 머금고 있기는 했었지만 그 속은 편치 않았겠죠. 한번도 맞서본 일이 없는 유술이라는것과 맞서야한다는 것 또한 무척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미 기무라 마사히코의 나이 34세. 전성기를 한참 지나버린 그가 브라질까지 오게 된 것은 자신이 총 책임자로 있는 '프로유도'의 홍보를 위해서였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레이시 유술과 싸운건 강도관 유도가 아니라 프로유도였던 것이죠. 물론 이때 이미 프로유도 단체는 소멸했었지만, 스스로의 유파는 프로유도였고, 이를 이용한 프로레슬링을 계획하고 있었죠.

  시합장에 들어서자 기무라는 흠칫 놀라게 됩니다. 바로 거기에는 관이 놓여 있었던 것이죠. 엘리오는 기무라에게 그것은 기무라가 죽으면 들어가게 될 관이라고 하며 자신감을 피력했습니다. 엘리오는 그것을 보고 웃었다고 하죠. 속마음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자기 관이라고 들고 나온 걸 보고 보고 웃는 사람은...^^

  당시 엘리오는 수많은 발레투도 시합에서 패배 없이 승리를 거두던 입장이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고 비교적 자신이 없는 분야였던 타격을 배제한 상태에서 유술만으로 기무라를 상대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기세가 등등했습니다.(카지와라 잇키 씨의 공수 바보일대에서는 엘리오 그레이시를 200킬로가 넘는 괴물 유도가라고 묘사해 두었고, 방학기씨의 바람의 파이터에서는 인디오 레슬러라고 묘사해 뒀지만...익히 아시다 시피 엘리오의 체격은 무도가로써 보통도 안되는 체격이었죠.) 엘리오가 타격이 약하다는 것은 이후 산타나에게 패배하면서 증명이 되기는 하지만 어쨌건 당시 브라질에서 엘리오라고 하면 최강의 격투가이자 유술가였습니다. 엘리오는 격투 전적에 패배라고는 2패 뿐인데 산타나와 기무라에게 당한 것이었습니다.

  엘리오는 서쪽 문을 통해, 그리고 기무라는 동쪽 문을 통해 등장합니다. 브라질에는 일본교민도 많았고 엘리오가 그렇게 일방적인 야유속에 경기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브라질인들의 엘리오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그 경기에 브라질 대통령까지 동참햇다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무라는 시합장에 오르면서 다시 한번 놀라게 되는데 바닥이 보통의 것보다 많이 물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기무라의 필살기인 밧다리 후리기와 한팔 업어치기를 봉쇄하기 위한 엘리오의 전략이기도 했고, 당시 유술 시합에 쓰이던 바닥은 유도에 비해 많이 무른 소재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본측에서는 엘리오의 계략이었다고 하기는 합니다만..저는 두사람 다 좋아하니까 어느 편을 들지는 않겠습니다^^

  1라운드가 시작되자 기무라는 엘리오를 메치려 하지만 엘리오의 번개같은 스피드에 쉽게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시 팔힘은 일본 제일이라는 정평이 나 있었던 기무라 답게 엘리오를 붙잡아 넘어뜨리고 누르는데 성공합니다. 이 때 엘리오는 이미 귀가 찢어져 피가나기 시작했습니다. 기무라는 엘리오를 죽이거나 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괜찮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엘리오는 정신력이 엄청난다고 정평이 나 있었던 만큼 당연히 그 정도로는 굴하지 않았죠. 그러다가 엘리오가 순간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그렇지만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기무라의 조르기와 꺾기를 방어합니다.(솔직히 제 생각에는 실신한 건 아닌 듯 한데, 일본측 자료에는 그렇게 되어 있더군요.) 기무라는 엘리오와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닌 만큼 "무리하지 마라!"라고 두번 정도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엘리오는 일어를 어느정도 알아들었다고 하죠.)

기무라 마사히코

   2라운드가 되자 엘리오의 끈질김에 혀를 내두른 기무라는 하는 수 없이 팔 얽어 비틀기를 써버립니다. 훗날 기무라 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이 기술은 사쿠라바가 그레이시 헌팅을 할 때 응용되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엘리오는 버티지만 이미 팔관절이 완전히 나가버린 상황이었죠. 우두둑 하는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관중들이 들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엘리오는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싸운다고 하였지만 보다못한 카를로스 그레이시가 타월을 던져 버립니다.

  기무라는 이 경기가 끝나고 나서 "과연 마에다 미츠요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이다. 엘리오의 투지야말로 일본 무사의 거울이다. 경기는 내가 이겼으나 승부에 대한 집념에서는 패배했다."라고 한 바 있습니다.

 (이 시합이 와전되어 기무라와 엘리오가 3시간이나 싸웠다느니, 기무라가 엘리오를 백번을 메쳤는데 엘리오가 버텼다느니 하는 헛소문이 돌게 되었습니다. 실제 시합시간은 13분이었고 시합 내용 자체로는 엘리오가 기무라에겐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1. 유도의 귀신-기무라 마사히코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후에 기무라 없다!"


1917년 9월 10일에 태어난 기무라 마사히코는  강을 끼고 있는 구마모토 현의 광산 마을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물속에 발을 담그고 돌멩이와 모래들을 퍼서 나르는 일을 하였다고 하죠. 물속에 하체를 담그고 하루 종일 있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단련이 됩니다. 물의 흐름을 계속 버티면서 허리와 다리가 자연스럽게 강해지죠. 또한 계속에서 돌멩이와 모래가 든 자루와 채를 손에 쥐고 날랐기 때문에 기무라의 악력이라는 것은 유도를 배우기 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 구마모토 출신들이 술을 잘하고 힘이 장사라고 하죠.

기무라 마사히코

 10세때 강도관에 입문한 기무라는 엄청난 트레이닝으로 원래 강했던 팔힘과 악력을 거의 사기 수준으로 끌어올리게 되는데요. 자전거 타이어를 이용한 트레이닝이 보급되지 않던 시절 나무에 흰띠를 묶어놓고 메치기 연습을 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트레이닝법이었는데요, 기무라가 끊어먹은 도복띠는 강도관 시절에만 무려 1000개에 달한다고 합니다.(유도를 해 보신 분들이면 다 아시겠지만 유도의 도복띠는 어지간해가지고는 튿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배밀기(유도식의 팔굽혀펴기)를 한 번에 1000회씩 할 정도의 팔힘과 지구력을 키웠습니다.

 (방학기씨의 만화 바람의 파이터를 보면 기무라가 달려오는 말을 메치는 일화가 나옵니다만, 이것은 아무래도 과장인 듯 합니다. 일본 측의 어떤 자료에도 그런 언급은 전혀 없거든요. 그리고 전성기의 기무라라면 그게 가능할런지도 모르지만 소년시절에 달려오는 말의 앞발을 잡고 메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죠, 중심이동이나 움직임 등이 사람과는 판이하게 다른 네발달린 짐승을 던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비현실적입니다^^)

  중학 4학년(지금의 고1)때 강도관 4단을 취득,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승단 기록을 세우게 되는 기무라는 이후 시합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 17세의 나이로 전일본 대회 최연소 우승 1935에서 1937년까지 전 일본 유도대회 3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이후 13년동안 1950년까지 무패, 10연속 우승이라는 깨지지 않을 대기록을 세우게 되죠(물론 무승부 기록은 있습니다.) 결국 기무라는 당시 히트하던 소설 스가타 산시로의 붐과 함께 재조명되기 시작한 산시로의 실제 모델인 강도관 사상 최강의 사나이 사이고 시로의 뒤를 잇는 '쇼와의 산시로'라는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후에 기무라 없다!'는 말은 이 기무라를 당시 사람들이 사이고 시로와 동급으로 인정해 줬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사이고 전에 야마아라시 없고, 사이고 후에 야마아라시 없다!'라는 말에 빗대어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이고 편을 읽으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사이고 시로는 강도관 122년 역사상 최강이라고 불리는 남자입니다. 그와 견줄만 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기무라야말로 천재중의 천재였다는 것이죠.

 (흔히들 김두한 씨의 일대기에 꼭 등장하는 마루오카와 기무라를 비교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만...마루오카는 체중 자체도 경량급이었고, 지명도에서도 기무라 마사히코하고는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원래의 유도 시합이라는 것은 당시에는 체급이라는 것이 없고 무차별급으로 진행되었지만 어전시합에 한해서 경량급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루오카는 그 부문에서 우승했던 것이죠.(사실 이 어전시합조차도 불분명합니다.) 방학기씨의 만화에는 이 마루오카가 유도8단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나이에 8단이라면 그건 대기록입니다. 당시 강도관에서 40대가 되기전에 8단 취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기무라나 사이고 시로도 하지 못한 일이죠. 한마디로 무척이나 과장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방학기씨가 만화를 그릴때 김두한씨가 생전에 라디오 프로에서 했던 증언을 자료로 참고해서 그렸기 때문에 틀린 부분이 너무 많이 나온 것이죠.-그 라디오 방송의 증언들이 허풍과 과장이 너무 심했다는 것은 김두한씨와 같이 건달 생활을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인정한 내용입니다.-장군의 아들 같은 영화를 보면 마루오카는 장신에다가 거구인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현역시절 170에 70킬로도 되지 않는 경량급이었습니다. 8단이라는 것도 당연히 거짓말이죠. 물론 마루오카가 그리 이름난 선수가 아니다 보니 정확한 단수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기무라나 아베 켄시로 같은 무적의 강자들이 버티고 있는데 혼자 8단까지 올라갈 수는 없었죠. 당시 일본 경시청 유도 지도 총감의 단수가 8단이었습니다.  

 일개 경찰서의 무술 지도 경부가 8단이라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이죠. 물론 이 마루오카 경부의 유도 실력은 비록 경량급이라도 어전 시합에서 우승을 할 정도이니 굉장하기는 했었던 듯 합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나가 떨어진 당시의 건달이나 야쿠자는 꽤 많았다고 하지요. 그러다보니 스스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종로의 건달들이 강하다는 것이 일본까지 정평이 나서 마루오카를 특별히 불러왔다느니, 마루오카가 어전시합 무제한급을 7연패를 했다느니 하는 과장과 헛소문을 퍼뜨린 듯 합니다.-무엇보다 공식적인 어전시합인 무차별급에서 마루오카라는 우승자는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 당시 우승자라고 올라있는 이름은 아베 켄시로와 기무라뿐이죠. 야인시대나 김두한씨의 팬 분들은 이 부분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품으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사실대로 쓴 것 뿐입니다. 저도 어린시절엔 김두한씨의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다 믿었었거든요. 그게 엄청난 과장과 허풍이 섞였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는 거의 10년이 걸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이야기지요.)

 기무라의 최종 단수는 강도관 7단이었는데 이는 기무라가 1950년에 강도관을 탈퇴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규정도 그렇지만 당시 강도관 규정에도 특별 승급이라는 것이 있어서 7단 정도까지는 별도의 승단 심사 없이 어전 시합 우승만으로 승급이 가능하였고, 기무라는 바로 그런 케이스로 올라간 것이었죠. 정상적인 승단 심사를 통한 것이었다면 33세때 7단이라는 건 말이 안될 정도의 단수 입니다.^^;; 물론 당시 7단이건 8단이건 기무라를 이길 사람은 없었겠지만 말이죠. 우리나라 유도도 올림픽 우승하면 자동으로 단수를 올려주는 특별승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올림픽 우승할 정도의 실력자라면 정식 승단을 하더라도 4단이나 5단 정도는 어렵지 않게 딸 듯 합니다만...

 

2. 기무라를 패퇴시킨 사나이!-아베 켄시로


기무라는 16세의 나이에 어전 시합에 최초로 참가하여 승승장구, 4강까지 진출합니다. 당시 기무라의 위력앞에 이름난 유도가들이 하나하나 다 나가떨어졌었는데 그를 지켜보던 가노 지고로 조차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고 하니 당시 기무라의 위력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아베 켄시로. 그는 당대 최강이라고 평가받던 유도가로써 168의 키에 71킬로. 경량급에 나가야 할 체중이었지만 워낙에 강자였기 때문에 무차별급에 출전하게 된 것이었죠.(체격은 마루오카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실력은 천지차이였던 듯 합니다.)

 기무라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밧다리 후리기를 하면서 한팔 업어치기를 할 요량으로 아베 켄시로에게 달려들지만 되려 아시바리(와사바리라고도 부르죠 우리나라에서는^^)를 당해 쓰러지면서 절반을 빼앗깁니다.(당시에는 절반 그리고 한판 두가지 뿐이었습니다. 그냥 밀려 넘어지는 그런건 점수로 인정도 안해 주던 시절이었죠.) 생전 처음으로 아시바리에 넘어져 본 기무라는 자존심이 상해 다시 달려드는 순간 자신의 복숭아 뼈 밑으로 아베의 발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다음 순간 기무라는 세상이 뒤집히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초고수의 아시바리를 당하게 되면 원래 머리부터 떨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안당해 봐서 모르겠습니다만(저는 도장에서 초고수한테 당한게 아니라서 그런가 봅니다^^)

 결국 아시바리 두방에 한판으로 무릎을 꿇게 된 것이죠. 이 대회 우승을 마지막으로 아베는 어전대회에 참가하지 않게 됩니다. 기무라에겐 가장 깨끗히 패해버린 시합이 되고 말았죠. 리벤지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아베 켄시로에게 패퇴했던 경험은 기무라에겐 엄청난 추진력이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한팔 업어치기의 연습에 주력하던 기무라는 이 일을 계기로 한가지 수련을 더 하게 되는데 바로 100개의 촛불을 켜고 발뒤축 후리기를 연습하여 풍압만으로 불을 꺼버리는 연습을 하게 된 것이죠.

 

3. 기무라와 프로유도

 

정식적 명칭은 국제 유도 협회이고 쇼와 25년(1950년)에 우시지마 8단이 만든 것입니다. 이 또한 수많은 문헌에서 기무라가 창시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프로유도라는 것은 고류 유술에 존재하는 수많은 살수와 역관절 메치기 같은 위험천만한 기술들을 다 복원시켜 스포츠 유도가 아닌 격투전용 유도를 지향하는 상당히 실전적인 무도였다고 합니다.

 사실 역관절 메치기같은 경우는 조금만 잘못해도 팔의 관절이 부러져버리는 것이 다반사이며, 낙법도 무척 까다로와서 메쳐지면 실신하거나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의 유도에서는 사라져 버렸지만 삼보에 아직 그 원형이 남아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삼보자료를 뒤져보시면 될 듯 합니다. 브라질리언 유술에도 역관절이 조금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역관절에 관한한 삼보쪽이 보다 더 체계가 있죠.(아무래도 엘리오나 카를로스 본인들이 메치기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물론 역관절 기술들에 관해서는 대동류와 아이키도가 가장 우수하기는 합니다만...

 손가락 관절기는 제대로 된 합기도를 조금만 익혀 보신 분들은 그 원리를 금방 아실 겁니다. 사실 손가락은 굉장히 민감하며 힘도 별로 없어 주먹으로 꽉 움켜 쥐기만 해도 기술의 반은 걸렸다고 할만큼 쉽게 적을 제압할 수 있는 기술이지만 역시 손가락이 부러지거나 불구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유도에서 금한 기술입니다.

 기무라는 강도관의 분위기가 너무 무도보다는 스포츠 쪽으로 기우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스스로는 연습때마다 살벌할 정도의 기술을 남발해, 그의 기술을 받아주는 사람들이 꼭 한 두명은 실신을 했다고 합니다. 하루에 100명과 대련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기무라는 이처럼 기술을 너무 세게 걸었기 때문에 강도관에서도 평가가 썩 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그에게 요시지마8단의 프로 유도는 그의 무도 정신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이었고, 기무라는 요시지마의 수제자로 들어가게 됩니다. 손가락 관절기까지 다 부활시켜버린 프로유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레이시 유술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이 프로 유도는 최영의 선생님의 실전공수처럼 엄청난 비난을 받으면서 전통 유도계의 압박에 의해 겨우 10회의 시합을 갖고 4개월만에 하와이에서 소멸하고 맙니다. 그리고 하와이에서 기무라는 프로레슬링을 하기로 결심, 브라질 순방에 나서고 거기서 엘리오와 맞서게 됩니다.

기무라 마사히코


4. 최영의와 기무라, 두 초인의 만남.

 

기무라 마사히코님의 일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당대 최강의 무도가 최영의님이시죠. 최영의님이 미국 순방에서 돌아와서 전통 무도계의 온갖 시기와 중상 모략때문에 고뇌하던 시절, 기무라 마사히코와 만나게 됩니다. 기무라 또한 프로 유도를 하는 바람에 강도관 유도계 인사들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공격을 당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하죠. 만나자 마자 둘은 십년지기처럼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그러나 한가지 실망스러운 점은 이 둘의 대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인데요, 솔직히 상당히 궁금하기는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최강자라고 인정해주는 사이였으니 말이죠. 기무라선생의 성격또한 최영의님 만큼이나 괴짜스러운 부분이 있어 아무하고나 친해지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두분은 마음이 잘 맞았다고 합니다. 최영의님은 자신이 직접 쓴 글에서 이렇게 언급하신 일이 있습니다. 뭐 바람의 파이터나 공수 바보일대에서는 둘이 대결한 적이있는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으나...뭐 아무도 안보는 곳에서 두분이 겨룬 일이 있는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최영의님도 기무라님도 아무도 그런 언급을 하신 일이 없으니 알 수 없는 일이죠.

"기무라야말로 최강의 유도가이고 진정한 무도인이었다. 그는 나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나보다 더 많이 단련하고 정진하는 내가 아는한도내에서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요즘의(당시, 1960년대) 일본 유도계는 네덜란드의 헤싱크(헤이싱이라고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5단에게 무릎을 꿇고 있다. 그러나...기무라 마사히코가 돌아온다면 헤싱크 따위는 그의 도복도 잡아보지 못할 것이며 3분을 버티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이것은 공수도인 최영의의 이름을 걸고 단언할 수 있다."

 최영의님과 함께 미국 순방을 떠나 사선을 함께 넘으며 우정을 다졌던 엔도 고키치 6단은 최영의님께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나도 유도가이다보니, 기무라 마사히코라는 인간을 한 번 이겨보고 싶어서 5년이나 죽어라 연마했습니다. 기무라의 필살기라는 한팔 업어치기와 밧다리 후리기는 나의 필살기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5년동안 이를 갈면서 연마했지만 막상 기무라씨와 맞잡는 순간에 땅에 쳐박히고 말았지요...몇초도 버티지 못했었죠...."

 이후 최영의님과 기무라는 같이 유도도 수련을 했는데, 최영의님 또한 4년만에 강도관 4단을 취득한 유도의 달인이었기 때문에, 직접 유도 대련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아무리 천하의 최영의님이라고 해도 유도로는 기무라의 적수가 되지 않았죠. 맞잡는 순간에 한팔 업어치기로 깨끗히 날아가 버리셨다고 합니다.

그 때 하신 말씀이 유명합니다. "나를 이렇게 메쳐버린 인간은 기무라 마사히코 뿐이다."

 

5. 기무라와 역도산 그리고 최영의...당대 최강의 남자들이 만나다!...그러나...

엘리오 그레이시를 격침시키고 일본 유도의 강함을 증명한 기무라, 그러나 일본에서 그를 맞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관심조차 기울여 주지 않았죠. 훗날 그레이시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그레이시를 격파한 사나이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이 때만해도 그건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외국가서 허접한 유술가 하나 잠재우고 온 것이라고 여겼고, 더군다나 귀신 기무라가 패한다는건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쇼와29년(1954년)에 역도산님과 함께 드디어 테그팀을 결성하여 본격적인 프로레슬링 시합을 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싸운 상대는 바로 유명한 샤프 형제였죠. 샤프형제와의 시합을 구경하던 최영의님은 역도산과 기무라에 대해 엄청나게 실망을 하시게 됩니다. 최영의님이 미국에서 목숨을 걸어가며 싸웠던 톰 라이스가 하던 것과같은 실전형 레슬링이 아니라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마찬가지인 경기였기 때문이죠. 게다가 기무라는 아예 무시당하는 역이고 오로지 역도산님만을 띄워주는 각본 또한 최영의님을 화나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런 쇼의 들러리나 서 주고 있는 기무라님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역도산 선생은 익히 알려진대로 미국에서 톰 라이스와 진검승부를 하다가-사실은 각본이 있었으나 톰 라이스가 무시하고 시작하자마자 달려들었죠. 역도산님이 이기는 각본이었기 때문에 훗날 역도산vs기무라 전에서의 기무라처럼 일부러 맞아주거나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처음에는 역도산님도 그와 제법 접전을 벌이셨지만 잠시후에 거의 일방적인 폭행을 당하고 중상을 입으신 바가 있습니다. 톰 라이스는 원래 세계 챔피언까지 노리던 복싱계의 강자였죠, 모션이 크고 궤도가 단조로운 가라데 촙은 그의 가드와 풋웤에 완전히 무력했습니다.

최영의 선생이 이후에 톰 라이스와 격돌, 늑골과 턱뼈를 날려 버리면서 톰 라이스의 격투인생은 그걸로 끝나게 됩니다만,  이 또한 역도산님에게는 치욕스러웠던 듯 합니다. 그러나 최영의님은 역도산님이 보기엔 너무나 강했고, 또한 너무 완고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기무라 선생처럼 뒷 공작을 할 약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죠. 때문에 실제로 진검 대결을 벌이지 못할 바엔 또 다른 최강자인 기무라 선생을 눌러 버리는 것이 났다는 판단을 하셨던 듯 합니다. 최선생님이 프로레슬링을 할 리가 없으니 가난한 기무라선생을 끌어들이고, 자신의 각본 속에서 '기무라는 역도산보다 못하다'라는 인식을 일본인들에게 심어주게 된 것이죠.)

 그리고 최영의님은 기무라를 설득, 결국 기무라 마사히코와 역도산의 진검 승부가 결정이 나게 됩니다. 당시 일본 언론에서는 이 시합을 '간류지마의 결투'라 하여 엄청난 관심을 보였는데요, 간류지마의 결투라는 건 바로 사상 최강의 사무라이라는 미야모토 무사시와 또 다른 검의 귀신 사사키 고지로의 싸움을 의미합니다. 즉 최강은 둘이 될 수 없고, 이 둘은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에 비견할만하다는 의미였던 것이죠.

 최영의님이 이후에 기술한 자서전을 보면 당시의 역도산님이나 기무라님 모두 엄청나게 강했지만, 기무라님은 이미 나이가 마흔에 가까워 절정에 달한 젊은 역도산에 비해 불리한 감이 없지 않았다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실력만을 놓고 볼때 기무라님이 약간우위에 있었다고 판단하신 듯 합니다. 시합직전까지도 기무라님의 승리를 확신하셨다 합니다.

 

6. 제 2차 간류지마의 결투...그러나 고지로는 무사시를 이기지 못하는 것인가?


 간류지마의 싸움에서 무사시가 온갖 심리전을 다 이용해서 승리를 따낸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검의 실력만이라면 고지로가 무사시보다 못할 것은 전혀 없었다고 하죠. 이 싸움은 무사시의 '검술'의 승리가 아니라 '병법'의 승리였다고 알려지게 됩니다. 기무라와 역도산의 시합 또한 역도산이 쳐 놓은 그물에 기무라가 걸려든 꼴이었습니다. 당시의 동영상을 보면 가무라가 역도산에게 맞는 순간에 무방비로 있다가 어이없이 쓰러지는 것을 확인 할 수있습니다. 그리고 뭔가 억울해하는 기무라의 모습도 확인이 가능하죠. 

 훗날 말년의 기무라가 토크쇼에 출연해 당시의 사정에 대해 언급한 바 있었고, 그 내용은 최영의님의 자서전과 바람의 파이터, 공수 바보일대 등에 나왔던 내용과 거의 일치하므로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일본 만화중 베스트 셀러로 꼽히는 공수 바보일대에서 기무라가 병든 아내의 약값을 구하기 위해 역도산에게 져 줘야만 했던 서글픈 사연이 나오고, 그 이후 역도산님의 비정상적인 행동들이 그대로 기술되었을 때 역도산님의 수제자였던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 김일-오오키 긴타로, 이 세명의 프로레슬링의 거목들이 아무런 반론도 내 놓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부분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보입니다. 공수 바보일대의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바람의 파이터와 똑 같습니다. 최영의님의 자서전과도 일치하죠^^

 실제로 최영의님이 당시 실신한 기무라님을 보면서 격분한 나머지 역도산님에게 죽여버리겠다고 호통을 치신 일은 꽤 유명합니다. 이후 역도산님이 최영의님을 겁내서 피해다닌 것도 다 사실인 듯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역도산님이 이 무렵에 야쿠자들을 두들겨 패고 다니며 술에 빠져 사실 때, 역도산님의 뒤를 봐주던 양원석-야나가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합니다.-이라는 조선계 야쿠자의 존재입니다. 보통 알려진 내용은 역도산님이 워낙에 싸움에도 강했기 때문에 아무리 행패를 부려도 야쿠자들이 그냥 맞아주고 자리를 피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죠.-야쿠자들이라면 정 안되면 떼거지로 달려들어 칼로 난도질을 해 버릴 수 도 있고, 총을 쏠 수도 있습니다. 단지 싸움에 질 것 같다는 이유로 역도산님을 피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가 않습니다.- 이 야나가와라는 인물은 일본에서는 이제 전설이 되어버린 초과격 무투파 야쿠자의 두목으로써 10명도 안되는 조직원을 이끌고 120명이 넘는 야쿠자 조직을 피를 피로 씻는 싸움으로 단 하루만에 쓸어버리면서 전 일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갔던 무시무시한 남자였습니다. 맨손 뿐 아니라 무기의 사용에 능하고 기습에 능해 한번 붙었다 하면 반드시 바닥을 피로 칠해야 싸움을 끝냈다고 할 정도였으며 당시 야쿠자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라고 불릴 정도의 야쿠자였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역도산의 뒤를 봐 주고 있었던 것이죠. 때문에 야쿠자들이 감히 역도산님을 죽일 생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렁이도 밟히기만 하면 꿈틀하는 법이죠...

  훗날 최영의님의 이 역도산님에 대한 행동에 반감을 품은 김일 선수가 최영의님에게 도전을 하였지만, 김일님은 최영의님에게 도전할만한 자격이 안되었죠. 프로레슬링에서도 최고가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이노키와 바바를 제압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최영의님에 대한 도전은 아무도 수긍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결국은 김일님도 도전한다고 엄포만 놓았을 뿐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고 맙니다. 사실, 김일 선생이 도전하실 때의 정황을 고려해 보면 정말 도전하실 생각이었다면 조일삼형제분이나 로야마님, 사토 카츠아키님같은 당시 극진의 간판을 짊어진 사범님들들을 먼저 쓰러뜨려서 최영의님이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드셨어야했겠죠. 그 정도 단계는 거쳐야 둘의 인지도 차이를 메꿀 수 있었을테니까요. 일본에서는 세계 최강의 초인이자 무신으로까지 칭송받는 분에게 도전하는 일인데 아무리 프로레슬링 테그 챔피언이라고 하더라도 그 격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지요.

 사실 역도산님 측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는 없지만(죽은 자는 말이 없죠) 여러가지 정황을 감안하면 최영의님의 말씀이 옳은 듯 합니다.

 

기무라 마사히코


7.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스스로 꺾어버린 무도가의 자존심...그리고 은퇴...

기무라 마사히코는 결국 이 석연치 않은 사건으로 프로레슬링을 그만두고 개인도장을 운영하며 실전에서는 손을 떼게 됩니다. 기무라가 그렇게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던 자신의 무도가로써의 명예를 팽개쳐 가며 지키려고 했던 아내는 기무라의 정성 덕택인지 병세가 호전되어 기무라의 곁을 지켜주게 되었습니다.(솔직히 저라고 해도 기무라 선생의 입장이었다면 두말않고 역도산님의 각본대로 놀아나 주었을 것 같습니다. 명예도 중요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니까요.)

  사실 기무라 선생은 어린시절부터 가족의 사랑이라는 것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얻게된 아내는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가족이었고 쉼터였습니다. 아내또한 기무라를 지극 정성으로 내조해 줬었고 깊이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아내가 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기무라 선생이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죠. 자신의 명예, 귀신이라는 칭호...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던 것입니다. 역도산님이 3번의 매치를 제의하면서 2번은 짜고하고 마지막은 진검승부라고 했을 때 기무라님은 이미 시합이 한 번으로 끝날 것이라는 각오를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무도 인생의 끝이 될 것이라는 것도 어느정도 예상했다고 하죠. 다만, 역도산님의 무도인으로써의 자존심에 실날같은 희망을 걸고 그에 응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그러나 결과는 기무라 선생의 추측대로 진행이 되고 말았죠. 훗날 기무라 선생은 인터뷰에서 그 때의 일은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유일한 가족인 사랑하는 아내를 잃지 않았기 때문에...

 은퇴후의 기무라 선생의 얼굴에는 뭐지 모를 평안함과 부드러움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프로레슬링시절의 그 찌들고 무기력한 모습은 사라져 버렸죠. 무도는 기무라 선생에게 아무런 영광도 주지 않았습니다. 귀신을 굴복시킬 정도라던 유도솜씨도 남의 책략에 들러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에게 프로레슬링은 각본이 있는 것이라는 것이 알려진 1960년대 중반부터는 이에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인들도 '그러면 그렇지, 진검승부라면 프로레슬링 최강자가 아니라  상대가 전세계의 누구라고 할지라도 천하무적 기무라가 그렇게 질 리가 없다.'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뭐 정작 기무라 선생 본인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는 태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역도산님이 톰 라이스를 일본으로 데려와 일방적인 구타끝에 승리를 하게 되지만 이는 오히려 그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만들었습니다. 톰 라이스는 최영의님에게 패배하면서 최선생의 해머같은 정권에 이미 격투가로써의 인생은  끝나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싸울 수 없는 톰 라이스는 돈 때문에 일본까지 오게 된 것이었고 역도산님은 이를 이용, 일본인들 앞에서 그를 이겨버립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당시의 관중들에게 각본이나 쇼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음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고 맙니다. 톰 라이스는 처음부터 누가보기에도 전의조차 없었던 것이죠. 정말 명예 회복을 하고 싶었다면 자신을 참패시킨 톰 라이스를 그 지경으로 만든 최영의님에게 도전을 했었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8. 그레이시와 함께 되살아난 유도의 귀신 기무라 마사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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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시 패밀리의 발레투도가 세계를 휩쓸게 되자, 이 그레이시를 일찌감치 격파해 버렸던 기무라 마사히코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무라 님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고, 다만 그 당시에 엘리오를 이기는 필름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죠. 그러면서 사람들은 기무라를 역도산에게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패배한 힘없는 유도가가 아닌 진정한 최강의 유도고수로 다시한번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쿠라바 카즈시라는 뛰어난 그래플러가 그레이시 패밀리를 기무라 록으로 격침 시키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기무라에 대한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사쿠라바가 호이스를 쓰러뜨린 다음날 신문에는 '사쿠라바, 일본 격투계 50여년만의 비원성취'라는 기사가 1면 톱으로 실리게 됩니다. 바로 엘리오가 기무라에게 무릎을 꿇은지 50여년이 지났기 때문이죠. 그리고 공개된 필름 속의 기무라는 역도산님과의 시합에서 무기력하게 실신해버린 삶에 찌들어버린 모습이 아니라 그 막강한 그레이시 유술을 일방적으로 부수는 가공할 실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강자의 모습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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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늑대(天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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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진공수도 창시자 최영의 선생님 글입니다. 

"네가 젊은너희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남자한테 제일 중요한것은 야심이다.. 
돈을 잃은것은 작은것이다 신용은 중요한것이다. 그러니 신용을 잃어 버리면 안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용기다.
용기를 잃어버린것은 전부 잃은것이다..... 

예전에 나의 도장으로 전화가 왔다 
극진수련생들이 야쿠자들과 싸워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서 도장운영이 힘들다는것이였다.
난 싸운 제자들에게 단번에 때려치라고 했다.
그런 정신으로 할꺼면 도장은 의미가 없다고..... 
너희들 길에서 누가 너희어깨를 치고 발을 밟고 시비를 건다면 사과를 해라 그런대도 싸움을 건다면 싸워라..... 
무엇때문에 가라데를 수련했는데 그런 패기도 없다면 가라데를 때려쳐라 적에게 등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극진의 역사다.

남자로써 싸움을 못하면 실격이다 
싸움에 강한사람은 빠르다 빠른사람은 싸움뿐만 아니라, 
그 무엇에도 강하다.... 돈을버는것도 싸움을 하는 방식으로 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죽을때까지 전쟁이다...... 
싸움의 무대는 도장이 좋다. 몸이 엉망이 될때까지 싸워보는것도 좋다 그러면서 배워가는거다. 
사무라이는 칼을 매일간다. 하지만 칼을 뽑지 않는데 그 의미가 있는것이다. 
극진의 정신은 너희도 알고있겠지 
고개는 숙이고 눈은높이 입은 신중하고 마음을 넓게 
효를 원점으로 모두에게 의롭게 해라.......... 
여자를 볼때도 집에 효도를 하는가를봐라 효를 아는사람은 누구에게도 잘한다.... 그것은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잘되는일은 남의덕으로 돌려라........ 
잘못되는일은 나의탓으로 돌려라..... 
그리고 스스로 성장하는거다.... 
나 의에에는 모두가 내스승이다......... 

실천이 없으면 증명이 없고 증명되지 못하면 존경받지 
못한다......... 

어쨎든 노력이다... 노력하지 않고 강해질수 있다면 내가 가장 배우고 싶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남자의 무능은 죄다... 부모님의 주신 감사한 몸을 왜 단련하지않는가! 왜 공부하지 않는가! 

돈을 쫒지 마라 여자와 명예도 마찬가지다.
돈,여자,명예가 쫒아오는 남자가 돼라... 
다시한번 말하지만 남자는 야심이 있어야 한다 
야심이 있는남자가 씩씩하다, 용기가 있다 
목표가 있기때문에 성장하는거다....... 
남자는 죽을때까지 전쟁이다..... 

정의없는 힘은 무능이다 하지만 힘없는 정의도 무능이다 
솔직히 말한다면 난 너희들이 이겼으면 좋겠다...... 
이기고 싶은마음이 진짜다...... 강해지길 바란다. 
이제부터 세상은 너희들의 것이다 다만 용기가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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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늑대(天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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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가로서 한길을 걸어간 최배달은 전설 같은 일화를 남긴 최강의 파이터였지만 대중의 가슴을 흔들어 놓기에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언변가이기도 했다. 최배달 어록으로 남겨진 그의 말들은 지금 회자되어도 가슴을 울리는 말들로 채워져 있다. 최배달이 남긴 어록과 함께 그의 실제 육성을 들려드린다.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고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다”

이라크 파병 등 사회적 이슈와 맞물려 회자된 바 있는 이 말은 실전 공수라는 이름으로 극진 공수도를 창설한 최배달의 사상을 가장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말이다. 극진 공수도가 실전의 힘을 기르고자 하는 이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일본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를 접하면서 얻는 깨달음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최배달(양동근)의 스승이 되는 범수(정두홍)에게 오륜서를 받아 들며 직접 듣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승리에 우연이란 없다. 천일의 연습을 단이라 하고, 만일의 연습을 련이라 한다. 이 단련이 있고서야 만이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기요즈미 산으로 들어가 두 손가락으로 물구나무를 서고, 소나무를 발로 차 부러뜨리는 등의 수련을 감행한 최배달은 이 단련 위해 눈썹을 한쪽씩 번갈아 밀어버리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간혹 산에 오르던 사람들은 미친듯이 뒤고, 차고, 격파를 하는 그를 일컬어 ‘기요즈미산의 도깨비’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이 시기의 단련이 바로 최배달의 신화를 만든 기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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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싸우고 있는 적이 마지막 적이다. 싸움은 이번 한번뿐이라고 생각하라. 목숨을 건 싸움에서 이번엔 지지만 다음엔 이긴다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이번에 지면 다음은 없다. 이미 그대는 적에게 죽었기 때문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미국 등 세계 전역을 돌며 격투 여행을 한 최배달이 싸움 전에 늘 되뇌었을 말이다. 극한의 두려움이 들었을 대결마다 늘 마지막 승부의 마음으로 펼친 그가 있었기에 세상은 그를 신화로 기억한다.

“적에게 너의 살을 주고, 적의 뼈를 부수며, 적에게 너의 뼈를 주고, 그 목숨을 취하라. 자신의 안전에 구애 받으면, 이길 수 없고, 진정한 사무라이가 될 수도 없다"

영화 속에서도 보여지지만 맨손과 검의 대결이 된 검귀 료마와의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반전시킨 것은 자신을 향해 날아 노는 검에 자신의 한쪽 어깨를 내어준 것이다. 그리고 어깨를 공격한 료마의 찰나의 빈틈을 이용 최배달은 료마의 명치에 정권을 날렸고 이 짧은 한 순간은 생사의 길을 가로지르게 된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끊임없는 단련과 진검승부를 통해 얻은 경험으로 상대방의 칼이 1.5cm 앞까지 오는 것을 지켜보고 반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검의 동선을 보고 두 손바닥으로 료마의 검을 잡아낸 기술은 오륜서에 남겨진 미야모토 무사시의 말들이 최배달의 실전 전략에 토대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이 기술은 현재 극진가라데에서 수련되고 있다.

“무도의 본질은 싸워서 이기는 것뿐, 실전이 아닌 시합은 춤이나 체조에 불과하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실전공수(實戰空手) 그것 뿐이다"

최배달의 ‘극진공수도’는 나를 수련하여 자신을 이기고 상대를 이기는 것, 최고의 강자가 되고자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공수도에 입문한 이후 상대방을 가격하기 전에 공격을 멈추는 기존 공수도에 회의를 느낀 최배달은 자신의 실전공수를 입증하기 위해 니조 도장을 포함한 일본 내 수많은 고수들과의 대결을 선언하고 ‘도바라야시’ 즉 도장깨기를 시작한다. 이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무도를 입증해 보이는 유일한 길이였고 한국인이기 때문에 차별 받는 자신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최배달이 수많은 실전을 향해 정진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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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강함을 추구한다면 강하다는 점을 보여야 한다”

최배달은 무도를 숭상하는 나라 일본에서 자신만의 무도세계를 구축했으며 동시에 자신의 실전공수를 입증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함의 한계를 끊임 없이 넘어섰다. 싸움소와의 대결, 소뿔 자르기, 세계로 이어진 격투 여행은 그 신념의 실현이었다.

“무도의 궁극은 사랑이다”

최배달은 살인 쇼크와 무도에 대한 회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죽음에 이르게 한 검귀 료마의 유족이 살고 있다는가나가와현 하코네산으로 두번째 입산을 감행했다. 영화에서는 료마의 가족 곁에서 평생 사죄할 것을 결심하고 자신을 적대시하는 료마의 미망인과 그의 아들에게 헌신하는 모습이 나온다. 하코네산에서 최배달은 료마 유족에 대한 참회와 무도의 본질, 무도의 필요성에 대한 정신적 수양을 쌓는다. 마침내 그를 적대시하던 유족과의 화해와 함께 최배달은 무도가 사람을 죽이는 것에 쓰이는 것이아니라 사람을 살리데 쓰여져야 함을 깨닫는다. 최배달이 훗날 제자들에게 강조한 이 말은 이 하코네산 수련에서 완성된 것이다.

“고향 산천을 어찌 잊어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어찌 잊어요, 내가 고향산천에 할말은 없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자존심이 있어요”

해방 후 어지러운 정국을 맞이한 조국은 그를 단지 싸움꾼이라고 치부했으며 소를 때려잡는 미치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가 만든 극진가라데가 태권도라며 원조를 운운했고, 일본에 협조한 변절자로 지목해 멸시를 보내기도 했다. 최배달은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일본에 귀화했다. 그렇지만 그의 일본 귀화는 자신을 외면한 조국에 대한 서운함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일본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던 그가 ‘일본의 위대한 영웅 10걸’에 선정되자 극진회를 후원하던 사토 전 일본총리가 귀화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의 일본명 또한 오오야마 마쓰다츠는 한국명으로 최배달, 배달민족의 뜻이 담긴 이름이었다. 비록 그는 일본으로 귀화했지만 그것을 단순한 일본 국적 취득이라고 설명했으며, 극진가라데 수도인들에게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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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어록


  • “실전이 아닌 것은 인정받지 못하며 인정받지 못하면 신용을 얻을 수 없게 되고, 신용이 없어지면 존경 받을 수 없다”
  • “세상은 넓고 상수(上手)는 많다. 나 말고 모든 사람이 내 선생이다”
  • “신용을 잃어버리는 것은 큰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용기를 잃어버리는 것은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 “돈을 뒤쫓지 말아라. 돈, 명예, 여자가 뒤쫓아오는 남자가 되어라”
  • “3D. 힘들다. 더럽다. 위험하다? 젊은 무렵, 내가 좋아했던 것 뿐이다”
  • “싸움에 임박해서 필사적이 되는 건 동물적 본능일 뿐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죽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서는 누군들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랴. 문제는 기필코 이긴다는 신념을 갖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어라. 귀는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사물을 느낄 뿐이지만 기는 비어있어 무엇이든지 다 받아들이리니…”
  • “잔을 비운다는 것 가지고는 어림없다. 잔을 깨부숴라. 잔을 비운다고 하더라도 비어있는 ‘그대’가 있다면 그 잔은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비어있음’이 그대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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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창 이서문 (神槍 李書文) 傳

    이서문
    중국무술 팬으로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근세에 실재했던 중국무술 역사를 통틀어 "최강으로 평가되는 실전무술가"
    이서문의 이름은 창주의 창주일보 기자 안세화씨의 손으로부터 「체육보」라는 신문지상에 게재되었다. (주: 창현지)

    그 전역을 소개한다. "신창 이서문전" 이다.


    (1) 이서문 황서해에 입문하다.


    창주현 동80?리, 맹촌은 중국팔극권의 발양이다. 전설에 의하면, 건륭초년, 스스로 「癩(라)」라 칭하는 익명의 도사가 맹촌에 홀연 듯 찾아와서, 어릴때부터 무예를 익히고 있었던 吳鍾(오종)에게 권술의 형(形)을 가르쳤다.
    吳씨는 연습에 힘쓰고, 새로운 技를 도입하고 발전시켜, 차츰 독특한 품격을 가진 팔극권을 창시해낸다.
    이 권은 몸을 바싹 적에게 붙여, 近身短打(접근전), 「十字勁」,「沈墜勁」,「纏絲勁」을 발경의 기본으로 하는 것으로, 중국의 무술계 안에서도, 극히 공격성이 풍부한 권이다.

    청의 同治3년(西磨1864년), 이서문은 맹촌에서 남쪽 12?리(약 6km)떨어진 남량촌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권과 곤술을 좋아했지만 몸이 작고 허약하여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서문은 자신의 강한 氣性으로, 무예를 어떻게 해서라도 제것으로 하려고, 홀린 듯이 열중하여 연습하자「기가 미쳤다」고 불릴 정도까지 되었다.

    라동에 황서해라는 팔극권 5세가 있었다. 대창으로 이름을 떨친 장극명의 제자이고, 일찍이 그 무공으로 6품의 지위를 받고, 嫡傳(정전)을 이었다고 들은 이서문은 달려가 땅에 넙죽 엎드려 스승으로 모셨다.
    황서해도 가난한 집을 나와 어떤 큰 부자의 묘지기로 촌에서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이서문의 진지함과 품행바르고 똑똑하여, 임기응변이 아주 좋은 것을 보고,
    이놈은 큰 인물이 될 것이다. 하고 열심히 팔극권과 육합대창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라동은 남량촌으로부터 4km정도 떨어져 있고, 이서문은 매일 노사를 찾아가 권을 연습하고, 끝나자「선생님, 앞으로는 저의 포단을 갖다놓을테니까, 옆에 놓아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황서해는 일부러 노한 목소리로「안돼!!여기를 어디라고 알고있는 것이냐..
    엄숙한 장소다. 너는 지금까지처럼 밤에 찾아와라」하고 말했다.
    이서문은 어쩔수 없이 석식후, 라동촌까지 걸쳐 가고, 2∼3시간 수련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황서해는 이서문이 라동의 묘지에 도착하는 시간과 귀가시간도 지정하였지만, 시간에 맞추려면, 달리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달리는 법도 스승에게 배운 몇종류의 走法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것은 스승이 의식적으로 이서문의 각력을 단련시키기위해 부과한 트레이닝이란 것을 알았다.

    팔극권접근전을 가장 자신있어하고, 발경의 강맹함을 특징으로하는 권법이고, 정식으로는 "오씨개문팔극권"혹은 "개문팔극권"이라한다. "개문(開門)"이란 「적의문(방비하는곳)을 쳐서 연다(부순다)」라는 의미이다.

    팔극권의 투로에는 팔극소가(소팔극권이라한다. 기초공력을 연습하는 것), 팔극(화경을 배우는 것), 팔극대타(대팔극권을 둘이 상대하여 연습하는 것) 등이 일반적이고, 거기에 육대개(六大開)(6종의 핵심이 되는 권기의 단계적 연습), 팔대초식(산타의 기법), 이 있고, 전승자에 의해 금강8식, 영수권, 팔극연환권, 팔극쌍괘권, 육주두, 4랑매 등을 연습한다.
    또, 팔극권에는 6합대창법이 전해지고 있고, 근세부터는 벽괘장을 합쳐서 배우도록 되어있다.

    이서문은 「창현지」및 「오씨개문팔극권보」에 의하면, 남량촌의 출신이지만, 이서문의 개문제자인
    류운교 사범에 의하면 張? 출신.... 맹촌에서는 이서문의 스승은 황서해라 전해지고 있지만
    류운교사범에 의하면 맹촌의 金家에서 이서문은 팔극문의 무예를 배웠다고 한다.
    ※류운교는 류운초의 옛이름..


    (2) 이서문, 대창을 배우다.

    묘지에는 한쪽에 오래된 대추나무가 자라있고, 가을이 깊어지면 잎이 떨어지고, 거칠거칠한 나무껍질이 한층 더 두꺼워진다. 황서해는 이서문에게 3m 남짓 되는 백랍수로 만든 봉 한자루를 주고, 노송을 겨냥하여, 좌우로 세게 때리는 연습을 시켰다. 매일 밤 고된 연습으로, 이서문은 허리와 팔이 아팠지만, 이를 악물고, 계속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힘들고, 정말로 긴 봉을 지탱할 수 없게 되어 황선생에게 말했다.
    "선생님 이런 연습을 해서 실전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까? " 황서해는 "이것은 팔의 힘을 단련하기 위한 연습이다.
    어떤 기술의 연습이라도 정말로 습득하면 도움되지 않는 것은 없다... " 라 대답했다.

    대간(大杆)(긴 곤을 사용하는 곤술)」은 창주의 무예 가운데에서도 훌륭한 기술의 하나로
    벽, 점, 추, 교, 제, ... 등의 위력이 상당히 크고, 곤 위에 수선을 붙이면, 대창이 되어 살상력은 보다 강화된다.
    황서해는 오종정傳의 육합대창 창법을 남김없이 이서문에게 전했다.
    이서문은 스승의 가르침을 잘 지키고, 고된 단련을 참아내고, 팔의 힘은 점점 강하게 되어
    좌우, 상하 어느 쪽에서라도 오랜 대추나무의 두꺼운 껍질을 벗겨내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 1장 남짓 되는 봉끝으로 파종 후 흙을 누르는 돌 롤러를 들어올릴 수 있었고,
    대창의 경력도 그 가감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날, 이서문이 대창을 메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오자, 이웃사람이 그의 창법을 엿보고, 同臣(이서문의 호), 대창도 훌륭하게 되었군, 하나 보여주지 않을 텐가? 」하고 말했다.
    이서문은 "좋다" 하고, 대답하긴 했지만, 또 처음부터 투로를 반복하는 것도 귀찮아서 무언가 실제로 찔러주자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정원 안에 여기저기 찌를 목표를 찾아 돌아보았지만 적당한 것이 없었다.
    방에 돌아와 문득 벽을 보니 파리가 무리를 지어있어, 창을 쥐고서 차례로 찌르자, 파리가 한 마리 씩 지면에 떨어졌다. 이웃사람은 죽은 파리를 주워, 벽으로 다가가 구멍이 뚫린 여부를 찾았지만, 창에 찔린 흔적은 없었다. 이웃은 이서문의 창을 「진실로 신기다」라고 치켜세웠다.
    이서문은 보통 사람과 창으로 우열을 가릴 때 창끝은 바깥으로 하고, 봉 끝에 면을 두르고 적을 찔러 상대를 땅에 쓰러뜨렸다.
    자신의 창자루와 상대의 자루가 교차하면 급히 쥐로 자루를 당겨 적을 앞으로 꼬꾸라뜨렸다. ....


    (3) 천하제일 창

    1920년, 이서문은 38세로 연경(현재의 북경)으로 무술인 수업을 나갔다. 천단(天壇)광장에서 십 수인의 무술가와 기술을 겨루고, 차례차례 이기고 있었다. 마지막에 "황"이라 하는 자와 대창을 겨뤘다.
    황은 큰 몸집으로 힘이 세고, 창법에 숙달 돼있었으며,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둘은 하루 종일 시합을 계속하였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두 자루의 창이 부딪혀 교차할 적마다, 어느 쪽도 물러설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서문은 마침내 상대를 힘으로 누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깨닫고, 큰소리로 외쳤다. "죄송합니다. 손을 떼어주십시오..."
    황쪽도 이미 폭포처럼 땀을 흘리고, 기력이 다하고 있었기에, 손을 멈추고 창을 당겼다.
    이처럼 긴박했던 대전에는 결정적인 수법이 없으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이서문은 알고 있었다.

    그는 맹촌의 팔극권 4세의 문인인 오린서(통칭 吳春아저씨)의 것을 생각해 냈다. 오 아저씨는 풍부한 경험의 소유자였지만, 괴짜라 남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서문은 거기에서 가르침을 청할 방법을 생각해내고 한쪽 권을 다른 손에 포개어 공수의 예를 취하며 황에게 말했다. 「선배, 연경을 떠나지 말아 주십시오, 다음달 오늘 다시 뵙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창을 메고 떠났다.

    이서문은 창주에 돌아와 東南에 있는 史家에서 말에게 끌게하는 교차(轎車;옛날 사람을 태워 달리는 상자형의 가마)를 세를 내어 가마의 천장에 그의 대창을 꽃고 빨간 천에 「천하제일창」이라 쓴 기를 달고, 풍당당하게 맹촌을 목표로하여 차를 몰았다.
    차부에게는 맹촌에 도착하면 3냥의 은화를 준다고 약속해 놓았다. 차가 맹촌의 북쪽 길에 이르자 이서문은 차부에게 「어떤가.. 내가 말한대로 큰소리로 외치는거다... 남쪽길까지 가면 은화를 두냥 더 낼테니까」라고 말했다. 차부는 소리를 높여 「촌에 계신 여러분!!! 길을 열어 주십시오!! 천하제일의 창이 납시었습니다. 」라고 외쳤다.

    맹촌은 팔극권 명수의 산지이고, 큰 길가에서 이처럼 무예를 자랑하고 큰소리로 천하제일을 외치는 인물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팔극권 5세인 오회청(맹촌오가의 정계 ; 四世인 吳愷의 아들)에게 알리러 달려가는 자가 없을 리가 없었다. 당시 오회청은 21세로 혈기왕성한 연령, 보고를 받자마자 바로 이서문을 살폈다. 아무도 이서문과 다투려 하지않는 것을 보고, 부아가 치민 오회청은 "건방진놈, 이분의 대창에 걸리면, 네놈 따위는 벌레나 다를 바 없다"하고, 화를 내면서 집을 나갔다.

    이서문은 일부러 차부에게 차를 천천히 달리게 하면서, 더 크게 소리를 높이도록 했다.
    오회청은 멀리서 가마위에 있는 창과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보자마자 서서히 자신의 창을 큰길의 가운데에 놓고 옆에 섰다. 차부는 큰소리로 외치다가 문득, 길 한가운데 대창 한자루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뒤돌아 가마안에 있는 이서문에게 고했다. 「내려주십시요」이서문은 차에서 뛰어내려 창을 보고 금방 깨달았다.

    오회청은 이서문을 노려보며 서있었다. 「어이~! 밖에서 조금 이름을 알렸다고 해서, 그
    큰 낯짝을 내밀면 참을 수 없다.. 천하제일의 창이라면 꼭 그 솜씨를 보고 싶은데 보여주지 않을 텐가!!! 」
    하고 땅에 놓인 대창에 달려들어 발끝을 비틀어 창의 자루를 위로 한번 회전시켰다.
    그리고는 즉각 창끝을 이서문의 목 근처로 향했다. 이서문은 당황해서 공수의 예를 취하며
    사숙, 삼가 화를 가라앉혀 주십시오 이것은 오춘아저씨를 꾀어내기 위해한 행동으로 설마
    사숙이 집에 계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오린서에게 소식을 알린 사람이 있어 린서가 화가나 「놈을 여기로 데려오라!! 애송이 녀석이... 」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서문은 차부에게 명하여 차를 린서 아저씨의 저택 문에 대게 하고, 대창을 차에서 빼내어 공손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4) 오린서 비전을 전수하다.

    갑자기 "휙~"하는 소리와 함께 대창이 목 근처로 찔러 들어왔다. 이서문은 당황해서 창을 받는다.
    폭이 약 8장(약25m)정도 되는 안뜰에서 둘은 결투를 시작했다. 오린서는 기력을 넘쳐흐르게 하여, 이서문의 목 근처에서 창끝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이서문은 한가지 계책을 생각해내고, 일부러 창자루를 얽히게하여, 오린서의 대창을 눌렀다.
    오린서는「이녀석!!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권으로 나오다니…」하고 심중으로 생각하면서 「얏!! 」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양발을 재빠르게 전진하여 좌우로 훌쩍 몸을 펄럭이며, 갑자기 창을 위로 튕겨올렸다. 이서문의 창은 '붕'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높이 날아올라 갔다.

     다음순간,
    이서문은 성큼성큼 오아저씨 앞으로 달려나가 당에 무릎을 꿇고 「춘아저씨, 저의 이 우매한 권은 모두가 이 기술을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고 털어놓았다.
    이서문은 연경에서 있었던 타류 시합의 일을 아주 상세하게 오린서에게 고했다.
    오린서는 노했는지 노하지 않았는지 모를 큰소리로 말했다.
    「이 애송이가... 이 기술은 좌우과마압여세(좌우에서 말에 올라탄 것처럼 몸을 펄럭이고
    집오리처럼 발바닥을 붙여걷는다)라 한다. 」이서문은 가마에서 화려한 과자상자를 꺼내
    차례차례 오린서에게 보냈다. 마지막에 오아저씨를 가장 기쁘게 한 것은 1척2촌(옛날 구두의 촌법으로 40호)되는
    특대화였다. 왜냐하면 오아저씨의 발은 특별히 컷기 때문에...

    이서문은 「좌우과마압여세」의 숨겨진 기술을 배우자 집에도 돌아가지 않고, 바로 연경으로 가서, 황이라는 대창의 명수를 찾아내고 천단광장에서 시합을 했다. 2번의 맞붙음도 끝나지 않은 사이에 상대의 대창은 하늘로 날아 올랐다. 그 후, 여러명의 대창 명인과 기술을 겨루어도, 그를 능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순식간에 연경안에서 「신창 이서문」의 이름이 알려졌다. 사람들은 이서문은 몸은 비록 작지만, 신체는 철처럼 단단하고, 신체 어느 부위를 사용해도, 사람을 쳐서 쓰러뜨릴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이서문은 질리도록 무술를 연습하고, 고행을 싫어하지 않았다.


    (5) 연경 무술가를 격파하다.

    이야기를 바꿔, 이경림이 천진의 제독에 있을 때, 이서문의 위명을 전해듣고, 부대의 무술교련으로 초대했다.
    이경림은 극강현 사람으로 권행, 검술도 소양이 있고, 군대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무술가 였다.
    그는 이서문의 팔극권과 육합대창의 기술을 아주 존경하고 있었고, 늘 「동향인」이라 부르고, 친하게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이서문도 사퇴하기 어렵고, 하루종일 일정대로 무술지도를 수행했다.
    이서문이 시범을 보이는 날은 이경림과 그 자리에 늘어서 있는 각 장군들은 단지 어안이 벙벙하여 언제나 박수를 칠 뿐이었다. 왜냐하면 이서문이 일식 팔극권을 끝내면 조련장의 굳은 지면은 온통 울퉁불퉁하게 되어,  予脚(타여각;발바닥으로 지면을 "꽝"하고 밟는 보법)(주: 진각)에 의해 생긴 구멍이 군데군데 이어져 있기때문이었다.


    이서문의 공부와 이름은 차츰 먼곳까지 전해져, 마침내 연경에 까지 이르렀다.
    당시, 연경의 무술가들은 이서문의 이름 따위는 마음에 두지도 않았고, 그의 공부가 소문처럼 우수하다고는 믿고있지 않았다. 그러나, 유명하게 된 이상, 만약 이서문을 깨뜨리면, 연경무술가의 이름을 높일 수가 있었다. 그래서 가장 강한 두 명의 무술가를 천진에 보내고, 이서문의 주소를 알아내어, 그와 기술을 겨루고, 소문대로의 실력을 갖춘 주인공인가 어떤가를 시험하게 되었다. 둘은 이서문을 보자마자 싱글벙글 웃었다. 꼬마같은 야윈 남자로, 신장은 170cm에 미치지 못했다.
    이래서는 공부가 아무리 우수해도, 전신이 마치 철과 같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서문은 예를 갖추고 접대를 하였지만, 연경에서 온 두 객인의 눈빛에서 그 의중과 오만함을 알아채고, 시합을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고했다. 그래서 武를 통해 친구가 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도 좋다. 라고... 잔치를 베풀고 대접하였다.

    석상의 체격이 좋은 쪽이 「이선생의 "우뢰가 귀를 꿰뚫는 것 같다"는 고명은 전부터 삼가 듣고있습니다.
    오늘 이 눈으로 선생의 기술을 배견할 수 있다면 영광입니다.」라 말하면, 후배라 칭하는 쪽은 「우리들은 20여년 무예를 익히고 있지만 기량은 아직 많이 얕고, 이선생에게 예를 들어 하나, 둘이라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는지.. 시합을 청하고싶고... 」라 했다. 둘은 마침내 몸을 일으켜 차례로 이서문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그와 시합을 하지 않고는 끝내지 않을 태세를 표했다.

    이서문은 어쩔 수 없게 되어, 연회석을 정돈시키고는 무표정하게 「그럼!!」하고 말했다.
    당당한 체격쪽(이름은 불분명)은 배부르게 먹고 마신 후로 어떻게든 시합을 하고 싶어서
    조급해 있었기 때문에 「그럼!!」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앞으로 나아가 권을 내밀고, 갑자기
    이서문의 머리부위를 맹공했다. 이서문은 태연자약하면서, 몸을 돌리지도 굽히지도 않고
    탐마장」으로 상대의 정수리를 격침하여 즉사시켰다. 무예가 중에는 자신의 기량이 열등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가 많지만, 자칭「후배」라고 한 작은 쪽의 연경손님도 그 중의 한사람이었다.
    권을 포개어 송수의 예를 갖추며 「그럼!」하고 말하자마자 상대는 앞으로 돌진해 왔다.
    이서문은 재빠르게 전진하며 그 공격을 받고, 정면에서 장으로 일격을 가했다.
    적은 급하게 머리를 기울여 피하려 하였기 때문에 장은 그이 어깨에 떨어지고, 「우적!」하는 소리를 내며 견갑골이 산산히 부서져, 상대는 꽈당하고 식탁위로 쓰러졌다. 이 짧은 살인극에 보고있던 자들은 몸을 떨었다.

    ※이경림은 군인(장군)이다. 그의 무당검술은 유명해서 「천하제일검」으로 칭해졌다. 일찍이 남경의 중앙국술관에서 부관장을 역임했다.

    (6) 침추경의 위력.

    어느해, 이서문은 팔극권 5세중의 명수, 오회청과 이야기하고 천진으로 나왔다. 한가할 때,
    둘은 장법을 겨뤘다. 오회청은 대청에서 기둥에 기대어 장을 치자, 대청 전체가 진동했다.
    이서문은 대청중앙에 서서 장을 치자 대청 전체가 진동하여 벽토가 떨어졌다. 또 어느날은
    창에서부터 5척(1.5m)떨어진 실내에서 공기를 배격(밀어젖히듯 침)하자, 창의 장여지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창현지」에는 「옛날 그 연객을 타격한것과 고목을 꺽은 것과 같다」라고 기재되어있다.」

    전문에서 기술한 바와같이 팔극권의 발경의 방법에는 「침추경」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이 방법은 실재로 어느정도의 위력이 있는 것일까. 어느해 봄의 일이다.

    오회청은 거친 말을 샀지만, 일을 시키려 해도 말하는 것을 제대로 듣지 않고, 차거나 대들거나 했다.
    이서문이 말에게 「나에게도 대들려는 건가!!」하고 말했기에 오회청은 웃으면서 손그물을 이서문에게 건네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대들지 않을 거야」하고 말했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은 입을 뻗으며 대들며 달려들기에 이서문은 무릎을 들어 퍽하고 발의 아래턱을 찼다. 말은 큰 아픔을 느껴 히힝하고 콧소리를 내며 머리를 들고, 엉덩이를 내려 이서문을 차려고 했다.
    이서문은 재빠르게 알아차리고 말이 머리를 들었을 때에 그 갈기를 붙잡고, 기세좋게 올라타 날쌔게 말의 등에 걸터 앉자, 손그물을 잡고, 가슴으로 氣를 옮기면서 맹렬한 기세로 허리를 떨어뜨렸다.
    말은 히힝~~하고 소리높여 울고, 지면에 넙죽 엎드려 버렸지만 이서문이 기를 느슨하게 하는 사이에 양 발굽을 땅에 붙이고 또 일어섰다. 이서문은 다시 한번 힘을 넣어 허리를 떨어뜨리자, 난폭한 말은 「후∼후∼」하며 울면서, 네 번정도 땅에 기었다. 오회청은 그이상, 보다못해, 당황해 손을 흔들며 「빨리 말에서 내려와!! 그 이상하면 말이 죽어버려」하고 외쳤다.


    (7) 무서운 맹호경파산

    이서문의 손과 팔은 철과 같아서, 힘이 강하고 경을 사용하는 방법이 교묘하기 때문에
    동북3성, 연경, 천진, 랑방지구, 산동, 강소, 남경, 안휘, 하남 등 그가 이르는 곳 모두 무림의 명인들과 무술과 대창 시함을 셀 수 없을 정도로 행하였지만, 필적할 만한 자는 없었다.

    현. 청주시 무술협회 부주석인 이서정씨는 어렸을 때, 그를 만난적이 있다. 이서정씨의 아버지인 이우삼은
    연청권의 명가로, 이서문과 친교가 있고, 어느날 이서문이 방문했다. 우삼은 서정에게 「빨리 "흉권이(凶拳李)" 아저씨를 불러오거라!!」하고 말했다. 서정은 "흉권이"의 이름을 듣자마자 무서워서 온돌 위로 도망쳐 숨어버렸다.
     
    사실 이서문의 권각이 흉폭한 것은 유명해서
    그가 63세 때 제남의 어느 공원에서 수족을 움직이고 있을 즈음, 체구가 당당한 당랑권의 명수가 이서문은 나이가 환갑을 넘어서있는 듯하지만 움직임이 진실로 없는 것을 보고, 시합을 간청해 왔다.
    이서문이 「그럼, 먼저...!!!」라고 말하자 그 남자는 힘을 넣어 당랑조를 정면에서 맹렬하고 기세좋게 쳐들어 왔다. 이서문은 상대의 권에는 신경쓰지 않고, 그대로 앞발을 내밀어 팡! 하고 돌연 적의 가슴을 꿰뚫었다. 상대는 후방으로 쓰러진채 긴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이서문은 왜 이렇게도 차례로 강적을 쓰러뜨리고 불패를 계속했던 것인까. 그것은 결국
    그의 팔극권이 명인의 극전에 달하고, 내기를 완전히 몸에 익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팔극권 기격의 장점중 하나가 공격 당하면서 몸을 전진한다.


    맹호경파산」이라 칭해지는 형이 있다. 이것은 상대가 권으로 쳐들어 올때도 방어하지 않고, 그대로 접근전을 행하고, 압도적인 역량으로 적을 부수는 것으로 만약 상대가 앞으로 발을 들기라도 한다면 한층 더 불리하게 된다. 이 때문에 약한 상대라고 업신여기기도 하고, 거만한 대전자는 부상당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 「맹호경파산」기술로 그 진짜 기술을 체득하지 않거나 공격의 기초력이 얕거나 하면, 위험에 처한다.

    이서문의 연습법은 삼백근 이상(150kg정도)도 넘는 돌 로라를 2m남짓 높이의 화전 위로 들어올릴 정도로
    힘이 강했기 때문에 일반 기격가들은 모두 그의 「맹호경파산」을 무서워했다.

    ※이우삼 : 이우삼, 또다른 이름은 임춘, 비종문(연청권)의 진옥산 제자, 일찍이 장학양 장군에게 무술을 지도했다.


    (8) 방랑의 명인과 그 제자들

    이서문은 생애 남북을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고, 거둔 제자도 셀 수가 없다.
    위로는 저정계의 군인. 허난주, 그밖에 군인 고관인 엄국동, 류호신, 나옥곤들이,
    아래로는 끼니도 거르는 서민까지 있었다.
    전해지는 말로는 그는 만년, 하룡원사에게도 권술을 가르쳤다고 하지만, 상세한 고증은 어렵다.
     

    그러나, 그의 무수한 문하생 가운데 그 기술을 진실로 이어받은 자는, 동향의 곽전각은
    정진을 거듭하여 청나라의 광서제의 사범을 했다.

    또 맹촌의 류운교(주: 유운초)도 10세부터 이서문의 옆에서
    팔극권을 배우고 만년의 이서문이 가난해져서 그의 집에 몸을 의탁했을 때, 다시 십수년간 이서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래서 팔극권의 진수와 내기를 체득했다.


    1968년 류운교는 말레이시아에서 행해진 「중국무술표연대회」에 초대 되어 이서문 정전인 팔극권을 피력하고, 타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대만, 향만의 대표들은 그 측량할 수 없는 공부의 깊이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1928년 남경, 중악국술관이 생기고, 교사선발에서 전국으로부터 모집한 무술가들에게 처음으로 전국 국술시험이 행해졌다. 이서문과 같은 문하인 한화신, 조수덕(다르게는 마영도)들이 팔극권과 도수격투를 행해 함께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팔극권은 필수과목이 되었다.

    현재, 중국각지 및 해외에서 류포하는 팔극권은 이미 그 본래의 면목을 잃고있는 것도 있지만, 많은 것이 남경중앙국술관에서 그 근원을 내고 있다. 창주의 저명한 대육합권의 명가에서 솔각명수인 충의의 장녀, 가의의 남편인 이원지(창주가 화원 출신)은 남경 중앙 국술관에서 팔극권을 공부한 후 대만으로 건너가 무술 사범이 되었다. 그는 「 拳(거권)」이라고 팔극권의 명칭을 바꿨지만 맹촌 팔극권의 본류와는 현저히 다르다. 그에게 팔극권을 부분적으로 배운 무예가도 몇 명 있다.

    팔극권을 배우는 자로서 창주의 맹촌과 이서문의 일을 모르는 자는 없다. 어느해 이서문은
    산동의 어느 무술가의 기술교류 초대에 응하고 사랑하는 제자인 류운교를 데리고 나갔다.
    그런데 오래 체류하여 야위게 되었기에 돌아갈 때가 되어 류운교에게는 산동에는 보는 바와같이 무술가가 많고 여기에 머물며 연구, 저작을 계속하라고 말했기에 이서문은 어쩔수 없이 혼자서 돌아오게 했다(1934년).

    돌아가는 길에, 패한 것을 한으로 가지고 있던 자의 손에 의해 독살당했다. 향년 70세 였다.

    세상에 무술가는 많지만, 잘 고찰해 보면 종종 실력이 결여되어 있거나, 결국은 과장과 허위가 섞여있는 경우가 곧잘 있다.
    그러나 이서문은 중국무림 속에서 가장 실전력을 갖췄다. 「불패의 왕자」이다.

    ※이서문을 산동성에 초대한 것은 산동성제독인 장양오장군 및 황현의 무술가 정자성(육합당랑권)이다.



    < 이것이 발경의 위력이다!! >


    이서문 에피소드 1

    천진의 공원에서 이서문의 제자들이 참장(같은자세로 계속 서있는연습)을 하고있자,
    옆에서 연습을 하고있던 솔각(던지는 기술의 무술) 단체의 사범이 와서 「너희들, 매일 이러한 연습을 해서, 도대체 정말 도움이 되는가? 」라며 웃었다.

    제자들이 다가오는 이서문에게 고하자, 이서문은 바로 그 솔각의 사범이 있는 곳으로 가서,

    「너희들, 이렇게 시끌 벅쩍하게 연습을 해서, 도움이 되는건가? 」하고 도발했다.
    이서문이 몸집이 작은 것을 보고 화가난 그 사범은, 「뭐라고!!」하며 이서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 순간 이서문은 맹렬한 발경으로 상대의 명치부근에 정심주(팔꿈치로침)를 행했다.
    상대는 양눈, 양코, 양귀, 그리고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七孔噴血(칠공분혈)"의 상태로 즉사했다.
    이것은 많은 목격자가 전하는 실화이다.


    이서문 에피소드 2

    팔극권의 명인·이서문에게, 최후의 제자인 류운초씨가 동행하여, 북경에 갔던 때의 일이다.
    地元의 유명한 무술가가, 저명한 팔극권가·신창 이의 제자와 이서문이 왔다는 것을 전해듣고, 자택에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그 무술가는 이서문에게 「당신의 팔극권을 한수 가르침 받고 싶습니다.」하고 부탁했다.

    이서문은 찌르기에서 주법으로 변화하는 기술을 설명하려 하고, 「먼저 이렇게 친다.」하며, "툭"하고 쳤다.
    그러자 그 무술가는 꽈당하고 쓰러져 버렸다.


    이서문은 「팔극권의 진수는 여기서부터다, 어째서」라 말하고, 제자인 류운초씨가 당황해서
    그 무술가를 살피자 마자, 그는 이미 죽어있었다. 이서문의 공부는 이상하게 높았기에, 컨트롤이 듣지않아 가볍게 치는것만으로 죽어버렸던 것이다. 둘은 당황해서 기차를 타고, 고향인 창주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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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빛늑대(天狼)

    MIXI (Martial arts, Investment in stocks X Information tech) World...since 2008

    대사부 유운초 선사님의 말씀 중에서...

    1. The training camp is hard, but it is also a good experience. Practicing martial art makes you healthy. Having a good constitution is the basis of your studying and career, and it also makes you and your parents feel good.

    트레이닝캠프는 어렵다.  하지만, 좋은 경험일 것이다.  무술수련은 몸을 건강하게 한다.  좋은 법칙을 기본으로 너의 공부와 전공을 쌓아 간다면, 본인 스스로와 부모님께 기분 좋은 일이다.

    2. The most important aim of martial art is “rectifying hearts and cultivating persons”, therefore it can increase our determination and perseverance. Of course, we know that the benefit of martial art cannot be seen through short- time practice. We will find the effects after long- time practice.

    무술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마음을 다스리고, 좋은 성격을 길러가는 것이다.  결단력과 인내성을 향상시키게 된다.  단시간 동안의 수련으로는 이뤄낼 수 없지만, 오랜 수련 후에 효과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단의 공식 로고


    3. When you encounter any question about martial art, you have to think and ask. Discuss and experiment with everybody so we can improve.

    무술수련에 대한 의문에 닥치게 되면, 잘 생각해보고 질문하라, 나아가서는 서로 논의 하고, 다른 이들과 실험해 보라, 그렇게 되면 보다 낳아 질것 이다.

    4. Practicing martial art can adjust your physical condition, including the condition of your tendons, bones, and muscles. But do not do too much more than what your bodies can handle, otherwise you might hurt you bodies, or even your souls.

    무술수련으로 힘줄, 뼈, 근육 등, 신체적인 상태를 다시 교정 할 수 있다.  몸이 견뎌낼 수 있는 만큼 이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안 그러면, 몸뿐만 아니라 영혼도 다칠 수 있다.    

    5. Practicing martial art is a good way to “vent”. When you are in a bad mood, you can perform a routine or hit the air to let go of your glum feeling, and you may feel better.

    무술수련은 몸을 순환 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기분이 나쁠 때, 형을 연습하면, 나쁜 기분을 몰아내 기분이 전환 될 수  있다.

    6. Sometimes we shout when we practice, and there are two starting point of voices: Tan-T’ien (in lower abdomen) and lungs. “Hah” from Tan-T’ien and “Hun” from lungs.

    종종 수련할 때 기함을 지르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단전과 폐에서 나오는 소리가 있다.  “하”는 단전에서 “헌”은 폐에서 이다.

    7. Here in the mountains you have to give up your connections to the world, suppress your desires, and fully concentrate on practice. Be serious in practice and active in leisure time.  

    세상과의 연결고리에서 포기해야할 것이, 욕구를 가라앉히고, 연습에만 충분히 집중해라.  연습 할 때는 진지하게, 쉴 때는 활발하게 해야 한다.

    팔극권 유운초 선사님의 휘호


    8. Everyday we have to care for three parts of our bodies: head, abdomen, and leg. (1) Cold in head and calm in mind, (2) empty in abdomen and not too full in stomach, (3) warm in legs and activate body.

    매일 우리는 우리의 몸 중 3부분을 잘 봐야 한다. : 머리, 배, 다리 (1) 머리는 시원하게 정신은 편안하게 한다. (2) 배는 비우고, 너무 가득 채우지 않게 한다,(3) 다리는 따뜻하게 몸은 활발하게 한다.

    9. A human body is a small cosmos. Three meals a day are similar to seasons of the year. Eat will at breakfast, just like buds need plenty of nutrition when sprout in spring. Make yourselves full at lunch, for living things act a lot and need enough food supply in summer. Have less food at dinner, like rice and wheat are ready for harvest and need less in autumn. Or we don’t even eat anything in the evening, like crops being laid up and some animal hibernate.

    사람의 몸은 작은 우주이다.  하루 세끼는 일 년 중 계절과 비슷하다.  봄에 새싹이 자라듯 충분한 영양이 있는 아침을 잘 챙겨 먹고, 여름에 충분한 음식을 제공하듯 점심을 잘 챙겨 먹고, 가을에 수확을 많이 해서 조금 남도록, 저녁을 보다 조금 먹도록 해야 한다.  저녁에 밥을 먹지 않으며 마치 죽은 시체가 누워있거나, 동물이 겨울잠을 자는 것과 같다.  

    10. Be stable when you perform a style. Be serious in every posture and movement. Comprehend and realize that “eyes move with hands”, “hands revolve with waist”, and “steps change with body”.

    무술의 동작을 할 때는 항상 안정된 자세로 임한다.  모든 동작 행동모두 진지하게 한다.  인식하고, 파악해야 한다. 마치 손과 함께 눈이 움직이고, 허리와 함께 손이 회전하며, 몸과 함께 보법이 변화하는 것처럼.

    11. Martial art’s practice must fit with physiology and dynamics. Fitting with physiology is to let your organs stable and stay where they are supposed to, and fitting with dynamics is to use your strength according to dynamics.

    무술연습은 생리학과 물리학과 맞물려져야 한다.   생리학과 어울려지는 것은 모은 장기능이 안정적으로 있어야 하는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 물리학과 어울려지는 것은 힘을 물리적인요소에 따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 아래는 원문 입니다.
    一、 上山集訓雖然辛苦,卻是一項很好的人生體驗。
           練拳能使身體健康,強健的體魄,方是學業、事業的基礎。
           練好身體,不只自己精神愉快,也使父母欣慰。

    二、 國術追求目標首在「正心修身」,故能培養定力、耐力;當然,練拳的好處不是一時可看得見,日積月累之後,便知其效果。

    三、 練拳產生問題時,必須多想多問,大家彼此砌磋琢磨才有進步。

    四、 練拳能調整生理,包括筋骨肉,但絕對不要過度逞強,以免傷身,甚至走火入魔。

    五、 練拳乃為「發洩」的好方法。心情不佳時,則可打打拳,發發勁,對空揮拳,散到鬱氣,便能心平氣和。

    六、 練拳有時要發發聲,發生部位有二:一是丹田,一是肺部,「哈」聲發自丹田,「哼」聲發自肺部。

    七、 到了山上,務必萬念俱消,全神貫注於練拳上,練拳時必須莊重,休閒時必須活潑開朗。

    八、 吾人必須每天保養三個地方:頭、腹、腳。(一)頭要冷,及冷靜。(二)腹要空,不要過飽。(三)腳要暖,時時要活動。

    九、 人是一個小宇宙。一日三餐有如四季。早餐要吃得好,如春季種籽萌芽,需要充分的養份供給生長。午餐要吃飽,如夏季活動量大,需要充分的食物供給;晚餐要吃得少,如秋季稻麥已熟可收割,需要量減少。或晚上根本不吃食物,如冬季,冬藏,萬物很少有活動。

    十、 練拳要穩,一招一式不可馬虎。從練拳中體會出眼隨手走,手隨腰轉,步隨身換。

    十一、 五臟為人身最脆弱部份。五臟:心、肝、脾、肺、腎。五臟配合五行,於拳套中就是:心火沖,拳向上;肝木擴,拳向外張;脾土捅,如馬步弓捶;肺金縮,拳內收者;腎水沉,拳下打。應用於拳套時,每一動作皆發一個勁道,才能達到致敵效果。

    十二、 練拳必須合乎生理及力學,合乎生理就是內臟平穩定位,合乎力學就是依照發勁力學原理。


    원문에는 11(十一)번째 내용이 하나 더 추가되어 있습니다.
    해석을 해 보자면...

    오장은 사람의 신체에서 가장 약한 부분입니다.
    오장 : 심장, 간, 비장, 폐, 신장
    무술을 운용할때도 오장은 오행으로 조화를 이룹니다.
    심장은 솟구치는 火의 성질로, 권은 위를 향하고
    간은 뻗어나는 木의 성질로, 권은 밖으로 향하고
    비장은 찌르는 土의 성질로, 마보궁추와 같고
    폐는 수축하는 金의 성질로, 권을 거두어들이는 것이고,
    신장은 가라앉는 水의 기운으로 권은 아래를 칩니다.
    무술에 응용할때, 하나의 경도로 매일 동작을 계발하여
    상대방에 효과가 생기는 정도에 이를때까지
    실력이 도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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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빛늑대(天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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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단 팔극권, 대사부 유운초 선사님의 말씀 중에서 Part2

    1. Master Liu scolded us for practicing "stupid martial art", which meant that we could not apply theories into routines, not to mention showing the essence.

    “바보 같은 무술이군,” 하며 유 사부님이 소리치실 때면, 우리가 동작의 정수를 못 나타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이론을 동작에 적용 못할 때이다.    

    2. There are too few southern stylists who really learned the essence of their field. Pak-hok(White Crane), Tai-tzu(Long Fist), and Hu-he Double Style are all good martial arts. But most southern stylists do not apply theories and they live like barnstormers, which leads to their little contribution to our culture.

    남권에는 몇 게정도 형이 정수를 담아내고 있다.  백학권과 장권, 호학쌍형권 등이 좋은 무술이다.  그러나 대부분, 남권들은 이론을 잘 표현하지 못했고, 작게나마 겨우 중국문화에 기여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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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Ask Master Liu questions you need not be too courteous or shy, otherwise you don’t learn things.

    유 사부님께(스승에게) 질문을 할 때에는 너무 예의 바르게도, 부끄럽게 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을 것이다.

    4. The difference between Pa-chi and Tai-chi is the horse-step.

    팔극권과 태극권의 차이는 마보이다.

    5. Perform Pao-chuei at high speed.

    포추를 할때는 빨리 해야한다.


    6. Chen’s Tai-chi has a saber routine, namely Peach Blossom Saber.

    진가 태극권에는 도법이 있는데, 복숭아가 만발한 이름의 도법이다.

    7. Rope-whip is called Chang-er Rope (a 12-Chinese-foot rope), with the head of an Iron Chain in the front, a wooden handle, and a piece of rope in between. It is used by stuntmen.

    끈으로 만든 채찍은 창얼 끈 이라고 하는데, 머리는 납으로 된 체인으로 되어 있고, 나무로 된 손잡이, 중간에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스턴트맨이나 사용하는 것이다.

    8. Tsi-step: In ancient times they hung money on waists, so they walked with heavy steps. The toes digging into ground and raising dust are called "Tsi". The recent name "shing-step" is wrong.

    쯔-보법(츰보 혹은 틈보): 과거에는 허리에 돈을 차고 당겨서 무겁게 다녔다. 엄지 발가락을 땅에 집어넣고, 먼지를 일으키는 것을 ‘쯔’ 라고 한다.  현재 불려지는 ‘씽- 보법’ 은 틀린 표현이다.

    9. Arrow-step: It shoots out like an arrow.

    화살 보법 : 화살을 쏘는 모습과 흡사하다.

    10. Love should be broad, not just for children and families of your own.

    사랑은 넓은 폭넓어야 한다.  아이들과 가족에만 속해서는 않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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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빛늑대(天狼)

    MIXI (Martial arts, Investment in stocks X Information tech) World...since 2008

    인생을 보는듯한 무술 게시판의 갑론을박 논쟁

    몇년동안 여러 무술사이트를 보아오면서 게시판을 달구워온 토론 혹은 논쟁거리 중 하나하나가
    조금 멀찍이서 떨어져보면 한편의 아웅다웅 인생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정리차원에서 모아보았습니다.

    그저 흥미 차원에서 봐주십시오.

    끝나지 않는 논란거리 "실전에는 어떤 무술이 좋은가?"

    처음 말씀드릴 것 중에 가장 주된 논란거리는 아마도 '실전에는 어떤 무술이 좋은가'에 대한 것입니다.

    이 글만 보아도 짜증나거나 몸소리가 쳐지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대개 이런 질문을 처음 하는 분들은 중고생인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남을 때리며 괴롭히고 싶은데 어떤 무술이 좋아요? '하는 질문보다는 '나를 괴롭히는 넘이 있는데 어떤 무술을 배워야할까요?' 와 같은 절박한 심정에서의 질문이 많습니다

    철권 6


    거기에 달리는 리플들은 초반에 대개 '복싱을 해보세요' '무에타이는 어떨까요' '유도가 낫지 않겠습니까' 등 특정무술을 권하는 평범한 리플달립니다

    그 다음에는 '어떤 무술이든 마찬가지니까 열심히 하는 사람의 몫이다'는 리플이 올라옵니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문구'최강의 무술은 없다,최강의 파이터만 있을 뿐이다'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조금 더 지나면
    '니들은 쌈박질하려고 무술배우냐,무술은 자기수양이다'는 류의 리플이 달리게 되죠.
    아이러니하게도 보통 싸움이 안 좋은 것이라는 걸 충고해주는 도덕적인 리플임에도 불구하고 중고생을 철없다며 꾸짖듯 감정적인 반말과 욕설이 섞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면 '맞는 게 돈 버는 것이다'는 충고도 올라오고 '공부잘해서 검사되는 게 이기는 거다'는 충고도 올라옵니다.
    '때리는 넘이 감방가니까 차라리 맞아라'는 리플에서 '경찰서 뒀다 뭐하느냐'는 리플도 올라오지요.
    같은 또래가 다는 리플의 경우 '그렇게 맞고 학교 다닐려면 뭐하러 당기냐 차라리 뒤져라'는 좀 야박한 글에서 '어디 학교냐 내가 애들 끌고가서 복수해줄께'등의 응원도 올라옵니다.

    과거 철없이 휘두른 자신의 주먹으로 인해 후회할 일 많았으니 '너희들은 내 전철을 밟지말라'는 눈물섞인? 선배의 경험담도 올라옵니다.
    간혹 어떻게 싸우라(이렇게 때리면 어떻게 피해서 어떻게 때려라)는 자세한 설명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실전" 그 자체에 대한 논쟁

    이런 것과 연관된 질문중에 '실전 그 자체'에 대한 논쟁 또한 빠지지않습니다.

    '실전이 도대체 뭐냐'는 논쟁이 필수적으로 벌어집니다.
    서로에 대한 실전의 견해차가 다른거지요.

    보통 UFC,PRIDE,KOTC 등의 경기에서 주로 쓰여지고 효과적인 기술들이라고 알려지고 있는 것들은 무에타이와 유술계통입니다.
    그외에도 실전에 강하다고 한두번 이상 이름이 들먹거려진 무술들이 몇 가지 있는데 복싱,무에타이(킥복싱),유도,검도,레슬링, 최근에 뜨고있는 브라질유술 등등이 아닐까 합니다.

    어쨌든 무규칙격투대회들의 대외적인 홍보문구는 '무규칙 격투기'라고 하는데 대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물어뜯기,낭심치기,꼬집기(?),박치기,눈찌르기 등을 금하고 있어 100% 무규칙,100%실전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철권 6


    그런데 표현상으로 실전무술(사실은 실전에 근접한 무술이겠죠)어쩌구 하는 말이 나오면 타무술을 수련하는 분들은 자존심이 상하게 됩니다.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

    실전을 보는 서로 다른 시각

    보통 이 과정에서 실전을 더 넓게 더 잔인하게 정의하는 분들의 리플들이 달립니다.
    '대회에서 보는 것은 실전도 아니다.진짜 실전은 눈찌르고 깨물고 의자도 집어던지고 칼찌르고 다구리도 하는 것이 실전인데 감히 그 따위 대회를 실전대회라구?
    100% 진짜실전에 특정무술이 강하다고 할 수 있느냐'는 뜻이죠.
    오히려 눈찌르기나 급소공격, 이종격투기 장갑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의 발경 등에서 더 효과적인 무술이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분들은 천한것들 나가있어의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더럽게 땅바닥에 뒹굴며 싸우는 게 무술이냐?는 의견에서 이종격투기대회는 개싸움이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조금 더 중립적인 분들은 '싸워봐야 안다'이거나 '그 무술의 룰대로 하면 그 무술이 이긴다'의 의견을 피력하십니다.

    무술 경력에 관한 이야기

    그러다 무술경력 이야기도 나옵니다.
    몇달 배우고서 경기에 나가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경우가 있는 **타이 얘기가 나오면 타 무술을 오래 수련한 분들의 심기가 편치않습니다.
    '적어도 무술수련은 최소한 3년은 해야 기본은 겨우 뗐다고 하는 거지'라는 의견에서 '검은띠가 땀에 절고 많이 빨아서 백띠가 될때까지 정도는 해야지' 하는 의견도 나옵니다.

    그러다 어떤 분이 '저는 무술을 십오년 넘게 해왔지만 아직도 무술의 무자도 모르는 초보입니다...
    선배님들의 많은 가르침 부탁합니다' 하는 겸손????의 글이 올라오면 십년 한 사람도 조용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버추어 파이터 5


    타 무술에 대한 견제

    제일 강하다고 말해지는 그라운드계열 무술이나 그 무술을 수련한 강자에 대한 집중적인 공격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눈찌르고 붕알차면 이긴다' '일대다로 대련하면 그라운딩은 약하다'
    '나같으면 깔렸을 때 등짝에 칼 꽂겠다''딱딱한 바닥에서는 사용하기 힘들다'
    '사방을 막아놓은 링 자체가 그쪽 무술에 유리하게 만들어졌다'
    '태클들어올때 무릎으로 대가리 올려치거나 등짝에 팔꿈치로 내려치면 충분히 이긴다'
    '길거리에서 100%무규칙으로 싸우면 이긴다'는 류의...무술에 대한 반론에서부터

    '그레이시가문이 최강이라고 떠들어도 B급 파이터일뿐이다
    타이슨이나 국가에서 인정하는 올림픽 금메달들에게 이기겠느냐' 혹은 '누가 가서 저 잘 난 척 하는 넘 좀 패다오' 는 류의 강자에 대한 반론까지 이어집니다.
    타이슨이 나오면 권투에 대한 얘기가 안 나올 수 없고 그러다보면 또 무에타이 이야기가 껴듭니다.
    로우킥으로 공격하면 끝난다는 무에타이응원에서 빠른 스텝으로 충분히 극복한다.주먹만 제대로 써도 무에타이 정도는 깬다,
    K-1에서 베르나르도 이기는 거 좀 봐라는 복싱응원이 싸웁니다.

    유명한 무술 고수에 관한 논쟁

    타이슨이 나오면 이소룡도 나와야 되고 그가 영화배우냐 무술인이냐는 논쟁이 시작됩니다.
     

    이소룡이 나오면 최영의도 질 수 없고 최영의가 나오면 필수적으로 극진가라데 얘기가 나옵니다.
    누가 극진가라데 칭찬을 하면 최영의가 워낙 강한 것이지 극진가라데가 강한 게 아니다라는 리플이 달립니다.
    간혹 최영의를 누가 최형의로 잘못 쓰기도 합니다.
    무술가 이름도 모르면서 무술을 하냐고 핀잔을 먹게 됩니다.

    중국무술로는 실전최강이었다는 팔극권의 이서문이 나오고, 형의권의 곽운심이 나오고 팔괘장의 동해천이 나옵니다. 그에 관련된 무용담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중국무술 얘기가 나오면 엄청 싸움이 길어집니다.(여기서 정리가 안됩니다)

    죽은 사람들 얘기를 뭐하러 하냐,그들에 대한 모독이라는 의견이 나올 때쯤 논쟁은 시들해집니다. 

    엉뚱한 방향의 화두

    그러다가 제 아무리 사람이 강해도 호랑이같은 맹수보다 세겠느냐는 다소 엉뚱한 의견이 나옵니다.
    그럼 여기저기서 보아뱀이 세다.불곰이 세다.아니다 북극곰이 세다.악어가 세다는 등의 동물이야기가 나옵니다.무술게시판이 동물원 게시판화되어갑니다.
    그러다가 개미가 나오고 그러다가 세균이 나오면서 얘기는 다시 시들해집니다.

    버추어 파이터 5



    무술 게시판 논쟁의 오랜 단골거리

    조폭얘기도 오랜 단골이고 조폭과 이종격투가가 싸우면 누가 이기느냐에 대한
    논쟁을 하다보면 해가 넘어갑니다.그러다가 특수부대 얘기가 나오면 거의 칼부림 납니다.
     

    조용히 글만 보고 웃던 사람도 자신의 모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눈 돌아버립니다.
    거의 군부대와 군부대간의 싸움이 납니다. 어느 부대원이 쎌거야 어느 부대에선 어떤 무술을
    배우는데 실전적이더라 하는 미필자나 타군출신의 글도 올라오고 그 부대들이 약하니 세니가 무술이 시범용이니 아니니 얘기가 나옵니다.
    북파공작부대까지 거론됩니다.
    내가 휴가 나와서 어느 부대출신을 팼다...패싸움을 했는데 이겨서 전리품을 가져왔다는 류의 경험담들도 단골거리입니다.

    '무기'를 사용하는 실전에 관한 이야기

    '무기'를 사용하는 실전에 대한 것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 아무리 강자라도 무기앞엔 소용없으니 강자도, 강한 무술도 없다'는 결론이 주류를 이룹니다.

    '아무리 강자라도 총 한방이면 죽는데 요즘 시대에 무술에 실전이 왜 중요하냐'는 게
    가장 많은 리플이 달리는 도덕적인 충고입니다.

    단순한 '의자'나 '칼'에서 점점 그 파워가 세집니다.
    무기는 '미사일'에서 '핵폭탄'까지 나옵니다.

    '핵폭탄'보다 더 센 것은 없으니 논쟁이 희미해질 무렵 결국 화두는 '실전'에서 '힘'의 논리로 넘어갑니다.

    이상한 '힘의 논리'로 

    '몸'에서 나오는 힘보다는
    '권력'이나 '돈'에서 나오는 힘을 가지고 게시판의 방향이 조금 엉뚱하게 흘러갑니다
    '검사가 최강이다'에서 '돈이 최강이다' '부시대통령이 최강이다'는 리플까지 올라갑니다

    '정신에서 나오는 힘, 자제할 줄 아는 힘, 싸움을 피할 줄 아는 힘'이 최고라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지요.

    무술수련의 목적

    그러다보면 무술수련의 목적으로 논쟁이 번집니다.
    그렇게까지가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정신수양,자기단련,남을 꺾어쓰러뜨리는 것 등등
    각자 다른 무술수련 목적이
    한두마디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체험담과 가치관이 필히 포함되므로
    얘기가 길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버추어 파이터 5


    가장 큰 논쟁거리는 바로 이것

    하지만 가장 큰 싸움거리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누군가 실전에 어떤 특정무술이 약하더라는 글을 올립니다.
    이러면 끝장입니다. ^^

    보통 글을 올리는 사람은 대부분 글의 투로 보아 중고생이 많습니다.
    그러면 그 무술을 배웠거나 좋아하는 사람들, 혹은 객관적인 입장을 갖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습니다.
    이쯤되면 슬슬 욕이 오갑니다.

    '내 친구가 **신인왕이라며 깝죽댔는데 **도를 배운 나한테 존나 맞았다'
    '**도를 얕보지마라. 예전엔 엄청 강했다'
    '살인기술이 많이 있지만 죽을까봐 안 쓰는 것 뿐이다'
    '도장이 예전에 비해 물러졌을 뿐이다'
    '애들다니는 도장이란 이미지 때문에 그렇다,구미에서는 제대로 한다'
    '점수제,호구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다'
    '구두 신고 제대로 앞차기 한번 맞아볼래? 너 뒤진다'
    '제대로 수련을 안한 넘이 너무 많아서 그래보이는거지 제대로 하는 사람에게 걸리면 뼈도 못추린다'
    '사범들이 미국에 정착할 때 타무술이나 깡패의 엄청난 도전을 받았지만 다 물리쳤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무술인데 그만큼 실전성을 인정받은 게 아니냐'
    '집에서 비디오로 이종격투기 몇번 본 걸 가지고 아는 체 하지마라 이 초딩 씹*야'
    '**타이가 **권 배운 사람에게 졸라 깨지는 걸 봤다'
    '**도의 모든 수련자와 다 붙어서 다 이기지 않는 한 더 강하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렇게 당신 무술이 강하면 **도 국가대표나 선수를 찾아가서 붙어봐라'
    는 류의 글이 올라가는 데 대부분 이 정도면 막 가자는 거지요가 됩니다.
    미운 넘과 싸움붙이고 싶은 국가대표로 자주 거명되는 사람은 죄없는 김제경입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화

    그렇게 욕설이나 험한 말이 오가다가
    결국 온라인은 오프라인화되어가는 징조를 보입니다.
    서로의 전화번호를 물어보거나 이멜을 물어보며 쌈을 겁니다.
    니가 먼저 밝혀라 그럼 내가 연락할께 라는 한 수 접은 리플도 나옵니다.
    사기성이 농후하다 싶은 글은 바로 컴도사들이 뜹니다.
    아이피체크해서 혼내준다.쫓아가서 패준다 는 류의 글입니다.

    이쯤 돼서 조용히 사라지는 도전자가 있는가 하면 끝까지 익명성을 내세워 사람들을 조롱하며 잡을테면 잡아봐라는 도전자도 있습니다.
    그런 도전자들이 잡혔는지 안 잡혔는지는 아직 확인된 바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디어디에 나오라,한판붙자는 등의 심각한 상황도 발생합니다.
    정말 그들이 만나서 싸운 일은 몇 % 나 되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쯤 되면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깁니다.
    어디서 싸워요? 저도 갈게요 등의 리플이 달립니다.

    이러다가 말리는 사람이 생깁니다.
    대부분 화해하거나 무산됩니다.
    그러면 표현을 안했을 뿐 볼거리를 놓쳤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생깁니다.

    더 많이 있겠지만 이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어떠세요..
    무술게시판에서 리플 논쟁이 한편의 인생드라마를 보는 것 같지 않나요? ^^

    무술 게시판이라는 곳이 일반인들은 잘 접하기 어렵지만 무술인들에게는 네이버나 다음 아고라 못지않게 설전이 오가고 자존심이 걸려있는 재미난 곳이기도 합니다.
     
    대개의 무술게시판에서 논쟁으로 흐르는 것들 중 특기할 만한 것 하나를 나름대로 정리해봤습니다.

    요즘은 게시판에 바로바로 리플 다는 기능이 있는 무술사이트가 줄어들어서 이런 글들을 보긴 힘들지만...예전에 마르스도 만만치 않았던 걸로 기억됩니다.

    아무튼 돌이켜보면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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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XI (Martial arts, Investment in stocks X Information tech) World...since 2008

    무단 팔극권, 대사부 유운초 선사님의 말씀 중에서 Part 1


    1. Practicing martial art is like cooking rice: first cook with a very hot oven, then simmer with a mild oven.
    무술 연습은 마치 밥을 짓는 것과 같다.  먼저 뜨거운 밥통에 밥을 지은 다음, 약한 불에 끓이는 것이다.

    2. Practicing martial art takes all one's concentration. Concentration leads to familiarity, which brings apprehension, whence he would gain endlessly from learning.  
    무술 연습은 집중하는 것 달려있다.  집중은 익숙하게 할 뿐 아니라, 이해를 가져오며 쉬지 않고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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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o maintain health we have to lessen our desires; to exercise we need  perseverance; to have food we need regulation.  
    건강상태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욕망을 뒤로 하고, 인내를 가지고 연습하고, 규칙적으로 식사 하는 것에 있다.

    4. If one is not thoughtful then he's not careful; if not bold then timid. No practice, no confidence, and no confidence, no victory.
    만약, 누구든지 생각이 없고, 조심스럽지 않는다면, 대담하지 않고, 소심하다면, 연습도 없고, 자신감이 없으며, 승리도 없을 것이다.

    5. Those who like to show off have no real effort. Those who have real efforts have internal disciplines.  
    보여주기 위한 사람은 진정한 노력이 없는 사람이고, 진정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내적인 수련이 있다.

    6. Any martial art needs its own specialties. It's a big mistake to just mimic without independent spirit.  
    어떠한 무술이든지 그것 에 특징이 있다.  독립적인 성향이 없이는 마냥 따라 는 것이 문제다.  

    7. There is no other way to learn martial art but concentration.
    집중을 제외하면 무술을 배울 은 없다.

    8. Teachers are to tell Tao, to instruct knowledge, and to answer questions. He who teaches you one day is like your father for life.
    선생은 도를 말하고, 지식을 전하며, 질문에 답한다.  누구든 당신을 이렇게 가르치게 된다면, 당신의 인생에 있어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다.

    9. To practice martial art you have to be calm, do not be unsettled or short-tempered.  
    무술을 함에 있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동요하지 말며, 화내지 말아야한다.

    무단 팔극권의 대사부 유운초 선사님 휘호


    10. To practice martial art, be dull and stubborn, do not try to be smart.
    무술을 연습함에 있어, 무뎌져야 하며 고집스러워야 하며 머리 쓰지 말 것이다.

    11. To practice martial art you have to go step by step without halting until reaching the essence.  
    무술을 연습 할 때는 조금씩 진의에 다가갈 수 있을 때 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

    12. There is no way we can skip any effort of practice, and we have to always investigate and think. Qi goes where mind goes, and strength goes where Qi goes.  
    연습 시 노력을 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린 언제나 탐구하고 생각해야만 한다.  기가 가는 곳의 우리의 생각이 있고, 힘이 가는 곳에 기가 흐르기 때문이다.

    13. To practice martial art we need to be settled, then calm, and then nimble. You can cool down not only when you are calm but also when you are in action. That is where we can see your effort.  
    무술을 연습할 시, 우리는 자리가 잘 잡혀야 하고, 느긋하게 하고 나서 민첩해야만 한다.  몸과 마음이 고용할 때 만 평온할 것이 아니며, 행동 할 때에도 평온해져야 한다.  너의 노력을 거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곳이다.

    14. To settle one's mind is an internal effort; things come then mind react, and things go then mind settle. To settle one's Qi is an external effort; words are cautious then deeds are, too, and words are solemn then Qi is, too. The most important parts of practicing martial art are to adjust Qi, to settle mind, not to be obsessed, and not to talk wrongly.  
    마음을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은 내적인 노력이다.  어떠한 일이 와도 마음으로부터 반응한다.  일이 지나가면 정신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기를 자리 잡게 하는 것은 외적인 노력이다.  말이 조심스러우면 행동 또한 그리되고, 말이 엄숙해지면 기 또한 엄수하게 된다.  무술을 배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를 자리 잡게 하는 것인데, 너무 무리해서 자리 잡게 하지 말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15. To practice martial art, calm your mind. If mind is calm then soul is clear, and if soul is clear then Qi is peaceful.  
    무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정신을 평온하게 해야 한다.  마음이 평온하면, 영혼도 맑게 되고, 영혼이 정화 되면 기 또한 평온해진다.

    출처- 대만 무단, Peter Ying 번역중에서

    아래는 원문 입니다.

    劉師習武嘉言錄

    一、練拳譬如煮飯,先用猛火煮,再用溫火溫。
    二、練拳全在專一。專一則精熟,精熟而意味日出,心得無窮矣。
    三、養身莫若寡慾,運動貴乎有恒,飲食貴乎有節。
    四、心不細則遇事不週,膽不大則臨事必怯,平時不養,到用時沒有把握,沒有把握不能取勝。
    五、拳腳愛炫者,便無真功夫,有真功夫者便有涵養。
    六、武術須有本門特性,專法他人而自己無獨立之精神者是為大錯。
    七、武術學習之道無他,求其專心而已。
    八、師者所以傳道、授業、解惑者也,一日為師,終身為父。
    九、練拳要沉靜,不可粗心浮氣。
    十、練拳性要頑鈍,勿用乖巧。
    十一、練拳功夫如抽絲剝筍,層層求進,必至頭方止。
    十二、練拳功夫疏不得,應得一刻便做一刻,時時要揣摩省察,此處神到則氣到,氣到則力堅。
    十三、練拳須用定,力定則靜,靜則生,不但靜中能靜,且動中能靜方見功夫之力也。
    十四、神定內一著也,事來心應,事去心止,氣定外一著也,語謹形正,語端氣峻,
             學拳要緊處,全在正氣安神,忘心守口而已。
    十五、練拳必求心靜,心靜則神清,神清則氣合。


    원문이 궁금하실 분들이 분명 계실 것 같아서, 넣었습니다.
    아무래도, 영어가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이 참 많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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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빛늑대(天狼)

    MIXI (Martial arts, Investment in stocks X Information tech) World...since 2008

    서장. 전설의 대결


    쇼와 26(1951년)년 10월... 리오 데 자네이루의 마라카난·스타디움...

    세기의 유술 시합 단판 승부가 벌어졌습니다.

     한때 세계 최강의 격투가라는 칭호까지 얻었던 전설의 유도가 '마에다 미츠요'의 후계자 리오·그레이시(170cm/63kg) 그리고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후에 기무라 없당대 최강의 유도가 기무라 마사히코(175cm/85kg)의 3 R 각 라운드당 10분의 결투.(기무라의 키에 대해서는 170이라는 자료도 있고 178이라는 자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보편적인 것은 175였다는 자료입니다.

    기무라 마사히코

    이에 175로 일단 쓰기로 합니다.
     모 스포츠 신문에 나온 UFC의 역사라는 글을 보면 무슨 기무라와 가토가 전부 100킬로가 넘는다고 해뒀던데, 그건 제대로 자료를 뒤져보지 않고 글을 쓰셨기 때문입니다. 기무라는 85킬로, 가토는 80킬로였습니다. 게다가 기무라와 엘리오가 10살이나 차이가 나서 나이에서도 기무라가 유리했다고 해 둔 것 같았는데 기무라 34, 엘리오42 즉 8살차이였습니다.
     그 칼럼 중 마에다 미츠요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잘못된 점이 많이 보였는데 엘리오 편에서도...많이 안타깝더군요. 너무 유술가들의 편을 들어주고자하는 어투가 역력해서...)

     이 시합 전에 가토 5단이 엘리오에게 패배하는 바람에 기무라는 비장한 각오로 시합장에 나타납니다. 물론 웃음을 머금고 있기는 했었지만 그 속은 편치 않았겠죠. 한번도 맞서본 일이 없는 유술이라는것과 맞서야한다는 것 또한 무척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미 기무라 마사히코의 나이 34세. 전성기를 한참 지나버린 그가 브라질까지 오게 된 것은 자신이 총 책임자로 있는 '프로유도'의 홍보를 위해서였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레이시 유술과 싸운건 강도관 유도가 아니라 프로유도였던 것이죠. 물론 이때 이미 프로유도 단체는 소멸했었지만, 스스로의 유파는 프로유도였고, 이를 이용한 프로레슬링을 계획하고 있었죠.

      시합장에 들어서자 기무라는 흠칫 놀라게 됩니다. 바로 거기에는 관이 놓여 있었던 것이죠. 엘리오는 기무라에게 그것은 기무라가 죽으면 들어가게 될 관이라고 하며 자신감을 피력했습니다. 엘리오는 그것을 보고 웃었다고 하죠. 속마음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자기 관이라고 들고 나온 걸 보고 보고 웃는 사람은...^^

      당시 엘리오는 수많은 발레투도 시합에서 패배 없이 승리를 거두던 입장이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고 비교적 자신이 없는 분야였던 타격을 배제한 상태에서 유술만으로 기무라를 상대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기세가 등등했습니다.(카지와라 잇키 씨의 공수 바보일대에서는 엘리오 그레이시를 200킬로가 넘는 괴물 유도가라고 묘사해 두었고, 방학기씨의 바람의 파이터에서는 인디오 레슬러라고 묘사해 뒀지만...익히 아시다 시피 엘리오의 체격은 무도가로써 보통도 안되는 체격이었죠.) 엘리오가 타격이 약하다는 것은 이후 산타나에게 패배하면서 증명이 되기는 하지만 어쨌건 당시 브라질에서 엘리오라고 하면 최강의 격투가이자 유술가였습니다. 엘리오는 격투 전적에 패배라고는 2패 뿐인데 산타나와 기무라에게 당한 것이었습니다.

      엘리오는 서쪽 문을 통해, 그리고 기무라는 동쪽 문을 통해 등장합니다. 브라질에는 일본교민도 많았고 엘리오가 그렇게 일방적인 야유속에 경기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브라질인들의 엘리오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그 경기에 브라질 대통령까지 동참햇다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무라는 시합장에 오르면서 다시 한번 놀라게 되는데 바닥이 보통의 것보다 많이 물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기무라의 필살기인 밧다리 후리기와 한팔 업어치기를 봉쇄하기 위한 엘리오의 전략이기도 했고, 당시 유술 시합에 쓰이던 바닥은 유도에 비해 많이 무른 소재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본측에서는 엘리오의 계략이었다고 하기는 합니다만..저는 두사람 다 좋아하니까 어느 편을 들지는 않겠습니다^^

      1라운드가 시작되자 기무라는 엘리오를 메치려 하지만 엘리오의 번개같은 스피드에 쉽게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시 팔힘은 일본 제일이라는 정평이 나 있었던 기무라 답게 엘리오를 붙잡아 넘어뜨리고 누르는데 성공합니다. 이 때 엘리오는 이미 귀가 찢어져 피가나기 시작했습니다. 기무라는 엘리오를 죽이거나 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괜찮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엘리오는 정신력이 엄청난다고 정평이 나 있었던 만큼 당연히 그 정도로는 굴하지 않았죠. 그러다가 엘리오가 순간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그렇지만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기무라의 조르기와 꺾기를 방어합니다.(솔직히 제 생각에는 실신한 건 아닌 듯 한데, 일본측 자료에는 그렇게 되어 있더군요.) 기무라는 엘리오와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닌 만큼 "무리하지 마라!"라고 두번 정도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엘리오는 일어를 어느정도 알아들었다고 하죠.)

    기무라 마사히코

       2라운드가 되자 엘리오의 끈질김에 혀를 내두른 기무라는 하는 수 없이 팔 얽어 비틀기를 써버립니다. 훗날 기무라 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이 기술은 사쿠라바가 그레이시 헌팅을 할 때 응용되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엘리오는 버티지만 이미 팔관절이 완전히 나가버린 상황이었죠. 우두둑 하는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관중들이 들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엘리오는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싸운다고 하였지만 보다못한 카를로스 그레이시가 타월을 던져 버립니다.

      기무라는 이 경기가 끝나고 나서 "과연 마에다 미츠요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이다. 엘리오의 투지야말로 일본 무사의 거울이다. 경기는 내가 이겼으나 승부에 대한 집념에서는 패배했다."라고 한 바 있습니다.

     (이 시합이 와전되어 기무라와 엘리오가 3시간이나 싸웠다느니, 기무라가 엘리오를 백번을 메쳤는데 엘리오가 버텼다느니 하는 헛소문이 돌게 되었습니다. 실제 시합시간은 13분이었고 시합 내용 자체로는 엘리오가 기무라에겐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1. 유도의 귀신-기무라 마사히코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후에 기무라 없다!"

    1917년 9월 10일에 태어난 기무라 마사히코는  강을 끼고 있는 구마모토 현의 광산 마을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물속에 발을 담그고 돌멩이와 모래들을 퍼서 나르는 일을 하였다고 하죠. 물속에 하체를 담그고 하루 종일 있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단련이 됩니다. 물의 흐름을 계속 버티면서 허리와 다리가 자연스럽게 강해지죠. 또한 계속에서 돌멩이와 모래가 든 자루와 채를 손에 쥐고 날랐기 때문에 기무라의 악력이라는 것은 유도를 배우기 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 구마모토 출신들이 술을 잘하고 힘이 장사라고 하죠.

    기무라 마사히코

     10세때 강도관에 입문한 기무라는 엄청난 트레이닝으로 원래 강했던 팔힘과 악력을 거의 사기 수준으로 끌어올리게 되는데요. 자전거 타이어를 이용한 트레이닝이 보급되지 않던 시절 나무에 흰띠를 묶어놓고 메치기 연습을 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트레이닝법이었는데요, 기무라가 끊어먹은 도복띠는 강도관 시절에만 무려 1000개에 달한다고 합니다.(유도를 해 보신 분들이면 다 아시겠지만 유도의 도복띠는 어지간해가지고는 튿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배밀기(유도식의 팔굽혀펴기)를 한 번에 1000회씩 할 정도의 팔힘과 지구력을 키웠습니다.

     (방학기씨의 만화 바람의 파이터를 보면 기무라가 달려오는 말을 메치는 일화가 나옵니다만, 이것은 아무래도 과장인 듯 합니다. 일본 측의 어떤 자료에도 그런 언급은 전혀 없거든요. 그리고 전성기의 기무라라면 그게 가능할런지도 모르지만 소년시절에 달려오는 말의 앞발을 잡고 메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죠, 중심이동이나 움직임 등이 사람과는 판이하게 다른 네발달린 짐승을 던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비현실적입니다^^)

      중학 4학년(지금의 고1)때 강도관 4단을 취득,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승단 기록을 세우게 되는 기무라는 이후 시합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 17세의 나이로 전일본 대회 최연소 우승 1935에서 1937년까지 전 일본 유도대회 3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이후 13년동안 1950년까지 무패, 10연속 우승이라는 깨지지 않을 대기록을 세우게 되죠(물론 무승부 기록은 있습니다.) 결국 기무라는 당시 히트하던 소설 스가타 산시로의 붐과 함께 재조명되기 시작한 산시로의 실제 모델인 강도관 사상 최강의 사나이 사이고 시로의 뒤를 잇는 '쇼와의 산시로'라는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후에 기무라 없다!'는 말은 이 기무라를 당시 사람들이 사이고 시로와 동급으로 인정해 줬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사이고 전에 야마아라시 없고, 사이고 후에 야마아라시 없다!'라는 말에 빗대어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이고 편을 읽으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사이고 시로는 강도관 122년 역사상 최강이라고 불리는 남자입니다. 그와 견줄만 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기무라야말로 천재중의 천재였다는 것이죠.

     (흔히들 김두한 씨의 일대기에 꼭 등장하는 마루오카와 기무라를 비교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만...마루오카는 체중 자체도 경량급이었고, 지명도에서도 기무라 마사히코하고는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원래의 유도 시합이라는 것은 당시에는 체급이라는 것이 없고 무차별급으로 진행되었지만 어전시합에 한해서 경량급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루오카는 그 부문에서 우승했던 것이죠.(사실 이 어전시합조차도 불분명합니다.) 방학기씨의 만화에는 이 마루오카가 유도8단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나이에 8단이라면 그건 대기록입니다. 당시 강도관에서 40대가 되기전에 8단 취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기무라나 사이고 시로도 하지 못한 일이죠. 한마디로 무척이나 과장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방학기씨가 만화를 그릴때 김두한씨가 생전에 라디오 프로에서 했던 증언을 자료로 참고해서 그렸기 때문에 틀린 부분이 너무 많이 나온 것이죠.-그 라디오 방송의 증언들이 허풍과 과장이 너무 심했다는 것은 김두한씨와 같이 건달 생활을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인정한 내용입니다.-장군의 아들 같은 영화를 보면 마루오카는 장신에다가 거구인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현역시절 170에 70킬로도 되지 않는 경량급이었습니다. 8단이라는 것도 당연히 거짓말이죠. 물론 마루오카가 그리 이름난 선수가 아니다 보니 정확한 단수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기무라나 아베 켄시로 같은 무적의 강자들이 버티고 있는데 혼자 8단까지 올라갈 수는 없었죠. 당시 일본 경시청 유도 지도 총감의 단수가 8단이었습니다.  

     일개 경찰서의 무술 지도 경부가 8단이라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이죠. 물론 이 마루오카 경부의 유도 실력은 비록 경량급이라도 어전 시합에서 우승을 할 정도이니 굉장하기는 했었던 듯 합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나가 떨어진 당시의 건달이나 야쿠자는 꽤 많았다고 하지요. 그러다보니 스스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종로의 건달들이 강하다는 것이 일본까지 정평이 나서 마루오카를 특별히 불러왔다느니, 마루오카가 어전시합 무제한급을 7연패를 했다느니 하는 과장과 헛소문을 퍼뜨린 듯 합니다.-무엇보다 공식적인 어전시합인 무차별급에서 마루오카라는 우승자는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 당시 우승자라고 올라있는 이름은 아베 켄시로와 기무라뿐이죠. 야인시대나 김두한씨의 팬 분들은 이 부분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품으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사실대로 쓴 것 뿐입니다. 저도 어린시절엔 김두한씨의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다 믿었었거든요. 그게 엄청난 과장과 허풍이 섞였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는 거의 10년이 걸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이야기지요.)

     기무라의 최종 단수는 강도관 7단이었는데 이는 기무라가 1950년에 강도관을 탈퇴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규정도 그렇지만 당시 강도관 규정에도 특별 승급이라는 것이 있어서 7단 정도까지는 별도의 승단 심사 없이 어전 시합 우승만으로 승급이 가능하였고, 기무라는 바로 그런 케이스로 올라간 것이었죠. 정상적인 승단 심사를 통한 것이었다면 33세때 7단이라는 건 말이 안될 정도의 단수 입니다.^^;; 물론 당시 7단이건 8단이건 기무라를 이길 사람은 없었겠지만 말이죠. 우리나라 유도도 올림픽 우승하면 자동으로 단수를 올려주는 특별승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올림픽 우승할 정도의 실력자라면 정식 승단을 하더라도 4단이나 5단 정도는 어렵지 않게 딸 듯 합니다만...

     

    2. 기무라를 패퇴시킨 사나이!-아베 켄시로


    기무라는 16세의 나이에 어전 시합에 최초로 참가하여 승승장구, 4강까지 진출합니다. 당시 기무라의 위력앞에 이름난 유도가들이 하나하나 다 나가떨어졌었는데 그를 지켜보던 가노 지고로 조차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고 하니 당시 기무라의 위력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아베 켄시로. 그는 당대 최강이라고 평가받던 유도가로써 168의 키에 71킬로. 경량급에 나가야 할 체중이었지만 워낙에 강자였기 때문에 무차별급에 출전하게 된 것이었죠.(체격은 마루오카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실력은 천지차이였던 듯 합니다.)

     기무라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밧다리 후리기를 하면서 한팔 업어치기를 할 요량으로 아베 켄시로에게 달려들지만 되려 아시바리(와사바리라고도 부르죠 우리나라에서는^^)를 당해 쓰러지면서 절반을 빼앗깁니다.(당시에는 절반 그리고 한판 두가지 뿐이었습니다. 그냥 밀려 넘어지는 그런건 점수로 인정도 안해 주던 시절이었죠.) 생전 처음으로 아시바리에 넘어져 본 기무라는 자존심이 상해 다시 달려드는 순간 자신의 복숭아 뼈 밑으로 아베의 발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다음 순간 기무라는 세상이 뒤집히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초고수의 아시바리를 당하게 되면 원래 머리부터 떨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안당해 봐서 모르겠습니다만(저는 도장에서 초고수한테 당한게 아니라서 그런가 봅니다^^)

     결국 아시바리 두방에 한판으로 무릎을 꿇게 된 것이죠. 이 대회 우승을 마지막으로 아베는 어전대회에 참가하지 않게 됩니다. 기무라에겐 가장 깨끗히 패해버린 시합이 되고 말았죠. 리벤지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아베 켄시로에게 패퇴했던 경험은 기무라에겐 엄청난 추진력이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한팔 업어치기의 연습에 주력하던 기무라는 이 일을 계기로 한가지 수련을 더 하게 되는데 바로 100개의 촛불을 켜고 발뒤축 후리기를 연습하여 풍압만으로 불을 꺼버리는 연습을 하게 된 것이죠.

     

    3. 기무라와 프로유도

     

    정식적 명칭은 국제 유도 협회이고 쇼와 25년(1950년)에 우시지마 8단이 만든 것입니다. 이 또한 수많은 문헌에서 기무라가 창시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프로유도라는 것은 고류 유술에 존재하는 수많은 살수와 역관절 메치기 같은 위험천만한 기술들을 다 복원시켜 스포츠 유도가 아닌 격투전용 유도를 지향하는 상당히 실전적인 무도였다고 합니다.

     사실 역관절 메치기같은 경우는 조금만 잘못해도 팔의 관절이 부러져버리는 것이 다반사이며, 낙법도 무척 까다로와서 메쳐지면 실신하거나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의 유도에서는 사라져 버렸지만 삼보에 아직 그 원형이 남아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삼보자료를 뒤져보시면 될 듯 합니다. 브라질리언 유술에도 역관절이 조금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역관절에 관한한 삼보쪽이 보다 더 체계가 있죠.(아무래도 엘리오나 카를로스 본인들이 메치기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물론 역관절 기술들에 관해서는 대동류와 아이키도가 가장 우수하기는 합니다만...

     손가락 관절기는 제대로 된 합기도를 조금만 익혀 보신 분들은 그 원리를 금방 아실 겁니다. 사실 손가락은 굉장히 민감하며 힘도 별로 없어 주먹으로 꽉 움켜 쥐기만 해도 기술의 반은 걸렸다고 할만큼 쉽게 적을 제압할 수 있는 기술이지만 역시 손가락이 부러지거나 불구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유도에서 금한 기술입니다.

     기무라는 강도관의 분위기가 너무 무도보다는 스포츠 쪽으로 기우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스스로는 연습때마다 살벌할 정도의 기술을 남발해, 그의 기술을 받아주는 사람들이 꼭 한 두명은 실신을 했다고 합니다. 하루에 100명과 대련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기무라는 이처럼 기술을 너무 세게 걸었기 때문에 강도관에서도 평가가 썩 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그에게 요시지마8단의 프로 유도는 그의 무도 정신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이었고, 기무라는 요시지마의 수제자로 들어가게 됩니다. 손가락 관절기까지 다 부활시켜버린 프로유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레이시 유술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이 프로 유도는 최영의 선생님의 실전공수처럼 엄청난 비난을 받으면서 전통 유도계의 압박에 의해 겨우 10회의 시합을 갖고 4개월만에 하와이에서 소멸하고 맙니다. 그리고 하와이에서 기무라는 프로레슬링을 하기로 결심, 브라질 순방에 나서고 거기서 엘리오와 맞서게 됩니다.

    기무라 마사히코


    4. 최영의와 기무라, 두 초인의 만남.

     

    기무라 마사히코님의 일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당대 최강의 무도가 최영의님이시죠. 최영의님이 미국 순방에서 돌아와서 전통 무도계의 온갖 시기와 중상 모략때문에 고뇌하던 시절, 기무라 마사히코와 만나게 됩니다. 기무라 또한 프로 유도를 하는 바람에 강도관 유도계 인사들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공격을 당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하죠. 만나자 마자 둘은 십년지기처럼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그러나 한가지 실망스러운 점은 이 둘의 대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인데요, 솔직히 상당히 궁금하기는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최강자라고 인정해주는 사이였으니 말이죠. 기무라선생의 성격또한 최영의님 만큼이나 괴짜스러운 부분이 있어 아무하고나 친해지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두분은 마음이 잘 맞았다고 합니다. 최영의님은 자신이 직접 쓴 글에서 이렇게 언급하신 일이 있습니다. 뭐 바람의 파이터나 공수 바보일대에서는 둘이 대결한 적이있는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으나...뭐 아무도 안보는 곳에서 두분이 겨룬 일이 있는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최영의님도 기무라님도 아무도 그런 언급을 하신 일이 없으니 알 수 없는 일이죠.

    "기무라야말로 최강의 유도가이고 진정한 무도인이었다. 그는 나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나보다 더 많이 단련하고 정진하는 내가 아는한도내에서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요즘의(당시, 1960년대) 일본 유도계는 네덜란드의 헤싱크(헤이싱이라고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5단에게 무릎을 꿇고 있다. 그러나...기무라 마사히코가 돌아온다면 헤싱크 따위는 그의 도복도 잡아보지 못할 것이며 3분을 버티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이것은 공수도인 최영의의 이름을 걸고 단언할 수 있다."

     최영의님과 함께 미국 순방을 떠나 사선을 함께 넘으며 우정을 다졌던 엔도 고키치 6단은 최영의님께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나도 유도가이다보니, 기무라 마사히코라는 인간을 한 번 이겨보고 싶어서 5년이나 죽어라 연마했습니다. 기무라의 필살기라는 한팔 업어치기와 밧다리 후리기는 나의 필살기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5년동안 이를 갈면서 연마했지만 막상 기무라씨와 맞잡는 순간에 땅에 쳐박히고 말았지요...몇초도 버티지 못했었죠...."

     이후 최영의님과 기무라는 같이 유도도 수련을 했는데, 최영의님 또한 4년만에 강도관 4단을 취득한 유도의 달인이었기 때문에, 직접 유도 대련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아무리 천하의 최영의님이라고 해도 유도로는 기무라의 적수가 되지 않았죠. 맞잡는 순간에 한팔 업어치기로 깨끗히 날아가 버리셨다고 합니다.

    그 때 하신 말씀이 유명합니다. "나를 이렇게 메쳐버린 인간은 기무라 마사히코 뿐이다."

     

    5. 기무라와 역도산 그리고 최영의...당대 최강의 남자들이 만나다!...그러나...

    엘리오 그레이시를 격침시키고 일본 유도의 강함을 증명한 기무라, 그러나 일본에서 그를 맞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관심조차 기울여 주지 않았죠. 훗날 그레이시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그레이시를 격파한 사나이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이 때만해도 그건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외국가서 허접한 유술가 하나 잠재우고 온 것이라고 여겼고, 더군다나 귀신 기무라가 패한다는건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쇼와29년(1954년)에 역도산님과 함께 드디어 테그팀을 결성하여 본격적인 프로레슬링 시합을 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싸운 상대는 바로 유명한 샤프 형제였죠. 샤프형제와의 시합을 구경하던 최영의님은 역도산과 기무라에 대해 엄청나게 실망을 하시게 됩니다. 최영의님이 미국에서 목숨을 걸어가며 싸웠던 톰 라이스가 하던 것과같은 실전형 레슬링이 아니라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마찬가지인 경기였기 때문이죠. 게다가 기무라는 아예 무시당하는 역이고 오로지 역도산님만을 띄워주는 각본 또한 최영의님을 화나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런 쇼의 들러리나 서 주고 있는 기무라님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역도산 선생은 익히 알려진대로 미국에서 톰 라이스와 진검승부를 하다가-사실은 각본이 있었으나 톰 라이스가 무시하고 시작하자마자 달려들었죠. 역도산님이 이기는 각본이었기 때문에 훗날 역도산vs기무라 전에서의 기무라처럼 일부러 맞아주거나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처음에는 역도산님도 그와 제법 접전을 벌이셨지만 잠시후에 거의 일방적인 폭행을 당하고 중상을 입으신 바가 있습니다. 톰 라이스는 원래 세계 챔피언까지 노리던 복싱계의 강자였죠, 모션이 크고 궤도가 단조로운 가라데 촙은 그의 가드와 풋웤에 완전히 무력했습니다.

    최영의 선생이 이후에 톰 라이스와 격돌, 늑골과 턱뼈를 날려 버리면서 톰 라이스의 격투인생은 그걸로 끝나게 됩니다만,  이 또한 역도산님에게는 치욕스러웠던 듯 합니다. 그러나 최영의님은 역도산님이 보기엔 너무나 강했고, 또한 너무 완고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기무라 선생처럼 뒷 공작을 할 약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죠. 때문에 실제로 진검 대결을 벌이지 못할 바엔 또 다른 최강자인 기무라 선생을 눌러 버리는 것이 났다는 판단을 하셨던 듯 합니다. 최선생님이 프로레슬링을 할 리가 없으니 가난한 기무라선생을 끌어들이고, 자신의 각본 속에서 '기무라는 역도산보다 못하다'라는 인식을 일본인들에게 심어주게 된 것이죠.)

     그리고 최영의님은 기무라를 설득, 결국 기무라 마사히코와 역도산의 진검 승부가 결정이 나게 됩니다. 당시 일본 언론에서는 이 시합을 '간류지마의 결투'라 하여 엄청난 관심을 보였는데요, 간류지마의 결투라는 건 바로 사상 최강의 사무라이라는 미야모토 무사시와 또 다른 검의 귀신 사사키 고지로의 싸움을 의미합니다. 즉 최강은 둘이 될 수 없고, 이 둘은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에 비견할만하다는 의미였던 것이죠.

     최영의님이 이후에 기술한 자서전을 보면 당시의 역도산님이나 기무라님 모두 엄청나게 강했지만, 기무라님은 이미 나이가 마흔에 가까워 절정에 달한 젊은 역도산에 비해 불리한 감이 없지 않았다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실력만을 놓고 볼때 기무라님이 약간우위에 있었다고 판단하신 듯 합니다. 시합직전까지도 기무라님의 승리를 확신하셨다 합니다.

     

    6. 제 2차 간류지마의 결투...그러나 고지로는 무사시를 이기지 못하는 것인가?


     간류지마의 싸움에서 무사시가 온갖 심리전을 다 이용해서 승리를 따낸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검의 실력만이라면 고지로가 무사시보다 못할 것은 전혀 없었다고 하죠. 이 싸움은 무사시의 '검술'의 승리가 아니라 '병법'의 승리였다고 알려지게 됩니다. 기무라와 역도산의 시합 또한 역도산이 쳐 놓은 그물에 기무라가 걸려든 꼴이었습니다. 당시의 동영상을 보면 가무라가 역도산에게 맞는 순간에 무방비로 있다가 어이없이 쓰러지는 것을 확인 할 수있습니다. 그리고 뭔가 억울해하는 기무라의 모습도 확인이 가능하죠. 

     훗날 말년의 기무라가 토크쇼에 출연해 당시의 사정에 대해 언급한 바 있었고, 그 내용은 최영의님의 자서전과 바람의 파이터, 공수 바보일대 등에 나왔던 내용과 거의 일치하므로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일본 만화중 베스트 셀러로 꼽히는 공수 바보일대에서 기무라가 병든 아내의 약값을 구하기 위해 역도산에게 져 줘야만 했던 서글픈 사연이 나오고, 그 이후 역도산님의 비정상적인 행동들이 그대로 기술되었을 때 역도산님의 수제자였던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 김일-오오키 긴타로, 이 세명의 프로레슬링의 거목들이 아무런 반론도 내 놓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부분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보입니다. 공수 바보일대의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바람의 파이터와 똑 같습니다. 최영의님의 자서전과도 일치하죠^^

     실제로 최영의님이 당시 실신한 기무라님을 보면서 격분한 나머지 역도산님에게 죽여버리겠다고 호통을 치신 일은 꽤 유명합니다. 이후 역도산님이 최영의님을 겁내서 피해다닌 것도 다 사실인 듯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역도산님이 이 무렵에 야쿠자들을 두들겨 패고 다니며 술에 빠져 사실 때, 역도산님의 뒤를 봐주던 양원석-야나가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합니다.-이라는 조선계 야쿠자의 존재입니다. 보통 알려진 내용은 역도산님이 워낙에 싸움에도 강했기 때문에 아무리 행패를 부려도 야쿠자들이 그냥 맞아주고 자리를 피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죠.-야쿠자들이라면 정 안되면 떼거지로 달려들어 칼로 난도질을 해 버릴 수 도 있고, 총을 쏠 수도 있습니다. 단지 싸움에 질 것 같다는 이유로 역도산님을 피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가 않습니다.- 이 야나가와라는 인물은 일본에서는 이제 전설이 되어버린 초과격 무투파 야쿠자의 두목으로써 10명도 안되는 조직원을 이끌고 120명이 넘는 야쿠자 조직을 피를 피로 씻는 싸움으로 단 하루만에 쓸어버리면서 전 일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갔던 무시무시한 남자였습니다. 맨손 뿐 아니라 무기의 사용에 능하고 기습에 능해 한번 붙었다 하면 반드시 바닥을 피로 칠해야 싸움을 끝냈다고 할 정도였으며 당시 야쿠자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라고 불릴 정도의 야쿠자였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역도산의 뒤를 봐 주고 있었던 것이죠. 때문에 야쿠자들이 감히 역도산님을 죽일 생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렁이도 밟히기만 하면 꿈틀하는 법이죠...

      훗날 최영의님의 이 역도산님에 대한 행동에 반감을 품은 김일 선수가 최영의님에게 도전을 하였지만, 김일님은 최영의님에게 도전할만한 자격이 안되었죠. 프로레슬링에서도 최고가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이노키와 바바를 제압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최영의님에 대한 도전은 아무도 수긍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결국은 김일님도 도전한다고 엄포만 놓았을 뿐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고 맙니다. 사실, 김일 선생이 도전하실 때의 정황을 고려해 보면 정말 도전하실 생각이었다면 조일삼형제분이나 로야마님, 사토 카츠아키님같은 당시 극진의 간판을 짊어진 사범님들들을 먼저 쓰러뜨려서 최영의님이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드셨어야했겠죠. 그 정도 단계는 거쳐야 둘의 인지도 차이를 메꿀 수 있었을테니까요. 일본에서는 세계 최강의 초인이자 무신으로까지 칭송받는 분에게 도전하는 일인데 아무리 프로레슬링 테그 챔피언이라고 하더라도 그 격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지요.

     사실 역도산님 측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는 없지만(죽은 자는 말이 없죠) 여러가지 정황을 감안하면 최영의님의 말씀이 옳은 듯 합니다.

     

    기무라 마사히코


    7.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스스로 꺾어버린 무도가의 자존심...그리고 은퇴...

    기무라 마사히코는 결국 이 석연치 않은 사건으로 프로레슬링을 그만두고 개인도장을 운영하며 실전에서는 손을 떼게 됩니다. 기무라가 그렇게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던 자신의 무도가로써의 명예를 팽개쳐 가며 지키려고 했던 아내는 기무라의 정성 덕택인지 병세가 호전되어 기무라의 곁을 지켜주게 되었습니다.(솔직히 저라고 해도 기무라 선생의 입장이었다면 두말않고 역도산님의 각본대로 놀아나 주었을 것 같습니다. 명예도 중요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니까요.)

      사실 기무라 선생은 어린시절부터 가족의 사랑이라는 것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얻게된 아내는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가족이었고 쉼터였습니다. 아내또한 기무라를 지극 정성으로 내조해 줬었고 깊이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아내가 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기무라 선생이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죠. 자신의 명예, 귀신이라는 칭호...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던 것입니다. 역도산님이 3번의 매치를 제의하면서 2번은 짜고하고 마지막은 진검승부라고 했을 때 기무라님은 이미 시합이 한 번으로 끝날 것이라는 각오를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무도 인생의 끝이 될 것이라는 것도 어느정도 예상했다고 하죠. 다만, 역도산님의 무도인으로써의 자존심에 실날같은 희망을 걸고 그에 응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그러나 결과는 기무라 선생의 추측대로 진행이 되고 말았죠. 훗날 기무라 선생은 인터뷰에서 그 때의 일은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유일한 가족인 사랑하는 아내를 잃지 않았기 때문에...

     은퇴후의 기무라 선생의 얼굴에는 뭐지 모를 평안함과 부드러움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프로레슬링시절의 그 찌들고 무기력한 모습은 사라져 버렸죠. 무도는 기무라 선생에게 아무런 영광도 주지 않았습니다. 귀신을 굴복시킬 정도라던 유도솜씨도 남의 책략에 들러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에게 프로레슬링은 각본이 있는 것이라는 것이 알려진 1960년대 중반부터는 이에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인들도 '그러면 그렇지, 진검승부라면 프로레슬링 최강자가 아니라  상대가 전세계의 누구라고 할지라도 천하무적 기무라가 그렇게 질 리가 없다.'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뭐 정작 기무라 선생 본인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는 태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역도산님이 톰 라이스를 일본으로 데려와 일방적인 구타끝에 승리를 하게 되지만 이는 오히려 그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만들었습니다. 톰 라이스는 최영의님에게 패배하면서 최선생의 해머같은 정권에 이미 격투가로써의 인생은  끝나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싸울 수 없는 톰 라이스는 돈 때문에 일본까지 오게 된 것이었고 역도산님은 이를 이용, 일본인들 앞에서 그를 이겨버립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당시의 관중들에게 각본이나 쇼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음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고 맙니다. 톰 라이스는 처음부터 누가보기에도 전의조차 없었던 것이죠. 정말 명예 회복을 하고 싶었다면 자신을 참패시킨 톰 라이스를 그 지경으로 만든 최영의님에게 도전을 했었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8. 그레이시와 함께 되살아난 유도의 귀신 기무라 마사히코
    .

     

    그레이시 패밀리의 발레투도가 세계를 휩쓸게 되자, 이 그레이시를 일찌감치 격파해 버렸던 기무라 마사히코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무라 님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고, 다만 그 당시에 엘리오를 이기는 필름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죠. 그러면서 사람들은 기무라를 역도산에게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패배한 힘없는 유도가가 아닌 진정한 최강의 유도고수로 다시한번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쿠라바 카즈시라는 뛰어난 그래플러가 그레이시 패밀리를 기무라 록으로 격침 시키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기무라에 대한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사쿠라바가 호이스를 쓰러뜨린 다음날 신문에는 '사쿠라바, 일본 격투계 50여년만의 비원성취'라는 기사가 1면 톱으로 실리게 됩니다. 바로 엘리오가 기무라에게 무릎을 꿇은지 50여년이 지났기 때문이죠. 그리고 공개된 필름 속의 기무라는 역도산님과의 시합에서 무기력하게 실신해버린 삶에 찌들어버린 모습이 아니라 그 막강한 그레이시 유술을 일방적으로 부수는 가공할 실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강자의 모습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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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빛늑대(天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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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진가라데 창시자 최영의 선생님 글입니다.

    "네가 젊은너희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남자한테 제일중요한것은 야심이다..
    돈을잃은것은 작은것이다 신용은 중요한것이다 그러니 신용을 잃어 버리면 안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용기다.
    용기를 잃어버린것은 전부 잃은것이다.....

    예전에 나의 도장으로 전화가 왔다
    극진수련생들이 야쿠자들과 싸워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서 도장운영이 힘들다는것이였다.
    난 싸운 제자들에게 단번에 때려치라고 했다.
    그런 정신으로 할꺼면 도장은 의미가 없다고.....
    너희들 길에서 누가 너희어깨를 치고 발을 밟고 시비를 건다면 사과를 해라 그런대도 싸움을 건다면 싸워라.....
    무엇때문에 가라데를 수련했는데 그런 폐기도 없다면 가라데를 때려쳐라 적에게 등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극진의 역사다.

    남자로써 싸움을 못하면 실격이다
    싸움에 강한사람은 빠르다 빠른사람은 싸움뿐만 아니라,
    그무엇에도 강하다.... 돈을버는것도 싸움을 하는방식으로하기때문이다.........

    남자는 죽을때까지 전쟁이다......
    싸움의 무대는 도장이 좋다 몸이 엉망이 될때까지 싸워보는것도 좋다 그러면서 배워가는거다.
    사무라이는 칼을 매일간다 하지만 칼을 뽑지 않는데 그 의미가 있는것이다.
    극진의 정신은 너희도 알고있겠지
    고개는 숙이고 눈은높이 입은 신중하고 마음을 넓게
    효를 원점으로 모두에게 의롭게 해라..........
    여자를 볼때도 집에 효도를 하는가를봐라 효를 아는사람은 누구에게도 잘한다.... 그것은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잘되는일은 남의덕으로 돌려라........
    잘못되는일은 나의탓으로 돌려라.....
    그리고 스스로 성장하는거다....
    나 의에에는 모두가 내스승이다.........

    실천이 없으면 증명이 없고 증명되지 못하면 존경받지
    못한다.........

    어쨎든 노력이다... 노력하지 않고 강해질수 있다면 내가 가장 배우고 싶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남자의 무능은 죄다... 부모님의 주신 감사한 몸을 왜 단련하지않는가! 왜 공부하지 않는가!

    돈을 쫒지 마라 여자와 명예도 마찬가지다.
    돈,여자,명예가 쫒아오는 남자가 돼라...
    다시한번 말하지만 남자는 야심이 있어야 한다
    야심이 있는남자가 씩씩하다, 용기가 있다
    목표가 있기때문에 성장하는거다.......
    남자는 죽을때까지 전쟁이다.....

    정의없는 힘은 무능이다 하지만 힘없는 정의도 무능이다
    솔직히 말한다면 난 너희들이 이겼으면 좋겠다......
    이기고싶은마음이 진짜다...... 강해지길 바란다.
    이제부터 세상은 너희들의 것이다 다만 용기가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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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9월 3일 일요일

    도관 수련 좀 지각할 각오를 하고 -_-
    "극진진성대회"를 개최 한다길래 큰맘먹고 구경 가보았습니다.

    음...잠실실내체육관 생각보다 멀었습니다. (거의 11시 다되서 도착..;;)

    막상 경기를 개최하는 체육관 앞에서서 드는 생각은
    '어랏..이곳 진짜 대회하는거 맞나? -_-' 싶을 정도로 전혀 외관의 홍보도 없고
    밖에는 사람들도 안다니고...여튼 썰렁한 느낌의 입구 더군요.

    어쨌든 무료관람이니 이정도는 감사히 패스~ ^^

    오후에는 수련하러 가야하기에 점심 시연때까지만 급관람하기로 결정.

    소규모의 대회라 조촐하긴했지만...
    참가자들의 열정과 혈기 만큼은 메이저급에 못지 않았다고 생각 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도전과 패기가 느껴지는 시합들이었구요..

    그런데 한가지 기분이 좀 드러웠던건...
    웬 중고딩쯤 되보이는 녀석들이 굉장히 시끄러웠단 겁니다.
    (왜 있자나요..입으로 쌈하는 중고딩들..딱 그런 케이스인데..ㅎㅎ)
    녀석들 특유의 은어를 섞어쓰면서 하는..(솔직히 참다참다 확 올라오는게 때릴뻔 했습니다. -_-;)
    애들이 어려서 그런건지 개념이 없는건지 관람 매너가 영 아니더군요...

    그래도 이것만 빼면 전체적으로 무난한 진행과 깔끔한 경기 다 좋았다고 평가 합니다. ^^

    시합은 극진 가라데에서 채용하고 있는 풀컨택룰로 진행되었습니다.
    (풀컨택룰이란 주먹으로 안면공격만 하지 못하고 나머지 타격부위는 다 허용합니다. 물론 발차기로는 안면공격도 가능합니다. 낭심은 아마 반칙일 거구요. ^^;)

    그럼 어땠는지 간단히 한번 살펴 볼까요?

    극진가라데의 특성상 세단계 그룹으로 나눈 무체급 풀컨택 시합이었는데..(물론 보호구는 없이요.)
    파란띠 미만은 초보라서 그런지 별도의 흰색 보호구를 착용하더군요. 아마도 안전을 위해서 였겠죠.

    끝나고 판정을 기다리는 중인 두 청년들...결판이 잘 안나 3세트 정도 대결한듯...


    각 코너별 도장선수 응원겸 대기실?


    예선이 끝나고 격파 시범에 사용하기 위해 세팅된 얼음들...
    후들들 하군요. ㅎㅎ


    드디어 격파!! 긴장하셨는지 두샷 성공이긴 했지만..어쨌든 대단~ 파워풀~ -0-ㅋ

    이건 뭐냐구요? 이건 경기가 종료됨을 알려주는 고마운? 북 입니다. 둥~둥~ㅋㅋ

     
    한판의 경기가 끝났을때 북을 침과 동시에 빨간 뭉탱이?같은걸 경기장밖으로 던지더군요..

    그럼 심판 아저씨는 그걸 다시 주워 던져주는거지요..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라운드 진행..ㅎㅎ

    저도 무술을 수련하고 좋아하는 지라... 
    유파는 다르지만 간만에 인상적인 경기관람 잘 하고 왔었답니다.

    최영의(최배달)님의 말씀처럼 실전을 추구하는
    극진가라데(극진공수도) 역시 좋은 무술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상 "극진 진성대회" 이모저모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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